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65화 (165/176)

#165

그런 중에 문득 조정연 문제를 떠올렸다. 이 일이 계속 문제가 된 것은 역시 아버지 조철영 문제와도 관련이 있었고, 조수현 회장도 내색하지는 않지만, 심적으로 자신을 부담스러워했다.

미래 그룹 내의 자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회사 내부적으로 말들이 많았다. 그것은 조수현 회장에게도 절대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결국 우선 미국으로 가 있던 조철영이 잠깐 국내로 들어온 틈을 봐서 만났다.

“오랜만이다.”

“그러게요.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이렇게 보기 힘드네요.”

“바쁠수록 좋은 법이다.”

고급 정장을 입은 조철영 모습은 과거 시골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보다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을 떠올리게 했다.

조민호는 새삼 큰아버지 조수현 회장이 고맙기만 했다.

“요즘은 어때요?”

“미국 사무소 일 때문에 정신없다.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야 하고, 가치 평가를 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 가지 다 모르는 것투성이다.”

“만족스럽지 못한 점도 있나요?”

“글쎄다.”

머뭇거리는 조철영도 힐끗 조민호 눈치를 봤다. 그 역시 이제 회사 돌아가는 내막도 좀 알고, 박희관 부장 통해서 넌지시 꽤 많은 것을 들었다.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니?”

“말씀해보세요.”

“박희관 부장이 굴리는 자금이 꽤 된다고 하던데, 그중에 네 자금도 관련이 있니?”

“네.”

“그렇구나.”

약간 넋을 잃은 조철영은 나라 잃은 사람처럼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확히 얼마라는 것까지 모르지만, 천문학적인 자금이라는 것 정도는 들었다. 그리고 그 돈의 출처가 조민호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 투자에 눈을 좀 뜬 조철영으로서는 선뜻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눈치 빠른 조민호도 조철영 내심을 짐작했지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전부 다 강탈과 편법을 동원해서 번 돈이었으니까.

“혹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내 주제는 내가 잘 안다. 지금 일도 나에게 버거워.”

큰아버지에게 얼마나 갈굼을 당했을까 생각하던 조민호는 피식 웃었다.

“아뇨. 이제 서서히 독립하셔야죠. 언제까지 큰아버지 댁에 있을 수는 없잖아요. 지현이도 생각하셔야죠.”

“네가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니, 더 이상하구나.”

“그거야 아버지를 신뢰하기 힘들 때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큰아버지 통해서 많은 경험도 쌓았지 않습니까. 이제 독립하셔야죠.”

“무슨 뜻이냐?”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저도 돈을 제법 벌었습니다. 그 돈 중에 일부는 국내 들여와서 빌딩이나 부동산 쪽에 묻어둘 생각입니다. 그러면 관리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걸 나를 보고 하라고?”

“네. 그리고 이제 따로 집도 구해서 나왔으면 합니다.”

“정연이 문제 때문이구나.”

“그 문제도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큰아버지 장남 아니겠습니까. 계속 저대로 두면 망가질 거고, 그건 큰아버지에게 좋지 않습니다. 결국 집안 문제로 비화될 테니까.”

“그래. 나도 한 번 생각해보마.”

물론 그는 잠깐 눈치를 보다가 슬그머니 한 가지를 질문했다.

“그런데 말이다. 도대체 네 투자 수익은 얼마나 되는 거냐?”

“아마 지금쯤 4조가 좀 안 될 겁니다.”

“맙소사!”

***

에플 주식에 투자한 돈은 대부분 페이퍼 컴퍼니 통해서 투자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투자 회사 통해서 다시 국내로 투자하면 된다.

조민호는 이미 중국에서 재미를 단단히 본 안정적인 빌딩 시세 차익을 감안했다. 그는 부동산 업자 대신에 최영준 차장을 따로 만났다.

“결국 자네 말은 빌딩 소유주 중에서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따로 골라달라는 말이군. 물론 당장 몇 사람 떠오르는 사람은 있어. 그런데 정말 파킨슨병도 치료할 수 있는 건가?”

“지금 당장 완치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 몇 년 정도는 멀쩡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수는 있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조민호가 아직 장담 못하는 이유는 파킨슨병의 근원인 도파민 신경세포 사멸과 관련되는 단백질 인자를 모두 다 규명하지 못했다.

로빈과 소피아 두 사람 환자를 통해서 확인한 것만 벌써 3가지를 넘었다. 얼마든지 다른 환자에게 또 다른 유전 요인이 발견될 수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설사 치유한다고 해도 유전적인 문제 때문에 다시 재발한다는 점이다. 대신 이 정도 만해도 6-7년은 멀쩡하게 잘 살 수 있었다.

최영준 차장의 동공은 큰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저, 정말 파킨슨병을 지압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인가?”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사람들 눈에 뜨여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니 그런 점을 감안해서 후보자를 선별해주세요. 기본적으로 신뢰할만한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아, 알겠네.”

조민호는 물론 이전과는 달리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아, 대신에 공짜는 아닙니다. 그만한 대가를 지급해야 합니다.”

***

최영준 차장도 갑작스러운 조민호 지시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오히려 수긍해버렸다. 사실 지금 조민호 행동은 오히려 당연했다. 오히려 이전에 그냥 막 퍼준 것이 더 이상했다.

그도 단단히 마음을 먹자 자신이 이제까지 만들어놓은 소식통을 모두 동원해서 난치병, 빌딩, 자산가라는 키워드를 기준으로 해서 후보자 선별 작업에 들어갔다.

그 대상 중의 하나가 역시 명성이 자자한 오성 의료원이었다.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예상 밖의 대어를 금방 낚았다.

‘최두명 사장이라......’

***

최두명 사장은 노가다를 시작해서 땅에 욕심을 부렸고, 급등한 강남 땅을 이용해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는 이 종자돈을 기반으로 해서 사채를 시작했고, 지금은 명동 사채업자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꽂혔다.

사채 대상도 단순히 개인이 아니라 중소기업, 중견 기업, 심지어 대기업이었다. 물론 단순히 담보만이 아니라 회사나 사람 가치를 보고 투자했고,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도 이제 서서히 빌딩에 관심을 기울였고, 종로를 비롯한 신사동과 같은 요지에 작은 빌딩으로 시작해서 그 규모를 키워갔다.

이런 부동산 투자는 대박을 쳤고,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다.

최근에는 좀 더 욕심을 내서 요즘 말 나오는 초대형 빌딩인 스타 타워에 관심을 뒀다. 워낙에 덩치가 커서 자신도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다행히 상대는 외국 자본 싱가포르 투자청이다.

최두명 사장은 물론 빌딩 전문 회사를 내세워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협상을 진행했다.

싱가포르 투자청은 이상할 정도로 빌딩 매각을 서둘렀고, 덕분에 협상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빌딩 매입 가격은 9,600억이었다.

비싼 돈을 투자했지만, 강남 전체에서 가장 요지인 곳에 자기 건물을 얻었다.

자신의 꿈 하나를 이루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생각도 못 한 문제가 발생했다.

주치의 윤현종 박사가 갑자기 자기 비서와 경비를 밖으로 내보낸 후에 충격적인 결과를 말해주었다.

“파킨슨병입니다.”

“허, 윤 박사,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오성 의료원 내에서도 최고 미남으로 꼽히는 윤현종 과장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정밀 검사는 하루 이틀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죄송합니다만 사실입니다.”

“진담인가?”

“네.”

윤현종 과장 역시 VVIP 중의 한 사람인 최두명 사장을 잘 알았다. 그가 아무리 잘나가는 신경외과 전문의라고 해도 최두명 사장을 함부로 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루 현금 동원 능력이 수천억이 넘는 최두명 사장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끄응.”

신음이 절로 나왔다. 당장 자기 건강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재산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자식들이 더 심각했다.

더욱이 파킨슨병이라는 것을 알려지면 유산을 두고 살벌한 경쟁을 할 것이 분명했다.

아직 유산 문제를 결정하지 않은 최두명 사장 머리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윤현종 과장도 눈치를 봤다.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자신할 수 있나?”

“절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윤 박사라면 이리저리 떠들 사람은 아니지. 헌데 방법이 없겠나?”

“몇 가지 치료약이 있기는 하지만 고작 몇 년 정도 늦출 뿐입니다.”

“수술도 안 되겠나?”

그는 잠깐 파킨슨병의 문제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설명했다.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섞여서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최두명 사장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하필이면.’

그의 나이 이제 61세다. 많다면 많은 나이지만 아직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다. 지하 8층-지상 45층으로 강남 인근에서 가장 높은데, 무려 206m에 달하는 스타 타워 매입도 그 꿈 중의 하나였다.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최두명 사장은 결국 조용히 김해진 변호사를 만나서 자기 재산 내역과 자식의 최근 행보에 대한 것을 확인했다.

개판이었다.

장남인 최용만은 벤처투자에 빠져서 500억 이상의 손실을 봤고, 차남 최진희는 쓸모없는 땅에 300억을 잃었다.

셋째 최민형은 클럽에 말뚝을 박았는데, 요즘은 마약까지 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막내딸은 한 달에 5억씩 사치를 일삼았다.

이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새로 얻은 24살 차이 아내는 자기 처가 쪽에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빼돌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에 최두영은 새삼 자신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깨달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과거 IMF 시절에 중아일보가 어려운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600억을 대출해주면서 알게 된 최영준이었다.

“오랜 만에 뵙습니다.”

“요즘 소식 들었다. 제법 잘 나간다고 하던데, 한 번쯤은 인사를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최 회장은 별고 없고?”

“아버님은 늘 똑같습니다.”

“그래, 너라도 이렇게 와주니, 정말 반갑구나. 자식놈들은 내 재산에만 미쳐서 날뛰는데, 하아, 이럴 때는 최 회장이 정말 부러워.”

그는 가벼운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안부인사를 하면서도 슬쩍 본론으로 들어갔다.

“소식 들었습니다.”

안색이 딱딱하게 굳은 최두영 사장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파킨슨병 때문입니다. 아, 윤현종 박사 통해서 안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오성 의료원 소식통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최두영 사장도 상대가 한국 내에 이런저런 정보통을 가지고 있는 중아일보 후계자라는 것을 떠올리자 섬뜩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래, 대충 알겠다. 설마 그걸로 날 협박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제가 감히 어르신에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걸로 뭘 할 생각이라면 어르신을 이렇게 찾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다른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최두영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최영준 차장은 쓰게 웃었다.

“사실 어르신 파킨슨병을 치료할 방법이 있다면 믿겠습니까?”

“하하하.”

그는 오랜 만에 눈물이 나올 정도로 통쾌하게 웃고 말았다. 윤현종 박사가 아니더라도 이미 다양한 통로를 통해서 다 확인했다.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최영준 차장은 말없이 최두영 사장이 흥분을 가라앉히기만을 기다리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설마 제가 이런 일로 어르신에게 농담하리라 생각합니까?”

뒤늦게 중아일보 내에서도 요즘 후계 구도를 탄탄하게 굳힌다는 말을 듣는 최영준 차장의 명성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저, 정말이야? 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물론입니다. 다만 치료비가 좀 비쌉니다.”

“아니 애초에 정말 치료가 가능하기는 한 거야? 도저히 난 믿을 수가 없다.”

“어르신에게 손해 볼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치료비 문제를 명확히 해야 그분을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도대체 치료비가 얼마기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스타 타워.”

“뭐?!”

“아, 빌딩 전체를 치료비로 받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6,000억에 건물을 넘기는 것이

그 조건입니다.”

인상을 와락 구긴 최두영 사장은 분노하려다가 문득 진지한 최영준 차장 얼굴을 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자기 생명에 대한 가격이다. 그렇게 본다면 꼭 치료비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기 어려웠다.

“지, 진심으로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리냐?”

“네. 저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년 이상은 사회 활동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뭐 믿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최두영 사장은 최종 통첩을 한 후에 몸을 돌려서 나가는 최영준 차장을 불렀다.

“자, 잠깐, 아직 거절한 것은 아냐.”

득의 어린 미소를 지은 최영준 차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치료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역시 문제가 되는 것은 치료비이니까.”

“으음.”

‘진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말인가?’

혼란스러운 최두영 사장은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영준 차장도 그의 심정을 고려했다.

“일주일 시간을 더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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