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조정연도 긴가민가했던 영화 흥행 성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버지, 이래도 제 말이 틀렸습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 투자금은 투자자가 원해서 한 거야. 우리 회사 차원에서는 절대로 이런 성적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 결과를 보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박 부장, 자네 팀 의견은 어땠나?”
“저도 이 결과가 잘 믿기지 않습니다. 로빈 연기는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고, 이런 성적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정연아, 네 마음은 나도 안다. 하지만 우리는 투자자다. 수익이 전혀 보이지 않은 곳에 투자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민호는 뭐죠? 민호는 왜 자기 투자자를 설득해서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까. 사람 차별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끙.”
그는 결국 별다른 변명을 해주지 못했다.
***
어거스트 러쉬의 초반 흥행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가파르게 올라갔다.
그 덕분에 박살난 것은 역시 워너의 지분 매각 실무자인 마크 수석이었다. 그는 결국 이번 사태에 관한 책임 때문에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
조민호는 물론 생각보다 큰 이익을 봤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제임스 통해서 진행하는 일이 더 우선이었다.
그런데 CIA 내부 사정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복잡했다.
레이즈 CIA 국장이 체포된 후에 조직 일부가 드러났는데, 그들이 미국 정부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핀처 요원이 중심이 된 특별 수사팀은 이들을 하나씩 잡아들였다.
물론 이 수사는 처음에는 잠깐 외부에 비추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밀리에 진행되어서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
워낙에 충격적인 사건인 터라 수사 결과가 진행되면서 백악관은 침묵했다. 그들도 정부 내부에 이런 황당한 자들이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들 대부분은 일정한 지시만 받은 장기 말이었다.
일테면 레이즈 CIA 국장조차 지시받은 몇 가지 일만 내리고, 그것을 지시받은 밑에 하부 조직 역시 딱 그것만 한다.
“이봐요, 레이즈씨는 CIA 국장이면서도 지시만 받아서 움직였다는 말인가?”
“문자로 연락만 받았을 뿐이다.”
실제로 인터넷 이메일을 통해서 지시를 받았는데, 역시나 보낸 이에 대한 추적은 불가능했다.
씁쓸한 레이즈는 18년 전에 이들의 제안을 받았고, CIA 내부에서 승승장구한 것을 털어놓았다.
“덕분에 경쟁자는 쉽게 나가떨어졌으니까.”
“황당하네.”
밑에 하부 병원 역시 각각 분담 맡은 일을 할 뿐이었고, 인체 시험에 따른 결과는 일정한 시스템을 따라서 흘러갔다.
핀처는 이 시스템을 역순으로 쫓아갔지만 결국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 시스템은 이미 2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는데, 초기에 진행했던 당사자 대부분은 죽거나 실종되어 버렸다.
백악관은 결국 이 사태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 부국장이 조민호에게 한국 내에도 그들 조직이 있다는 것을 받자 이 사실을 즉각 백악관에 보고했고, 주한미군을 동원하더라도 이들 조직을 철저히 파헤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알겠습니다.”
***
최영민 사장 역시 조민호 능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고, 미국에서 방문하는 이들을 안내하는 지시를 받고 공항에 나갔다.
장혁 역시 뜻밖의 미국 인사 방문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툴툴거렸다.
“도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을 했기에 우리가 이렇게 공항까지 마중 나가야 합니까?”
“나도 자세한 것은 몰라. 워낙에 보안을 강요해서 우리가 나선 것이니까.”
“그런가요?”
심드렁한 장혁은 지금 상황이 썩 마음에 든 얼굴은 아니었다.
최영민 사장은 피식 웃으면서 공항에 도착한 몇 사람을 발견한 후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자 고개를 갸웃했다.
“윌리엄씨?”
검은 선글라스, 검은 마스크로 무장해서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은 이는 십여 명의 인물을 데리고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윌리엄입니다.”
“아, 최영민이라고 합니다.”
장혁을 비롯한 다른 이들은 그들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채 가지고 온 차량에 세 사람씩 나누어서 차량을 출발시켰다.
최영민 사장도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는데, 곧 드러난 얼굴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깜짝 놀랐다.
“설마 윌리엄 부국장?”
“호오, 전 한국에 온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알아보다니, 놀랍습니다.”
“아, 전에 국정원에서 일했습니다. 미국에 갔을 때 부국장님 얼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가요?”
윌리엄 부국장도 호기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최영민 사장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도대체 CIA 부국장이 어째서 한국에 온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가만 조민호 이사가 초청한 사람이 CIA 부국장이었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아니 상대 정체에 대해서 알자 오히려 의문이 더 많았다. 어째서 그가 비밀리에 입국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미국 대사관, 주한미군에도 저희 동선을 밝히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조민호씨에게 안내만 해주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운전하던 장혁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조민호 능력은 잘 알았지만, 설마 CIA 부국장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상상도 못했다.
***
조민호는 최영민 사장이 준비해둔 안가에서 윌리엄 부국장을 다시 만났다. 여기에는 제임스, 에반 뿐만 아니라 에드워드 역시 동행했다.
심지어 윌리엄 부국장 요청을 받은 FBI 핀처 요원 역시 이 일행에 합류했다.
“어?”
“또 뵙습니다.”
“설마 윌리엄 부국장님이 직접 한국에 오신 겁니까?”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당장 CIA 내부에 아직 얼마나 많은 자들이 연루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겁니까?”
“네. 일단 급한 대로 드러난 자들만 처리했지만, 문제는 기간입니다. 이들이 CIA를 비롯한 미국 정부 기관에 침투한 시기가 20년이 넘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연루된 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당장 증거가 명확한 자들만 처리했지만 문제는 드러나지 않은 자들이 얼마나 되는지 CIA나, FBI도 알 수가 없었다.
따로 내부 수사팀을 만들어서 진행했지만 심지어 이들 중에도 첩자가 있어서 정보가 이리저리 새버렸다. 이걸 사전에 안 이들은 전부 잠적을 하였다. 그들을 일일이 추적해서 검거하는 중이었다.
“그런 차에 조민호씨가 한국에도 이자들이 있다고 정보를 보내주셨습니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저희 역시 미국 정보기관을 총동원해도 이들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미국 정부가 주도되어서 이들을 추적하고는 있지만, 결과는 썩 좋지가 않았다. 잡은 자 중에 제대로 내막을 아는 이들은 없었다.
심지어 레이즈 CIA 국장조차 장기 말에 불과했다. 그 역시 그저 자기 권력을 누릴 뿐인지, 제대로 내막을 잘 몰랐다.
인체 시험 결과 사진을 본 레이즈 CIA 국장은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생각보다는 복잡한 내막을 들은 조민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결국 자신이 직접 손을 쓴 윌리엄 부국장을 비롯한 네 사람만 남겨둔 채 다른 사람은 밖으로 내보냈다.
“이들이 누구인지 밝히지 못했다는 말입니까?”
“네. 그들은 각자 자기 정해진 역할을 할 뿐입니다. 따라서 정확한 내막을 몰랐습니다. 있다고 한다면 생체 실험 결과 정보를 어디론가 보냈는데, 딥웹을 통해서 보낸 진 터라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나섰는데도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것에 놀란 조민호도 고개를 갸웃했다.
“CIA가 말인가요?”
“네. 이들이 사용하는 암호화 체계는 현존하는 그 어떤 암호와 다릅니다.”
“그건 정말 이상하군요.”
윌리엄 부국장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조심스럽게 조민호 눈치를 봤다. 이번 사태에 대한 실마리를 준 사람이 조민호였다. 그가 없었다면 생체 실험을 했다는 것을 전혀 밝히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뒤늦게 소피아 역시 실험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윌리엄 부국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와주십시오.”
“흠.”
유명환 과장을 비롯한 부패한 관료를 떠올린 조민호도 고민에 빠졌다. 그도 CIA가 나서면 그럭저럭 답을 찾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저라고 해서 한계가 명확해요. 미국이 그 난장판인데, 한국은 얼마나 놈들이 깊이 침투했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건 제가 돕겠습니다. 하지만 조민호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희 능력으로는 한계가 존재합니다.”
“어떻게요?”
“당장 의심스러운 것은 한국 권력 심층부입니다. 거기서부터 하나씩 파고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미국과는 달리 그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골라내야 한다는 말이군요.”
“네. 한국 검찰 중에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통하면 됩니다. 길을 저희가 만들겠습니다. 데니스 국무장관님이라면 당장 대통령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
생각보다 더 저돌적인 윌리엄 부국장 제안에 조민호는 한숨을 내쉬었다가 뒤늦게야 굳이 치료 능력을 밝힐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깨달았다.
‘지금은 물러서기 곤란하다는 말인데......’
고민에 빠진 조민호를 쳐다보는 윌리엄 부국장도 처음에는 조민호의 추상적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소피아 상태를 정밀 뇌CT를 통해서 확인한 후에야 그 의미를 알았다.
도대체 조민호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했다.
“제발 부탁합니다.”
“첩자에 대해 구분만 하면 된다는 말입니까?”
윌리엄 부국장도 조민호의 신비한 능력을 경험한 터라 혹시나 하는 기대로 질문했지만, 첩자에 대한 구분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는 모든 정보기관이 첩자에 대한 정보를 일일이 다 뒤지거나, 아니면 정보를 따라가면서 어렵게 밝혀냈기 때문이다.
“......설마 가능하시겠습니까?”
“뭐, 그 정도는 될 겁니다.”
“그러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돕겠습니다. 데니스 국무장관님은 내일 도착할 테니, 수행원으로 합류하면 됩니다.”
“설마?”
“네. 백무현 대통령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흠.”
***
굳은 안색을 한 데니스 미 국무장관은 로버트 힐 대사와 같이 윌리엄 부국장을 만났다.
윌리엄 부국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행원으로 합류한 조민호를 돌아봤는데, 두 사람은 문제없다는 신호를 받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데니스 국무장관은 뜬금없는 조민호 합류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 친구는 누굽니까?”
“제 수행원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일약 다크호스로 떠오른 핀처 FBI 요원을 간단히 소개한 윌리엄 부국장은 대수롭지 않게 조민호에 대해서 말했다.
“이번 사건에 합류했습니다.”
데니스 국무장관도 윌리엄 부국장이 직접 한국을 방문한 것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크게 따지지 않았다. 그 역시 지금 미국 내부 상황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일단 당장 눈에 뜨인 이들을 일망타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마침 한국에도 그들 흔적이 있다는 것을 보고 받자 한국을 방문했다.
그조차 워낙에 기밀을 필요로 하는 작전이라서 제대로 된 내막까지 몰랐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레이즈 CIA 국장이나 FBI 부국장이 첩자로 밝혀진 상황이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군.”
“조금만 참아 주십시오.”
“허.”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일행을 데리고 한 곳을 방문했다.
바로 청와대다.
비록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역시 데니스 국무장관 일행에 대해서 특별한 검문을 받지 않았다.
조민호 역시 일사천리로 통과되는 검문 과정에 별다른 내색 없이 묵묵히 그들 일행 뒤를 따랐다. 그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와대 내부 인물에 대해서 꼼꼼하게 확인했다.
‘다행히 특이한 이들은 없군.’
***
조민호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 윌리엄 부국장 뒤를 따르면서 고민에 빠졌다. 그 역시 카르마를 통해서 확인이 가능할 것이라 추론했지만 확신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청와대 직원 대다수는 오염도가 5%를 넘지 못했다.
‘아무래도 국가관이 명확한 이들을 추린 결과겠지.’
그런데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 중에 예상치 못한 이가 있었다.
‘.....60%라.’
“데니스 국무장관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는 이는 바로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민이었다.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서 문제가 많다고 듣기는 했지만, 오염도가 무려 60%가 넘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김재민 비서실장과 동행해서 나타난 이들 대다수가 최저 오염도가 45%였고, 60%를 넘는 이들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