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조민호는 트럼프 호텔에 투숙한 채 뉴욕 파크에서 운동까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앞으로 사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심했다.
‘소피아 치료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뒤로 미루어야겠어.’
윌리엄 부국장 이야기로는 미국 국외를 담당하는 CIA이기 때문에 미국 국내에 힘을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윌리엄 부국장을 잘 구슬리면 기회를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FBI가 본격적으로 수사하면 그놈들이 과연 가만히 있을까?’
미국 정가에 얼마나 그들의 촉수가 쓰며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이런저런 문제를 고민하다 보니, 조민호도 골치가 아팠다.
이번 멜빈 요양원 뒤처리는 한 편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괜찮았다. 차라리 국소적인 처방식으로 일을 풀어간다면 사태는 커지지 않을 테니까.
조민호는 많은 고심 끝에 그들이 멜빈 요양원 환자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하자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윌리엄 부국장 도움을 얻어서 FBI 동선을 살펴보면 알아서 튀어나올 거야.’
그런데 이번 습격을 통해서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했다.
‘최소한 화경 경지에 가능한 한 빨리 도달해야 해.’
자기 경지를 올리기 위해서는 스티븐 수준의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아직은 자기 정체를 그들에게 노출되어서는 곤란했다.
그는 결국 윌리엄 부국장만을 따로 호출해서 적당히 둘러댔다.
“지금 상황이 만만치 않으니, 소피아 경우는 잠깐 두고 봤으면 합니다.”
모호한 말이었지만 윌리엄 부국장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파킨슨병에 대해서 더 연구할 생각입니다. 아마 파킨슨병 환자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슬쩍 한 가지 사안을 넌지시 끼워 넣었다.
“이왕이면 FBI 쪽에도 손을 쓰고 싶습니다. 이번 일을 경험해보니, 아무래도 FBI 쪽에 라인이 있으면 미국 생활도 편한 것 같아서요.”
“그건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네.”
“아, 한 가지 더 부언하자면 제 경험이 많이 쌓일수록 소피아 치료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그러니 서둘러 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거의 일방적인 대화였지만 이미 조민호 혼원기에 반쯤 세뇌당한 윌리엄 부국장은 전혀 조민호 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
조민호도 CIA가 얼마나 대단한 조직인지 잘 아는 터라 은근히 기대했다.
그리고 이 결과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로 잘 알려진 로빈 윌리엄스가 그 대상이었다.
윌리엄 부국장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로빈이 파킨슨병이라고 의심했다.
이미 휘트니로 재미를 톡톡히 본 조민호는 로빈이라면 괜찮은 상대라고 판단했다.
“확실한 겁니까?”
“겉은 화려한 미국 엔터 산업이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 사회의 그늘을 잘 보여줍니다. 명배우로 알려진 이들 중에 많은 이들이 강박 관념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그게 파킨슨병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파킨슨병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우울증을 포함한 여러 질환인데, 로빈의 주치의가 실제로 이런 점을 주목했습니다. 결국 로빈에게 계속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한 것으로 압니다.”
“CIA가 그런 것까지 압니까?”
윌리엄 부국장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자기 어머니 치료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알아보았는데, 심지어 이 병과 연결된 이들에 대해서도 이미 7년 전부터 따로 조사했다.
“제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서 가능성이 높은 모든 정보를 샅샅이 살폈습니다.”
“그래요.”
그는 따가운 윌리엄 부국장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 경험이 쌓일수록 좋은 소식이 생길 테니까요.”
“감사합니다.”
이미 전투 예지라는 능력을 갖춘 윌리엄 부국장은 조민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느꼈다. 다만 조민호에 대한 반감을 품을 수가 없어서 내색하지 못할 뿐이었다.
***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비롯한 다양한 상을 받은 미국 국민 배우로 알려진 로빈은 최근 무너지는 인기 하락 때문에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미국 매체 덕분에 그 스트레스와 압박을 쉽게 견디지 못했다.
덕분에 주치의 필립모어가 계속해서 경고했다.
“괜찮아.”
스스로 견딜 수 있다고 나갔지만, 이번 영화 ‘어거스트 러쉬’ 촬영을 견디지 못했다.
커스틴 감독도 주연 배우가 버벅이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로빈, 잠깐 쉬었다가 할까?”
“괜찮습니다.”
영화 촬영은 이미 거의 막바지단계인 상황이라서 감동적인 면을 줄 수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익성만큼은 확신하지 못한 커스틴 감독은 굳이 로빈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지 좀 마. 로빈이 영화를 이끌어가지 못하면 다른 이들도 힘들어.”
‘비록 경험이 풍부해서 그럭저럭 찍기는 했지만 로빈 상태가 정말 안 좋아. 전성기 시절의 반만 되어도 정말 좋을 텐데......’
라일라 배역인 케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로빈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른 고만고만한 배우 역시 불안한 시선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번 영화를 통해서 헐리우드에 발을 걸치고 했던 구해선은 아예 숨조차 쉬지 못했다. 비록 카메오라고 큰 소리쳤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얼굴 알리기에 성공한다면 다음 헐리우드 영화에는 좀 더 나은 배역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이번 영화에서 운이 따른다면 대사를 좀 더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희망했다. 그런데 로빈이 버벅거리자 당황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화 흥행도 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CL 엔터 통해서 가까스로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없어.’
물론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조차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CL 엔터에게 5% 투자를 받았을 정도다.
로빈이 비실거리자 감독의 시선도 평소보다 더 차가웠고, 낙하산인 그녀를 고깝게 보았다.
늘 뜨거운 열정을 가진 로빈은 결국 감독의 제안을 받았다.
“이틀만 시간을 주십시오.”
“알겠네.”
***
로빈도 일단 숨을 돌리자 자신을 괴롭힌 우울증이 그나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온종일 자고 나니, 이상할 정도로 머릿속이 맑았다.
그런데 마침 주치의 필립모어가 난감한 얼굴을 한 채 방문했다.
“로빈 혹시 휘트니 이야기는 들어봤어?”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어. 나도 그녀 부활 보고 경악했으니까.”
“그게 내가 듣기로 휘트니를 치료한 사람이 있다고 해.”
“오늘 만우절인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낄낄거리는 로빈 모습은 최상의 컨디션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립모어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 한 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클라우드 회장 통해서 알게 된 이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휘트니 주치의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네. 난 정말 심각해.”
“진짜?”
“솔직히 나도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야. 그런데 주치의인 나로서 자네 건강을 심각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어. 자네 우울증은 다른 우울증과는 몇 가지가 다르니까.”
로빈은 양손으로 자기 몸을 끌어 앉은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겁주지 마. 무서워!”
“변비, 체중감소, 삼킴 곤란과 같은 소화계통 증상이 나타나면 단순한 우울증으로만 볼 수는 없어. 모두 한 가지 증상을 가리키니까.”
“그게 뭔데?”
“파킨슨병.”
안색이 창백해진 로빈은 집게손가락으로 필립모어 선생을 가리켰다.
“나, 날 겁주는 거야?”
“아니 진심이야.”
변비가 파킨슨병 초기에 나타나는 증상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게 파킨슨병 초기라는 것이 증명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세계 많은 연구팀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장 질환을 연구하는 것은 맞았고, 이 과정에서 공통점이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십이지장궤양 치료의 한 방편인 미주신경절단술 환자에게 파킨슨병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아마 1년 전의 로빈이었다면 개소리라고 욕하고 끝내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마냥 충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누군데?”
필립모어 박사는 차마 지압으로 치료한다는 이야기까지 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 온 치료사야.”
“치료사? 한국?”
“어. 이번 영화에도 한국인 낙하산 때문에 불평을 털어놓았잖아. 아마 그 친구에게 통역을 부탁해. 아마 적극 도와줄 거야.”
“흠.”
로빈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모르는 사람보다는 그나마 아는 사람, 특히 이번 영화를 통해서 헐리우드에 진출하려는 구해선을 떠올렸지만 이보다는 파킨슨병 징후라는 말을 더 걱정했다.
‘설마 아니겠지. 말도 안 되잖아. 내가 무슨 파킨슨병이라는 소리야?’
***
로빈도 처음에는 필립모어 박사 조언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름 헐리우드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그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결국 필립모어 박사 조언에 수긍했다.
다행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통역을 부탁받은 구해선은 로빈이 투숙한 화려한 호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면서 그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아직 돌아가는 영문을 몰랐다.
데뷔 전에도 한국에서 5대 얼짱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그녀는 최근 일일 드라마 ‘열아흡 순정’으로 한국에서 명성을 떨쳤다.
시청률 29%에 육박한 이 일일 드라마 때문에 자신감을 얻었고, 이번 카메오 출연을 통해서 헐리우드에 문을 두들겼다.
일일 드라마 성공 때문에 비록 카메오 출연이지만 자신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우울증으로 고통받아서 연기력이 대폭 추락한 로빈의 연기에 살짝 기가 죽고 말았다.
그런 그녀로서 갑작스러운 로빈의 초청에 한 편으로 크게 기대했다. 로빈 옆에서 여러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헐리우드에도 본격 진출하고 싶은 욕심에 들떴다.
‘설마 성접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다행히 로빈은 유쾌하게 웃으면서 그녀를 나름 반겨주었다.
“반가워요. 굳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보다는 그쪽이 아무래도 얼굴이 편했으니까.”
“정말 통역 때문에 절 초청한 겁니까?”
“어, 아무래도 서로 친해지면 연기하기도 편하잖아.”
‘아직 영화 촬영이 끝난 것은 아니잖아. 10분 아니 5분 장면은 충분히 넣을 수가 있어.’
“아, 그렇죠.”
바로 그녀가 원한 바였다. 다만 그녀는 영문을 몰라서 눈치만 봤다.
마침 한 사람이 로빈 스위트 홈에 나타났다.
“어?”
이곳을 방문한 조민호 역시 예상치 못한 한국인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 매니저 이야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통역을 잘 부탁합니다.”
“......네.”
시큰둥한 상대 반응에 구해선은 살짝 콧등을 찡그리고 말았다. 최근 국민배우로 확 뜬 자신을 한국인이 모르는 것이 의아했다.
“저기 혹시 저 모르세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저 구해선이에요. 열아홉 순정에 나왔는데, 아 작년에는 서동요에도 나왔고요.”
“그런가요?”
엔터 업계 만이 아니라 세상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조민호는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외모만으로 최고가 된 구해선 입장에서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조민호는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로빈에게 다가가서 구해선에게 통역을 부탁하면서 진맥부터 했다.
로빈은 구해선 통해서 한국 한의학을 간단하게 소개받으면서 조민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물론 조민호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은 로빈 상태를 확인만 할 목적이었다. 아니 꼭 로빈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실효 선천지기가 1,100이라, 괜찮네. 다만 오염도가 70%라니, 생각보다 안 좋네. 딱히 문제가 많아 보이지 않으니, 역시 병 때문인가?’
이미 소피아 통해서 잠재 선천지기가 수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까지 파악했다. 로빈 역시 그 연장선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다만 예상치 못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피아와는 좀 다르잖아. 이게 파킨슨병이 맞기는 한 건가?’
이미 한창 파킨슨병으로 고통받는 소피아와는 달리 로빈은 그와는 좀 달랐다. 그래도 비슷한 공통점이 존재했는데, 뇌세포에 특이한 조직이 선천지기 흐름을 방해했다.
‘이게 뭐지?’
조민호로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받은 자료에는 이와 관련해서 논한 기록이 없었다. 결국 소피아 선천지기를 잠깐 반추하면서 뒤늦게야 비슷한 뇌세포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 그게 그거구나.’
결국 이 의문의 세포를 파킨슨 세포라고 일단 정의했다. 그 세포를 향해서 지속적으로 뭔가 계속해서 몰려들었다.
즉 응축 현상이 일어났다.
응축 세포를 파킨슨 알파로, 흐르는 물질을 파킨슨 베타로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