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이튿날 아침, 지휘실 컨테이너로 알 자마쉬 지부에 속한 세 개 팀이 모였다.
알파, 브라보, 찰리까지 도합 17명.
접이식 의자를 펼치며 알아서 팀별로 앉기를 잠시, 곧 알 자마쉬의 지부장, 론 마이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이가 들면서 사나움이 빠진, 순한 인상의 늑대처럼 보이는 사내였다.
“자, 다들 짐작했듯이 오늘은…….”
론이 말을 시작하자마자 멈췄다.
알파 팀장이 눈을 맞추면서 손까지 들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할 말이 있다는 모습.
다른 팀원들의 시선까지 몰리는 사이, 론이 결국 알파 팀장에게 말했다.
“뭔가?”
“오늘 회의 말입니다, 반군 소탕 때문에 부르신 거 맞습니까?”
“그래, 지금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입을 떼자마자 방해한 이유가 뭔지 말해 보게.”
“이대로 진행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말이죠.”
“그게 무슨 소린가?”
론이 의아한 얼굴을 해 보이자, 알파 팀장이 옆으로 눈짓했다.
“찰리 팀 말입니다, 거기 부팀장이었던 스캇이 배신자라고 들었는데… 그 동료들이 여기 앉아 있을 자격이 있는 겁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불안해서 같이 못 있겠습니다.”
동시에 장내의 시선이 알파 팀장이 아닌 찰리 팀에게로 쏠렸다.
알파 팀장이 그런 시선에 섞여 말을 덧붙였다.
“찰리 팀은 예비대로 빼던지 아니면 건설 현장 경비나 영내 대기를 하는 게 맞는 것 아닙니까?”
그 말에 브라보 팀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듯 별다른 표시를 내지 않았을 때였다.
제이크가 고개를 기울여 알파 팀장을 바라봤다.
“루크를 잃은 건 우리야, 여기 앉아 있을 자격은 충분해.”
“그래, 반군이 쐈다고는 하던데… 솔직히 누가 쏜 건 줄 어떻게 알아? 어쩌면 네 아시안 신입이 쐈을지도 모르는 것 아냐? 생긴 것만 봐서는 북한이나 중국 첩자와 다를 게 없잖아, 안 그래?”
전형적인 인종차별적인 발언이었다.
어느새 제이크의 눈알이 번뜩거리는 순간.
“그만, 여긴 너희 휴게실이 아니야.”
론이 얼른 말을 잘랐다.
나이와 부상으로 작전을 뛸 수 없긴 했지만, 그도 1티어 특수부대인 데브그루 출신의 사내였다.
이름난 작전도 여러 번 수행했던 인물로 눈치도 좋고, 말에 힘도 있는 인물.
그런 만큼 대개 말 한마디면 통제가 됐다. 출신이 아니어도 직급이라는 게 있기도 했고.
그러나 델타포스의 괴물이었던 제이크에게 통하진 않았다.
드르륵―
접이식 의자를 밀면서 일어난 제이크가 알파 팀장을 쳐다봤다.
“시비를 거는 것 같은데, 그럼 잠깐 나오지 그래? 아니면 여기서 할래?”
진담이 틀림없었다.
말아 쥔 주먹이 장전된 탄알처럼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컨테이너 천장에 닿을 것 같은 거구가 흘려 대는 위압감이 지휘실 컨테이너를 흡사 전장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동시에 론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작전하기도 전에 사상자가 나겠어.’
지금은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1, 2티어의 내로라하는 특수부대 출신들로 이뤄진 팀은 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없을 수가 없었다. 자존심도 세고, 자존심만큼 실력도 뛰어났으니까.
그중에서도 최고는 찰리 팀, 거기서도 제이크였다. 자존심도, 실력도 G&G Corp에서 제일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위험한 부류.
하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건 제이크의 찰리 팀이 국무부의 관리를 받는 팀이라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제이크만이 국무부 산하의 요원이었다. 그 외의 팀원들은 국무부의 일을 하는지조차 몰랐고.
그런 만큼 중요한 건 제이크였다. 여기서 문제를 만들어선 안 됐다.
론이 말을 고르다가 늦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제이크, 잘 생각하게. 지금은 루크의 복수를 할 때지, 아군끼리 분열할 때가 아니네. 자네도 잘 알지 않나?”
그제야 제이크가 멈칫했다.
다행이었다. 제이크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유형이긴 해도, 물불에 뛰어들 이유는 가리기 때문이었다.
“…….”
제이크가 화를 참듯 론을 볼 때, 인종차별 대상으로 찍혔던 강태도 목소리를 냈다.
“저를 맨 앞에 세워 주십쇼. 실력으로 저 새끼들 콧대를 완전히 조져 놓겠습니다.”
제이크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면서 론을 바라봤다.
“리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제이크, 아직 작전 설명도 안 했어, 일단 듣고 정하지. 그리고 알파 팀장은 부적절했던 발언을 사과하게. 리는 어찌 됐든 우리 팀이야.”
론은 잘됐다는 듯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알파 팀장이 못 이기는 척 사과했고, 제이크도 주먹을 풀면서 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작전 회의가 시작될 무렵.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던 레이첼이 강태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요?”
“뭐? 선두에 서는 거요?”
“아뇨, 방금 알파 팀장이…….”
그 말에 강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이따가 봐서 저 새끼 방문에다가 오줌 싸 갈길 거니까.”
“네?”
“농담이에요, 농담.”
강태가 웃으면서 말했는데, 레이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강태라면 진짜 할 것 같았다.
이 팀 내에서 유일하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강태의 모습만 봐도 그랬다. 분노하는 기색 없이 이 상황을 얌전히 관조하고 있었다, 마치 먹이를 탐색하는 포식 동물처럼.
레이첼이 짧게 입술을 씹었다.
‘…진짜 종잡을 수가 없어.’
* * *
“펜타곤에서 며칠 전 습격의 주동자를 파악했다. 반군 부사령관으로 있는 무함마드 아힐리 다우드 알 누만, 작전상 타깃 명칭은 시나몬.”
“시나몬? 갈아서 뿌려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제이크의 옆에 있던 호세가 스크린에 뜬 증명사진을 보며 중얼거리는 사이, 론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의 일은 시나몬의 은신처 정찰과 군의 진출입로 확보야. 이미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에 교전은 최소화로 하고, 위험을 줄이라는 조건이 붙었어.”
“그 새끼들은 늘 개소리를 하는군요. 그럴 거면 의뢰를 주지도 말았어야지, 지들끼리 알아서 하든가.”
누군가 중얼거리듯 불평을 흘렸으나, 론도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2003년의 이라크 전쟁 때부터 미군의 사상자 숫자를 줄이기 위해 위험한 일을 PMC에 전가했었다.
번거로운 고생은 민간에게 떠넘기고, 중요한 성과만 쏙 빼먹기 위해서였다.
간단하게 말해 전쟁의 외주화.
그게 지금도 이루어지는 와중이었는데, 론은 개의치 않는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그 외주화 덕분에 먹고 살았으니까.
“정찰과 진출입로 확보가 끝나고 보고한 뒤에, 투입된 본대에게 인수인계하고 빠져나오면 돼. 의뢰는 그걸로 끝이야.”
“본대는 어딥니까? 스페셜포스? 씰?”
“해병이야. 병력은 1개 연대로 험비와 장갑차까지 갖춘 준수한 전력이야. 항공대의 지원을 받아서 공격 헬기도 투입 가능한 수준이지.”
“잠깐, 해병 1개 연대요?”
네이비씰 출신의 호세가 연달아 물었다.
“포스 리콘(force Recon)이나 레이더스(Marine Raider Regiment)가 아니라, 해병 1개 연대요? 요인 제거가 아니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겁니까?”
그 외에 다른 용병들도 모두 공감한다는 얼굴로 론을 바라봤다.
대개 이런 작전은 2티어 이상의 특수부대들이 주로 도맡게 되어 있었다. 해병이나 육군 전력은 일정 규모 이상의 무장 집단과 교전할 때 쓰이는 편이었고.
군의 규모나 체계, 훈련 방식이 그랬다.
이윽고 론이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그래, 전쟁은 아니더라도, 전투를 한번 거하게 할 모양이야.”
“그럼 반군 세력을 궤멸시키려는 겁니까?”
재차 이어진 질문에 론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목소리를 냈다.
“아마 자네 중 일부는 봤을 텐데…….”
말꼬리가 길어지길 잠시.
제이크와 리, 호세, 마커스, 레이첼까지 찰리 팀을 차례로 돌아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틀 전에 CNN에서 우리 직원이었던 루크 밀러의 시신 이송과 장례까지 촬영해서 보도했었네. 그 바람에 여론의 반응이 거칠어졌지. 작전도 그런 이유로 변질된 것 같네.”
“이런 멍청이들 같으니…….”
몇몇이 구시렁거릴 무렵.
론이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다시 작전 내용을 짚었다.
“그래도 무인정찰기와 공격 헬기까지 지원하고, 유사시에는 건십도 호출 가능하다고 하니… 화력 면에서 위험할 일은 없을 걸세.”
“지원해 주면 뭐 합니까? 거기 민간인 주거지인데, 그냥 폭격해도 되는 겁니까?”
“아니, 안 되지. 그러니 우리한테 의뢰한 거고, 해병 1개 연대를 투입한 거지. 폭격 없이 적을 제거하라고.”
론의 설명에 호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또 생색이나 내겠다는 거군요, 그렇죠?”
“그래도 쓸 만할 거야,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겁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너무 비관적으로 보진 말게. 무엇보다 자네들은 최고의 베테랑이 아닌가?”
분위기를 환기하듯 뱉은 말에 호세가 옆을 슬쩍 쳐다봤다.
“최고라고 하기에는 아닌 놈들도 있잖습니까? 예를 들어서 인종차별이나 하는 머저리들.”
아직 앙금이 남은 듯 호세가 비아냥대자, 론이 얼른 선을 그었다.
“그 이야기는 아까 사과하면서 끝났으니까 그만하지.”
“아, 그랬어요? 저는 웬 너드가 웅얼거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사과했던 거였어요? 뭐라고 했더라? 미욘흐게대또, 뭐 그딴 거였나?”
말리려던 마커스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크크극, 이걸 더하라고 할 수도 없고.”
“호세.”
제이크가 두꺼운 손바닥으로 호세를 툭 쳤다.
“작전 논의 중이야, 이따가 해.”
“오, 팀장도 하지 말라고는 안 하는군요.”
“…….”
제이크도 입을 닫고 앞을 바라보는 사이에, 론이 불쑥 강태를 지명했다.
“리!”
다소 흐트러진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주의를 끈 것이었다.
물론 목적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출신 부대에서의 실전 경험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서의 실전은 처음인 걸로 아는데……. 정말 선두에 설 자신이 있나?”
우려를 담아 묻는 것이었다.
잘못했다가는 또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것도 강태 한 명만 다치거나 죽는 게 아니라, 약속이 꼬여서 팀이 전멸할지도 모를 일.
물론 제이크를 포함한 베테랑들이 그렇게 우수수 죽어 나갈 리는 없지만, 뭐든 함부로 예단할 순 없었다.
전장에는 늘 예외가 있는 법이니까.
그러나 돌아오는 강태의 답은 아주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아휴,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