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6화 (16/185)

16화

“하…….”

사이렛 매트칼 대원 한 명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떤 신호도 없이 갑자기 나타났던 강태를 죽을 정도로 패든지, 정말 죽여 버리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이 아예 180도로 바뀐 탓이었다.

지금 돌아보니, 죽을 뻔한 건 바로 자신이었다.

‘…이게 현실이라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는군.’

강태와 조우했던 첫 장면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영상을 되감기 하듯.

시작점은 문 옆의 벽면에 밀착해 있다가, GALIL SAR을 들고 벌어지던 문틈을 조준하던 때였다.

가뜩이나 긴장하고 경계하던 무렵.

진입하기로 신호를 받은 그는 가능한 많은 시야각을 확보하면서, 뒷발을 끌어오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었다.

철저하게 훈련받고 연습한 대로.

이어서 방아쇠울의 검지를 슬쩍 움직여서 바로 격발할 수 있도록 자리까지 잡았었다.

그러나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멈춰야 했다.

물론 ‘해야 한다’라는 생각보다 앞서서 반사적으로 모든 동작이 완전히 정지했고, 총구가 바닥으로 내려갔다.

마찬가지로 철저하게 훈련받고 연습한 대로 나온 행동이었다.

이유는 하나.

‘다시 생각해도 그건 정말 개엿같았지만…….’

강태가 갑자기 등장했다.

그리고는 선수를 치듯 방으로 돌입해 버렸다.

일순 진입하려던 대원은 크게 당황했고, 또한 분노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사이렛 매트칼 대원의 머릿속이 살벌한 욕으로 가득 찼었다.

훈련 중이었다면 당장 중단하고 강태의 목을 잡아채어 바닥에 집어던질 정도로.

실전이어서 반사적으로 훈련받은 대로 행동하고 있을 뿐, 성질이 있는 대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모든 감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순간에 사라졌었다.

자살 폭탄 조끼를 두른 타깃이 등장한 순간부터였다.

‘…스위치를 누르려던 오른손 엄지가 날아갔고, 곧장 왼손 전체가 걸레짝처럼 찢어져서 흩어졌었지.’

이어서 쇼크가 온 타깃이 쓰러졌고 결박될 때 깨어나긴 했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전사할 뻔했어.’

단순한 비유 같은 게 아니었다.

약속했던 대로 자신이 안으로 진입했다면, 이렇게 살아 숨쉬긴 어려울 것이었다.

폭사 당했을 게 분명했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신속하게 들어온 다른 대원들까지 죽었을 게 분명했다.

그 외 인원들도 중경상을 입게 됐을 터.

문이 열렸을 때, 타깃의 엄지손가락이 스위치 쪽으로 접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발포했겠지만, 폭발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었다.

강태만큼 빠르게 반응하고 조준해서 격발하지 못했을뿐더러, 쐈어도 몸을 노렸을 테니까.

스위치가 눌렸을 거였다. 아니라면 폭탄이 터지든가.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상황만큼은 흡사 슬로우 모드처럼 보였었다.

만약 그 조끼가 폭발했다면, 터져 나오는 열압과 부풀어 오르듯 덮쳐 오는 화염까지 두 눈에 각인됐을 것이었다.

영화 속 장면처럼.

무엇보다 타깃은 문이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폭탄 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짧은 협박이나 위협, ‘신은 위대하다’라는 그 유명한 무슬림의 신앙 고백조차 안 했기 때문이다.

즉, 문이 열리자마자 스위치를 누르려고 했다는 뜻.

사이렛 매트칼이 죽이기 위해 죽음을 준비했듯, 타깃 역시 죽음을 각오하고 실행했다는 말이었다.

짧고도 긴 상념 끝에 그의 시선이 강태에게로 향했다.

작전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도 무시하느라 보지 않았던 얼굴과 체격, 장비 따위가 그제야 눈에 담겼다.

20대로 보이는 외모에 크고 단단한 체격, 헬멧의 야간투시경부터 총기의 광학 조준경, 수직 손잡이, 그 외에 방탄복과 워 벨트에 달린 자질구레한 도구들까지.

베테랑 특수부대원이 전역하고 나서 취직했다기보다는 사회 초년생이 입사한 것처럼 보였다.

그사이에 대화를 나누던 제이크가 강태에게 물었다.

“…그럼 돌발 행동의 이유는?”

“그게 말입니다, 뭐… 1층을 정리하고 올라가는 시간 동안 타깃이 준비를 했을 것 같더라고요. 아, 느낌도 별로 안 좋았고요.”

“계속 말해 봐.”

“사이렛 매트칼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제가 직접 하고 싶더라고요. 자신도 있었고요.”

“그게 단가?”

“네.”

“…….”

다소 가볍게 들리는, 이유라기에는 미흡해 보이는 말이었으나 더 추궁할 수가 없었다.

그 외에 할 만한 설명도 없었고.

“나머지는 나가서 얘기하지.”

제이크가 어느새 강태에게 주목된 시선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태도 대답하려던 순간.

“이봐.”

사이렛 매트칼 대원 한 명이 강태를 불러세웠다.

아까 전부터 제이크와 강태의 대화를 한참이나 듣고 있던 이였다.

그가 참았다는 듯 물었다.

“…이름이 뭐지?”

여태 모르고 있었다. 일부러 무시했고, 나쁘게 봤었으니까.

그러나 목숨을 구해 준 우군을 더 이상 그런 시선으로 볼 순 없었다. 적어도 이름은 알아야 했다.

이에 조심스레 물었고, 강태가 덤덤하게 답했다.

“이강태, 그냥 ‘리’라고 불러.”

“리……. 그래, 기억해 두지.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

“고맙긴… 알아줘서 다행이지.”

강태가 그렇게 말하면서 돌아섰다.

그게 진심이었다.

게임 속에서야 뭘 해도 상관없지만, 현실에서는 방금과 같은 일은 절대 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강태는 특전사로서 10년을 복무한 경력자였다. 작전 중 독단적인 돌발 행동이 불가능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알았다.

특히나 지금은 일종의 연합 작전 중인 상황.

‘훈련 때도 이랬다가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처맞고 영창 가는데… 실전에서 이런 걸…….’

강태의 입에 쓴웃음이 어렸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실탄을 장전한 총구 앞에서, 자살 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리스트가 있는 곳에서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물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유를 미리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 제안할 방법도 없었다.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죽어 나갈 목숨들을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특성의 보조를 받은 사격 덕택에 폭탄은 터지지 않았고, 타깃은 완전하게 생포됐다.

다만,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에 강태도 걱정했었는데, 그게 지금 해결됐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특수부대 현역 대원과 특수부대 출신들이 업적을 알아보고서 넘어가 준 덕분이었다.

‘역시… 이 정도 되면 다들 알아보는구나.’

그게 아니라면 테러리스트 옆에 같이 엎어져 포박되면서 한숨을 쉬고 있을 터.

이윽고 강태의 머릿속에 뭔가가 떠올랐다.

‘다음에도 상황 봐서 무리수를 좀 더 둬도 되겠는데……?’

오늘처럼 심각한 돌발 행동을 또 해야 할지도 몰랐다.

라레플에서 진행했던 퀘스트나 스토리가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 그걸 마음대로 바꿔 버리는 게 상당히 힘든 탓이었다.

아마 게임의 엔딩인 핵전쟁을 막는 건, 이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었다.

‘…니미.’

불현듯 답답함이 올라온 강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직도 메인 스토리 초반부였다.

* * *

“리.”

제이크가 어느새 작전 건물 1층의 마당에 나와서 나를 불렀다.

팔짱을 끼고 표정을 굳힌 모습.

보면서 알았다. 역시 그냥 칭찬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하긴… 뒤지게 처맞아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

깨닫는 순간, 그의 입이 열렸다.

“그 느낌이라는 거 말이야.”

“예?”

“2층에 올라가서야 느꼈나? 아니면 작전 진입하면서부터 느꼈었나? 아니면 전날부터?”

“아…….”

규율이나 규칙, 작전 약속 등의 말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참이어서 주춤했다.

여기에 할 만한 변명까지는 아직 생각지 못한 상황.

그러자 제이크의 설명이 덧붙었다.

“난 작전 투입될 때 종종 그런 감을 느끼곤 했어. 물론 우연도 있고, 운도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날 좋게 봐주셨으리라 믿고 있지. 반평생 총을 들고 작전에 투입됐는데도 큰 수술을 한 번도 받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어? 그래요?”

게임을 플레이 했던 나도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홈페이지나 게임 내에서 나오는 정보가 있긴 한데, 그 안에는 이런 말이 없었다.

엄청난 능력과 활약, 델타 출신과 관련된 경력이 다수였고, 사적으로 미혼이라는 말만 있을 뿐.

“그래서 나 또한 너의 말을 믿는다, 그게 아니어도 설명할 방법은 없지. 네가 미래를 보거나 예언을 하는 게 아니라면.”

“…아유, 그럼요. 그건 못 하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라레플이 사실은 게임이고, 내가 이 안에 들어왔을 뿐이지, 나는 미래를 못 보고, 예언도 못 하는 몸이었다.

곧 제이크의 말이 덧붙었다.

“그래서 그 느낌이라는 게 언제쯤 오는 거지?”

“음, 따지자면 투입 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리 알… 느꼈던 거니까요.”

“전이라…….”

제이크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다시금 나를 쳐다봤다.

게임을 하면서 숱하게 보고, 게임 속에 들어와서도 자주 본 눈빛이지만, 역시나 강렬하다 못해 무서운 시선이었다.

적이었으면 얼마나 괴로울까 싶을 정도.

같은 편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할 무렵, 그의 입이 열렸다.

“그럼 앞으로는 말해 주게. 그 느낌이라는 걸.”

“예?”

“투입 전에 말이야. 네가 돌발적으로 움직여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게.”

“아…….”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뭐라고 질책할 만한 상황이라서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제이크는 보통 인간이 아니었다.

금세 그의 말이 덧붙었다.

“오늘은 많이 늦었어. 네가 그 방에 들어갔는데도, 나는 여전히 복도에 있었거든.”

“와… 존경스럽습니다.”

나도 모르게 나온 순수한 감탄이었다.

만약에 내가 제이크의 입장이었더라면, 일단 쌍욕부터 내질렀을 것 같았으니까.

그러자 곧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 역시 존경받아 마땅해. 외면해도 되는 그 느낌을 믿고 대원들 목숨 여럿을 살렸으니까. 그 과감함 그리고 결단성, 행동력. 모두 아주 훌륭했어. 사격술도 마찬가지였고.”

“어휴… 그렇게까지…….”

“물론 과정은 좆같았지만.”

“아, 죄송…….”

욕설이 섞인 말에 얼른 답하려던 때에 제이크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전장에는 늘 변수가 따르는 법이지. 오늘은 변수가 유독 좆같았을 뿐이고.”

“으음, 그러니까 괜찮다는 뜻으로 듣겠습니다.”

“당연하지, 리. 괜찮지 않았다면 여기 서 있지 못했을 거야.”

“…….”

역시나 적이었으면 너무나 무서운 양반이었다.

이윽고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만하면 훌륭했어,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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