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스캇 에반스는 배신자보다는, 젠틀한 호감형의 캐릭터였다.
30대 중반의 백인에 보통 키, 탄탄한 몸뚱이, 정돈한 머리와 깔끔하게 면도한 턱, 금테 안경을 낀 모습까지.
거기에 미 해병대를 거쳐 1티어 특수부대인 델타포스에 들어가서 제이크와 함께 복무하기도 했던 베테랑이었다. 그래서 부팀장이었고, 당연히 팀에서 받는 신임도 높고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내가 여기서 배신자라고 떠들 순 없었다.
‘안경잡이같이 배신하는 새끼를 어떻게 해야 되나…….’
여기서 바로 한 방 먹여 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장 내 손으로 증거를 찾아내고 얻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기서 배신자 어쩌고 하면서 떠들어도 신뢰를 주긴 어려웠다. 애초에 제이크 입장에서도 신입인 나보다 1년 넘게 등을 맡겼던 스캇을 더 믿을 게 뻔했고.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제이크도 스캇을 의심하게 되겠지만,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루크에 이어서 다른 팀원 한 명이 더 죽거나 다치고 난 뒤.
당연히 그때까지 기다릴 마음은 없었다. 일이 터지기 전에 스캇을 죽이든 체포하든 해야 했다.
‘이거 고민이네, 어떡해야 하나…….’
그사이, 스캇이 제이크와 함께 내 앞에 도착했다.
“리! 팀장에게 얘기 들었어, 소총으로 도망가는 운전수를 맞혔다면서? 잘했어, 정말 수고 많았어.”
저 가식적이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혐오를 넘어서 신기하기까지 했다.
‘정보를 팔아넘기고도 뒤질 뻔했을 텐데… 이렇게 태연하나? 대단한 새끼네, 이거.’
이 바닥에서 정보통이나 배신자까지 습격에 휘말려 죽는 게 꽤 흔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겪는 건 명백히 경우가 달랐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타격이 없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1년 이상 함께했던 동료, 루크까지 죽은 상황.
내가 별말을 하지 않자, 제이크가 우리 찰리(CHARLIE) 팀의 컨테이너로 턱짓했다.
“컨테이너로 가는 길이었나?”
“예.”
“같이 가지, 전파 사항이 있어.”
“알겠습니다.”
“어깨는?”
“괜찮습니다.”
“임무 수행에 차질 없겠지?”
“예.”
제이크와 나 사이에서 군인다운 짤막한 대화들만 오갈 무렵, 어느새 컨테이너에 도착해 문고리를 돌렸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제이크만큼 낯익은 두 얼굴이 보였다.
호세 페레즈와 마커스 워싱턴.
그중에 호감형의 얼굴을 가진 남미 출신의 호세가 먼저 내게 말을 붙여왔다.
“마침 왔구나. 리, 어깨는 좀 어때? 괜찮아?”
거즈가 붙은, 넝마처럼 잘린 티셔츠의 어깨 부위를 보는 사이에 호세의 말이 덧붙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훈장이 되겠어. 픽업트럭 5대와 반군 21명을 모두 잡았으니까. 아아, 물론 팀장이 구경만 했다는 소린 아닙니다. 당연히 팀장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줬겠죠.”
호세가 내 옆에 있던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말끝에 미소를 지었는데, 그렇게 밝아 보이진 않았다.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루크의 죽음.
그게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캐릭터 한 명일 뿐이지만, 이 안에서의 루크는 1년 넘게 동고동락했던 동료였으니까.
흑인 래퍼처럼 호세를 쪼아 대던 마커스가 가만히 있는 것만 봐도 티가 났다.
그때, 목소리 하나가 훅 찔러 왔다.
“리, 하나만 물을게.”
마커스였다.
그가 자신의 까만 민머리를 한차례 쓸고서 더디게 물었다.
“…루크는 잘 갔나? 남긴 말은?”
동시에 제이크와 스캇, 호세의 시선이 모두 내게 몰렸다. 마치 답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기분이 묘했다.
이 장면을 게임 플레이 하며 모니터로 봐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컨테이너 안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무겁고도 씁쓸한 감정이 그들의 눈빛만이 아니라, 날숨에도 섞여 나오는 것만 같았다.
‘나도 기분이 다운되는 것 같네.’
물론 게임 플레이 할 때도 성우의 대사에 감정이 실려 있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금 이 안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무렵.
늦지 않게 대답했다.
“화기를 들고 응사하라고 했었어.”
내 말에 마커스가 눈물을 참듯, 다시금 까만 민머리를 쓸어내리며 마른세수를 했고, 뭐라고 말을 덧붙이려던 호세조차 그저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동시에 제이크의 입이 열렸다.
“죽기 직전까지도 빌어먹을 레인저다웠군.”
침묵이 깔리길 잠시, 그나마 가장 수다스러운 호세가 입을 열었다.
“존나게 멋있긴 하네, 죽기 직전에 한 말이 응사하라는 거였어?”
“뭐가 멋있어? 결국 죽었는데, 씨발.”
“그만하면 멋진 거지, 평소에도 숭고하게 죽고 싶다는 놈이었잖아?”
마커스가 반박하고, 호세가 다시 대꾸하는 사이.
제이크가 둘을 중재했다.
“그만. 이러자고 루크 얘기를 꺼냈나?”
“…아닙니다.”
마커스가 주춤하며 답했다.
그도 제75레인저연대와 스페셜포스, 거기에 델타포스를 거쳐 온 캐릭터로 제이크의 직속 후임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곧 제이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VIP 경호는 중단됐고, 곧 루크의 복수를 할 기회가 올 테니, 그때까지 화는 눌러 두도록.”
“복수요? 그게 언젭니까?”
“조국에도 소식이 전해졌으니, 적절한 의뢰를 해 오겠지. 테러리스트 제거는 우리보다 나라와 언론이 더 원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회사에서도 구금된 포로들을 심문하고 있으니까, 쓸 만한 정보도 곧 나올 거야. 이르면 며칠 안에는 출동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팀장.”
대답을 들은 마커스가 의지를 불태우듯 눈매를 좁히는 사이, 스캇이 말을 덧붙였다.
“참, 팀원 충원도 된다고 했었잖아? 그게 사실이야?”
“그래, 루크의 빈자리를 곧 채우게 될 거야, 바로 출발한다고 하니까 며칠 안에 올 거야.”
그 말에 듣고 있던 호세가 반응했다.
“…웬일로 존나 빠르군요, 누굽니까? 델타 출신입니까? 아니면 씰?”
이에 마커스도 귀를 기울이듯 바라보는 사이.
제이크가 고개를 저었다.
“조만간 올테니,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군.”
“도대체 누군데 그래?”
스캇이 재차 물었으나, 제이크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총기 관리 하고, 휴식하라는 말만 남겼다.
왜 그러는지는 잘 알았다.
새로 올 팀원이 특수부대 출신의 용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레이첼.’
제이크와 마찬가지로 라레플의 주조연 캐릭터 중 한 명.
이름은 레이첼 포스트로 국가안보국과 CIA를 거친 엘리트 출신의 30대 초반 백인 여성이었다.
미리 설명해서 좋을 게 없는 단어들이었다.
성별도, 출신도 모두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이 꺼릴 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편견이나 갈등이 잦았다. 특히 국가안보국과 CIA를 거쳐 온 이력은 군인이든, 용병이든, 누구든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복무할 때 느꼈었다. 국정원이니, 어디 소속이니 하면서 정장 입고 오는 놈들은 대부분 재수가 없었고, 아주 고까웠다는 사실을.
그런 면에서 레이첼의 등장은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그렇다고 안 올 수는 없었다.
배치될 용병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앤지가 그냥 PMC가 아니니까.’
PMC, 흔히 말하는 용병 집단인 G&G Corp의 일부, 팀 몇 개가 미 국무부의 비공식 군사 조직이었다.
쉽게 말해 미 정부의 비밀 외주 기관 중 하나.
그중에 찰리 팀을 이끄는 제이크가 바로 그 비밀 요원 중의 한 명이었다.
당연하게도 찰리가 수행하는 임무 대부분이 국무부를 통해 제이크에게 하달된 나랏일과도 같았다.
물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 없었다.
나도 게임을 플레이 해서 아는 사실이었지, 팀에서는 오직 제이크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부팀장인 스캇도 몰랐다.
스캇이 배신을 저지르고 있긴 하지만, 뭘 알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비싼 값에 정보를 팔아먹고서 빠르게 은퇴하려는 쓰레기일 뿐.
그 와중에 레이첼이 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국무부가 레이첼을 일부러 보낸 것이었다.
내부 정보가 새는 것을 감지했고, 어디서 어떻게 새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
일종의 감시 역할이었다.
그러자 뭔가가 뇌리를 스쳐 갔다.
직접 증거를 찾지 않고도, 쏴 죽이지 않고 스캇을 간단하게 처리할 방법.
‘그냥 레이첼한테 꼰지르면 되겠는데?’
곧 등장하게 될 레이첼은 제이크 이상으로 능력 좋고, 정의감까지 투철한 캐릭터였다.
이 팀에 괜히 배치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 레이첼은 내가 수십 번 플레이 하면서 가장 잘 아는 캐릭터 중 하나였다.
* * *
레이첼이 알 자마쉬 공항에 도착한 건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스키니 청바지와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산악용 백팩을 멘, 영락없는 배낭 여행객의 모습.
들러붙는 호객꾼들을 떨쳐 낸 그녀가 접선하기로 한 운전수의 차에 올랐다.
“알 자마쉬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바로 숙소로 갈까요?”
“그래요, 총기는요?”
“아, 그건 조수석 아래를 보시면…….”
설명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레이첼이 곧장 허리를 숙여 조수석 아래를 더듬었고, 금세 종이로 둘둘 싸 놓은 뭉치를 하나 꺼내었다.
글록17 한 정과 가득 장탄된 탄알집 두 개.
레이첼이 능숙하게 글록17의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을 확인했고, 방아쇠와 슬라이드 멈치를 작동해 본 뒤에 탄알집까지 결합했다.
철컥.
순식간에 장전된 글록17과 탄알집 하나를 품에 넣으면서, 레이첼이 운전석을 향해 물었다.
“현지 상황은 좀 어때요?”
“이곳은 늘 똑같죠. 가난하고, 위험하고.”
“반군 소식은 있어요?”
“엊그제 미 용병과 싸웠다는 얘기가 좀 퍼지고 있습니다.”
“계속 말해 보세요.”
“근데 성과나 사상자 얘기는 없는 것 같아요. 미 용병을 공격했다,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보통 포로로 잡든가, 죽였든가 자랑을 하곤 하는데… 별말이 없는 걸 보면, 결국에는 실패했다는 소리죠.”
“그 외에 특이 사항이라고 볼만한 건 있어요?”
“특별한 건 아닌데, 요새 소련제 무기가 암시장에서 좀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알아요, AK 말하는 거죠? 다른 병기는 어때요?”
“음… 다른 건…….”
레이첼은 이후로도 몇 번이나 질문했다. 미 정부에게 받은 첩보만큼이나 실거주하는 현지인의 얘기도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게 작은 차이에 불과하더라도 간과할 순 없었다. 목숨이 오가는 현장이니까.
심지어 내부에 배신자까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질문과 대답 끝에 미쓰비시 승용차가 숙소로 쓰이게 될 호텔 앞에 멈춰 섰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현지 조력자와의 만남을 마친 레이첼이 차에서 내리고선 자연스럽게 주변을 파악했다.
위성 사진으로 파악해 뒀던 건물과 지형이 실물이 되어 그녀의 육안에 담겼다.
동시에 호텔의 진출입로와 창문 등도 개략적으로 파악한 뒤.
도어맨을 비롯하여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확인하고서 호텔 로비로 들어갈 무렵이었다.
회전문을 통과하자마자, 레이첼의 걸음이 금세 멈췄다.
만나기로 했던 이들이 와 있었다.
G&G Corp의 알 자마쉬 찰리 팀, 팀장 제이크와 팀원 강태.
그쪽으로 움직인 레이첼이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오늘부로 G&G 알 자마쉬 찰리 팀에 소속될 레이첼 포스트입니다.”
마주한 강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이야, 진짜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