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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1화 (11/185)

11화

상황에 따른 작전 변경에 맞게, G&G Corp의 팀도 반군 수색 및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다.

타깃이었던 시나몬을 인계한 뒤부터 바로 해병과 함께 움직였는데, 다행히 시가전의 양상이나 과정은 순탄했다.

물론 수색에 반발하는 주민들이나 체포에 저항하는 반군들이 있긴 했지만, 해병의 압도적인 제압 사격에 금세 꼬리를 내린 덕분이었다.

더불어서 일부 작전 구역에서는 다른 원인도 있었다.

합류한 PMC 요원, 바로 찰리 팀.

팀장인 제이크, 환상의 듀오를 자랑하는 마커스와 호세 그리고 선두에 선 강태의 솜씨와 호흡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고작 5명에 불과하지만, 작전을 헤쳐 나가는 실력과 속도는 웬만한 해병 50명보다 나은 수준이었다.

뒤쪽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이 든 해병 간부가 감탄을 참지 못할 정도.

“대단하군, 대단해. 역시 특수부대 출신들다워. 특히 저 앞에 있는… 이봐, 저 아시안은 어디 출신이라고 했었나? 델타? 씰 6팀?”

“델타와 씰 출신의 용병들이 있긴 한데, 맨 앞에 있는 아시안은 자국의 특수부대라고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후임에게 묻고 답을 들은 간부가 눈을 껌뻑였다.

“자국이라고? 그럼 미국인이 아니라는 소리야?”

“네, 한국인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간부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감탄했다.

“북한과 전쟁을 치렀고 휴전 중인 나라라면… 실전 경험이 충분할 테니, 저 정도 실력을 갖출 수도 있겠지.”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강태의 체력이었다.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먼 거리지만, 이동하거나 벽에 기대어 있는 자세만 봐도 티가 나서 알 수 있었다.

방탄복이 크게 오르내리는 해병이나 다른 용병에 비해, 강태는 아주 멀쩡했다.

마치 전투가 아니라 독서라도 하는 것처럼.

‘한국의 훈련이 그만큼 대단한 건가? 휴전국에 의무 징병국이니 약하진 않겠지. 돌아가면 한국군에 대해 알아봐야겠어, 동기가 주한미군으로 갔으니…….’

그런 상념 끝에 간부가 상부로부터 새 무전을 받았다.

용병들의 전투에 대해 따로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간부가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국제법 위반 여부가 있는지에 대해 쓰면 되겠습니까?”

이는 당연하고도 흔한 질문이었다.

민간인을 사살했는지, 아니라면 교전 절차가 정당했는지, 과잉 대응은 없었는지 등등에 대해 매 전투마다 경위서를 써 온 탓이었다.

지금처럼 협조한 PMC를 대상으로 삼든, 타국의 군대든 아니면 아군 부대든.

한데 돌아오는 답은 예상과 다른 것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다 쓰게.

“다 말입니까?”

-그래, 이왕이면 같이 작전 중인 병사들의 말까지 첨부하는 게 낫겠군.

“어디에 쓰는 겁니까? 혹시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겁니까?

-나도 지시를 받았을 뿐이야. 남김없이 써 오게.

“예, 알겠습니다.”

그 무전을 끝으로 간부가 아군의 무전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작전을 관찰했다.

이미 작전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트집 잡을 게 없었다.

오히려 강태가 너무 잘해서 눈이 갈 뿐.

‘뭔진 몰라도… 간만에 칭찬을 쓰게 됐군.’

* * *

알 자마쉬에서의 작전 결과가 미 국방정보국(Defense Intelligence Agency)으로 올라갔고, 정보 분류와 취합 뒤에 국무부의 군비 통제 및 세계 안보 차관(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 Affairs) 직속 부서 대외협력국에 전달됐다.

표면적으로는 국방부와 연계하여 국제 외교 업무를 보는 곳이나, 실제로는 미국 안보와 관련된 국제적인 비밀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곳 중 하나.

G&G Corp에 있는 제이크와 레이첼 역시 이 대외협력국의 소속이었다.

그들의 직보까지 포함하여 알 자마쉬의 모든 정보를 확인하던 국장, 로버트 엔더슨이 멈칫했다.

“……?”

보고서를 모두 보고, 전송된 녹화 영상까지 확인하던 무렵이었다.

정확히는 대외협력국 소속이자 G&G Corp 찰리 팀장인 제이크의 바디캠 촬영본.

몇 번인가 화면을 넘기고, 배속하여 보던 로버트가 마우스를 잡고 모든 설정을 초기화했으며, 시작점을 다시 최초로 되돌렸다.

영상을 보던 와중에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안 거지……?’

로버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탁,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누른 그가 가늘게 뜬 눈으로 모니터의 영상을 주시했다.

제이크가 현관문을 뜯어내고, 강태가 등장하는 시점이었다.

‘이자가 리. 글록을 들고 야시경도 없이 들어가는군. 새벽이라고 해도 시야 확보가 쉽지 않은데… 뭐, 문제될 건 없지. 육안 확보가 가능하다면……. 그 외에 보폭이나 시선 처리도 준수해서 나쁘지 않아. 그런데 문제는…….’

단번에 여러 정보를 파악하고 정리한 로버트의 눈매에 힘이 들어갔다.

이후로 가볍게 넘기려고 했던, 그러나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건물 내부의 CQB(Close Quarter Battle) 부분.

제이크가 문을 열고, 강태가 진입해서 적을 사살하는 건 보면서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상황이 말이 안 됐다.

강태가 진입한 모든 방향에 적이 있었고, 들어가지 않은 방은 비어 있거나 비무장 민간인만 있었으며, 3층에서 적들이 급습해 오는 것까지 감지했다.

마지막에는 누구나 놓치고 넘어갈 만한 수직 통로까지 발견해 냈다.

‘마치 이 상황을 다 아는 것 같군, 아니면 반복 숙달해서 움직였거나…….’

주요 순간마다 바디캠이 다른 곳을 촬영하는 바람에 모든 걸 다 파악할 순 없었지만, 결과물만 봐도 믿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강태는 그 안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로버트는 이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심중에만 품을 뿐, 확신하거나 기록하지 않았다.

의심하고 있긴 해도,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정보 유출이라도 받았나? 배신? 아냐… 그래도 불가능해.’

설령 배신을 한다고 해도 반군 병사가 어느 쪽에 자리했는지, 3층에서 언제 내려오는지를 미리 인지하고 준비하는 건 잘 짜인 영화나 드라마의 액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그리고 결과만 봐도 강태의 공로는 훈장을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이는 배신보다는 충성에 가까운 성과였다.

“후…….”

한숨을 내쉰 로버트가 결론을 내렸다.

‘리의 감각이 인간을 초월한 슈퍼히어로의 수준이든가… 아니면 모든 걸 알고 있던 거겠지.’

고개를 젓던 로버트가 해병 연대가 보내 온 보고서까지 마저 읽었다.

“으음…….”

함께 작전한 G&G Corp 용병, 그중에서도 찰리 팀의 강태를 칭찬하는 말이 있었다.

흠이라고는 전혀 없는, 극찬에 가까운 말들.

‘해병이 이렇게까지 띄워 줄 정도면… 시가전도 어지간히 잘했다는 소리군.’

레이첼이 보낸 드론 영상까지 보면서, 로버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상 15M에서 촬영 중인 드론 영상이라서 제한된 게 많았지만, 그럼에도 취할 정보가 많았다.

‘체력이 좋은 모양이야, 집 수색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골목에 숨어 있던 적도 단번에 처리했어. 체력이나 사격술이 좋다는 소린데… 그러고 보니 이거 진짜 대단한 놈인데?’

어느새 로버트의 입가에 헛웃음이 어렸다.

‘뇌가 기계로 됐나? 아니면 심장이 강철인가?’

강태가 작전이 이뤄지는 내내 선두에 섰기 때문이었다.

1, 20분이 아니라, 1, 2시간 동안 가장 앞에 서서 전방 경계를 했고, 열린 문으로 진입했으며, 적을 마주해서 최초 대응을 했었다.

작전상 드문 일이었다.

거의 유일하게, 다른 대원들과 교체되는 자리가 선두였기 때문이었다.

끊임없는 전방 경계, 즉각적인 최초 대응 등으로 스트레스가 크고, 실수할 경우에는 팀 전체에 위험을 줄 가능성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아니고서야 선두는 계속해서 교체되어야 했다.

한데, 강태가 계속 선두를 서고 있었다.

심지어 책임을 다했고, 임무를 훌륭하게 해내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팀장으로서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제이크가 있음에도, 위치 교체 없이 작전이 끝까지 진행됐다.

쉽게 말해서 믿고 맡겼다는 뜻.

‘지난 보고서의 칭찬이 모두 사실이라는 소리군.’

로버트가 엊그제 들어온 제이크의 보고서를 떠올렸다.

평가를 가장한 칭찬이 많았다. 특히 훈련장에서 본 사격술과 체력 테스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이 꽤 많았었다.

‘짧게 말해서 제이크가 탐낼 만큼 대단한 놈이란 거지. 하지만…….’

로버트의 생각이 정지된 바디캠 영상에 닿았다.

‘그렇다고 이상하지 않은 건 아니지. 뭐, 녀석이 슈퍼히어로라면 모르겠지만, 세상은 마블 영화가 아니지. 놈은 분명 뭔가를 아는 거야.’

판단을 마친 그가 바로 지시를 내렸다.

“강태 리, 녀석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해. 제이크와 레이첼에게도 각각 전달하고.”

* * *

그날 저녁, 오늘 일에 대한 보고서를 쓰고, 장비 정비까지 마친 뒤에 영내 공터로 향했다.

작전 성공과 레이첼의 신고식 등을 겸해서 바비큐 파티를 한다는 건데, 시간이 좀 남아 있는데도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대낮처럼 환하게 켜진 조명 아래에서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위에 얹힌 그릴이 연기를 내며 달궈지는 데다가 주위로 아이스박스와 접이식 의자까지 세팅 된 상황.

“크으, 역시 철두철미하네…….”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그 한가운데 있던 호세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리! 이것 좀 봐! 정말 근사하게 생기지 않았어?”

동시에 호세가 고기를 흔들어 보였다.

아직 굽지 않은, 족히 두어 근은 되어 보이는 큼직한 고깃덩어리였다.

선분홍의 빛깔이 조명에 선명한 모습.

“그래, 근사하네.”

짤막하게 답해 주자, 호세의 눈썹이 쑥 이마로 솟았다가 내려왔다.

“반응이 그게 뭐야? 이걸 보고도 감흥이 없어? 너 비건 아니잖아? 고기 먹잖아?”

“아, 생고기는 내 취향이 아니라서.”

“흐하하하하하, 알았어. 내가 끝내주게 구워 줄게. 기다려 봐.”

동시에 그릴 위에 고기가 올라갔다. 치이이익, 하는 소리가 들릴 무렵.

남은 팀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제이크, 마커스, 레이첼까지.

개중 마커스가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호세에게로 다가갔다.

“너는 훈련보다 이걸 더 잘하는 것 같아, 좋아하기도 하고. 먹보처럼 말이야, 그렇지?”

“늦었으면 닥치고 소시지나 까서 올려놔.”

“늦다니? 무슨 개소리야? 아직 약속 시간 3분 남았어. 네가 존나게 일찍 나온 거지, 먹보 새끼야.”

“어쨌든 닥치고 세팅해.”

“안 그래도 하고 있는데… 야, 넌 어떻게 약속 시간도 안 됐는데, 벌써 고기를 굽고 있냐?”

“아마추어같이 왜 이래? 늦어서 좋을 건 없잖아, 얼마 만에 하는 바비큐인데.”

호세의 말이 이해는 됐다.

최근에 루크가 죽었고, 얼마 안 지나서 스캇의 배신이 드러난 데다가, 곧이어 시나몬 체포와 반군 소탕 작전까지 수행했으니까.

그동안 이만한 여유가 없었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다가 눈치껏 자리 하나를 차지해서 앉을 때였다.

“리, 여기 앉아도 되죠?”

레이첼이 다가왔다, 보기 드문 미소까지 보여 주면서.

“술은 얼마나 마셔요? 잘 마셔요?”

“마시기야 잘 마시는데…….”

답하면서 레이첼을 바라봤다. 조명을 받아서 그런지, 역시나 예쁘장했다. 목소리도 낭랑하니 듣기 좋았고.

다만, 그녀는 이렇게 쓸데없는 대화로 말을 거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레이첼은 눈치든, 실력이든,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캐릭터였다. 괜히 국토안보부와 CIA를 거쳐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군소리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이에 고민했는데, 떠오르는 건 없었다.

‘저번에도 한번 이러더니, 내가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닐 거고…….’

게임 속에서의 레이첼은 로맨스를 보여 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공산권 국가에서 암약하는 메인 빌런, 피칼을 추적하는 시나리오에 걸맞게 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 명의 요원이었다.

물론 이곳은 게임 속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스토리마저 게임과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레이첼의 성격이 한순간에 바뀌진 않을 것 같았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이에 눈을 마주한 채 되물었다.

“나한테 뭐 용건 있어요?”

“…네?”

“물어볼 게 있으면, 그냥 편하게 물어봐요. 전에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빙빙 둘러 말할 필요 없이 쉽게 갑시다.”

“…….”

레이첼이 잠깐 입을 닫았을 때였다.

“그럼 내가 물어도 되나?”

언제 다가온 것인지, 제이크가 산만 한 덩치를 기울이면서 내게 말을 붙였다.

“팀장? 아, 예. 뭐든…….”

“오늘 전투와 관련해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

“편하게 말씀하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듣고 있었는데, 뒤이어 나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혹시 널 돕는 반군 정보원이나 내통자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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