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10화 (10/185)

10화

제이크가 신속하게 무전을 쳤다.

작전상 약칭 헤드인 G&G Corp의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에게 현 상황을 보고하고, 진입로 중간과 초입을 지키는 브라보와 알파 팀에게 플랜 전환과 진입을 알리면서 동시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이후로 드론을 운용 중인 레이첼과도 몇 번의 무전을 주고받던 제이크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 시간부로 플랜 B로 전환하며, 즉시 시나몬의 집에 진입한다.”

동시에 제이크가 허리춤에 걸어 놨던 30㎝짜리 소형 빠루를 꺼내 들고, 몇 미터 떨어진 현관을 강제 개방 하기 위해 움직였다.

보통 이럴 때는 폭발물을 쓰는데, 제이크에게는 소형 빠루만 하나 있으면 됐다.

웬만한 금고가 아니고서야 전부 뜯어지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콰지지직― 덜컹.

힘을 주자마자, 문짝이 우그러지다가 박살 났다.

그와 동시에 강태가 소음기가 달린 글록19를 가슴 가까이 붙인 채, 문을 열면서 빠르게 진입했다.

그 뒤로 허리춤에 빠루를 건 제이크가 신속하게 붙었고, 마커스와 호세도 재빠르게 뒤에 달라붙어서 이동했다.

적잖은 소음이 발생했었으나,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다.

밖의 총성이 점점 잦아지고 커지는 탓에 안쪽의 소음이 상대적으로 가려지는 것이었다.

“좌측 문.”

선두에 선 강태가 가장 문 옆에 섰고, 제이크가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

열리는 순간, 강태가 대각선 방향으로 들어갔다. 제이크도 반대편을 엄호하기 위해 빠르게 들어갔고, 호세 역시 커버하기 위해 발을 디딘 순간.

“적 발견.”

강태가 짧게 말하면서 글록19의 방아쇠를 당겼다.

텅― 터더텅!

철퍼덕.

소음기에 가려진 총격음이 묵직하게 울려 퍼지고, 금세 시체 하나가 만들어진 뒤.

“다운, 클리어.”

나직하게 상황을 보고한 강태가 빠르게 방을 돌아 나갔다.

뒤를 따르는 제이크의 눈이 번뜩였다.

‘아시아 특수부대의 수준이 이 정도였나?’

루크가 전사했던 그날부터 강태를 눈여겨 봤었다.

국무부 산하의 비밀 요원으로서 휘하의 팀원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강태의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사격술, 체력, 담력, 판단력까지. 강태는 모든 게 완벽했다. 마치 사람을 초월한 것 같았다.

특히 기록이 남는 표적 사격이나 체력 측정은 델타의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전술 사격장 기록은 한 번에 역대 최단 시간을 기록했고, 3㎞ 구보는 1㎞를 뛸 때와 같은 속도로 달려서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기록을 남겼었다.

물론 그마저도 간단한 기록 시험일 뿐이었지만, 제대로 해도 같을 것이었다.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었고.

그것도 따로 위탁 교육이나 특수 훈련을 수료하지 않은 채, 그저 한국의 제1공수특전여단의 훈련만으로 이뤄 낸 것이었다.

‘한국 특수부대의 요원 양성 시스템을 알아봐야 겠지만… 아무래도 리의 실력이 특출 난 거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무렵.

이내 강태가 두 번째 방문으로 들어갔다.

덜컹!

있는 건 여성 둘.

추가로 진입한 호세가 신속하게 케이블 타이를 꺼내 포박하는 사이, 인기척과 함께 브라보 팀의 지원이 도착했다.

“위는?”

브라보 팀장이 오자마자 계단 쪽을 보며 물었고, 강태가 대신 대답했다.

“지금 올라갈 겁니다, 감시 인원을 남기고 알아서 잘 따라오십쇼. 좀 빠를 겁니다.”

“자신만만하군, 실수나 하지 말게.”

“그럼 출발합니다.”

강태가 이번에는 제이크를 바라봤고,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강태의 발이 앞으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계단을 올랐고, 2층 초입에 선 순간.

“우측에 문.”

짧게 말한 강태가 문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서는 제이크에게 총구를 들어 진입 방향을 정해 보였다.

이번에는 교차가 아닌 정 진입.

스윽, 제이크가 조용히 문고리를 돌린 순간, 강태가 안으로 확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글록19의 소음기가 탄을 쏘아 냈다.

터더텅─ 터덩! 터터텅! 텅텅!

이번에는 적 발견이라는 말조차 없이 소음기를 먹은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이었다.

털썩, 철퍼덕.

“클리어, 재장전.”

얼룩무늬 군복 차림의 시체 두 구가 쓰러지고, 제이크가 약속된 공간을 확인하는 사이.

탄알집을 교환한 강태가 독촉하듯 방을 퇴장했다.

‘빠르다 못해서 급하군. 그러나 믿을 만한 실력이야, 자리를 뺏을 필요는 없겠어.’

제이크가 짧은 상념과 함께 강태의 뒤를 따라 나갔을 때였다.

이어서 옆방을 봐야 하는 순간인데, 돌연 강태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제이크는 물론이고, 이미 경계 중이던 브라보 팀의 팀장이 멈칫했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었다.

‘갑자기 왜?’

그는 강태와 달리 수만 달러에 달하는 4안짜리 야간 투시경까지 쓴 상황이라 모든 게 훤히 보였다.

그래서 이유를 물으려고 했다.

강태가 심지어 글록19가 아니라, 어느새 HK416을 견착해서 계단참을 조준하고 있던 탓이었다.

그때였다.

“으아아!”

“!موت(죽어라!)”

“!الله أكبر(신은 위대하시다!)”

3층에서부터 고함과 함께 우당탕거리며 반군들이 달려들었다.

순식간이었다.

투다다당! 투둥! 투투두둥―! 퉁! 투둥!

AK-47과 HK416의 총격음이 뒤섞여 나며 총구의 섬광이 사정없이 번쩍거렸다.

정확히는 소음기 소리가 대부분이었다.

AK-47은 금세 멎었고, 뒤를 이어 HK416의 격발음도 멈췄다.

달려오던 반군들이 처참하게 사살됐기 때문이었다.

도합 셋.

“사격 중지.”

제이크가 상황을 매듭지으면서 강태를 향해 눈짓했다.

“어떻게 알았나?”

“그냥요.”

“그냥? 감이 좋군.”

“2층 나머지는 브라보한테 맡기고 올라가시죠.

제이크가 묻기도 전에 브라보 팀장이 먼저 답했다.

“그래, 마침 알파도 거의 다 왔다고 하니까, 먼저 올라가. 여긴 우리가 마무리하고 따라붙을게.”

대답이 나오자마자 강태가 계단 쪽으로 몸을 돌렸고, 제이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동 대형을 갖췄다.

‘이번에도 너무 급한 감이 있는 것 같지만…….’

제이크가 내심 염려했으나, 티 내진 않았다.

강태에게는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 사격도, 판단도 아주 신속했고 깔끔했다.

그래서 군말 없이 뜻대로 따라 주는 것이었고.

이내 툭, 툭, 작은 발소리와 함께 계단을 올라 3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강태가 첫 번째 방에서 제이크와 시선을 주고받고, 총구로 진입 방향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교차?’

2층에서 했던 일자로 정 진입 하는 방법과 달리 서로를 ‘X’자로 가로지르자는 신호.

왜 자꾸 바꾸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묻고 따질 건 없었다.

이미 문 앞이었고 진입 직전의 상황.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손잡이를 돌려 준 순간, 강태가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들어갔다.

타타닥, 제이크 역시 잰걸음으로 따라 들어가 방을 확인했다.

안은 비어 있었다.

딸린 화장실과 소파 아래, 커튼 뒤까지 모두.

“클리어.”

제이크가 말하고 나오려던 순간.

“팀장.”

강태가 방바닥 구석의 양탄자를 걷어 내더니, 제이크를 향해 말을 이었다.

“여기 좀 열어 주시죠.”

“……?”

무슨 소린가 하고 다가갔다가, 제이크가 멈칫했다.

방구석 바닥에 웬 철문이 있었다.

가로세로 60㎝에 달하는 크기로 손잡이까지 있는 모습.

“금고인가?”

“글쎄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가능성은 있겠군.”

제이크가 곧장 허리춤의 빠루를 꺼내면서 대답했다.

“준비해.”

“예, 한번 봅시다.”

제이크가 현관문을 강제 개방 할 때처럼 괴력을 발휘했다.

반팔 티셔츠 아래 팔뚝에 힘이 들어가면서 핏줄이 불거져 오르기를 잠시.

끼이이이익! 덜컹!

쇳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아작 났다.

큼직한 손이 철문을 활짝 연 순간, 동시에 제이크의 입이 거칠게 열렸다.

“이런 씨발, 뭐야?!”

그 안에 상상도 못한 게 있었다.

지상 1층 혹은 지하로 통할 만한 깊은 수직 통로.

심지어 그냥 대충 만든 굴이 아니라, 사다리를 용접하고 중간중간 비상 전등까지 설치된, 완벽한 탈출로였다. 그 안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작은 금고나 사람 한 명이 숨을 만한 공간이 있으리라고 추측했던 제이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춤했던 그가 서둘러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헤드! 여기는 찰리 하나! 시나몬 발견!”

이에 안쪽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던 강태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빨리 온 보람이 있네.”

* * *

시나몬은 원래 전투를 몇 번인가 더 하고 나서 사살되거나 체포되는 캐릭터였다. 지금처럼 한 번에 발각되는 놈은 아니었다.

내가 발견한 그 통로로 도망간 이후, 잡히지 않으려고 부단하게 애썼기 때문이다.

은신처를 자주 옮겼고, 경비병을 늘렸으며, 사방에 감시꾼을 깔았었다. 그 덕택에 작전이 몇 번 엎어졌고, 놓치기도 했고, 놈이 놓은 함정에 반격당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G&G Corp 용병들이나 미군이 피해를 입었고.

그것도 앞으로 약 한 달간 벌어질 일이었는데, 내게 들키면서 그 모든 게 없던 일이 되었다.

제이크가 사다리 안쪽으로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다.

“올라오지 않으면 발포한다! 당장 올라와!”

기차 화통이라도 삶아 먹은 듯한 고함이 수직 통로를 꽉 채우듯 울려 퍼진 뒤.

“네, 넷! 올라갑니다! 쏘지 마세요!”

시나몬의 어색한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 말처럼 시나몬은 다시 사다리를 역주행하듯 올라왔다.

그의 아내와 자식, 수하들과 함께.

ISIL의 수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살 폭탄을 터뜨리거나 반격하진 않았다.

그럴 만했다. 놈은 극단주의적인 종교 주의자가 아닌,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흔히 있는 부패한 장성이었으니까.

미국을 적으로 여기긴 해도, 제 목숨을 바칠 만큼 신념이 높은 자가 아니었다.

그사이에 방으로 들어온 호세가 감탄을 흘렸다.

“이런 미친! 이게 뭐야?! 무슨 엘리베이터라도 만들려고 한 거야?”

잠깐 본 그의 눈이 경악한 것처럼 보였다.

종종 1층 바닥을 뚫어서 무기나 사람을 숨기고, 밖으로 연결되는 땅굴을 뚫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이렇게 3층에서부터 수직으로 지하까지 연결되는 통로를 만드는 건 유사 사례조차 없기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이 쥐새끼들 같으니.”

“맞아, 이미 반이나 내려갔더군.”

“오, 그럼 정말 리 덕분에 잡아냈군요. 수색견도 없이 이런 걸 찾아내다니.”

그 말에 제이크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니, 평소처럼 수색하고 이동했다면 수색견이 있었어도 이놈을 발견하진 못했을 거야. 사다리가 있는 통로라서 수색견을 보내지도 못할 테니까.”

“아… 그렇군요, 리가 너무 빨리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차라리 잘된 일이었군요.”

그사이에 3층 수색을 브라보에 맡긴 마커스까지 안으로 들어왔다.

야투경을 덜컥 올린 그도 호세와 마찬가지로 수직 통로를 들여다보면서 감탄을 흘렸다.

“와… 리, 정말 제대로 한 건 했는걸? 이 정도면 알파 애들도 군소리 하진 못할 거야.”

“더 보여 줘야지.”

“더?”

“그래, 이제 시가전도 해야 할 거 아냐?”

시나몬만 넘기고 철수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시가전에 참여해야 했다. 민가에 숨어서 병사들을 공격하는 반군 무리를 그냥 좌시할 수만은 없었다. 또한 종종 드러나는 반군의 은신처에 미군과 여론이 좋아할 만한 전쟁범죄의 증거가 가득하기도 했고.

군인 출신으로서 그리고 한창 때의 이강태로서 전장을 두고 등을 돌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전장의 열기가 내 가슴을 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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