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일단 고민보다는 확인이 우선이었다.
“갑시다.”
***
국정원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98년 이후에 안기부 자료는 대폭 소거되면서 숙청 논란을 경험했다.
2002년에는 잠깐 국정원 내부의 엘리트 이미지가 형성되면서 좋아졌다가 인터넷 여론 조작, 사찰 등으로 이미지가 나빠졌다.
국정원은 시간이 갈수록 조직이 비대해졌고, 결국 레이더에도 잡히지 않는 내곡동으로 이전했다. 과거 안기부 시절에는 불법 고문으로 악명이 자자해서 많은 이들이 두려워했다.
하지만 현 정권에 와서는 다시 이미지가 크게 나빠졌다.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도 국정원은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따라서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두려워했고, 국정원 소속 요원은 그 누구라도 크게 소리쳤다.
국정원 로비를 지키는 경비조차 일반인에게는 큰 힘을 발휘한다.
황영환은 이런 국정원 영향력을 이용해서 재미를 자주 봤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차량 3대에서 내린 이들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외국인과 국내인의 조합은 흔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주눅이 들 이유는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김정환 부장검사가 슬쩍 먼저 나서면서 신분증을 내밀었다.
“중앙지검?”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건......압수 수색 영장?”
“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보신대로 영장이고,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허.”
그는 황당해서 다른 경비에게 손짓했다.
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 다음에 나선 것은 수석 행정관 조병필이었다.
“청와대입니다. 이번 일은 VIP 지시로 진행되는 일이니, 일단 통과시켜주기 바랍니다. 거기 연락도 취하지 마십시오. 허튼짓하면 국가 반란죄로 처벌할 테니, 뒤로 물러서십시오!”
“!”
청와대란 말에 깜짝 놀란 환영환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고, 다른 이들 역시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눈만 끔뻑거렸다.
윌리엄 부국장은 힐끗 조민호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고는 일축했다.
“괜찮습니다.”
조병필 수석 행정관은 아직도 청와대 내에서 갑자기 일어난 일 때문에 영문을 몰라서 윌리엄 부국장을 살폈다.
그런데 김정환 부장검사마저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슬쩍 조민호가 고개를 내젓는 것을 보자 일축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VIP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는 일이니까요. 설마 딴소리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지금 이 일을 믿으란 말입니까. 아니 왜 갑자기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하는 지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행정관님이 알 필요는 없습니다.”
“허참.”
그는 힐끗 청와대에서 동행한 다른 이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 역시 모르기는 매 한
가지다.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조민호는 뒷짐을 쥔 채 느긋하게 국정원 내부를 천천히 걸어갔다. 불과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정문을 통과했고, 오랫동안 성역으로 존재한 국정원 내부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갑작스러운 외부인에 국정원을 오가던 요원은 그제야 그들을 쳐다보았다. 검사와 외국인 조합이 영장을 가지고 나타난 일은 유례가 없었다.
황당한 것은 압수 수색 영장에 특정한 건물 표시 자체가 되지 않았다.
중간에 연락받고 나타난 조원길 팀장은 어이없는 눈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당신들 뭐야?!”
그의 뒤에 우르르 따라나온 이들 역시 황당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이곳까지 어떻게 멀쩡하게 들어온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김정환 부장검사가 영장을 보여주었다.
“당신 미친 것 아냐. 영장이 뭐 이따위야. 당신 정말 중앙지검에서 나온 것 맞아?”
조민호가 갑자기 한 걸음 나서더니 오른쪽 어깨 중부혈을 가볍게 잡았다.
“어.”
너무 자연스러운 동작이라서 조원길 팀장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갑자기 호흡이 턱 막히자 반격은 아예 상상도 못했다.
조민호는 가볍게 손목으로 스냅 치듯이 중부, 운문, 천부를 툭 쳤다. 그 충격에 조원길 팀장은 뒤에서 달려들든 세 사람과 충돌한 후에 바닥을 그대로 나뒹굴었다.
조원길 팀장은 그 충격에 기절해서 일어나지 못했고, 다른 두 사람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조민호는 견갑골에 위치한 견우, 비노, 거골을 밟아버리자 몸을 부르르 떨다가 결국 고통에 몸부림쳤다.
다른 요원은 이 황당한 광경에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다.
결국 조병필 수석 행정관이 자기 신분을 밝히자 뒤늦게 상황이 가라앉았다.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채 뒤늦게야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솔직히 청와대에서는 아무래도 대통령 시선을 의식해서 자제한 조민호였지만 이곳 국정원은 이야기가 달라서 느긋했다.
국정원 안내 때문에 같이 간 최영민 사장은 혀를 내둘렀고, 장혁과 이지현은 눈빛을 반짝였다. 직접 견식한 조민호 솜씨는 그들 상상을 가볍게 넘어섰다.
조민호는 그런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갑시다.”
***
족양명위경 상의 대거는 아랫배에 있는데, 장 기능과 관련 있는데, 다른 효과라면 신경에도 영향을 준다.
이 경혈을 살짝 흔들어주면 반신불수에도 빠져 버린다.
조민호의 혼원기는 바로 이 대거의 특성을 더 강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제대로 이 대거에 당하면 단 한치도 움직이지 못한다. 나름 중국에서 실전을 경험한 이지웅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조민호에게 달려들었다가 딱 이 대거에 한 방 맞고 나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와 동행한 이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풀썩 쓰러졌다.
그 뒤를 따라서 일곱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지만, 입에 거품을 문 채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했다.
쓰러진 이들은 줄줄이 묶인 채 조민호 검사를 통과한 다른 국정원 요원에 의해서 굴비처럼 줄줄 끌려갔다.
“......”
시간이 지나자 두려움에 질린 국정원 요원은 벽 쪽으로 물러나서 이들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허겁지겁 연락하기 바빴다.
윌리엄 부국장도 심각한 안색을 한 채 조민호 솜씨만 구경했다.
그들 역시 국정원 안으로 들어오면서 내심 긴장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조병필 수석 행정관은 최영민 사장을 쳐다보면서 속삭였다.
“도, 도대체 뭡니까?”
“글쎄요.”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전 국정원 요원일 뿐입니다.”
그의 시선을 결국 김정환 부장검사를 따르는 수사관에게 향했다.
“도대체 저 친구 정체가 뭡니까?”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아니 당신이 모르면 누가 압니까.”
CIA 요원이라고 했던 윌리엄 부국장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다른 이들 역시 다들 굳이 조민호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이들을 막아서는 이는 더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조민호가 가끔 벽에 붙어 있는 요원 몇 사람을 두들겨 패서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다. 뒤따른 요원은 묵묵히 그들을 묶기만 했다.
반항한 이들이 좀 있었지만 뒤를 따르는 일행이 알아서 하나 둘씩 정리했다.
그들도 조병필 수석 행정관 눈치를 보면서 그저 따를 수밖에 없었다.
***
김기범 제1 차장은 여전히 연락되지 않는 김재민 비서실장 때문에 잔뜩 흥분했다. 처음에는 급한 일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싶었다.
결국 밑에 요원에게 직접 보내려고 했는데, 이병구 요원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보다 김 실장님은 어떻게 된 거야?”
“빠, 빨리 오셔서 이것을 보십시오.”
그는 다급하게 들고 온 노트북으로 국정원 내부 CCTV를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특이한 일행이 국정원 요원을 굴비처럼 줄줄이 묶은 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
“처, 청와대에서 조병필 수석 행정관과 중앙지검 김정환 부장검사란 자입니다. 영장을 가지고 나타나서 닥치는 대로 저희 요원을 체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국정원 내부를 빙빙 돌면서 계속......”
굳이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들을 막아서 열 명을 마치 개 잡듯이 두들겨 패서 쓰러트렸다. 물론 뒤에 따른 요원이 그들을 다시 묶었고, 물을 뿌려서 다시 정신을 차리게 하였다.
그다음은 그 반복이었다.
뒤에 엮여 있는 이들 숫자가 무려 60명을 넘어갔다.
“......”
‘이상한데.’
하지만 김기범 제1 차장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뒤늦게야 익숙한 요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좀 늦은 감이 있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무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김기범 제1차장은 곧바로 책상에서 총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조민호 동작이 더 빨랐다. 그는 스윽 한 걸음 나아가나 싶더니, 책상을 툭 밀었다. 그 충격에 책상 서랍이 닫혔다.
“크악!”
비명을 내지른 그에게 다가온 조민호가 머리카락을 잡아서 그대로 책상 위에 내리찍었다. 다시 몇 번이나 내리찍었다.
이마가 찢어져서 피범벅이 되었다.
참다못한 이병구 요원은 반사적으로 공격했지만, 그의 오른 발목이 그대로 조민호 손에 잡혔다.
조민호는 그 힘을 이용해서 위로 집어 던졌고, 이병구 요원은 붕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마를 붙잡은 채 사무실 바닥에 내다 꽂았다.
“으악!”
두 사람 다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
조병필 수석 행정관은 마른 침을 삼킨 채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국정원 정문에서 시작해서 달려드는 요원을 족족 잡아서 파리 잡듯이 박살 내는 조민호 솜씨에 몸을 떨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이들 표정을 살피고서야 그들 역시 경악했다는 것을 알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이, 이게 무슨 짓들이야?!”
뒤늦게 나타난 박종수 국정원장은 피범벅이 된 김기범 제1차장 몰골에 고함을 내질렀다. 그의 뒤를 따른 다른 요원은 달려들어다가 총을 꺼내서 겨누는 윌리엄 부국장 때문에 멈추었다.
조민호는 힐끗 박종수 국정원장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화들짝 놀란 박종수 국정원장은 당황해서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조민호 걸음은 마치 공간을 접듯이 다가와서 그의 무릎 독비혈을 툭 쳤다. 이번에는 랜덤으로 만들어진 혼원기가 독비혈을 파고들었다.
이 혼원기는 신경으로 파고들면서 무시무시한 고통을 이끌어냈다.
박종수 국정원장은 감각이 예민해지면서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바닥을 구르다가 비명에 처절한 신음을 토했다.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움직이기만 해도 고통이 폭발했다. 결국, 몸을 웅크린 채 그 자리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조민호는 슬쩍 다가와서 발로 쿡쿡 누르자 입에 거품까지 문 채 비명을 내질렀다.
줄줄이 묶여 있던 국정원 요원들은 다들 공포에 질린 채 숨조차 죽였다.
이제까지 계속 불만을 토로하던 조병필 수석 행정관 안색은 새파랗게 변한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도대체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었다.
조민호는 의자 하나를 가져와서 앉은 채 김기범 제1 차장에게 손짓했다.
“이름.”
“기, 김기범 제1차장입니다.”
“그자들과 어떻게 엮였지?”
말을 버벅거리자 조민호 손바닥이 결분, 일연, 하관을 차례대로 쳤다. 들쭉날쭉한 혼원기가 얼굴 속으로 파고들자 바닥을 박박 굴렀다.
“......크아악!”
그냥 툭 친 것 같았는데, 10인치 바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고통을 내질렀다. 당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더 공포에 떨었다.
조민호가 다시 발로 툭 치자 고통이 사라진 김기범은 벌떡 일어났다.
“다시 말을 더듬거나 머리 굴리면 이번에는 그냥 죽여버리겠다.”
“네!”
“어떻게 안 거지?”
“7, 7년 전에 중국에 있을 때 그들의 도움을 얻어서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 때 알게 되었습니다.”
“구해준 자는 중국 요원이었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연락은?”
“주로 이메일이 많았고, 아니면 핸드폰 문자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떤 지시를 받았지?”
“다양합니다. 표적이 된 자를 제거하거나, 아니면 매장했습니다.”
“주로 어떤 자들이지?”
“경찰도 있고, 기업가도 있습니다.”
“그들 도움을 얻어서 고속 진급을 한 건가?”
“네.”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는 모르고?”
“그렇습니다.”
“이상하군. 그런 자들이 믿지는 않았을 텐데, 묵묵히 따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