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현대 의학 수준을 가볍게 넘은 의문을 의료 장비와 막대한 자본을 가진 이들이라면 이들이 미국 정치에도 관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 얼마나 광범위할지 알 수도 없었다.
조민호조차 부담스러워서 안산 병원 내부에 관해서 추가적인 조사를 자제했다.
대신 그가 취한 것은 큰아버지 통해서 국외 투자 명목으로 최영민 사장이 책임진 경비 회사에 1,000만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다.
최영민 사장은 이 자금으로 괜찮은 사무실 빌딩과 인원을 십여 명 더 보강했다.
조민호는 역삼역 근처의 4층 빌딩과 장혁을 위시해서 전 국정원 요원으로 가득한 훌륭한 인적자원에 꽤 만족했다.
“괜찮네요.”
최영민 사장은 갑작스러운 조민호 행보에 곤혹스럽기만 했다.
“일단 원하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많은 인원이 필요하겠습니까?”
“그자들을 상대하면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까?”
“그렇지만 어차피 그들을 처벌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을 추적하는 인원이 필요합니다. 자본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필요하다면 더 인원을 늘리세요.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쪽으로 보낼 테니까.”
이미 조민호가 재벌 3세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천만 달러를 그냥 막 던지는 모습에 최영민 사장도 꽤 당황했다.
“하지만 저렇게 많은 돈을 사용해도 괜찮겠습니까? 조수현 회장이 만약 이 일을 알면.......”
“알면 걱정하겠지만 굳이 알릴 이유는 없습니다. 제 돈입니다.”
“네? 저, 정말입니까?”
페이퍼 컴퍼니에 조 단위의 돈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제 걱정 말고, 사장님 일이나 신경 쓰세요. 그 자들은 생각한 것보다 더 위험한 자들입니다. 제가 굳이 손을 쓰지 않고 내버려둔 것도 머리를 노리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만 봐도 알겠지만 성급하게 나서면 안 됩니다. 한국에 들어온 조직이라고 해봐야 전부 장기말에 불과하니까요.”
“주의하겠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지켜보기만 해야 합니까?”
“일단 놈들의 정체가 뭔지 찾아봐야죠. 저렇게 황당한 능력을 관리하려면 전문 인력과 막대한 자본이 필요합니다. 그런 능력을 갖춘 국가는 딱 하나죠?”
“미국 말씀이군요.”
“네. 전 미국으로 바로 떠날 테니까, 필요하다면 김정환 부장검사 도움을 얻어서라도 놈들의 흔적을 은밀하게 추적하세요.”
“네.”
***
파킨슨병은 제임스 파킨슨이 1817년에 불수의적 떨림에 대해서 학계에 보고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병은 나이가 들면서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 신경세포가 손실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에 전형적인 증상으로 손이나 다리를 계속 떨고, 몸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
조민호는 로버트 힐 도움을 얻어서 불과 일주일 만에 나온 비자와 여권을 가지고 뉴욕행 비행기에 탔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 파스킨 병 관련 자료를 하나씩 살피기 시작했다.
‘문제는 뇌 신경세포란 이야기군. 결국 언어 장애에 효과가 있는 배효진 혼원기가 효과가 있다고 봐야 할까?’
스티븐 통해서 갑자기 들은 파킨슨병에 대해서 계속 자료를 살폈고, 문제의 핵심은 역시 도파민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다행히 이 병에 치료 효과가 있는 레보도파가 있었는데, 파킨슨병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약물로, 가장 효과가 좋았다.
문제는 이 레보도파 효과가 3년 정도 증상 효과가 있을 뿐. 이 기간을 지나면 다시 이상운동증과 같은 후기 합병증이 나타난다.
그는 결국 자기 몸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으로 오성 바이오 박재희 박사에게서 챙겨온 레보도파 알약 5개를 꿀꺽 삼켰다.
도파민 관련 약을 섭취해도 뇌까지 전달되기는 어렵지만, 레보도파는 BBB(Blood Brain Barrier) 방식으로 뇌까지 전달한다.
조민호는 족양명위경의 두유, 하관 맥을 하나씩 짚어서 약효를 더 강화했다.
레보도파는 천천히 뇌 속으로 파고들어서 뇌세포에 영향을 주었고, 그 떨림은 선천지기를 통해서 미세하게 외부로 흘러나왔다.
이 섬세한 선천지기 흐름은 과거 전성기 시절의 조민호라고 해도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선천지기를 통해서 임독양맥을 타통한 조민호는 그 변화를 눈으로 보듯이 확인했다.
‘이거였군.’
문제는 역시 이 레보도파가 올리브핵, 뇌교, 소뇌, 척수에도 영향을 줬다.
‘이게 운동 이상증 부작용이군.’
하지만 강화된 선천지기는 레보도파의 움직임을 서서히 봉쇄한 채 압력을 가했다. 불과 10초가 지나지 않아서 그 성분은 다 가루가 되어버렸다.
‘이런.’
조민호는 예상보다 더 빠른 레보도파 사멸에 인상을 찡그린 채 다시 알약 10개를 꺼내어서 한 입에 다 털어넣었다.
이번에는 반응이 더 빨랐다. 선천지기는 마치 학습 경험이라도 있는 것처럼 뇌 입구에서 이 성분을 다 태워버렸다.
‘흠.’
조민호는 결국 혀를 차면서 다시 레보도파 30개를 탈탈 털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오십 대 후반의 남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알약을 살폈다.
“당신 미쳤습니까?!”
“네?”
“이거 레보도파 아닙니까. 이걸 그냥 막 먹으면 혼수상태로 죽어요!”
‘괜찮은데?’
“어, 그런가요?”
“저 의사입니다. 여기 신분증 보세요. 도대체 비행기 안에서 이게 뭡니까.”
“흠.”
결국 완고한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약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을 권대훈이라고 밝힌 의사는 잔소리를 한동안 늘어놓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그 젊은 나이에 파킨슨병은 아니겠죠?”
“아닙니다.”
“아니 그러면 왜 그 약을 그런 식으로 먹는 겁니까. 그 약은 부작용 때문에 도파민 효현제가 더 많이 사용됩니다. 아니면 다른 콜린성 약도 나름 괜찮습니다.”
“그것도 치료제는 아니죠.”
“아, 그렇죠. 현재까지 효과가 있는 파킨슨병 치료제는 없죠.”
뉴욕에서 열리는 학술 대회 때문에 이 비행기에 탑승한 권대훈 선생은 생각보다는 입이 가벼웠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마치 조민호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 같았다.
“잘 알겠습니다.”
“젊은 사람이 그러면 안 됩니다. 앞길이 구만리지 않습니까. 그리고 레보도파는 자살용 약이 아닙니다.”
“네.”
그는 지겨운 소리에 결국 눈을 감은 채 조금 전에 파킨슨 혼원기 특성을 떠올렸다. 다소 부족하지만, 그럭저럭 구조를 기억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어.’
***
권대훈 선생은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어서인지 뉴욕 공항을 나설 때도 계속 조민호 옆을 따라붙으면서 이런저런 인생 조언을 해주었다.
나름 조민호를 위한 진심어린 충고라서 조민호도 마지못해서 들었다.
다행히 뉴욕 공항 앞에는 조민호를 이미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2m가 좀 안 되는 흑인은 마치 프로 복싱 선수 같은 근육 장갑으로 무장해서인지 공항을 지나가는 여행객은 다 슬그머니 피했다.
조민호는 자기 이름 팻말을 들고 있는 흑인에게 다가가면서 권대훈 선생에게 고맙다는 말만 남겼다. 권대훈 선생은 흑인 덩치에 슬그머니 물러나고 말았다.
제임스란 이름을 가진 흑인은 전직 CIA 출신으로 지금은 PMC에서 일했다. 그는 뜻밖에도 한국어를 제법 했다.
“윌리엄 중령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대기한 차에는 제임스 못지않은 덩치가 운전했는데, 계속 기웃기웃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색다른 두 사람 모습에 흥미로운 눈길로 그들을 감상했다.
‘육체 스탯이 25는 넘는군. 역시 근육맨의 한계일까?’
제임스 스탯은 평균적으로 25 정도였고, 앞에 운전하는 에반은 제임스 스탯보다는 2 정도가 높았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문득 두 사람 스탯을 감상하면서 새삼 휘트니나 스티븐의 스탯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이게 정상이지.’
두 사람은 의외로 과묵해서인지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은 채 뉴욕 시가지가 아니라 외각을 살짝 벗어나기 시작했다.
약간은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조민호는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염도가 생각보다는 낮아. 이 정도라면 믿을만한 친구들이야. 윌리엄 부국장이란 사람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
제임스는 도대체 윌리엄 중령이 왜 동양 친구를 유심히 살피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묵묵히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는데?’
윌리엄 중령 이야기로는 조민호란 친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확실히 자기 덩치로 무언의 압력을 넣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점은 독특했다.
심지어 여유로운 표정으로 무려 알약 40개를 한 번에 삼키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게 뭡니까?”
“약입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약이기에 그렇게 먹습니까?”
아직 파킨슨병에 대해서 아직 감을 못 잡은 조민호는 혀를 찼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 그건 아니지만......”
치료사라고 들었는데, 마치 마약 중독자처럼 알약을 삼키는 모습을 본 제임스도 다소 실망스러운 눈으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
세 사람이 탄 차량은 한 저택 주차장 앞에 조용히 정차했다.
조민호는 차량에서 내리자 에반 안내를 받아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는 대략 50평 정도로 넓었는데, 뒤쪽에는 수영장까지 있었다.
제임스나 에반은 전직 CIA 출신 답게 말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멀뚱멀뚱 조민호를 쳐다보다가 윌리엄에게 전화했다.
윌리엄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두 사람은 툴툴거렸다.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한 채 냉장고를 열어서 맥주 하나를 꺼내서 가볍게 마시면서 TV 앞에 앉았다.
서먹서먹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원래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조민호는 딱히 별 다른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말이 별로 없던 두 사람이 오히려 불편했고, 결국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정말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할 수 있습니까?”
“아마도.”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파킨슨병 치료제도 없고, 수술로도 소용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믿지 마세요. 그 보다는 윌리엄씨 입이 가볍나 봅니다. 보안을 유지해달라고 말했는데, 당신에게 말하는 것을 봐서요.”
곤혹스러운 제임스는 툴툴거렸다.
“제 아버님도 파킨슨병입니다.”
“그래요?”
“저기 에반의 형도 같은 병입니다. 파킨슨병 모임에서 만났습니다.”
세 사람은 CIA에 있을 때 가족 중에 한 사람이 파킨슨병으로 고통받는 공감대 때문에 서로 친해졌다. 에반이나 제임스는 막대한 병원비 때문에 결국 CIA를 그만두고, PMC에 들어갔다.
조민호도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좀 다른 사연에 다시 알약을 꺼내서 이번에는 50알을 한 번에 꿀꺽 다 삼켜버렸다.
다행이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몸속으로 파고든 레보도파는 뇌를 가까스로 통과했지만 중간마다 그 약효는 선천지기에 희석되어서 다 죽어갔다.
그래도 무려 50알이나 되는 약력은 계속해서 퍼져서, 가까스로 목적지에 도달했다.
선천지기에 의해서 강화된 면역력이 마지막까지 버티는 레보도파 약효를 산산조각내기는 했지만 선천지기 변화는 다행히 남았다.
조민호는 선천지기 혼원기 특성을 완벽하게 기억했다.
‘성공이군.’
하지만 한 편으로 혀를 차고 말았다.
선천지기 힘이 생각보다는 더 무서웠다.
‘이 정도면 만독불침과 격이 전혀 달라.’
이미 현경에 올라서 만독불침을 경험해봤던 조민호도 지금 자기 몸에 일어난 황당한 변화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
그는 뒤늦게야 자신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냥 약 먹은 겁니다.”
“괘, 괜찮습니까?”
“네.”
윌리엄이 막 거실 안으로 들어오기가 무섭게 조민호 앞으로 다가가면서 영어로 말했고, 조민호는 난 영어 몰라요라고 짤막하게 말하자 제임스가 결국 나서서 통역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마중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는 힐끗 윌리엄 부국장을 이리저리 품평하기 시작했다.
‘실망이군.’
물론 스티븐 기준으로 해서다. 잠재 선천지기는 80 정도로, 오염도는 불과 5%를 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무난한 편이다.
다른 두 사람 역시 잠재 선천지기가 60정도에 오염도 5% 내외였다.
이들 세 사람은 특성 자체가 비슷해서 서로 잘 어울렸다.
조민호도 CIA 조직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 사람은 나름 괜찮았다. 스티븐이 아마 그런 점을 감안해서 소개해준 것이다. 이 정도라면 시작으로 딱 좋은 상대다.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었다.
“환자는 어디 있죠?”
“벌써 환자를 보시려고요? 일단 시차 적응 문제도 있으니, 하루 정도는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아직 파킨슨병 환자를 경험해보지 못한 조민호는 입장이 좀 달랐다.
“확인을 먼저 해보고 싶습니다.”
“으음, 뜻이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가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