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 보니 전장 한복판-6화 (6/185)

6화

“뭐 하자는 거야?!”

스캇의 목울대에 핏발이 섰다.

“당장 내 노트북 가져와! 문까지 부수고 훔쳐 가는 걸 묵인하는 게 말이나 돼?”

높아진 언성 아래, 제이크가 짧게 대답했다.

“조사 요청이 들어왔어.”

“좆 까는 소리 하지 마! 내게 달라고 말을 했어야지! 어떻게 문을 부수고 들어올 수가 있지? 정말 한번 해 보자는 거야?!”

그 말에는 제이크도 달리 변명하지 못했다.

강태가 노트북을 들고 왔을 때는 미처 몰랐는데, 나중에 가 보니 문고리를 부수고서 들고 나왔기 때문이었다.

곧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나도 부서진 건 나중에 알았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 봐, 스캇.”

“그러니까 왜?! 내가 뭘 했다고?”

“좋지 못한 제보가 있었어.”

“제보? 무슨 제보?”

“더 말해 주긴 힘들어. 하지만 나는 널 믿어, 스캇.”

“믿는다고? 믿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조사를 해? 말장난도 적당히 해, 씨발!”

“널 믿으니까 기다리는 거야.”

차분하게 답하던 제이크의 말끝에 어느새 무게가 들어갔다.

위압적인 목소리였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던 스캇이 주춤할 정도.

맞는 말이었다. 제이크는 불신하는 사람을, 흥분해서 소리 높이는 사람을 이렇게 차분하게 대할 위인이 아니었다.

바위 같은 주먹으로 얼굴을 먼저 부숴 놨을 터.

델타포스에 있을 때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쪽으로 무시무시한 소문도 났었다.

지금의 제이크는 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행동에 제약이 있을 뿐, G&G Corp 안에서 그 누구보다 사납고 강력한 인간이었다.

길게 콧김을 내뿜은 스캇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목소리도 저절로 한 톤 내려갔다.

“…언제 가져갔는데?”

“몇 시간 됐어. 네가 외출하자마자 가져왔더군.”

“……!”

스캇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쌍욕이 재차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가 외출한 건 거의 한나절 전이었다.

무슨 조사를 진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시간이면 자신이 저지른 죄가 발각됐을지도 몰랐다.

내부 자료 유출.

물론 메일은 꼬박꼬박 삭제했고 관련 자료도 남기지 않았지만, 느낌이 좋지 못했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자신이 외출한 타이밍에 맞춰서, 잠긴 문고리를 뽑아 내고 방에 들어가서 노트북만 꺼내 갔다.

목적이 명확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추스른 스캇이 반 박자 늦게 입을 뗐다.

“…도대체 누가 그런 거야?”

“조사가 다 끝나면 말해 줄 테니까, 방에서 쉬고 있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나를 구금하려는 건 아니고?”

“그건 아니야, 스캇. 네 편한 대로 해.”

제이크가 담담하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강태가 문고리를 부수고 노트북을 가져올 정도로 확신하는 만큼, 제이크도 스캇을 믿었다.

델타포스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스캇에게 G&G Corp의 용병을 권유했던 것도 바로 자신이었다. 그라면 충분히 능력 있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었으니까.

‘…이 모든 게 헤프닝이었으면 좋겠군.’

제이크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스캇은 몸을 돌렸다.

호소해도 꿈적할 사람이 아니었다. 더구나 정보 유출이 발각될 위험이 코앞으로 닥쳐 온 상황.

찰리 팀의 컨테이너를 빠져나왔으나,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도망가야 하나?’

가능하긴 해도, 수배되어 평생을 도망자로 살게 될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고, 유럽 같은 국가로 밀입국하더라도 제대로 생활하는 건 힘들 게 분명했다.

용병으로 일하면서 뼈 빠지게 모은 재산과 정보 유출로 크게 벌었던 가상 화폐를 제대로 쓰는 것도 어려울 터.

‘하지만 이대로 다 들키면…….’

그의 생각이 가능한 수를 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앞으로 법적인 절차를 밟게 될 것이었다. 재산을 못 쓰는 건 당연하고, 루크의 죽음까지 자신이 덤터기를 쓰게 될 가능성이 컸다.

어쩌면 살인죄를 질지도 모를 일.

스캇이 떨어트렸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살인죄까지 질 순 없지. 앞으로 몇 달만 더 벌고 손 털려고 했는데, 씨발…….’

오래지 않아서 결론이 나왔다.

‘여길 뜬다, 최대한 빨리.’

그가 챙겨야 할 것들을 떠올리면서, 문고리가 부서진 자신의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리고 권총과 탄알, 현금 따위를 급하게 꺼내어 챙길 때였다.

“부팀장? 뭘 그렇게 바쁘게 챙겨요?”

강태가 나타났다.

문을 슬쩍 밀고 안을 둘러보던 강태가 히죽 웃었다.

“안경잡이 배신자 새끼야.”

“…뭐, 뭐?!”

갑작스럽고도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스캇이 얼어붙고 말았다.

“튀려고? 이야, 게임하고 거의 똑같네.”

플레이 했던 여러 선택지에서 스캇은 죄를 순순히 인정한 적이 없었고, 반항했으며, 도주하려고 했었다.

그때마다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무력으로 체포되었던 게 스캇이었고.

그 상황이 지금 또다시 재현되는 것이었다.

“권총에서 손 떼.”

스윽.

어느새 글록19를 꺼낸 강태가 스캇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얌전히 있어.”

“너… 너, 미쳤어? 날 겨눠? 진심이야?”

“그럼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난 네 부팀장이야! 정신 차려, 이 미친 새끼야!”

“어쭈, 직급으로 찍어 누르시겠다?”

“너 지금 무슨 짓을…….”

말을 잇던 스캇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강태가 찾아온 타이밍이며, 기다렸다는 듯 총을 겨누는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탓이었다.

그 끝에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설마… 노트북을 가져간 게 너였어?”

“눈치는 있네.”

“너 이……!”

순간 분노에 휩싸인 스캇이 달려들려던 찰나.

탕―!

격발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일어서려던 스캇이 주저앉았다.

정강이에 탄이 적중한 것이었다. 카고 바지가 터지면서 핏물이 침실 바닥에 팍 튀어 나갔다.

“으악! 이 미친 새끼가… 진짜 날 쏴?!”

“못 쏠 게 뭐야, 안경잡이 배신자 새끼야. 코인 때문에 정보 팔아먹은 놈한테 자비라도 베풀어야겠어?”

강태가 태연히 답한 순간, 스캇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걸 네가 어떻게……?”

일순, 차오르던 고통과 분노가 가셨다.

분명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캇 본인과 정보를 샀던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스캇의 두 눈이 바쁘게 굴러다녔다.

‘설마… 그 새끼가 나를 팔아넘겼나?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강태가 피식 웃는 사이, 문이 벌컥 열렸다.

“무슨 일이야?!”

총소리를 듣고 팀원들이 들이닥친 것이었다.

돌격 소총을 든 마커스와 호세였다.

“총 내려! 리!”

“그 방은 스캇의 방이잖아? 설마 스캇을 쏜 거야?”

두 사람이 연달아 목소리를 냈을 때였다.

“마커스, 호세, 총 내려.”

제이크가 등장했다.

그리고 마커스와 호세, 두 사람이 군인답게 강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반문하려던 순간.

다시금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스캇이 배신자라는 증거가 나왔어.”

“네? 뭐라고요?”

“그가 루크를 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총 내려. 당장 체포해야 해.”

* * *

상황이 일단락됐다.

총상을 입은 스캇이 끌려가서 치료와 심문을 받기 시작했고, 총기를 무단으로 발포한 나도 침실로 격리된 것이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흘러 취침 시각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똑똑.

여태 없던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바깥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레이첼을 대동하고 온 제이크였다.

“리, 함께 가야겠어.”

“그럽시다, 팀장. 안 그래도 지루했는데.”

방에서 맨몸 운동만 해서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물론 쑤시던 무릎이 멀쩡하고, 나왔던 배가 단단한 복근이 된 게 행복하긴 했지만, 그건 첫날에 확인한 거라 기쁨이 덜했다. 이제는 원래의 내 몸 같았다. 따지자면 키만 좀 다를 뿐, 몸매는 10년 전과 비슷하기도 했고.

이에 겉옷을 집어 들고 제이크를 따라 나선 다음이었다.

여태 조용하던 레이첼이 입을 열었다.

“리, 스캇이 말하기로는 당신에게 술김에 그런 얘기를 털어놓은 적도 없고, 그렇게 취하지도 않았다고 하던데. 이건 어떻게 생각해요?”

맞는 말이었다.

스캇과 나는 단둘이 술을 마시긴 했어도, 만취하지 않았고, 다른 얘기를 나누지도 않았었다.

그 시간도 아주 짧았었고.

그러나 있는 그대로 떠들 필요가 없었다. 나도 머리 굴려서 상황을 만든 것이었으니까.

“원래 취하고도 안 취했다고 하는 게 남자들입니다. 기억을 못 하던가, 아니면 쪽팔렸겠죠.”

“스캇은 오히려 당신을 부르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알았냐면서.”

“그럼 지금 대면하러 가는 겁니까?”

“그래요, 당신을 꼭 데려와 달라고 했어요.”

“그럽시다, 뭐.”

후달릴 만한 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증거는 드러났고, 스캇은 배신자로서 신용이 바닥을 친 상황.

당당하게 걸어서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갔다.

G&G Corp 서남아시아 지부장, 론과 험악한 인상의 고위직 용병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고, 이어서 양팔이 결박된 스캇과 마주 앉았다.

꼴이 가관이었다.

치료를 받은 게 아니라, 추가로 얻어맞은 것처럼 보였다. 눈알의 실핏줄이 터지고, 양 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모습.

그런데도 델타포스 출신의 용병답게, 눈알이 독기로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오자마자 스캇이 반응한 것이었다.

“너!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 놈이 말해 준 거야? 어?”

“누굴 말하는 거야?”

“볼코프.”

조금 더디게 나온 대답이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잘 아는 이름이었다.

세르게이 볼코프.

이름에 걸맞게 러시아 출신의 테러리스트이자, 라레플의 악역 중의 한 명이었다.

그리고 제이크와 레이첼, 미 정부가 쫓고 있는 범죄자기도 했고.

이에 늦지 않게 대답해 줬다.

“볼코프? 그게 사람 이름이냐? 어느 나란데? 러시아?”

“모르는 척하지 마, 그냥 말해! 그 새끼가 날 버린 거냐? 내 이용 가치가 다했다고? 엉?! 말하라고, 이 새끼야!”

“어어? 침 튀는 거 봐라. 이거 자백 같은데, 더 들어 줘야 합니까?”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사이에도 스캇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대답해, 이 개새끼야! 이런 식이면 나도 다 불어 버리는 수가 있어!”

핏물 어린 침이 또 튀었다.

피하듯 슬쩍 뒤로 물러나자, 뒤편에서 제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냐, 가도 좋아. 리.”

들끓는 감정을 참는 듯 이가 꽉 다물린 말이었다.

나도 군소리를 덧붙이지 않고 일어났다.

생각보다 더 쉽고 빠르게 스캇을 처리했다. 만족스러웠다. 거기에 추가 성과도 있었다.

바로 세르게이 볼코프라는 이름.

앞으로 등장하게 될 중간 보스 격의 캐릭터로, 악랄하고 강력한 만큼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악역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그가 핵전쟁을 일으키게 될 메인 악역, 피칼의 오른팔이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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