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제임스 역시 눈빛을 반짝였다.
“어, 정말 이상하다.”
에반은 또 한 가지 점을 더 지적했다.
“가끔 술자리에서 소피아가 교통사고 후에 수술받고 나서 파킨슨병이 걸린 것이 이상하다고 한 것도 윌리엄 부국장님입니다.”
“......”
윌리엄 부국장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에반은 그런 윌리엄 부국장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제가 한 번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가끔 작전할 때 뭔가 아니다 싶을 때는 안 하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전 다행히 그 감을 믿어서 몇 번이나 잘 살아남았습니다.”
“......부탁해.”
“네.”
세 사람은 그제야 조민호의 석연치 않은 행동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
조민호도 미국 내에 뭔가 있다는 것까지 깨달았지만 그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까지는 미처 간과했다. 더욱이 상황이 이전과는 달랐다. 한국에서는 그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소피아 치료는 외부에 다 드러난다.
그는 결국 파킨슨병 혼원기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이번 일은 여기서 접는 것이 좋다고 확신했다. 손 위에 떠 있는 파킨슨병 혼원기가 파킨슨병 유전자에 어떤 영향을 줄지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퇴행 중인 신경세포를 먹어치우는 세포를 제거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게 활성미세아교세포가 맞는지도 아쉬워.’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서 나타나는 활성미세아교세포는 병의 진행과도 큰 관련이 있다.
박재희 박사가 파킨슨병 전문가와 같이 검토한 내용에 대한 보고는 꽤 매력적이었다.
[미세아교세포는 중추신경계의 유일한 면역 세포입니다. 그런데 이게 왜 파킨슨병과 관련이 있는 신경세포사에 영향을 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것은 설사 이게 관련이 있다고 해도 뇌세포 내에서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도움만 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 파킨슨병을 조사하시는 겁니까? 물론 조민호 이사님이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파킨슨병은 ADHD와는 전혀 다릅니다. 지금은 ADHD에만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조민호는 굳이 대답해주지 않았고, 그는 이 흥미로운 파킨슨병 혼원기에 더 집중했다.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흠, 이상할 정도로 혼원기가 선명하네. 원래부터 이랬던가? 아, 맞아. 내 선천지기 스탯이 100이 넘었지. 이 상태창은 전직도 없어서 어색하네. 아니 전직이란 게 더 이상해. 이자들이 그런 것까지 감안해서 상태창을 설계한 것은 아닐 테니까.’
검지로 상태창을 툭툭 치자, 이전과는 달리 영향을 받아서 일그러졌다가 다시 생성되었다. 선천지기가 시신경에도 영향을 주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조민호는 뒤늦게야 자신의 선천지기 특성이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증폭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부작용도 고민해야겠어.’
***
윌리엄 부국장도 처음에는 과거처럼 어머니 건강만 생각했다. 그의 감정이 격해질수록 오히려 조민호가 더 싫어졌다.
그런데 그 감정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조민호에 대해서 오히려 바른 충고를 해준 사람이라고 확신했고,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윌리엄 부국장은 특이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조민호 충고는 조언이 아니라 마치 지시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우선 제임스와 에반을 데리고 멜빈 요양원에 가서 소피아 퇴원 절차를 밟았다.
“네? 퇴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미국 최고입니다. 더욱이 윌리엄씨는 한 달에 고작 70달러 내외 비용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연방정부의 보조를 받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멜빈 요양원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빠르게 정식 퇴원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 LA 파킨슨병 컨퍼런스에 갔다고 한 페이만 선생이 바로 나타났다.
“걱정은 잘 압니다. 하지만 소피아 상태가 계속 악화하는 상황에서 집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뉴욕 아니 세계 최고의 프레스비테리안 병원에 있는 리즈 박사님이 직접 나설 겁니다.”
이전이라면 윌리엄도 오히려 감사할 내용이지만 오히려 가슴 한구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뒤늦게야 어머니 교통사고 후에 갑자기 페이먼 박사가 나타난 후에 소피아의 파킨슨병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새삼 떠올렸다.
벌써 7년 전의 상황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음, 내 기억력이 이 정도로 좋았나?’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페이만 박사 설득에 다시 집중했다. 페이만 박사는 이상할 정도로 집요하게 매달렸다.
이미 페이만 박사를 의심한 에반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최소한 겉으로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혼신의 연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 하는 일도 지쳤습니다. 이제는 어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입니다. 페이만 박사님의 제안은 제가 잊지 않겠습니다.”
몇 번의 걸친 설득이 먹히지 않자 페이만 박사의 안색은 순간 차갑게 바뀌기는 했지만, 곧 입가에 영업용 미소를 남발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나선 것 같습니다. 한 며칠 정도 집에서 요양하면서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의료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파킨슨병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윌리엄 부국장은 두 사람에게 다시 페이만 박사에 대해서 특히 조심해서 살펴보라고 지시한 후에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톰슨 보좌관이 안색을 잔뜩 구긴 채 나타나서 한 가지 사실을 보고했다.
“미군 제101공수사단 소속 병사가 이라크 소녀를 강간하고, 일가족을 모두 살해했습니다.”
“?”
갑작스러운 보고에 윌리엄 부국장은 황당해서 멍하니 보고서를 살폈다.
뛰어난 미모를 지닌 아비르 카심이 자기 마을을 오가면서 미군 검문소를 거쳐야 했는데, 그 때 주목을 받았다.
그린은 아비르에게 반했고, 몇 번이나 치근거리다가 결국 동료 두 사람과 같이 아비르 집에 직접 찾아갔다가 말다툼 끝에 강간했다.
아비르를 말리는 일가족 역시 하나씩 잔인하게 살해했다.
윌리엄 부국장도 엽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이 일이 일어난 것인지 천천히 의심했다.
“벌써 3개월이나 지난 사건이 어째서 지금 밝혀진 건가?
“그린과 같은 부대 소속 미국의 전투 증후군 조사 과정에서 폭로되었습니다.”
“그런가?”
그는 이상할 정도로 페이만 박사의 차갑게 변한 얼굴을 떠올렸다.
톰슨 역시 평소와는 전혀 다른 윌리엄 부국장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평소에도 냉철한 톰슨의 능력을 잘 아는 윌리엄 부국장은 잠깐에 깊은 고민 하면서 톰슨의 지난 행동을 떠올렸다.
불과 짧은 기간이었지만 톰슨의 말과 행동이 마치 슬라이드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톰슨에 대해서 확신을 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산책하러 가지.”
***
톰슨은 갑자기 CIA 건물을 나온 윌리엄 부국장 행동에 의아했지만, 오히려 도청을 의심한 행동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지만 윌리엄 부국장은 오히려 그런 내색 따위는 하지 않았다.
“조민호에 대한 조사는 그만둬.”
“알겠습니다.”
망설이던 톰슨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설마 이 그린 보고서가 조작되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린은 아비르를 강간한 뒤에 총으로 쏴 죽이고, 심지어 아비르 어머니까지 강간 살해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머리가 박살 났고, 여동생마저 잔혹하게 당했습니다. 심지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불에 태우려고......”
“아네. 아마 조작은 없을 거야.”
“?”
윌리엄 부국장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안드로이드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차가워서 톰슨 조차 흠칫 뒷걸음쳤다.
“이상하지 않아?”
“무슨 말씀이신지......”
“돌이켜보면 내가 소피아 일에 깊이 관여하려고 할 때면 꼭 지금처럼 일이 생겼어. 그 때마다 난 소피아 문제에 신경을 쓰지 못했어. 그런데 꼭 그런 시기에 페이만 박사가 우리 가족에게 접근해서 이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어. 물론 경제적인 지원 때문에 내 동생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닐 수도 있지. 아무래도 나도 사람인 탓에 페이만 박사에게는 신경을 써 줬어. 특히 이상할 정도로 페이만 박사 환자가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뉴욕 경찰 담당자에게 연락했으니까.”
윌리엄 부국장 입장에서는 자기 지인을 신경 써 줬다는 시늉만 했을 뿐이니,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게 직권 남용은 아니지만 사건 담당 뉴욕 경찰 처지에서는 가볍게 생각하기 어렵다. 부국장의 압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큰 문제가 된다.
이미 페이만 박사에 대한 일 처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도와준 적이 있던 톰슨 표정도 뒤늦게야 딱딱하게 변했다.
“설마......”
“나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최악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자네가 아는 지인이 프리랜스로 일한다고 했지?”
“아, 에드워드 말씀입니까?”
“어, 그 친구가 FBI의 제이크 죽음이 이상하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지?”
벌써 3년 전에 NSC에 있을 때 톰슨이 업무 협조 과정에서 윌리엄 부국장에게 했던 이야기다. 이 일이 인연이 되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윌리엄 부국장은 놀랍게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톰슨은 혀를 내두른 채 윌리엄 부국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제가 그 친구에게 말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지금 생각해보니, 페이만 박사를 조사하던 그 FBI의 제이크 그 친구가 죽은 것도 이상한 것 같아.”
“......네.”
“아, 그린 사건은 내가 알아서 직접 처리할 테니, 자네는 페이만 박사에 집중해. 필요하다면 자금을 아끼지 마. 보고는 나에게만 하고.”
“알겠습니다.”
***
전직 CIA 출신으로 현재 프리랜스로 일하는 에드워드는 갑작스러운 톰슨의 은밀한 제안을 듣고 나서도 처음에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가 CIA에서 그만둔 이유도 FBI 제이크 죽음 조사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FBI 제이크 죽음은 정확히는 FBI에서 진행해야 하는 일인데, 이 일이 윌리엄 부국장도 관련이 있어서 CIA 내부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당시 그는 위에서 별의별 압력을 다 받았고, 실제로 윌리엄 부국장은 그저 가볍게 대처한 것뿐이라서 사건은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정작 톰슨이 이 일을 지시한 사람이 윌리엄 부국장이라는 것을 토로하자 태도를 바꾸어서 이번 일을 맡기로 했다.
‘확실히 윌리엄 부국장은 관련이 없었어. 하지만 페이만 박사는 좀 이상했지.’
에드워드는 자기 팀을 호출해서 곧 바로 페이만 박사에 대해서 추적했다.
그는 따로 감추어 뒀던 페이만 박사 파일철까지 꺼내서 원점에서 다시 검토했고, 이제까지 페이만 박사를 둘러싼 죽음을 철저하게 조사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팀원도 추가적인 조사 결과에 경악했다.
“맙소사 7년 동안 394명이나 죽었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파킨슨병 환자 나이가 평균적으로 60대를 넘는다고 해도 사망자 숫자가 너무 많았다.
에드워드도 소름이 오싹한 것을 느꼈고,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했다.
다른 팀원 역시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지? 이번 일은 단순히 페이만 박사 일로만 생각할 수 없어.”
“네.”
두려움을 느낀 에드워드 팀은 곧바로 철저하게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권총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경량화 수준이 높은 ARES-16 기관총으로 무장했다.
에드워드 팀은 두 팀으로 나누어서 페이만 박사의 동선을 파악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 감시했다.
그런데 그들이 작전을 시작한 지 불과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서 트럭 한 대가 그들이 정차해 있는 차량을 향해서 돌진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둔 ARES-16 기관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전쟁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이어진 사격에 달려들던 트럭 유리창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고, 운전사는 즉사했다.
하지만 그 트럭 뒤를 따라온 차량에서 반격이 이어졌다.
매캐한 총소리가 이어지면서 주변에는 비명이 이어졌고, 마치 국지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사건은 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