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윌리엄 부국장은 계속해서 조민호를 살피면서 머리를 굴렸다. 제임스와 에반을 통해서 우선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했다.
그런데 조민호가 일방적으로 나오면서 그럴 시간이 없었다. 스티븐 통해서 이미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갈팡질팡했다.
‘스티븐 말이 정말일까?’
설마 스티븐이 거짓말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상대는 정말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였다.
윌리엄 부국장 심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복잡했다.
다들 두 사람 역시 윌리엄보다는 조민호 눈치만 계속 봤다.
‘정말 파킨슨병을 치료할 수 있을까?’
***
미국은 모든 국민이 대상인 공적 의료보험이 존재하지 않는데, 따로 민간 보험에 가입한다. 다만 노인은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호 제도가 있다.
일정한 사회보장세를 낸 65세 이상의 노인의 경우에 의료보험을 받는다.
다만 이것도 사회보장세를 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고,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멜린 요양원 역시 미국 연방 정부에 의해서 의료보험이 지원된다.
시설은 다른 일반적인 요양원에 비해서는 수준이 월등하게 높다.
윌리엄 부국장은 CIA 소속이기에 자기 어머니를 이 멜린 요양원에 입소시켰고, 사소한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멜린 요양원 데스크에서 어머니 면회 신청을 하면서도 착잡한 심사를 떨치지 못했다. 비록 어머니 나이가 65세로 적지 않지만,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다.
조민호에 대한 프로필 따위는 이제 생각나지 않았고,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아내면서 힐끗 무덤덤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조민호 표정이 좀 이상했다.
의아해서 조민호 눈이 가는 방향을 쳐다보았는데, 마침 의사 한 명이 간호사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왔다.
자신의 어머니 소피아를 담당한 페이만 선생이었는데, 자신을 발견하자 가볍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어머니 병문안 때문에 오셨습니까?”
“아, 네. 오랜 만입니다.”
삼 개월 만에 다시 보게 된 페이만 선생은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름 파킨슨병 관련해서는 꽤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파킨슨병 연구를 위해서 이곳 멜린 요양원에서 환자를 치료했다.
그런데 조민호 표정은 흥미로운 눈길로 페이만 선생을 묘하게 계속 살폈다.
제임스가 반사적으로 두 사람 대화를 통역해주었고, 윌리엄은 간단하게 세 사람을 소개했다.
“제 직장 동료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제임스나 에반은 반사적으로 악수했고, 조민호 역시 비슷했다.
‘오염도가 91%라, 나찌 전범이라도 되는 건가?’
잠재 선천지기는 높을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지만 오염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것은 삶의 지표와 관련이 있어서 외부 기운에 대한 필터링 기준이다.
정신 장벽이 높을수록 오염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설사 오염도 수치가 높다고 해도 상황에 따라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90%를 넘겼다는 이야기는 오직 악으로만 뭉쳐 있다는 의미다.
‘잠재 선천지기도 80잖아. 조금 황당한 수치군.’
제임스, 에반, 윌리엄 세 사람은 CIA 요원답게 의아한 눈으로 페이만 선생을 살폈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
멜린 요양원 면회는 그렇게 엄격하지는 않았다. 면회실에는 요양원에 입소한 부모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고,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윌리엄 역시 페이만 선생과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파킨슨 유전자의 돌연변이 일부는 현재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주로 환경적인 스트레스가 그 원인이라 추정될 뿐입니다.”
“파킨슨 유전자 돌연변이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는 겁니까?”
“제가 아는 리즈 박사님 연구에 따르면 도파민성 신경세포 기전에서 신경퇴행성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을 발견했습니다.”
다만 페이만 박사의 주장은 이것이 신경세포사를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인지 아니면 간적접인 원인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저 가능성을 내세울 뿐이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제임스는 옆에서 조민호에게 통역을 해주었지만, 전문적인 용어가 들어가서 버벅거렸다.
조민호는 별다른 대답 없이 그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기만 했다.
윌리엄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조민호 표정을 보자 굳이 페이만 박사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조민호는 페이만 박사가 떠나기가 무섭게 소피아 경맥을 확인했다.
‘역시 그놈들이군.’
소피아 뇌경맥에 남아 있는 흔적은 안산 병원 환자의 경우와 많이 닮았다.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안산 병원 프로그래밍 수준이 오히려 더 발전되었다.
소피아 파킨슨병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병이 아니라 뇌조작 프로그래밍 장비에 의한 부작용이 더 정확했다.
‘하긴 뇌세포 손상이 많아질수록 더 빨리 뇌가 망가지겠지. 거기에 약물 부작용 역시 빼놓기 어려워.’
조민호는 슬쩍 면회실 주변을 살폈고,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확인했고, 선천지기를 레이더처럼 주변에 흩트렸다.
방사되어서 퍼져 나간 선천지기에 간섭을 주는 신호가 꽤 존재했다. 보이는 CCTV말고도 숨겨진 CCTV 장비가 적지 않았다.
‘역시 신체 외부에서도 적용되는구나.’
아쉽다면 외부로 나간 선천지기는 너무 빨리 사라졌다.
그는 마치 가족처럼 소피아 손을 잡은 채 경맥을 다시 확인했다.
윌리엄은 영문을 몰랐지만, 눈치 빠르게 내색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
윌리엄은 달랑 소피아 손을 몇 번 잡고 나서 면접실을 나서는 조민호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차 안에 탑승하자 결국 질문했다.
“왜 그런 겁니까?”
다른 두 사람 역시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민호는 윌리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렇다고 그 비밀 조직에 대해서는 말할 수도 없었다. 윌리엄 부국장은 과연 그들을 파헤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다른 근육 덩치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 치료 역시 문제였다.
치료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문제는 멜린 요양원에 있는 자들이다. 특히 페이만 선생 경우는 한국의 경우와는 또 달랐다.
‘분명히 관련이 있어. 그래서 섣불리 손을 대기도 힘들어.’
“저기 조민호씨.”
“조용 좀 해봐요.”
“네?”
“나도 머릿속을 좀 정리해야 하니까. 질문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네.”
세 사람은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제임스와 에반은 이 무슨 귀신 놀음인가 싶어서 윌리엄 부국장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윌리엄 부국장은 다년간의 CIA 조직 경험 때문인지 눈치가 빨랐다.
***
조민호는 다행히 인내를 한 채 묵묵히 기다리는 윌리엄 모습에 감탄했다. 그는 안가에 도착할 때까지도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 역시 답답한 듯 보였지만 여전히 침묵했다.
그는 윌리엄 부국장 태도에 특히 만족했다. 솔직히 이 소피아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페이만 박사가 만약 소피아와 관련이 있다면 그 멜린 요양원 자체가 이미 소피아를 감시했다.
그런데 페이만 박사가 윌리엄 부국장과 이상할 정도로 친근하게 행동한 것 역시 그저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윌리엄은 CIA 중동 책임자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용하려고 한 거겠지.’
“소피아씨가 언제부터 파킨슨병이 시작된 겁니까?”
“7년 전에 당한 교통사고 때문입니다. 저희 아버님도 그때 같이 사망했습니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남의 가족사를 파지 않겠지만 조민호는 집요했다.
“교통사고 후에 바로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아, 그건 아닙니다. 사고 후에 가벼운 수술을 받았지만 그때는 멀쩡했습니다.”
“그리고요?”
“네?”
“정확히 언제부터 파킨슨병 증상이 나타난 겁니까?”
그제야 심상치 않은 질문에 윌리엄은 지난 일을 곰곰이 떠올렸다.
“아, 참 수술 후에는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한 달 정도 입원했는데, 막 퇴원할 시점부터 성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밀 검사 때문에 병원에 더 입원해 있었고, 그다음에 더 나빠졌군요.”
“네. 담당 의사 말로는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때는 그저 나이 때문이라고 판단했습니다.”
‘7년 전이라면 문제가 좀 심각하군.’
영원히 혼수상태에 빠질 뻔했던 조민호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는 운 좋게 그놈들 꼬리를 잡았지만, 이 일이 생각한 것보다는 복잡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리엄 부국장 같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한국은 검찰총장과 대법원장에게 손을 써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미국 경우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다.
만약 CIA나 FBI 핵심 고위직에도 몇 년 전부터 그들이 손을 썼다면 자칫하면 최악에 조민호 자신조차 위험해질 수가 없었다.
다행이라면 제임스와 에반 경우는 윌리엄과는 좀 달랐다.
조민호는 고민하다가 결국 파킨슨병은 유전적인 소인이 있다고 핑계대면서 세 사람 경맥도 확인했다.
약간 머뭇거리기는 했지만, 딱히 손목만 잡는 모습을 본 터라 세 사람은 긴장하지 않았다.
강화된 김미애 혼원기를 사용해서 세 사람에게 손을 썼다.
“오늘은 시차 문제 때문에 쉬었으면 합니다. 치료 문제는 내일부터 이야기하죠.”
괴상한 행동 때문에 조민호를 쳐다보던 윌리엄도 화들짝 놀랐다.
“가, 가만 그러면 제 어머니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문제가 좀 있습니다.”
“설마 치료가 안 된다는......”
“파킨슨병이 문제가 아닙니다. 소피아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마치 깨진 병처럼 생명력이 계속 빠져나오는 상태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임스도 통역을 해주었지만 무슨 말인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했다.
조민호는 곤혹스러워서 비유적으로 설명해주었다.
“인간의 생명력을 하나의 병으로 생각할 때,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그 생명력이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노화가 진행될수록 이 병에 금이 조금씩 갑니다. 결국, 그 틈이 크게 벌어지면, 생명력이 다 소진됩니다. 보통 죽음이라고 합니다.”
“설마 그 말씀은......”
“네. 소피아 수명이 그렇게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태에서 자칫 손을 잘못되면 그 금이 더 빨리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민호 진단에 윌리엄을 뻘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그는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어서 몸을 빙글빙글 돌면서 숨을 헐떡였다.
조민호도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
안가를 나서는 제임스는 말도 안 된다고 토로하면서도 결국 눈물을 글썽이는 윌리엄 부국장을 보자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습니까?”
“너라면 멀쩡하겠어?”
“그것은 아닙니다만 정말 저 조민호란 친구 말을 믿는 겁니까?”
“나도 자세히 몰라. 아는 지인 통해서 소개받은 것뿐이니까.”
하지만 차에 시동을 걸면서 결국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에반은 다른 의견을 내세웠다.
“지금 와서 말하지만 부국장님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소피아 건강 상태가 최근 와서 나빠진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냐, 절대로 아냐. 그럴 리가 없어!”
“후유.”
자기 형 상태를 떠올린 에반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조민호란 친구가 왜 페이만 선생을 이상한 눈으로 봤을까요?”
제임스 역시 슬쩍 화제를 돌렸다.
“나도 그건 좀 이상하더라. 우리를 바라볼 때와는 눈빛 자체가 달랐어. 그 시선이 마치......아, 그래, 혐오 서러운 인간을 볼 때의 눈빛이었어.”
윌리엄 부국장도 그제야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음 만난 사람인데, 마치 혐오스러운 동물을 보는 것처럼 봤으니까요. 우리 두 사람을 볼 때 조민호 그 친구는 그런 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허, 그 친구가 무슨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란 소리를 하는 건가?”
“그건 아니겠죠. 정확히는 혐오스러운 인간 보듯이 페이만 선생을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페이만 선생이 무슨 괴물로 본 거죠.”
그제야 에반도 손뼉을 쳤다.
“확실히 페이만 선생은 마음에 안 듭니다. 전 윌리엄 부국장님이 왜 굳이 그런 사람에게 소피아를 맡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파킨슨병에 대한 전문가잖아!”
“글쎄요. 페이만 선생이 담당했던 환자 중에 죽은 사람이 적지 않은 걸로 압니다. 노환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숫자가 만만치 않습니다.”
“이봐, 에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저도 조민호란 그 친구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페이만 선생 주변에 이상한 이야기가 나돈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조민호 그 친구가 페이만 선생을 본 것은 딱 오늘 하루였는데, 어떻게 그걸 알아본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