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
백무현 대통령은 최근 심해진 한미 갈등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특히 부시 대통령과의 첨예한 대립을 피하고자 계속 노력했다.
FTA 3차 협상과 관련해서도 부시 대통령에게 지속해서 실무진을 통해서 연락했다.
하지만 강원도 물난리, 바다 이야기 때문에 힘겨운 시기를 보낸 그는 FTA 협상에서 쇠고기 수입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 차에 데니스 국무장관의 방문은 환영하고 싶은 일이었다.
의도적으로 김재민 비서실장을 보내서 환영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우르르 몰려온 이들 표정은 기대한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는 마치 절친한 친구를 본 사람처럼 환대했다.
“반갑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딱 한 번의 인사.
데니스 국무장관은 뜬금없이 독대를 요청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보좌관이나 경호원에게 손짓해서 밖으로 내보냈다. 물론 김재민 비서실장은 당당한 자세로 남았다.
윌리엄 부국장이 눈짓하자 데니스 국무장관도 혀를 내둘렀다.
“죄송합니다만 대통령님과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재민 비서실장은 설마 자신까지 밖으로 나가라는 신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지만 데니스 국무장관 모습은 단호했다.
결국 백무현 대통령은 어쩔 수 없이 김재민 비서실장까지 밖으로 내보냈다.
황당한 것은 데니스 국무장관 일행은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데니스 국무장관은 침중한 안색을 한 채 가져온 가방을 열어서 장치를 켰다. 화면 전원이 들어온 후에 불과 5분 정도 지나서 화면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피로에 찌들어서 좀비처럼 변해버린 미국 대통령 부시였다.
“?”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워낙에 중요한 일이라서 이렇게 긴급조치를 취했습니다. 우선 다음 화면부터 보고 나서 이야기합시다.”
부시 대통령 화면이 사라진 후에 이번에 나타난 것은 백여 명의 시신이 누워 있는 한 장소였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한 사람이 그 시신 두개골을 열어서 내부를 보여주었다.
자세하게 확대된 화면에는 뇌 표면에 나 있는 기이한 문양과 파킨슨병과 관련된 자세한 화면과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시신이 무려 백여 구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런 방이 무려 수십 개가 넘었다.
당장 확인된 시신 숫자만 해도 이천 명이 넘었다.
“!”
백무현 대통령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데니스 국무장관을 쳐다보았다.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다시 화면은 부시 대통령으로 바뀌었다. 그의 뒤편에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지쳐 있는 백악관 고위 관료의 모습도 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그제야 침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지금 보고 있는 장면은 꾸민 것도 아니고, 조작된 것도 아닙니다. 정체불명 집단의 인체 실험으로 죽은 사망자의 모습입니다. 이건 우리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에도 이미 이 자들이 침투한 사실을 밝혔으니까요. 나머지는 데니스 국무장관 통해서 설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행운을 빕니다.”
화면은 곧 꺼졌다.
몸을 부르르 떤 백무현 대통령은 아직도 믿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설마 이걸 저보고 믿으란 소리입니까?”
“믿으셔야 합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아직 이자들의 정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추적하고 있는데, 희생자가 생각보다는 더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자들이 우리 미국만 공격한 것이 아니라 한국도 그 대상입니다.”
“아니 그걸 어떡해?”
“CIA가 이들 흔적을 추적했는데, 한국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허.”
아직도 상황을 이해 못한 백무현 대통령은 허탈한 듯 다른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는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이 현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못 믿겠습니다. 아니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 국내 문제이니, 내부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아뇨. 그렇게는 힘들 겁니다. 우리 미국만 해도 첩자 중에 한 사람이 레이즈 CIA 국장입니다. 이자는 이들의 지시를 받아서 미국의 막대한 보안 정보를 빼돌렸을 뿐이 아니라, FBI 부국장 마이크를 통해서 미국 내정에도 간섭했습니다. 그 덕분에 이들에게 희생된 숫자가 헤아리기 힘듭니다.”
“......설마 청와대 내부에도 이자들이 있다는 황당한 말을 하는 겁니까?”
윌리엄 부국장이 한걸음 나섰다.
“당장 확인된 자는 김재민 비서실장과 그를 따르는 경호원입니다. 아마 그자의 라인 대부분은 여기에 해당될 겁니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김 실장은 나의 정치적인 동반자입니다. 오히려 당신들을 믿을 수가 없습......”
“그걸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그는 저랑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억울한 소시민을 도운 진정한 의인입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러면 첩자는 배제하죠. 지금 그 말씀은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김 실장은 백무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민변 출신을 가장한 겁니다.”
그는 힐끗 제임스에게 혹시나 싶어서 준비해둔 김재민 비서실장의 프로필을 내밀었다. 그 파일에는 김재민 비서실장이 어떤 식으로 백무현 대통령에게 접근했는지 잘 나와 있었다.
심지어 북한과의 관계에 대한 것도 분석되어 있었다.
“......설마 김 실장이 북한 간첩이라도 된다는 겁니까?”
“직접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교묘했으니까요. 그리고 그 증거와 관련된 자들은 이미 실종되거나 죽었습니다.”
“......”
과거 변호사 시절에 의문의 교통사고로 죽은 이를 떠올린 백무현 대통령 안색이 창백하게 바뀌었다.
하지만 윌리엄 부국장은 뜻밖에 담담했다.
“차라리 김재민 비서실장이 백무현 대통령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서 한국을 지배하기 위한 북한 간첩이었다면 차라리 났습니다. 문제는 이 의문의 집단이 이런 김재민 비서실장의 욕망을 이용한 겁니다. 지금은 청와대 내부에 사조직까지 결성했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CIA에서 파악한 것은 김재민 비서실장이 북한과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정도까지 파악했다. 설마 그가 정체불명의 집단 소속이라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윌리엄 부국장은 한국 내부 조사를 위해서 이 자료를 따로 모아서 가져온 것이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하지만 그도 김재민 비서실장에 대한 서류를 다시 확인하면서 덜덜 떨다가 뒤늦게야 미국 국익에 유리하기 때문에 김재민 비서실장을 내버려뒀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 그러면 당신들은 이걸 알면서도 왜......”
너무 충격적인 사진에 허탈한 백무현 대통령을 서류를 흘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사진 한 장이 조민호 앞으로 흘러갔다.
조민호는 우연히 그 서류를 확인했는데, 그 서류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외할아버지잖아?!’
떨어진 나머지 서류를 확인한 조민호 얼굴은 무시무시하게 변해갔다.
사진 속의 김재민 비서실장 모습은 평소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흉신악귀와 같은 모습으로 이충원을 쳐다보았다.
팔이 부러진 채 쓰러진 이충원은 원독에 가득한 표정으로 김재민 비서실장과 그를 둘러싼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처 조민호 표정을 보지 못한 윌리엄 부국장은 한 마디 더 해주었다.
“대통령님 탄핵도 이자의 솜씨입니다. 그래야 국정 혼란이 가속될 테니, 지금까지 저지른 비리를 다 덮을 수가 있으니까요. 아마 임기가 끝나면 자살을 가장해서 대통령님을 살해할 계획까지 꾸미는 것으로 압니다.”
충격에 빠진 백무현 대통령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지만, 곧 이성을 차렸다.
“김 실장을 불러주시오!”
***
김재민 비서실장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했다. 그도 갑작스러운 데니스 국무장관의 방문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겠군.’
이런 일은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상황이라서 당혹스러웠다.
다행히 백무현 대통령이 자신을 부르자 습관적으로 경호원을 대동한 채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경호원은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조민호에게 제압당해서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조민호는 경악한 김재민 비서실장 앞으로 다가가서 우선 손목을 붙잡아서 비틀어서 부러트렸다.
“으아악!”
처절한 비명을 내지른 김재민 비서실장은 조민호를 공격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비스듬하게 몸을 돌면서 어깨를 붙잡아서 뒤틀었다. 오른 어깨뼈가 으스러지면서 근골이 그대로 뒤틀려버렸다.
사람 뼈와 근육을 찢어버리는 잔혹한 솜씨에 다들 경악했다.
하지만 섬뜩한 조민호 표정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 무릎을 꿇은 김재민 허벅지를 밟아서 으스러트렸다.
그 단단한 허벅지 뼈가 마치 10t 트럭에 정면으로 충돌한 것처럼 으스러졌다.
“그, 그만!”
단순한 부상만이 아니라 혼원기가 파고들어서 이미 내부 조직까지 동시에 파괴된 터라 김재민 비서실장은 이미 고통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데니스 국무장관조차 너무 지독한 조민호 솜씨에 다급하게 말리려다가 무시무시한 살기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뒤로 물러났다.
조민호 입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이 분은 지금 어디 있지?”
“......코, 콜록, 무, 무슨......”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 김재민 비서실장 발가락을 그대로 밟았다. 처절한 비명이 이어졌다.
“이제부터 제대로 대답하지 않거나, 말을 더듬을 때마다 내 관절을 하나씩 다 부러트려 주마. 다시 묻겠다. 이 분은 어디 있지?”
공포에 부들부들 뜬 김재민 비서실장은 뒤늦게 사진을 확인하면서 바로 소리쳤다.
“현대 병원에 있습니다. 사, 살아 있습니다!”
“왜 이 분을 잡아간 거지?”
“지, 지시를 받았습니다.”
“누구?”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저는 단순히 지시를 받아서 현대 병원에 넘겼을 뿐입니다.”
“이상하군. 꽤 오래전 일인데, 생각보다 자세하게 기억하네?”
“V, VIP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하게 지시를 받은 이들은 따로 관리합니다. 그들은 절대로 죽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설마 유산을 노린 거야?”
“네, 네, 마, 맞습니다.”
그다음은 쉬웠다. 고통과 공포에 질린 김재민 비서실장은 줄줄이 다 폭로했다. 그 모든 것은 윌리엄 부국장이 내민 서류와 구체적으로 일치했다.
거짓이라고 보기 힘든 디테일에 백무현 대통령은 10년은 늙은 표정이었다가 비명을 듣고 달려온 경비원을 별일 없다고 말한 후에 팔, 다리가 뒤틀린 김재민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김 실장, 정말 날 이용하기 위해서 파견된 북한 간첩인가?”
“......”
“허.”
정체불명 집단의 소름 끼치는 계략에 질린 백무현 대통령은 아주 넋을 잃었지만, 곧 이성을 차렸다. 그는 아직도 김재민 비서실장을 쳐다보는 조민호를 잠깐 보았다가 다시 데니스 국무장관을 쳐다보았다.
“좋습니다. 대충 상황을 알겠습니다. 과거사가 어떤지 짐작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사실 부시 대통령 지시에 따라서 이곳을 찾은 데니스 국무장관은 그제야 윌리엄 부국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윌리엄 부국장.”
“아, 일단 청와대 내부 첩자부터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국정원, 국방부, 주한미군 순서면 됩니다.”
“설마 주한미군 속에도 있다는 말입니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첩자를 어떻게 찾을 생각입니까?”
윌리엄 부국장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감각이 특이한 이 친구가 알아서 할 겁니다.”
“흠.”
그도 조금 전의 잔혹한 조민호 손속에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는 화도 나지 않았다. 아직도 충격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김재민 비서실장이 한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
데니스 국무장관, 백무현 대통령은 솔직히 자세한 내막을 잘 몰랐다. 물론 윌리엄 부국장을 비롯한 이들 역시 조민호 능력이 비범하다는 것 정도만 알았다.
그들은 모두 조민호가 무슨 능력이 있는지는 잘 몰랐다.
조민호는 물론 자기 능력을 가르쳐줄 생각은 없었고, 청와대 내부 경비원을 대상으로 해서 첩자를 하나씩 골라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숫자가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김재민 비서실장도 보안 때문에 30명 정도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중에 20명은 대부분 민정 수석실장을 비롯한 고위직이었다. 핵심 실세만을 이용해서 청와대 내부를 장악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