18화
다음 날 아침.
달리기를 마치자마자 작전이라도 나갈 것처럼 준비했다.
헬멧에 야투경, 워 벨트, 주무장인 HK416과 부무장인 글록19까지. 그야말로 풀 착장의 상태.
거기에 낮게 깔려 오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새까만 스포츠 선글라스까지 착용하고 밖으로 불려 나와 미쓰비시 벤에 올라탔다.
퀴퀴한 직물 시트의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는 사이, 팀원들도 줄줄이 타기 시작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의 문이 열리면서 호세와 마커스가 나란히 탔고, 제이크가 덩치에 어울리게 두 자리를 차지했으며, 내 옆으로 레이첼이 들어왔다.
그러고선 그녀가 털썩 앉으면서 물어왔다.
“리,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요? 어제 작전이 좀 그랬는데.”
레이첼이 머리를 묶으면서 대답하기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래요.”
대답하고 나자, 그녀에게서 옅은 샴푸 향이 풍겨 왔다. 가글을 한 건지, 뱉는 숨에서는 상쾌한 민트 향도 섞여 있었고.
퀴퀴한 차 내부의 냄새와 대비된 것인지, 그게 향기롭게 느껴졌다.
괜히 시선도 갔고.
그래서 얼른 고개를 저었다.
소위 말하는 정신이 꽃밭으로 갈 뻔한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레이첼 자체가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캐릭터였다. 눈 코 입이든, 몸매든.
다행히 한눈에 반해서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혈기 왕성한 29세의 남자답게 마음 한쪽이 싱숭생숭했던 것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
얼른 선을 긋고 정신을 수습했다.
‘아직은 아니지, 아직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딴생각을 털어 내는 사이,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리가 미친 줄 알았어요.”
“예?”
“갑자기 달려갔었잖아요. 특수전 부대라면 절대 안 할 짓이구요. 그래서 혹시 수류탄 위에 몸을 던지듯 테러리스트를 덮치려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아… 뭐, 그것도 못 할 건 없지만, 죽으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멀었지요.”
“아직이요? 무슨 뜻이에요?”
“그냥 뭐… 인생이 얼마 안 됐다, 이런 거죠. 할 것도 많고. 보다시피 몸뚱이가 창창하잖아요?”
쓸데없는 말을 좀 덧붙였다.
그녀가 물어봤던 ‘아직’의 진짜 뜻을 설명할 수 없던 탓이었다.
‘피칼을 잡고 핵전쟁 엔딩을 막을 때까지라고… 이걸 무슨 수로 설명해 주랴?’
속에서 헛웃음이 났다.
관련 정보를 먼저 말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기 때문이었다.
사실대로 다 털어 놓진 않더라도, 스캇을 제외한 G&G Corp와 국무부에 있는 배신자들, 세르게이나 피칼이 등장하게 될 장소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핵전쟁의 위기처럼 중요한 것만 알려 주면 어떨까 싶었다.
그러면 사건이 좀 더 유리해질 테니까.
다만, 생각만 했다. 그 어떤 것도 감히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뒤가 나빴기 때문이었다.
내 말을 불신하든, 신뢰하든.
어떻게 되든, 나는 CIA나 국토안보부의 안가 같은 데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든지, 네바다주의 51구역이나 어느 폐쇄된 연구소에서 머리가 갈라지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될 것이었다.
물론 라레플에 51구역 같은 건 나오지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임이었다.
제한이 있었다.
반면에 내가 있는 곳은 현실이고, 현실에는 내가 미처 모르는 비밀 조직들이 수두룩하게 많았다.
나 같은 건 납치해서 실험하고도 남을 만한 곳도 있을 터.
즉, 내가 가진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입에 지퍼 채워야지…….’
그렇게 내 처지를 돌아보고, 레이첼과 다시금 몇 마디의 대화를 나눌 무렵.
“자, 도착했어! 드디어 리의 실력을 제대로 볼…….”
어느새 호세가 차를 세우고서는 뒤를 돌아봤는데, 그의 표정이 묘했다.
웃음기가 어리고, 윙크까지 하는 모습.
뭐 하는 짓인가 바라보자, 호세가 알아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거기 두 사람 아주 보기 좋은데? 오면서 내내 그렇게 붙어 있던 거야?”
동시에 조수석의 마커스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웃는 상인 호세와는 다르게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모습.
“…음? 도대체 뭘 보고 그러는 거야? 리는 오히려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리는 평소에도 저런 늙은이 같은 표정을 종종 짓잖아. 근데 레이첼은 흐음…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맞지?”
날 두고 떠드는 모습에 대충 말을 돌리려던 때였다.
“일단 내려. 이제 이용 시간이야. 한 시간에 100달러라고.”
다행히 제이크가 묵직하고도 걸걸한 목소리로 상황을 잘라 버렸다.
호세와 마커스도 군말 없이 내릴 무렵.
내리던 레이첼이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그래 보여요?”
“글쎄요.”
“어쨌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도 그냥 말을 걸었을 뿐이에요. 모든 말에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에요.”
“아, 예.”
전에 내가 했었던 말을 의식하는 듯, 그녀가 나하고 다시금 눈을 빤히 마주치면서 말했다.
“CIA 출신이라고 그렇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범하기에는 국토안보부와 CIA를 거쳐 국무부 비밀 조직에까지 들어간 특수 요원인데다가 구사하는 언어나 드론 운용, 사격술까지 보통 사람을 초월한 수준이었지만, 군소리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알겠습니다.”
“…내리죠.”
잠시 주춤했던 레이첼이 내리고, 다시금 그녀가 풍기는 은은한 샴푸 냄새를 맡으며 내릴 때였다.
“오…….”
내 입에서 작게 감탄이 나왔다.
샴푸 냄새가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내리면서 마주한 광경 때문이었다.
바로 알 자마쉬 전술훈련 센터.
당연하게도 게임 속에 그대로 있던, 또한 내가 자주 이용했던 곳이었다.
‘이야, 이거 실물로 보니까 더 반갑네.’
알 자마쉬 훈련 센터는 이 중동 지역의 스토리를 풀어 가는 초반기에는 꼭 오는 장소였다.
예컨대 초보자용 훈련소.
그 개념처럼 훈련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곳인데, 그건 초보자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고인물인 나는 다른 이유로 왔었다.
바로 테스트 기록 경신과 전문 강사의 강의 수료.
둘 다 이점이 있었는데, 그중에 기록 경신은 상금을 받고 인지도를 높여 몸값을 올릴 수 있었고, 강의 수료는 관련 종류의 병기를 운용하거나 격투술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그건 게임을 플레이 했을 때나 해당되는 것이지, 현실은 아니었다.
기록을 경신한다고 해서 관리인이 상금을 주지 않을 거고, 강의 수료 없이도 원하는 병기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주먹질과 발차기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물론 전역한 지 10년이나 돼서 자주 못 써 본 것들은 다시금 경험을 해 봐야 했다. 박격포나 판처파우스트 같은 것들.
그리고 아예 사용조차 못 해 봤던, 몇 년 전에 개발됐던 현궁(AT-1K Raybolt: 대전차 미사일) 같은 건 기초부터 싹 다 배워야 했고.
하지만 그건 여기 없는 물건들이었다. 다른 훈련 센터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그렇게 짧은 상념을 털어 버리고, 제이크를 따라서 알 자마쉬 훈련 센터로 들어갔다.
‘간만이네, 이거…….’
실내 역시 자주 왔던 게임 속 화면과 같았다.
중대급 인원이 이용할 수 있는 규모로 다소 낙후된 구식 시설.
인근 국가인 요르단의 압둘라 2세 특수전 훈련 센터(KASOTC)를 이용하지 못하거나, 자금이 부족하거나, 하는 저마다의 이유로 방문하는 곳이었다.
썩 안 좋아 보이는데, 그래도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체력과 근력도 훈련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트랙과 체력단련실이 있었고, 오늘처럼 펑크 나는 경우도 잦아서 이용하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그사이에 제이크가 내게 턱짓했다.
“리, 탄 챙기고 준비해. 1인 작전 시나리오를 하게 될 거야.”
“예, 알겠습니다.”
“준비 마치고 이 문으로 들어가서 전부 사살하고 반대편 문으로 나오면 돼. 궁금한 건 있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더 기대되는군.”
제이크가 그러면서 내부 영상이 있는 모니터로 눈짓했으나, 나는 대꾸하지 못했다. 오히려 딴생각을 했다.
그의 기대를 만족시켜도 될지, 아니면 적당히 망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물론 둘 다 가능한 거라서 자신은 있었다.
1인 작전 시나리오가 기록 경신에 가장 유리한 코스라서 자주 해 봤었기 때문이다.
과장을 덧붙여서 눈 감고 해도 될 정도.
그래서 잠깐 고민했었으나, 그 과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두 문장 떠올리다가 바로 결론 내렸다.
‘훈련도 맘대로 못 하면 쓰나? 그냥 하자, 씨팔 거. 설마 이거 좀 잘한다고 CIA가 머리를 따겠어, 배를 가르겠어?’
혼잣말로 묻고 다시금 확신을 가질 무렵.
모든 준비가 끝났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이제 들어갑니다.”
제이크, 호세, 마커스, 레이첼과 차례로 눈을 마주치고, 뻑뻑한 철문을 당겼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환하게 불이 켜진 문 안쪽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종의 CQB(Close Quarter Battle) 상황.
중간에 90도로 꺾이는 복도와 좌우로 방들이 있었고, 바닥에 장애물들이 놓여 있었다.
PC로 플레이 했던 바로 그 테스트였다.
물론 할 때마다 소품의 일부가 바뀌기는 하는데, 나한테는 별 영향이 없었다.
난 늘 기록을 경신해서 업적을 세우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아서 이 훈련 센터를 떠나는 고인물이었다.
지금도 별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보상만 없을 터.
타앙―! 탕!
가장 가까이 있는 방의 타깃을 제거하고, 안을 빠르게 둘러보고 나왔다.
“클리어.”
홀로 중얼거리면서 맞은편으로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타깃을 사살했다.
그리고 꺾이는 복도에 도달했다. 그러나 확 들어가지 않고, 한 번 멈췄다. 여기는 저 방처럼 쉽게 봐선 안 됐다.
불이 켜져 있어서 환하다고는 하나, 함정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벽에 기대듯 숨은 타겟.
물론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가 달린 자동 표적이었지만, 어쨌든 내 신체가 찍히면 페널티가 부과될 것이다.
조심스럽게 진행해야 했다.
이에 복도의 코너 모서리에 사선(射線)을 걸치듯이 각을 확보해 나갔다.
총구를 겨눈 채, 옆으로 게걸음을 하듯.
내 어깨를 감추고, 상대의 어깨를 먼저 보기 위해 야금야금 내 영역을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거의 끝에 도달한 순간.
쇠로 된 접이식 타깃의 어깨 부분이 드러났다.
기다릴 필요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탕! 탕! 탕!
놈을 좀 더 빼면서, 어깨에서 가슴 부근으로 탄착지를 옮겼다.
타깃이 팍 젖혀졌다.
‘다음은…….’
복도 중간에 있는 크레모아를 가장한 페널티 함정을 가뿐하게 피하며 나아갔다.
이제 남은 건 방 두 개.
그중 가까이 있는 방으로 다가가면서, 수직 그립과 총열을 움켜잡은 왼손의 힘을 뺐다.
다음 순서의 일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바로 암전.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암흑이 닥쳐 왔다.
방은 물론이고 복도마저 꺼져서 이 코스 안의 모든 불빛이 사라진 상황.
아직 총을 견착한 채, 왼손으로 빠르게 야투경을 내렸다.
덜컥, 야투경의 녹색 화면이 한차례 짧게 흔들린 뒤, 새까맣던 공간이 두 눈에 환히 들어왔다.
레일에 부착된 레이저 포인터에서 쭉 뻗어 나온 선명한 선까지.
그 옆에 타깃이 있었다.
이상한 얼룩무늬 패턴의 군복 그림.
새로 조준하자, 적외선 레이저가 기다렸다는 듯 단번에 가슴 한가운데에 찍혔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틱.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났다.
탄 걸림이었다.
“아.”
이미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 상황.
황급히 글록19를 빼 들면서 페인트가 까진 타깃을 겨누었다.
그리고 명사수 특성이 내 총에 작용하는 걸 느끼는 순간, 방아쇠를 당겨 버렸다.
탕! 탕! 탕!
총을 들면서 하복부에 1발, 나머지 2발은 가슴에 박히면서 타깃이 넘어갔다.
그리고 방 내부를 클리어링 하고, 곧장 탄이 걸려 있는 HK416을 조치했다. 팅, 하고 탄알 하나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뒤, 재장전과 함께 탄알집과 노리쇠를 손으로 쳐 주고서 똑바로 자세 잡았다.
턱턱.
이제 남은 건 방 하나뿐이었다.
그 안에 제거해야 하는 타깃은 3개가 있었고, 개중 가운데 있는 보스한테는 페널티를 주는 적외선 카메라까지 달려 있었다.
쓰러뜨리기 전에 내가 찍히면 안 된다는 뜻.
그러나 어려울 건 없었다.
비싼 돈 주고 산 야투경을 꼈고, 내게는 라레플을 한 경험과 특성까지 있었으니까.
타다다닥, 잰걸음으로 남은 마지막 방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고, 입구에서 빠르게 격발했다.
탕!
코앞의 타깃이 넘어갔고, 오른발을 찔끔찔끔 움직이면서 각도를 좁혔다.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렇게 타깃의 어깨가 보인 순간,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속사했고, 동시에 들어가면서 다시 조준하며 당겼다.
탕! 탕!
순식간이었다.
두 타깃이 거의 동시에 쓰러졌고, 나는 방을 둘러보고 바로 몸을 돌려 나왔다.
그게 끝이었다.
야투경을 올리면서 복도 끝의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덜컹.
힘을 주어 열자, 훈련 센터 대기 공간의 백열등 불빛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빛에 적응하듯 눈을 깜빡이는 사이.
내 귀에 가장 먼저 들린 건 ‘F’로 시작하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