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9화 (9/185)

9화

이틀 뒤, 이른 새벽.

플랜트 현장 한쪽에 있는 지휘실 컨테이너에서부터 작전이 시작됐다.

단체로 모여서 총기, 탄약, 그 외의 단독 군장 점검을 했고, 무전 넥마이크, 인이어 수신기 따위의 상태를 파악했으며, 이동 경로와 임무를 재차 확인하는 것이었다.

옅은 긴장 속에서 몇 마디 안 되는 말과 장구류를 확인하는 소음만이 울려 퍼질 무렵.

책임자인 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주목.”

주의를 끈 그가 이틀 전보다 더욱 진지한 모습으로 작전을 되짚고, 교전 수칙을 언급했다.

“…비무장한 민간인한테는 절대 발포해선 안 돼, 설령 그가 우리 앞에서 전화를 꺼내 들고 반군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한이 있어도. 알겠나?”

“아주 잘 압니다, 보스. 이 바디캠 때문에 걱정이 많다는 소리죠?”

호세가 팀별로 하나씩 주어진 바디캠을 들어 보였다.

작전의 진행과 전쟁법 위반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주어진 것들이었다.

착용자는 각 팀장들.

몇 해 전부터 G&G Corp에서도 자체적으로 작전을 검토하기 위해 착용시켜 왔던 것인데, 이번에는 미군이 작전 진행과 위법성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원본이 담긴 SD카드를 수거해 간다고 했다.

쓴웃음을 머금은 론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잘 아는군. 그보다는 아무도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야 해. 이것도 무슨 소린지 알지?”

“네, 압니다, 보스.”

장난기 가득하던 호세가 아주 단단하게 대답했고, 제이크를 비롯해 다른 팀원들도 뒤이어 대답했다.

며칠 전에 루크가 시신으로 귀국했기 때문일 터.

나도 힘 줘서 대답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루크 같은 사상자가 더 나와서는 안 됐다.

게임 플레이와 다르다거나 인적 손실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다.

제이크와 레이첼, 호세, 마커스가 더이상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 전우이자 동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함께한 시간이 고작 며칠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교류를 나누면서 빠르게 친해지고 있었다.

게임에서는 알 수 없었던 호세의 연애 이야기도 들었고, 마커스의 세 딸 얘기도 들었다. 운동 끝나고서는 공용 샤워실에서 같이 목욕하기도 했었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곳이 내가 원래 살아가던 현실처럼 느껴졌다.

라레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 것이었다.

물론 바뀐 외모는 아직 적응이 덜 되어서 거울을 볼 때마다 움찔하긴 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불리고, 나 역시 이 게임 속 세상에 적응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상념과 함께 준비를 마칠 때였다.

“출발 5분 전, 전원 차량 탑승해.”

론의 지시가 떨어졌다.

각 팀별로 준비된 차량에 올랐고,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새벽녘의 어둠 속으로 달려 나갔다.

한적한 도로와 골목으로 달리기를 잠시.

틱.

운전수가 헤드라이트를 껐고, 속도를 낮춰 엔진음을 줄였다.

동시에 수분 먹은 새벽 공기처럼 차 내의 분위기도 가라앉듯 조용해질 무렵.

호세의 입이 열렸다.

“…재수 없는 말이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플랜 B나 C로 넘어갈 것 같아.”

정찰 및 진출입로 확보의 기존 작전이 플랜 A였고, B부터는 전면전을 가정한 전투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으며, C는 최악을 가정하여 무조건 후퇴하도록 약속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B든 C든, 상황이 틀어진다는 소리.

“포스 리콘이나 레이더스를 투입했어야 해. 물론 최고는 씰이지만…….”

“아니, 최고는 델타지.”

“마커스, 이 상황에서까지 그렇게 트집을 잡아야겠어? 진심이야?”

혼잣말처럼 말을 하던 호세가 옆자리의 마커스를 돌아보며 눈썹을 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정정했을 뿐이야, 호세.”

“후… 그래, 나도 정정할게. 내가 말실수를 했어. 최고는 씰6팀이지.”

네이비씰 6팀, 즉 데브그루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마커스가 무조건반사처럼 반응했다.

“뭐? 네가 못 들어간 걸 보면 씰 6팀이 대단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최고라고 할 순 없지. 우리 팀장이 어디 출신인지 기억해 보라고, 호세.”

“아니지. 팀장은 예외로 쳐야 해. 팀장 자체가 존나게 센 거잖아? 팀장은 주방위군에 있더라도 괴물이 됐을 사람이야.”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괴물이 고른 곳이 델타라는 걸 알아 둬.”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투닥투닥거리는 대화가 이어질 무렵.

“그만, 거의 다 왔어.”

제이크가 둘을 중재했다. 동시에 치고 받듯 대화하던 두 사람이 말을 멈췄다.

움직이고 있던 SUV도 완전히 정지했고.

이내 차창 너머를 보던 제이크가 무전기 송신 버튼을 눌렀다.

“헤드. 여기는 찰리 하나. 작전지 도착 완료. 시작하겠습니다.”

-여기는 헤드. 무사히 작전 수행하도록. 수신 양호.

치직, 하는 소리와 함께 무전기가 고요해졌다.

곧 제이크의 시선이 곧장 내게 닿았다.

“리, 네가 차를 나가는 순간부터 작전 개시야. 집중하고 움직이도록 해.”

“당연하죠.”

“그리고 호세의 말처럼 플랜 B와 C를 고려해, 즉각 작전을 변경할 수 있도록. 느낌이 좋지 않군.”

확실히 호세도 그렇고, 제이크도 감이 좋았다.

이 작전은 플랜 B가 될 예정이었다.

정찰과 진출입로 확보를 넘어서 우리 역시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

이에 차 내부의 팀원들을 잠깐 돌아봤다.

새벽녘 어둠 속에서 팀원들의 눈알이 하얗게 번들거리는 것 같았다.

심지어 차 내에 남아서 드론 조작과 통신을 하기로 한 레이첼마저 전장의 흥분이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감탄이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왔다.

‘크으… 드럽게 멋있네.’

하마터면 말할 뻔했다.

정말 이상적인 팀과 함께했고, 그것도 10년 만의 실전이라 그랬다.

웃음까지 날 것 같아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고양감에 들뜨는 감정을 가라앉혔다.

실전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후아… 그럼 출발합니다.”

* * *

차 문을 열고 나와서 빠르게 사주경계에 들어갔다.

새벽 어스름이 깔린, 건물의 윤곽만 희미하게 드러나는 시간이라서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귀에 들리는 건 별로 없었다.

내 헬멧에 달린 몇백 달러짜리 중국산 단안 야투경을 잠깐 내려썼다가 다시 올려 버렸다.

시야 각도가 너무 좁았고, 화질도 저하돼서 효율성이 떨어진 탓이었다.

언제 기뻤냐는 듯 얕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니미, 작전 끝나면 야투경부터 4안 짜리로 바꿔야겠네. 총기 옵션도 손에 잘 맞는 걸로 싹 바꿔 달고…….’

라레플 속에 온 지 며칠 안 돼서, 기존에 있던 내 장비를 손볼 여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배신자인 스캇 때문에 사정이 안 좋기도 했었고.

그리고 야투경을 꼭 안 써도 될 만큼 내 눈이 좋기도 했다.

현역 때보다도 나을 정도.

그사이, 내 왼쪽 어깨에 전진을 뜻하는 신호가 전해졌다.

탁, 탁.

제이크의 묵직한 손바닥을 느끼자마자, 바로 골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적지인 시나몬의 은거지까지 거리는 약 30여 미터.

금세 한 건물이 시야에 잡혔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하얀 벽돌로 된 3층짜리 주택.

흔한 아랍식 건물 중의 하나였지만, 필름 사진과 위성 영상으로 백 번은 더 본 거라서 조금도 헷갈리지 않았다.

사진과 영상, 문과 창문, 건물 크기 따위로 유추한 각 방의 위치도 눈에 선했다.

또한 라레플을 수십 번이나 플레이 했던 경험 덕분에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한 효과까지 있었고.

‘경비 초소의 병사들을 대검으로 제압한 뒤에 건물로 잠입하고, 안에서는 권총으로 CQB(Close Quarter Battle), 나가서는 시가지에서 소총 교전하다가 뒤늦게 시나몬의 탈출로를 발견하면서… 작전 실패로 끝.’

강태의 머릿속에 라레플의 플레이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시나몬은 첫 전투에서 살아 도망갔었다.

흡사 ISIL의 수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탈출로를 만들어 두고 그곳으로 도망간 것이다.

그것도 ISIL의 수장들보다 꼼꼼하고 정교한 대비였는데, 그럴 만했다.

시나몬이 그저 부사령관이 아닌, 반군 사령관이 될 만한 실력자였고, 더불어서 세르게이 볼코프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알 자마쉬의 최고 권력자 수준.

‘최대한 빠르게 조져야 돼.’

아니면 시나몬이 저 집에서 탈출하게 될 거고, 시가전까지 진행해야 될 터.

다시금 마음을 다잡으며 조심스럽게 나아가기를 잠시, 인이어 수신기에서 레이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찰리 전원, 여기는 찰리 다섯. 드론 비행 결과 브리핑할게요.

-찰리 하나, 수신 양호.

제이크의 묵직한 저음이 들리기를 잠시.

기다렸다는 듯 브리핑이 시작됐다.

-정문에 무장한 초병 둘, 옥상에 셋, 3층 10시 방면 발코니에 둘, 외부 인원은 총원 7명으로 미리 파악한 자료와 같아요. 열 영상 반응도 동일하고요. 특이 사항으로 7명 전원 움직임이 전혀 없어서 취침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신속 정확한 브리핑.

게임 속에서도 같은 역할을 할 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저 브리핑을 현장에서 듣고 있자니 속에서 감탄이 나왔다.

‘오, 빠른데?’

차에서 내린 지 고작 몇 분 정도가 흐른 상황.

한데 그사이에 레이첼은 드론을 띄우고 건물을 훑어서 초병의 위치를 모두 파악한 것이었다.

뒤이어 수신했다는 제이크의 목소리가 나올 무렵.

드디어 은거지 정문에 도착했다.

가로 4m, 높이 2m 50㎝에 해당하는 커다란 철문이었는데, 그 위로도 50㎝짜리 가시 철조망이 추가로 용접되어 흡사 성문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담벼락도 생긴 게 다르지 않아서 흡사 요새 같았고…….

그렇다고 넘어가지 못한다는 건 아니었다. 정문의 기둥 윗부분에 발을 디딜 만한 자리가 있었다.

거길 밟고 넘어가면 된다. 담 위에 붙은 철조망은 50㎝에 불과했으니까.

스윽.

어느새 기둥 옆에 붙은 제이크가 사전에 약속된 손깍지로 발판을 만들어 줬다.

동시에 밟고 올라가라는 턱짓이 이어졌다.

HK416을 등으로 메면서, 나도 말 대신에 짧게 눈 맞춤만 하고는 재빠르게 제이크의 손을 밟고 뛰었다.

타다닥.

순식간이었다. 기둥 위의 좁은 공간을 딛고,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반대편 기둥에 매달리듯 천천히 착지했다.

턱.

고요한 새벽이 일렁일 만한 소음이 일었다.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췄고, 숨죽이듯 주변을 경계했다.

다행히 새벽의 어둠은 아직 잠잠했다.

특히 주시하던 경비 초소에서는 숙면을 취한 듯 고른 숨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감을 곤두세워 경계를 마친 뒤, 플레이트 캐리어에 결속된 대검 손잡이를 잡았다.

스윽―

동시에 검집에서 새카만 도료로 칠해진 군용 대검이 들려 나왔다.

예리한 날 끝을 경비 초소로 겨눈 직후.

천천히 발을 뗐다. 고양잇과 맹수가 발톱을 감춘 채 다가가듯.

물론 흙바닥이 군화에 밟히며 지그럭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별일 없이 경비 초소 앞에 도달했다.

유리가 아닌 철창만 있는 창 너머로, 잠든 초병들이 보였다. 총을 벽에 세워 둔 채, 새벽의 한기를 막으려고 모포까지 덮은 모습.

한 명은 책상에 엎드려서, 한 명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파악을 마치자마자, 고민할 것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푹.

팔짱을 낀 채 잠든 병사의 쇄골 윗부분을 대검으로 정확하게 찌른 것이었다.

지체해선 안 됐다.

“커어…….”

숨넘어가는 소리가 퍼지기 전에 다시 찔렀다.

이번에는 오른쪽 갈비뼈 아래의 옆구리.

푸욱―

날을 세워 몸 위쪽으로 찔렀다, 간을 갈라 버릴 정도로.

투둑, 뭔가 터지는 것 같은 이질적인 촉감이 검을 타고 손끝으로 전해지는 순간, 짧게 경련한 병사가 그대로 축 늘어졌다.

스윽, 조용히 대검을 뽑아서 책상에 엎드린 병사에게 다가갔다.

그놈은 칼질 한 번.

간단하게 처리를 마친 뒤에 넥마이크로 상황을 전파했다.

“찰리 하나, 여기는 찰리 넷, 초소 클리어. 문 개방하겠습니다.”

-찰리 하나, 수신 완료.

제이크의 목소리를 듣고, 정문으로 다가가서 잠금장치를 열어젖히려던 순간.

타다당! 투다다다당!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M4와 AK-47가 교전하는 총격음.

그것은 찰리 팀의 작전이 플랜 B로 전환하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였다.

굳은 얼굴의 제이크를 향해 짧게 말했다.

“이번에도 제가 선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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