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귀찮은 것은 알지만 뜻밖에 약학에 대해서 잘 알잖아. 그러니 이 정도 일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의견을 있을 거야.”
뜻밖에 자신을 높이는 김영탁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너 어디 아파?”
지금 오성 바이오 비서실에 있는 선배를 한 달 가까이 만나서 조민호의 영향력을 피부로 절감한 김영탁은 눈동자를 굴렸다.
“이제 곧 사회생활 시작하잖아. 대학 다닐 때처럼 행동할 수는 없어.”
“설득력이 많이 떨어져.”
“앞으로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야.”
조민호는 그제야 이 일 때문이 아니라 자기 눈치를 본다는 것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네 마음 잘 알았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설마 내가 회사 가서 친구에게 압력을 넣겠냐?”
“알았다. 앞으로 잘 좀 부탁한다.”
“걱정 말라니까. 내가 과거 일로 쫀쫀하게 협박할 정도로 뒤끝이 있는 사람은 아냐. 지난 일은 이미 다 잊었다니까.”
잊었다고 말을 하면서도 은근슬쩍 지난 일을 언급하는 조민호는 아무리 봐도 그냥 잊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김영탁은 잠깐 화장실 간다고 일어나는 조민호를 보면서 눈치만 보고 있는 박진민에게 말했다.
“괜찮을까.”
“그, 그렇지 않을까.”
“후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말이다.”
“은근히 협박하는데, 그게 더 짜증나.”
“......”
두 사람 다 아직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았지만, 협박에 가까운 선배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나직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걱정이다.’
***
두 사람의 걱정거리가 깊어가는 것처럼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도 다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정치인이다. 이들 비자금과 관련된 수사가 진행되었다.
이 비자금과 관련된 강기창 경감의 수사가 다시 떠올랐다.
강기창 경감 수사가 원점에서 진행되면서 로이드 펀드 역시 재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로이스 펀드와 관련이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경품용 상품권 시장을 이용한 비리 백화점이다.
상품권 발행과 유통 과정과 관련된 딱지 상품권 발행과 관련된다.
게임장에서 수천 장을 유통했는데, 이게 일종의 자금 세탁과 관련이 있었다.
결국 김정환 부장검사가 주도한 특별 수사팀은 위변조 상품권과 관련된 해성 프리텔을 대대적으로 압수 수색을 했고,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 20명을 구속했다.
무려 200만 장이 유통된 이 불법 상품권 규모는 밝혀진 것만 무려 200억이 넘었다.
딱지 상품권 시장 규모가 무려 10조라는 것을 고려하면 드러난 것은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사실 이 정도 밝혀진 것이면 수사가 끝나야 하지만 이 수사의 칼날은 끝나지 않았다.
바로 비자금 장부가 밝혀진 것이다.
김정환 부장검사가 중심이 된 특별 수사팀은 이와 관련해서 현직 국회 의원 10여 명을 중앙지검으로 소환해서 조사했다.
심지어 그들은 여당 당사까지 압수 수색해서 이 잡듯이 뒤졌고, 이 사건과 연루된 국회 의원 보좌관을 비롯한 45명을 구속했다.
중앙지검 포토 라인은 하루 단위로 국회의원이 다녀갔고, 사과했다.
5선 의원이자 다음 대선 후보로 꼽히는 조현철 의원은 잔뜩 분노한 표정을 한 채 나타나서 억지로 대국민 사과했다.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물론 포토 라인에 몰려와 있는 기자들 태도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보좌관 통해서 받은 비자금만 무려 100억이 넘는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노한 조현철 의원은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기자를 쳐다보았다.
이 장면은 몰려와 있던 기자 카메라에 어김없이 담겼다.
그는 이 사태에 치를 떨었다.
‘도대체 어떤 새끼 짓이야?’
비자금을 받기는 했지만, 그 과정 자체가 몇 단계를 거쳐서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 숨김없이 그대로 폭로되었다.
심지어 중앙지검에서는 비자금을 받는 사진과 대화 녹취록까지 가지고 있었다.
***
여당 다음 대선 후보로 지목받던 조현철 의원의 수사는 여당에도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현철 의원과 관련이 있는 여당 실세가 줄줄이 수사를 받았다.
그렇다고 야당 역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무려 20명 가까이 중앙지검으로 끌려가서 수사를 받았다.
국회에서는 대통령의 정치 탄압이라고 시위를 벌였고, 언론을 이용해서 대통령 독재에 대해서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재민 비서실장 비선 라인에게 놀아난 것을 뒤늦게 깨달은 백무현 대통령은 이런 사태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역시 정체불명의 조직을 박살 내기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가 없었다.
결국 대통령, 검찰총장, 대법원장이 똘똘 뭉쳐서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 전체에 대해서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조민호는 자고 일어나면 일어나는 구속 수사에 피로감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최근 에플 주식 매각 대금 일부를 이용해서 사들인 스타 타워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어때요?”
“좋구나.”
“그런데 괜찮겠어요? 미래 그룹 일도 꽤 만족하신 것 같으니까요.”
조철영은 스타 타워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떨치지 않았다. 잠깐 미국 미래 증권 지점에서 일을 해보았지만, 썩 만족하지 않았다.
“아니, 난 이곳이 더 좋다.”
“의외군요.”
“으음,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형에게서 배운 것은 많았다. 그런데 내 나이를 봐라. 나도 계속 남 밑에 있고 싶지는 않았어.”
“건물 관리일 뿐인데요?”
“고작 그렇게 보이지 않아. 이 건물 세입자 관리도 가벼운 일은 아니니까. 큰 어려움도 없어 보여 더 좋아. 내가 이 나이에 세계를 뛰어다니기 좀 그러잖아?”
“왜 굳이 말하지 않았어요?”
머리를 긁적인 조철영도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형 조수현 도움을 얻어서 홍콩, 중국, 미국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당시에는 자세한 내막을 잘 몰랐다.
뒤늦게야 그 일에 모두 조민호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여전히 깊숙한 것을 잘 몰랐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조수현 밑에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보는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 처지에 굳이 내색할 상황은 아니었다.”
자기 눈치를 보는 조철영 모습에 조민호도 피식 웃고 말았다.
“당분간은 이 건물 관리만 해주시고요. 여유 되면 다른 건물 매입에 대한 일은 아버지가 알아서 맡아주시면 좋겠어요.”
빌딩 매입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고맙구나.”
“아들에게 그런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그는 새삼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버지 모습에 만족했다.
‘지현이는 아버지가 알아서 하겠지.’
***
김재민 비서실장에 대한 수사는 비밀 조직에 대한 수사와 관련이 있었다. 즉 백무현 대통령은 굳이 비밀 조직을 조사하기보다는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내사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런 수사 방향은 미국 정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한국 정부 내에서 일어나는 조직 청산을 롤모델로 삼아서 그들을 추적하기보다는 오히려 조금이라도 비리가 있는 이들을 샅샅이 흩었다.
이것은 유럽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언론 기사 형태는 좀 달랐다.
[중동 테러 조직 때문에 사상자만 30명이 발생하다!]
형태는 달랐지만, 진행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민호는 덕분에 이들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스티븐과 같은 유명인 치료를 잠정 보류했다. 그는 대신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정리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메가 텔레콤이었다.
이 회사의 최호영 사장이 멀쩡해야 손해를 보지 않은 터라 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최호영 사장을 서울 모 안가에서 만나서 몇 가지 지압을 해주었다.
다행이라면 최호영 사장의 선천지기는 김정환 검사와 비슷하고, 심지어 폐 질환 흐름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나친 흡연과 음주가 원인이었던 김정환 부장검사와는 달리 최호영 사장은 폐 림프관평활근종증이 그 원인이었다.
“정말 지압으로 제 병을 치료된다는 말입니까?”
“그럼요.”
다만 이전과는 달리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손을 섰다.
최호영 사장은 당연히 영문을 몰라서 눈치를 봤지만 크게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지압 받는 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요즘 예민한 사태 때문에 조민호는 이전과는 달리 고작 선천지기 스탯 2 정도를 사용해서 악화하고 있는 기흉을 잡는 선에서 끝냈다.
“앞으로 최소 2주 동안은 목욕하던 뭘 하던 항상 이 선옥 목걸이를 가슴에 착용하세요.”
“이거 옥이군요.”
최호영 사장은 정말 영문을 몰라서 브로커 역할을 한 최영준 차장을 계속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영준 차장은 사전 조사를 통해서 옥에 대해서 제법 알았다.
“중국인은 화전옥과 비취옥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고가의 매화옥을 좋아합니다. 건강에 좋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거래되는 매화옥 경우에 골프용 퍼드 경우에는 평균 1,500만원, 팔찌는 600만원, 목걸이가 200만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그만큼 귀한 물건입니다.”
조민호는 다른 옥과는 차원이 다른 선옥에 대해서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폐결핵 병력이 있는 거로 압니다. 아마 그 유전적인 소인 때문에 폐 림프관평환근종증으로 심해진 것이고, 그 과정에서 기흉이 심해져서 몸이 급격히 나빠졌고, 과도한 스트레스가 겹치면서 건강 상태가 더 최악이 되었습니다.”
“?”
그는 영문을 몰라서 자칭 치료사라고 한 조민호와 브로커 역할을 하는 최영준 차장을 교대로 멍하니 쳐다보았다.
“지금은 아무리 설명해봐야 믿지 않겠지만 2주 후에 다시 보면 알 겁니다. 지금까지 도와준 것 조건 중의 하나니, 불편해도 반드시 지시를 따라주기 바랍니다.”
조민호가 사라지기 무섭게 최영준 차장은 여분으로 받은 선옥을 손으로 만지면서 힐끗 최호영 사장을 쳐다보았다.
“아 원래 치료비는 현금 1억 선불이지만 이번 경우는 다른 환자와는 달라서 2주 후에 주시면 됩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때 가보면 스스로 아실 겁니다.”
***
최호영 사장도 지압 받을 때는 이상하게 몸이 좋아진 것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만성적인 호흡 곤란이 사라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이 부분 때문에 조민호 이야기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자나 깨나 선옥 목걸이를 가슴에 달고 지냈다.
아내는 포옹할 때 은근히 자기 가슴을 억누르는 선옥 때문에 툴툴거렸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이 옥이 혈액순환이나, 특히 피부에 좋다는 것과, 고가 옥은 무려 150만 원한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여보, 그거 어디서 구입한 거에요?”
“나도 선물 받은 거야.”
“나 주면 안 될까?”
“나중에.”
“나 삐질 거야.”
그는 여우 짓 하는 아내가 싫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조민호가 굳은 표정으로 한 말을 어기지 않았다. 실제로 이 선옥 목걸이를 한 후에 몸이 몰라보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오성 의료원 폐 질환 전문가 정문호 교수조차 흥미를 보였다.
“앞으로 병원 치료비는 전액 무료로 해드릴 테니, 우리 병원만 와주십시오.”
“진담입니까?”
“이번에 우리 병원에서 간접흡연에 따른 아동 폐 질환 환자 관련 홍보 활동으로 계몽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그 행사의 일환이니, 부담 가지지 마십시오.”
최호영 사장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서 약간 수상쩍은 시선으로 정문호 교수를 쳐다봤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는 겁니까?”
그도 약간 눈치를 보다가 가슴 CT 차트와 검사실 소견서를 보면서 설명했다.
“FEV1/FVC가 83%로 정상입니다. 가족 병력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좀 더 자세히 검사하고 싶은 겁니다.”
“여기 폐확산능 수치 DLco/Va는 아직 정상이 아닙니다만......”
“그것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금 봐서는 다음 주면 정상 수치 범위 안입니다. 사실 기존 처방전에서 그렇게 반응이 없었던 결과인데, 지금 와서 빠르게 회복되는 중입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
최호영 사장은 반사적으로 가슴에 매달려 있는 선옥을 꾹 잡은 채 입을 다물었다.
‘서, 설마 이것 때문은 아니겠지.’
***
“완치라니.”
최호영 사장은 꽤 큰 충격에 빠져서 아직도 넋을 잃고 있었다.
조민호는 선옥 테스트 결과에 꽤 만족했다.
“이건 서비스로 선옥 2개를 더 드리겠습니다. 뭐 그 질환이 폐 림프관평환근종증에 따른 유전성 만성 폐렴이라서 쉽게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은 잘 아시죠? 설사 수술해도 지금 이상은 어려울 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