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69화 (169/176)

#169

급한 일을 처리하면서 큰 충격에 빠져서 한동안 입을 열지 않던 백무현 대통령도 그제야 이성을 회복했다. 그는 딱히 조민호의 과도한 조치에 대해서 특별하게 질책하지도 않았고, 의심도 하지 않았다.

데니스 국무장관이 내놓은 자료만 보더라도 이번 일은 국가 전복에 가까운 사건이다. 기존의 사법 체계를 적용하기 쉽지 않았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속 당신네에게 맡겨둘 수는 없습니다.”

“저희보고 손 떼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이번 일은 국내 사법절차에 따라서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허술하게 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검찰총장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처리할 테니까요.”

착잡한 감정이 떠오른 백무현 대통령은 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근 배신자 취급하던 양주민 검찰총장이 오히려 반갑기만 했다. 그가 첩자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되지 않았다.

데니스 국무장관은 우려를 표하려고 할 때 굳이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부담스러운 조민호 시선을 받은 윌리엄 부국장이 나섰다.

“그게 가장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주한미군 내부 문제를 걱정하는 데니스 국무장관은 결코 물러설 수가 없었다. 만약 한국 국방부 내에 그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을 염려했다.

“윌리엄 부국장,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그러는가? 우리가 굳이 왜 한국까지 와서 이런다고 생각해? 이번 일을 시작으로 전 세계 미군 병력을 확인해야 해!”

“알고 있습니다. 그 일은 저희 쪽에서 면밀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아셔야 할 일이 규모가 워낙에 커서 한국 검찰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또한 사실입니다.”

그도 뒤늦게야 이 일이 자칫하면 내정간섭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고집을 부리는 백무현 대통령 성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윌리엄 부국장이 다시 나섰다.

“한국 검찰의 능력은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더욱이 양주민 검찰총장이 나선 후로 검찰 내부 비리 문제도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양주민 검찰총장이 청와대와 척을 지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가 그런 상황에서 한 것은 검찰 내부 조직에 대한 정리였다.

특히 비리와 관련된 검사 대부분을 정리해버렸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과정에서 첩자로 의심되는 검사 대부분이 다 쓸려 나가버렸다.

“만약 이 일이 외부에 새어나간다면 내정 간섭 문제 때문에 더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일단 급한 불을 끈 이상 이 정도면 됩니다. 솔직히 그놈들이 한국 언론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수작 부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 괜찮겠나?”

“미국 내부의 문제를 해결한 것도 저희입니다.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정보가 흘러갈 수 있습니다. 차라리 검찰 통해서 비리 형태로 하나씩 잡아들이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데니스 국무장관도 뒤늦게야 표정이 차갑게 굳는 백무현 대통령을 보자 한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좋습니다. 하지만 윌리엄 부국장이 나서는 것까지 막으시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백무현 대통령은 그제야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황당한 사태이기는 하지만 자국 일을 미국이 간섭하는 것까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보여준 증거 자료만 해도 그들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고도 남았다.

‘의도적으로 국가 내부 갈등까지 내버려둔 것도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겠지. 이자들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지. 그런데 도대체 그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

박종수 국정원장은 최근 야당에서 제기하는 국정원 수사권 폐지 주장 때문에 잔뜩 분노했다. 툭하면 입질하는 정치인을 잡아 죽이고 싶었다.

국정원 제1차장 김기범은 분노한 박종수 눈치를 보았다.

“차라리 이번에 손을 봐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최민훈 의원이 외가 통해서 200억 가까운 정치 비자금을 받은 증거는 이미 확보했습니다.”

“최민훈 의원이 당하면 그놈들이 과연 가만히 있겠어?”

“그렇다고 이대로 약한 모습을 보이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시작한 겁니다.”

“아냐. 차라리 이번 국정원 창설 기념식을 이용해서 국가발전의 숨은 주역 식으로 언론 공작하는 것이 훨씬 나아.”

“그게 과연 통할까요?”

“이제까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인적 자원을 가진 것이 사실이잖아. 심지어 정보전에서도 우리 능력을 의심하는 나라는 없어.”

“그렇기는 합니다만.....”

“자네는 우리가 안보수사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 노력을 지금 의심하는 건가?”

실제로 국정원은 국가 안보를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해왔고, 위기관리 능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만 그런 국정원 모습은 이번 정권에 와서 많이 바뀌었다.

박종수 국정원장이 권력을 잡기가 무섭게 구조 조정 명분으로 유능한 요원을 다 잘라냈다.

김기범 제1차장도 여기에 힘을 보탰고, 지금 국정원 기반은 많이 취약해졌다. 겉으로는 산업보안, 테러에 대응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하지는 국정원 내부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런 면까지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제가 김재민 실장님을 만나서 따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전화를 안 받아.”

“네? 김 실장님이 전화를 안 받는 경우는 흔치 않을 텐데요. 아니면 밑에 김 보좌관 그 친구라도 받을 겁니다.”

“그쪽도 연락이 안 돼.”

“다른 일이 있나 보죠. 요즘 야당 움직임이 심상치 않을 테니까요. 기다리면 알아서 연락할 겁니다.”

가끔 이런 일이 있었던 터라 박종수 국정원장은 이보다는 다른 한 가지 일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오성 X파일 사건은 이제 더 가망 없는 건가?”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꽤 오랫동안 작업해 일인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잖아. 천재건 이사는 여전히 그 일을 포기하지 않아. 오성 전자를 다 먹는다면 자네에게도 큰 기회가 될 텐데, 정말 이대로 포기할 거야.”

“저도 여러 가지 채널 통해서 압력을 넣고는 있지만, 김건중 회장 움직임이 만만치 않습니다.”

“하긴 무시할 수는 없는 양반이지. 하지만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다시 한 번 원점에서 제대로 검토를 해봐.”

“알겠습니다.”

“아, 최영민 그 친구는 요즘 어때?”

“완전히 포기한 상황입니다.”

“아쉽네. 난 복수심에 미쳐서 날뛸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끝나게 되다니.”

“한 번 부추겨 볼까요?”

“그래. 이대로 쉽게 끝낼 수는 없잖아.”

***

최영민 사장은 요즘 케이원을 설립한 후에 만족스럽게 지냈다. 그는 틈틈이 조민호 일도 처리하면서 주변을 꼼꼼하게 살폈다.

안산 병원 사태에 대해서 알고 나서는 한층 보안을 더 강화했다.

그런 그도 갑자기 찾아온 김기범 제1차장에 연락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정치적인 내부 갈등 때문에 국정원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기 때문에 국정원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많았다..

아마 안산 병원 비밀에 대해서 몰랐다면 거절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과연 국정원에서 이 안산 병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분당의 한 공원에서 만난 김기범 제1차장은 많이 변해 있었다. 배도 좀 나왔고, 살도 꽤 많이 쪘다.

“오랜 만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갑자기 이렇게 연락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 팀장, 자네에게 미안한 것이 많아. 하지만 정치가 끼어들면 어쩔 수가 없어. 누군가는 거기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런 것까지는 안 바랍니다. 그래도 설마 옥살이를 시키려 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건 자네가 문제를 만든 것 아닌가.”

“글쎄요. 의도적으로 부추긴 것은 김 차장님 같습니다만?”

“허, 정말 억울하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

“천재건 이사.”

몸을 움찔 떤 김기범 제1차장을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뻔뻔하게 일축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오성에 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자네야. 자네 스스로 나서서 움직였다는 말이야. 심지어 난 그런 일을 암묵적으로 묵인해주기도 했어. 차라리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 아닌가?”

“후유.”

최영민 사장도 뒤늦게 한 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욕심 때문에 설친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 하나하나가 누군가 의도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힘들다.

한 가지라면 운이겠지만 수십 번에 걸친 중복이 우연히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결국 오래 전부터 오성 그룹의 김건중 회장을 노렸다는 말이구나.’

이미 지난 일이다. 굳이 인제 와서 그일까지 들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 사실만을 정말 알고 싶었다.

“혹시 오성 그룹을 해체할 생각이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하나?!”

‘역시 그랬군. 개새끼들.’

자기 인생 일부가 농락당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굳이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는 당황한 김기범 제1차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왜 절 찾은 겁니까?”

원래는 오성 X파일을 어떻게 해서라도 부추기려고 했던 김기범 제1차장은 어렵다는 것을 느끼자 말을 돌렸다.

“겸사 겸사지. 국정원 나가서 잘 지내나 확인도 하고 싶었어.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괜찮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연락을 안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단호하게 등을 들리는 최영민 사장 모습에 김기범 제1차장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아깝네.’

***

윌리엄 부국장은 일단 청와대 내부 문제를 정리하기가 무섭게 양주민 검찰총장을 만났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 협상했다.

백무현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층 부담을 든 양주민 검찰총장은 기꺼이 윌리엄 부국장 요청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청와대 첩자를 조사해서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한 조민호는 술술 잘 풀려가는 상황에 굳이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김정환 부장검사를 불러 우선 검찰청 산하 조직 고위 관료를 확인했다. 다행이라면 오염도가 40%가 넘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양주민 검찰총장이 부패 검사에 대해서 정리 순서를 밟으면서 다 처리가 되었다. 이 일은 워낙에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서 별다른 불협화음을 만들지 않았다.

‘잘하네.’

너무 술술 풀려가는 상황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낀 조민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한국과 미국은 근본적으로 상황이 달랐다. 이들 조직이 시작된 것은 한국이 아니었고, 한국은 너무 좁았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왜 굳이 이 좁은 한국을 대상으로 했을까?’

답은 바로 특성 때문이었다.

인간의 신체 특성은 무한했다.

그들이 무자비한 인체 실험을 계속 진행한 것도 원하는 특성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조민호는 외할아버지를 성급하게 구출하기 위해서 나서지는 않았다. 자칫하다가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아마 외할아버지 신체 특성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런 특성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아. 가만 설마 나도 그런가?’

인체 특성은 유전적인 소인과도 관련이 있다. 만약 외할아버지가 그들이 찾는 특성이라면 그 자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퍽치기 통해서 날 노린 것도 내 특성 때문일까?’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무림이라는 세계에서 정신만 이동해서 초인에 가까운 능력을 얻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 자신의 특성은 일반인과는 다르다.

조민호는 확신을 하자 최영민 사장을 다시 호출했는데, 그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조민호 이사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새 시대 전략연구소의 천재건 이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정치권에서 얼마든지 자기들 세력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이들 조직에 있는 이들이 오성 X파일과 관련되고, 그 연결 고리는 국정원 내부로 흘러들어 간다는 점이다.

가장 위에는 김재민 비서실장이다.

그런데 최영준 차장을 시작으로 해서 지난 일 대부분은 그 조직과 알게 모르게 다 관련되어 있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바로 이들의 욕망을 부추긴 것이었다.

조민호도 얽히고설킨 복잡한 역학 관계에 한 숨을 내쉬고 말았다.

“결국 이번 일에 관련된 주 인물이 박종수 국정원과 김기범 제1차장이란 말입니까?”

“네. 그들 외에 위선에 좀 더 있고, 따로 비밀 팀을 꾸려서 관리합니다.”

‘그랬군.’

조민호는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서 이해하기 힘든 점을 느꼈다. 이들 조직이 도대체 왜 이렇게 복잡하고, 은밀하게 일을 벌였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죽은 사망자 숫자는 만 단위는 가볍게 넘어갈 거야. 그것 때문일까. 도대체 이런 일을 벌여서 뭘 얻고자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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