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내게는 취미가 하나 있었다.
라스트 레드 플래그(Last Red Flag), 속칭 라레플이라는 FPS 게임.
민간 군사 기업, 일명 PMC를 배경으로 한 오픈 월드로, 높은 자유도와 강렬한 액션, 매력적인 캐릭터 등등의 장점을 가진 인기 FPS 게임이었다.
그런 이유로 최신하고 거리가 먼 나까지 손을 댔을 정도.
그게 벌써 몇 년 전이었는데, 39살이 된 지금도 라레플을 즐기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꾸준히.
어제도 그동안 진행했던 스토리를 끝내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딸깍.
메인 메뉴의 ‘새로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자, 아주 익숙한 캐릭터 생성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성별과 인종, 국적, 키, 몸무게, 얼굴, 체형 등을 설정하고 캐릭터 이름을 정하면 되는데, 수십 번을 반복했던 것들이라 아주 간단하게 할 수 있었다.
빠른 클릭 끝에 마지막에 내 이름까지 때려 넣었다.
[이강태]
강할 강(强)에 클 태(太), 말 그대로 크고 강한 사람이 되라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인데, 나보다는 캐릭터에게 어울리는 듯 보였다.
큰 키에 날렵하고 단단한 체형, 훤칠한 아시아계 얼굴까지.
반면에 나는 보통 키에 뱃살까지 붙은, 내일모레 마흔이 되는 평범한 아저씨였다.
“새끼, 좋겠다.”
전부 시선이 가는 외모였는데, 그보다는 전투 배낭과 전술 조끼를 착용하고 총기를 든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생긴 건 딴판이지만, 그 느낌만큼은 10년 전의 나하고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제1공수특전여단, 일명 특전사 상사(진)이었던 29살의 시절.
그게 내 전부고 미래였다.
교통사고로 다리 한쪽과 골반이 아작나지만 않았다면 아직도 군 생활을 하고 있을 터.
매일 밤 꾸는 꿈도 다르지 않았다.
수술 흉터가 없는 말끔한 무릎으로 연병장을 뛰어다니고, 공수 강하 훈련을 받고, 가끔 축구나 족구도 하고.
그러나 현실은 비 올 때면 무릎을 짚는 신세였다.
이에 화면 속 이강태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를 잠시, 더디게나마 다음으로 넘어갔다.
‘특성 고를 차례지.’
캐릭터에게 15개의 특성 중 3개를 부여할 차례였다.
일종의 특장점.
이미 전부 사용해 보기도 했거니와, 이전부터 쓰던 것들이 있어서 앞선 설정처럼 고민할 건 없었다.
딱, 딱, 딱. 내가 클릭한 세 개 특성이 비어 있던 칸을 빠르게 채웠다.
1번 특성 <명사수>
: 에임 보정의 효과가 적용되어 조준 속도와 정확도가 향상됩니다.
2번 특성 <특급 체력>
: 오랜 시간 전력 질주로 달릴 수 있고, 체력 부하로 발생하는 신체적인 상태 이상에서 빠르게 회복합니다.
3번 특성 <강철 멘탈>
: 전투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며, 정신적인 상태 이상에 저항합니다.
이 외에도 웨폰 마스터나 풀 도핑, 버서커, 육감, 잠행술 등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것들이 많았는데, 일부러 고르질 않았다.
내가 고른 세 특성이야말로 군인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사격, 체력, 정신력.
육해공별로, 보직별로 기본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한테는 그 셋이 근본이었다. 당연히 그 셋을 갖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했었고.
그래서 자주 선택했었고, 또 쉽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모니터가 까맣게 변하면서 화면 가운데에 한 줄의 문장이 나타났다.
<게임을 시작하려면 아무 키나 누르십시오.>
탁!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서 주춤했다.
‘난이도를 안 골랐는데?’
분명 게임 시작 전에 난이도를 선택해야 했다. 그래야 지금과 같은 화면이 나오게끔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
몸이 굳어 버리더니,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눈앞도 깜깜해졌다.
순식간이었다.
의자에서 떨어진 듯, 전신에 충격이 가해졌다.
쿵―!
아주 제대로 자빠진 모양인지 머리통이며 어깨, 팔까지 얼얼한 감각이 뇌를 때려 왔다.
눈물까지 찔끔 나오는 듯 눈알도 시큰거릴 무렵.
“…나? 좀 …어나! …차려 봐!”
웬 소리가 들려왔다.
띄엄띄엄 그리고 점점 더 크게.
영문도 모른 채 귀를 기울일 무렵, 뭔가가 더 느껴지기 시작했다.
뜨겁고 텁텁한 바람이었다.
그 안에 무슨 냄새가 섞여 있는 듯했고, 뒤이어서 이상한 소음도 들려왔다.
그즈음 눈꺼풀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번쩍.
황급히 눈을 떴다가 찡그리고 말았다.
“……?!”
내 방이 아니었다.
사방이 눈부시도록 환해서 저절로 눈을 찌푸려야만 하는 야외였다.
심지어 사방에 뿌연 먼지가 자욱하게 날려, 흡사 사막에 온 것만 같은 광경.
인지 부조화가 온 듯 얼어붙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노란 장판의 방바닥이 아니라, 웬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맡에는 커다란 휠과 타이어, 웬 차체가 보이고, 아래로는 모래로 덮인 아스팔트 그리고 싯누런 탄피까지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왜 이게 여깄지? 아니, 나는 왜?
온갖 생각이 밀물처럼 들이닥치면서 1, 2초 정도 넋을 놓을 무렵.
“리! 드디어 일어났군! 정신이 좀 드나?!”
“으엇, 씨팔! 놀래라!”
“하하, 놀라는 걸 보면 크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군. 다행이야.”
내 발치에 웬 30대 초반 즈음된 백인이 주저앉아 있었다.
청바지를 입긴 했으나, 헬멧과 조끼, 온갖 군용 장비에 총까지 든 군인 같은 차림새.
그러나 상태가 나빠 보였다.
피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옆구리를 부여잡고 힘겹게 앉아 있는 모습.
입에서는 옅은 신음도 흘러나오는 듯했다.
이걸 바라보던 순간.
“…어?”
마주한 백인이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낯익다 못해 친숙할 정도.
파란 눈과 높은 코, 잘 정리된 갈색 수염,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까지. 얼마 전에 만난 것 같았다.
그 끝에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루크? 루크 밀러?”
말이 끝나자마자, 멈칫하며 걱정 어린 음성이 돌아왔다.
“…이런, 혹시 기억에 문제가 생겼어?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 젠장, 그래도 상황은 다 알지?”
“예? 뭐를……?”
“오! 젠장, 기억이 안 나나?! VIP하고 같이 이동하던 건? 그것도? 빌어먹을! 으윽…….”
소리치던 그가 잠시 신음을 흘리고서 고개를 저었다.
“반군들이 습격했어. 다행히 RPG가 빗맞긴 했지만, 나는 보다시피 이 꼴이 됐고… 그러니까 리! 얼른 화기부터 들어, 당장 응사해야 돼.”
정말로 루크가 맞았다.
한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가 내 눈앞에 있긴 하지만, 실존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게임 속 캐릭터.
루크는 라레플에서 늘 보던 NPC였다.
주로 추억을 떠올리는 흑백의 빛바랜 장면에서 등장하는 옛 팀원.
아마 게임 시작하자마자 죽을 텐데?
“아, 설마.”
내가 말을 막 꺼낼 무렵.
타다당― 퍽!
총소리와 함께 루크의 얼굴이 뒤로 젖혀지면서 터져 나갔다.
털썩―
그리고 시체가 되어 내 옆에 쓰러졌다.
“…니미.”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라레플의 시작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