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사이렛 매트칼은 이스라엘의 최정예로 불리는 엘리트 특수부대였다.
그것도 구색만 그럴싸하게 갖춘 적당한 팀이 아니라, 인질 구출 사례의 전설로 손꼽히는 엔테베 작전을 성공시킨 부대이면서 현재까지 실전 경험을 쌓아 가는 진짜배기 군인들이었다.
호세의 눈이 반짝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 이번에는 좀 치는 놈들이군요. 어떤 작전입니까?”
그의 말끝에 기대감까지 묻어 있었다.
타국의 내로라하는 특수부대와 함께하는 건 흥미 있는 일이고, 거기다 서로 간에 배울 점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사이렛 매트칼은 델타포스처럼 영국의 SAS를 기반으로 창설된 부대였다.
서로 통하는 것도 있을 터.
호세만이 아니라, 장내의 시선이 대답을 기다리듯 모여들었다.
장내를 둘러보던 론이 한발 물러나면서 스크린을 향해 리모컨을 작동시켰다.
띠익.
연결음과 함께 스크린이 켜지면서, 마이크 앞에 앉은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군복을 입은 40대의 유대인.
검은 수염과 흰수염이 섞여서 회색이 된 풍성한 수염을 가진 그가 마이크로 얼굴을 기울였다.
-정말 반갑습니다, 나는 좀 치는 놈들을 지휘하고 있는 아샤프 바리난 중령입니다.
걸걸한 제이크나 무거운 목소리의 론과 다르게 장난끼 있는 친근한 목소리.
호세가 머쓱한 듯 웃음을 머금었다.
“하하… 연결된 거면 미리 말씀을 해 주시지…….”
-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좋은 뜻이잖습니까? 물론 좀이 아니라, 잘이라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말이지요.
특수부대 책임자라고 생각되지 않는 아샤프의 넉살이 스크린과 스피커로 넘어오는 사이.
론이 회의실 한쪽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반갑습니다, 바리난 중령. 나는 지앤지의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 마이어스고, 이쪽은 중령이 선택한 찰리 팀입니다.”
“제이크입니다.”
그렇게 제이크를 시작으로 마커스, 호세, 강태, 레이첼이 차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이었다.
화면 너머의 아샤프가 강태 쪽을 가리켰다.
-여기 잘생긴 아시안이 반군 부사령관을 잡은 주인공이군요.
“예, 맞습니다.”
과장된 어조에 강태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부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 푸근한 미소를 띠고 있는 아샤프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서브 퀘스트 단골 NPC.’
이곳 알 자마쉬에서 가장 많은 퀘스트를 주는 캐릭터가 바로 아샤프였다. 그것도 각각의 난이도와 스타일이 다른 퀘스트들이었는데, 당연하게도 강태는 그 모든 퀘스트를 받아서 해결한 전력이 있었다.
물론 하나도 안 깨고 넘어간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건 다 알았다.
‘요인 암살이나 정보 탈취, 인질 구출… 뭐 그런 거겠지.’
그에게서 받았던 퀘스트를 떠올리는 사이에 아샤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허허허, 아주 반갑습니다. 아주 잘됐어요, 마침 우리가 수행하려는 작전도 당신이 한 것과 비슷해서 말입니다.
강태를 비롯해 찰리 팀원이 설명을 기다리듯 바라봤고, 금세 설명이 따라 나왔다.
-타깃 제거입니다. 현재 은신처로 예상되는 곳을 감시 중이고, 모습이 확인되는 즉시 부대를 출동시킬 예정이지요. 거기서 우리 지앤지의 찰리 팀은 대기하다가 함께 돌입하면 됩니다.
“작전지역과 시간은요?”
-미안하게도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타깃이 그동안 우리의 손아귀를 몇 번이나 벗어났던 놈이라서… 정보 공유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작전은 수행하기 직전에 알려 줄 예정입니다.
그 말에 호세가 머리를 긁으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계속 대기하다가 부르면 달려가서 싸우라는 소리군요?”
-하하,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습니다만, 우리 부대원들도 마찬가집니다. 다들 타깃이 나타나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지요.
그 말에 강태의 입꼬리가 가볍게 씰룩였다.
‘아, 이거였어?’
아직 똑같은지 알 순 없지만, 아샤프에게서 비슷한 서브 퀘스트를 받았었다.
영내에서 단독 군장을 전부 착용하고 대기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려 가서 전투하는 거였다.
내용은 그의 말마따나 타깃 제거.
‘쫄리는 맛이 있었지.’
나름 재미있었다.
라레플을 좋아하기 때문에 즐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달려가서 작전에 투입되는 게 제법 흥미로웠었다. 예고된 작전 시각을 기다리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고.
물론 게임이라서 가능한 얘기지, 실전에서는 경우가 좀 달랐다.
지금 같은 일은 그리 좋은 의뢰가 아니었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작전이기 때문이었다. 더 많은 정보를 구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이 이 일을 받아서 찰리 팀에게 던져 준 이유가 있을 터.
강태와 같은 생각을 했던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안전하지 못한 일인데, 우리 팀이 진행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샤드가 아닌 론을 향해 묻는 것이었다.
론도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위에서 이미 얘기가 된 사안일세. 그리고 나는 자네들을 믿네, 이 정도 일은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고. 위에서의 판단도 다르지 않을 걸세.”
“…….”
레이첼의 입이 자연스럽게 닫혔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특히 앞에 말한 위에서 얘기가 됐다는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녀가 거쳐 왔던 국토안보부와 CIA에서 모두 겪었고, 배웠었다.
상급자의 의견이 전부라는 사실을.
자유의 나라라는 미국의 이명은 폐쇄적인 국가 조직에서만큼은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특히 국가 안보나 군과 관련된 것은 더 심했다.
물론 이곳은 PMC로 민간 군사 기업이지만, 론이 말한 ‘위’라는 게 단순히 G&G Corp의 고위 임원을 말하는 건 아닐 것이었다.
그는 국무부의 조력자였다. 또한 사이렛 매트칼도 연관되어 있었고.
국무부의 의견이 반영됐을 게 분명했다.
‘…연락담당관한테 확인해 봐야겠네.’
레이첼이 국무부 파견 담당을 떠올리는 사이, 여태 조용하던 제이크가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출동 준비하고 대기하겠습니다.”
“…….”
레이첼이 가까스로 표정을 관리하고, 그 옆에 있던 강태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크으… 역시 대단한 양반이야.’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된 뒤.
지휘 컨테이너를 나오는 길에 제이크가 강태의 어깨를 툭 쳤다.
“정말 아쉽게 됐어, 자네의 기록을 제대로 측정하려고 외부 훈련장을 예약해 뒀었거든.”
이건 제이크의 진심이었다.
강태가 영내의 간이 전술 사격장에서 보여 주는 실력을 생각해 보면, 제대로 된 외부 훈련장에서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낼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대단할지, 깔끔할지, 또한 빠를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실전에서도 그런 모습을 보여 줬었고.
제이크가 이윽고 아쉬움이 남은 미소를 털어 냈다.
“외부 훈련장은 다음으로 미룰 테니까 그때까지 몸 관리 잘해 둬. 이번 작전도 저번만큼 감이 좋지 않아, 정보도 너무 없고. 잘못하면 병원 신세를 질지도 몰라.”
정보가 없고, 주어져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좋지 못했는데, 그것 말고도 느낌이 좋지 못했다.
저번 작전처럼 일이 틀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 것이다.
물론 현장에 가 보지도 못했고, 어딘지조차 알지 못했지만, 벌써 거의 20년 가까이 총을 든 제이크의 감각은 틀린 적이 없었다.
수많은 파병과 흑색 작전 끝에도 수술 한 번 없이 멀쩡히 살아남아서 델타의 괴물이 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우연과 운이 많이 작용했었다.
재수 없게 도비탄에 맞아서 중상을 입은 동기도 있었고, 탄이 걸린 총기가 격발되면서 아군이 다친 적도 있었으니까.
반면에 자잘한 상처만 났던 제이크는 전장의 축복을 받은 존재였다.
그 감각도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이었고.
그사이, 제이크를 보던 강태는 삐질삐질 나오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냅다 출동 대기하겠다고 한 양반이 걱정은 왜 이리 하는 건지… 흐흐흐.’
물론 그러는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제이크가 무시무시한 괴물 같은 인간이긴 해도, 팀원만큼은 가족처럼 잘 챙기기 때문이었다.
곧 강태의 입이 늦지 않게 열렸다.
“아무렴요, 잘해야죠.”
“자네의 상처는 그게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군.”
제이크가 그러면서 20바늘을 꿰맸던 강태의 어깨를 툭 쳤다.
“자꾸 만지면 곪습니다. 보통 손도 아니고, 솥뚜껑 같은 손으로…….”
“무슨 손?”
“아, 그게… 뭐라고 해야 되나, 가마솥이라고… 아! 캡틴 아메리카 방패 같은 거거든요? 한국에 그런 게 있는데, 하여튼 그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제법 긴 설명에 제이크가 픽 웃으며 말했다.
“좋은 뜻 같군.”
* * *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
나를 비롯해서 전 팀원들이 워 벨트며 총기를 거의 상시 착용하고 출동대기를 했다.
그리고 새삼 깨달았다.
역시 현실은 게임과 다르다는 사실을.
그리고 10년 전의 막사도 떠올랐다. 긴장감은커녕, 지루하고 불편했던 그때.
뭐가 됐든 얼른 끝내고 싶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인내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인내할 만한 훈련은 충분히 많이 받았었다. 버티라고 하면 몇 년을 이러고 있을 수도 있었고.
그냥 따분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일전에 할부로 주문했던 장비들이 전부 도착했다는 거였다.
‘크으, 좋다, 좋아. 비싼 값을 하네.’
헬멧에 잘 부착한 야투경부터 플레이트 캐리어, 일명 방탄복에 달린 갖가지 장비들을 보면서 다시금 미소 짓던 무렵.
우웅웅―
핸드폰이 진동했고, 화면에 발신자의 이름이 떴다.
제이크.
전화를 받자마자, 뭐라고 말할 겨를도 없이 그의 굵직한 음성이 스피커를 건너왔다.
-나와.
짧은 말이었지만, 무슨 뜻인지는 잘 알았다.
출동 그리고 작전 시작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발은 이미 반사적으로 컨테이너를 나가고 있었다.
덜컹.
문을 열고 나오자, 호세가 미쯔비시 벤의 보닛 뚜껑을 닫고 있었다.
“얼른 타, 빨리 가자.”
아침마다 차량 운행 정비를 했던 그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어렸다.
“그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