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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5화 (15/185)

15화

작전지역은 흔한 아랍식 주택가였다.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거나 희뿌옇고 누리끼리한 색감으로 마감되었으며, 좁은 창문마다 철창이 달린 곳.

개중 담벼락과 마당을 가진 집들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대체로 작거나 낙후되어 가고 있었다.

점차 슬럼화가 되어 가는 상황으로 사이사이에 빈집까지 있었다.

며칠 전 침투했었던, 높은 대문과 초소를 가진 시나몬의 은거지와는 전혀 다른 배경.

진입로도 마찬가지였다.

발을 뗄 때마다 흙먼지가 풍겨 나와서 숨쉴 때마다 흙냄새가 나는 비포장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바로 현 상황.

15시 30분, 뙤약볕이 내리쬐는 시각에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하게도 주변에 민간인들이 있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골목을 이동하는 잠깐 사이에 무전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탓이었다.

-전방에 미식별자 1명 출현.

-5시 방향에 꼬마 2명 출현, 계속 따라오고 있음.

-골목 우측면 2층 발코니에 미식별자 1명이 통화 중, 주의 바람.

당연하게도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런 면에서 이런 작전은 저번처럼 밤이나 새벽에 진행하는 편이 나았다.

그 시간이라면 민간인들도 없고, 제거해야 할 타깃들도 자거나 졸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음이 잘 들리고 시야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야투경이나 적외선 레이저, 식별 패치 등을 가진 우리가 장비 면에서 월등하게 유리했다.

그래서 나도 4,500만 원짜리 고가의 야투경을 구입했었고.

어쨌든 사이렛 매트칼이 이런 기본적인 것을 모를 리는 없었다. 알면서도 하는 것이었다.

아샤프가 말했듯 타깃이 도주했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작전이며, 현 상황이며 모든 게 좋지 못했는데, 게임에서 그랬듯 결과적으로는 이게 옳았다.

진압 과정에서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폭발에 휩쓸려서 다치거나 죽었지만, 그들이 원하던 타깃을 제거했었으니까.

다만, 나는 그걸 용인해 줄 마음이 없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건 몰라도, 죽는 걸 알고도 방조할 순 없었다.

이에 나 역시도 각오를 다질 무렵.

-여기는 1팀. 대문 도착했다.

-2팀, 침투하겠다.

짧은 무전과 함께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담을 넘어갔다.

순식간이었다.

타다닥─!

대열 후미에서 지켜보기를 잠시.

대문이 열리면서 정지했던 대열이 다시금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팀과 함께 대문으로 들어갔다.

금세 좁은 마당 안에 서자,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신속하게 움직였다.

-1팀, 정면 현관 대기. 폭발물 설치 완료.

-2팀도 폭발물 설치했고, 후문 돌입 대기 중입니다.

-여기는 3팀, 각 문과 창, 발코니 시야 확보 완료했습니다.

각 팀별 상황 보고가 이어졌다.

그중 우리 G&G Corp 찰리 팀의 역할은 정면 현관에 대기 중인 1팀의 후미를 맡아서 차례로 방 수색을 돕는 일이었다.

수립된 작전도 비교적 간단했다.

1, 2팀이 정문과 후문으로 동시에 돌입하고, 3팀이 바깥에서 창문과 발코니를 감시한다는 내용.

작전 예상 시간도 대략 70초에 불과할 정도로 짧았다.

한마디로 속전속결로 끝낸다는 얘기.

게임이 아닌 실전이지만, 이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

정문과 후문을 합쳐 내부에 진입할 사이렛 매트칼 대원만 12명이고, 거기에 우리 찰리 팀도 5명으로 총원이 17명에 달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적은 5명.

그리고 건물 역시 저번 시나몬 작전보다 작았다. 방의 개수도 적었고.

지금 민간인 여럿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내 아샤프의 목소리가 무전을 탔다.

-여기는 본부, 지금부터 1팀장이 현장 지휘하도록.

치익, 짧은 무전음이 뒤따른 순간.

명령이 떨어졌다.

“폭파.”

쾅!

마치 하나를 터뜨린 듯, 정문과 후문에서 일시에 굉음이 울렸다.

폭발음과 함께 진동이 내 전신을 타고 들어올 무렵.

썰물처럼 앞선 대원들이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내 발 역시 그 뒤를 따라서 빨려 가듯 움직였다.

그렇게 현관에 돌입했을 때.

탕! 타당! 타다다당─

타당! 탕! 탕!

안쪽에서 총성이 터져 나오고, 뒤따라 고함과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운! 클리어!”

타깃을 쓰러뜨리고, 방을 정리했다는 신호.

모든 게 눈 깜짝할 새 이뤄졌다.

현관으로 움직이는 그사이에 사이렛 매트칼 대원이 방 하나를 정리한 것이었다.

그다음도 마찬가지.

“클리어!”

이번에는 후문에서 돌입한 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우리 차례.

그들이 가지 않은 그리고 닫혀 있는 문을 향해 움직였다.

나를 선두로 두 번째에 마커스, 뒤로 제이크와 레이첼, 호세까지 줄줄이 선 상황.

마커스가 나와 시선을 주고받고서 문을 열었다.

진입하자마자 바로 적이 보였다.

다소 엉거주춤한 자세로 AK-47을 든 모습.

이를 인지할 때였다.

광학 조준경의 레드 포인트가 적의 가슴 한가운데에 순식간에 찍혔다.

그것도 마치 기계 같은, 흔들림이 거의 없는 조준.

저번에도 느꼈던 ‘명사수’ 특성이었다.

그러나 감상할 틈은 없었다.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MP5 기관단총의 9㎜ 파라블럼 탄환 세 발이 적의 가슴 한가운데를 처참히 부수며 뚫고 들어갔다.

한 걸음 전진하면서 쏜 것이었고, 다음 발을 당겨 오면서 확인 사살을 위해 쓰러진 놈의 가슴 위에 세 발을 더 쐈다.

탕! 탕! 탕!

옷 위로 핏물이 올라오는 것까지 확인하는 사이, 마커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클리어.”

동시에 인이어 수신기로 사이렛 매트칼 대원의 목소리가 전달됐다.

-1층 클리어, 2층으로 진입한다. 각 인원 폭탄에 유의하라.

이제 내 작전을 펼칠 때였다.

* * *

레이첼은 주특기인 드론 대신에 MP5를 들고 작전에 투입됐다.

작전 주체가 사이렛 매트칼이고, 모사드(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이미 드론을 운용 중인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지금 같은 전투 요원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국토안보부나 CIA에서도 다방면의 실전을 경험하기도 했고, 화기를 다루는 솜씨 역시 훌륭해서 임무 수행 능력은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수행하는 건 단순한 전투 요원의 임무만이 아니었다.

사이렛 매트칼의 전술 파악 그리고 영상 녹화.

이내 레이첼의 시선이 방탄복 상부에 달린 바디캠을 가볍게 바라봤다.

‘합동 작전에 이걸 달고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몰래 촬영하는 게 아니었다. 사전에 허가를 받은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역시 상부 간에 얘기 된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훈련 촬영조차 전술이나 기밀 유출이라고 해서 허가 과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국 부대가 아닌 자국의 부대도 마찬가지.

이는 레이첼이 국토안보부와 CIA에서 복무하면서 제이크나 마커스, 호세 같은 군인들과 자주 다퉈 봐서 잘 알았다.

그리고 중요한 게 더 있었다.

착용하고 있는 바디캠이 일반 카메라가 아니라는 것.

저번 작전의 제품과 달랐다.

일반 군인이나 경찰들이 착용하는 게 아니라, 아랍 지역의 CIA에서 넘겨준 첩보용 초고성능 영상 장비였다.

‘이걸 줬다는 건…….’

이윽고 레이첼이 감정의 틈에 있던 불만을 걷어 냈다.

‘일선에서 모르는 뭔가가 있다는 뜻이지. 국가 안보나 외교에 적잖게 이익이 되는 쪽으로…….’

그저 답답한 상부의 결정이라면 이렇게까지 진행되진 않을 것이었다.

이미 국토안보부와 CIA에서 겪어 봐서 잘 알았다.

현장의 판단 대신에 상관의 고집이나 정치적인 이해로 결정된 비합리적인 사안들이 꽤 많았었다.

‘그런데 이건 달라.’

말도 안 되는 작전 준비, 중천에 해가 뜬 민가에서의 작전, 카메라 녹화 허용까지.

아마 지역 외곽에 해병이 배치되어 있고, 유사시에 지원해 줄 가능성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타국의 접근을 막아 줄 수도 있고.

그리고 계단을 올라가던 레이첼은 모든 상념을 털어 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2층에 다다르는 순간, 강태가 돌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

레이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제이크 옆으로 몸을 빼낸 그녀가 강태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앞으로 간다고?’

강태가 대원들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웬 방문 앞으로.

그것도 꽉 닫힌 문이 아니라, 사이렛 매트칼 대원 둘이서 좌우로 진입할 준비를 마친 문이었다.

마침 손잡이를 잡고, 문 경첩이 움직이는 상황.

‘도대체 왜?’

당연하게도 위험한 짓이었다.

사이렛 매트칼과 얘기가 된 사안도 아닌 데다가, 판자와 각목으로 만들어진 문짝은 난사하면 벌집처럼 뚫리기 때문이었다.

강태처럼 정면으로 달려가다가는 눈먼 총알에 맞을 가능성이 컸다.

‘미친 거야?’

레이첼이 불쑥 욕설을 떠올리면서도 본능적으로 강태를 향해 걸음을 뗄 무렵.

제이크와 마커스, 호세가 마찬가지로 강태에게 가고 있었다.

돌발적인 상황이지만, 팀원이니 마땅히 지원하고 엄호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강태가 더 빨랐다.

열리기 시작한 그 방으로 발을 집어넣고 있었다.

일순, 레이첼의 동공이 흔들렸다.

“……!”

열린 문 너머의 광경이 최악이었다.

온갖 장치가 달린 조끼를 입고, 원통의 손잡이 따위를 들고 있는 사람.

상황은 한순간에 파악됐다.

‘자살 폭탄 테러!’

소수점 이하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몸이 긴장에 휩싸였다.

공포나 두려움과는 달랐다.

현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단번에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코앞에 강태가 있었다.

홀로 돌입하는 것이었다. 좌우의 사이렛 매트칼이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도 안심이 되진 않았다.

감정이 흔들릴 만큼 더더욱 불안했다.

너무나도 큰 위기였다.

그것도 유의해서 지켜봐야 하는 강태에게 닥쳤다. 아니, 강태가 그 안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심지어 강태의 뒷모습이 타깃까지 가리는 순간.

타앙─!

유독 길고 크게 느껴지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속사의 격발음이 이어졌다.

탕! 탕! 탕! 탕! 탕!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이 막 총을 겨누는 무렵에 들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곧 나직한 말이 덧붙었다.

“탱고 다운.”

강태의 목소리였다.

타깃의 알파벳 첫글자 ‘T’를 뜻하는 ‘Tango’가 쓰러졌다는 의미.

마치 느려지던 시간이 원 상태로 돌아가듯 레이첼의 입에서 숨이 토해졌다.

“흐어억…….”

이어서 강태가 총구를 내렸고, 타깃은 비명을 내질렀으며, 대원들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랍어로 된 욕과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강태에게 이유를 묻고 질책하기 위해 다가가던 제이크가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당황스러움과 분노 등의 감정도 일순간에 탁, 잘리듯 끊어지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안으로 진입하던 사이렛 매트칼 대원들도 모두 제이크처럼 주춤했다.

강태가 타깃을 그냥 쏜 게 아니었다.

“…이거 의도하고 맞힌 건가?”

“방금은 죄송하게 됐… 예? 아, 예. 머리를 쏴도 혹시 스위치가 눌릴까 봐 그랬습니다.”

사과하려던 강태가 얼른 대답했는데, 제이크는 뒷말을 달지 못했다.

“…….”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온 레이첼도 깨달았다.

‘…뭐야? 엄지를 쐈어? 반대편 손까지……?’

그녀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아무리 거리가 가깝다고는 해도, 그리고 사격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해도, 설령 저격의 달인이라고 해도 이러는 건 어렵기 때문이었다..

문이 열리는 찰나의 상황은 갑작스러웠고, 표적은 움직이고 있었다.

한데 강태가 동전보다 작은 엄지만 날렸다. 반대손에 남은 총알을 정확히 맞혀서 아예 날려 버린 것도 마찬가지.

사격도 사격이지만, 이런 판단을 내리고 실행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당장 그녀만 해도 습관적으로 타깃의 가슴이나 머리를 맞힐 게 분명했다. 훈련도, 본능도 그랬다.

자칫 잘못하면 기폭 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지가 스위치를 눌렀을지도 모르고.

이윽고 레이첼의 뇌리에 직전의 총성이 떠올랐다.

‘그 첫 발이 엄지였어. 나머지 속사는 반대손이었고…….’

본 건 뒷모습이 전부고, 들은 건 총성뿐이었지만, 정말 완벽하고 깔끔한 솜씨였다.

레이첼이 저도 모르게 탄식을 흘렸다.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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