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
눈치 빠른 박진민은 앞으로 직장 상사가 될지 모르는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민호야, 혹시 너희 큰아버지에게서 돈 받아서 에플 주식도 샀어?”
‘어, 낸 돈으로 투자했어.’란 말까지는 굳이 하지는 않았다.
“어, 그건 아냐.”
하지만 예민한 박진민은 조민호 트레이드 마크인 냉커피를 홀짝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가만 그건 아니라는 소리는 저건 했다는 소리로 들리네.”
나름 눈치 본다고 말조심하면서도 집요한 박진민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글세.”
마침 뉴스에는 에플 주가 소식을 전하면서 그 투자자 중에 한 소식을 전했다.
[얼마 전에 에플 펀드를 만들어서 투자한 미래 증권 창구는 입소문이 난 덕분에 투자자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뉴스 화면에는 미래 증권 건물 입구에 길게 늘어서 있는 투자자의 진풍경이 뉴스 화면을 가득 채웠다.
인터뷰를 했던 투자자 몇 사람은 발을 동동 굴렀다.
[제가 미친놈이었습니다. 박희관 부장이 그렇게 추천하던 에플 펀드를 무시했으니 말이죠. 이번에 3억은 벌 기회였는데, 에휴, 정말 속상합니다.]
후회를 하는 투자자는 뜻밖에 많았고, 그들 대부분이 미래 증권 앞에 길게 줄을 선 이들이었다. 물론 소문 듣고 찾아온 투자는 더 말할 것이 없었다.
부동산 투기꾼을 방불케 하는 이 모습은 한국에서는 보기가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펀드가 막 찍어서 나오는 것도 아니라서 미래 증권 담당자도 크게 당황했다.
인터뷰 기자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실을 전했다.
[에플 주식 매입과 관련되는 에플 펀드에 미래 그룹이 투자한 금액만 무려 7억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무려 17억 달러 수익을 올렸다는 의미입니다.]
천문학적인 투자 이익에 박진민과 김영탁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두 사람 역시 휘트니 펀드로 짭짤한 수익을 벌었지만 에플 펀드 수익이 그들 상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미, 민호야, 저게 무슨 소리야?”
“휘트니 펀드처럼 에플 펀드 만들어서 투자했다는 소리잖아. 결국 운 좋게 이익도 좀 보고.”
“그, 그러면 너도?”
‘페이퍼 컴퍼니 명의로 투자했어.’란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내 명의로 된 돈은 얼마 없는데, 무슨 투자를 하겠냐?”
“아쉽겠다.”
“괜찮아.”
두 사람은 뒤늦게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인터넷으로 미래 펀드를 확인하면서 탄성을 계속해서 터트리고 말았다.
조민호는 정신없는 두 녀석 모습에 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아스트라 제약 말고도 분명히 여러 곳이 관련된 것 같은데, 일단 메틸클린으로 이놈들을 크게 한 번 흔들어야겠어. 그러기 위해서 미국 내부에도 손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역시 스티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겠어.’
***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미 췌장암 혼원기 치료를 통해서 세뇌당하다시피 한 스티븐은 조민호 부탁을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했다.
워낙에 정신력이 강해서 노예 수준은 아니지만, 조민호에 대한 마음만큼은 남달랐다.
결국 고민을 한 끝에 스티븐이 한 것은 회사 홍보 차원에서 유명한 토크쇼를 이틀 단위로 나가면서 자기 자신을 광고했다.
특히 기적적인 췌장암 치료에 대한 과장광고를 남발했다.
자연스럽게 스티븐이 별로 참여하지 않던 워싱턴 파티도 자주 찾아다녔다. 그는 특히 스탠포드 동문회 모임에서 조민호 입맛에 맞는 FDA 책임자나 CIA 중간 고위 관료를 살폈다.
중동 지역 CIA를 책임진 윌리엄 부국장도 처음에는 스티븐 췌장암 때문에 그와 사담을 좀 더 길게 나누었다.
“정말 이번에 표적치료제를 통해서 췌장암 완치가 된 겁니까?”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네?”
그는 황당한 윌리엄 부국장 팔을 잡고 파티장을 끌고 나왔고, 조용한 정원 쪽으로 가서 은근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도 윌리엄이 CIA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거 압니다. 아, 래리 통해서 들은 것이니, 너무 의심하지 마세요. 우리 미국을 위해서 노력하는 애국자를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니까.”
“아, 네.”
예상치 못한 스티븐 반응에 윌리엄도 괜히 다시 파티장으로 갈까 싶었다. 그런 그도 에플의 스티븐을 무시할 수는 없어서 눈치만 봤다.
스티븐은 잠깐 정색한 채 정원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나무를 힐끗 쳐다보았다. 바람에 잎이 휘날리는 나무는 파티장에서 나오는 불빛이 달빛과 어우러져서 멋진 광경을 자아냈다.
“아주 좋습니다. 이렇게 다시 살 수 있다는 거 말입니다. 하루하루 죽음을 앞에 둔 경험을 해보지 않았다면 이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윌리엄도 정색했다.
“제가 시간이 없습니다. 혹시 회장님 췌장암 치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까요?”
스티븐도 어떻게 말을 할까 하다가 간단하게 입을 열었다.
“전 표적 치료제 따위로 치료받은 것 아닙니다. 한국의 한 치료사 통해서 췌장암을 완치한 겁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죠.”
“네?!”
눈이 동그랗게 변한 윌리엄은 스티븐이 술이 너무 취했다고 생각하자 그의 팔을 잡아서 파티장으로 다시 끌고 가려고 했다.
“파킨슨병.”
“!”
윌리엄도 자기 어머니가 걸린 병을 상대가 알고 있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오늘 동문회에 참석한 이들 중에 아는 이는 없었다.
“설마 저를 조사한 겁니까?”
“윌리엄 지인인 루벤에게 들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윌리엄을 조사했다기보다는 난치병이 걸린 사람을 확인 중에 찾았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양손을 쫙 펼친 스티븐은 마치 마법사라도 된 사람처럼 소리쳤다.
“설마 췌장암이 파킨슨병보다 치료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까?”
“그거야......”
“네, 이번에 윌리엄 부국장님에게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사랑하는 어머님 병을 반드시 치료하고 싶으시겠죠. 한번 잘 생각해보시고, 연락을 주세요.”
윌리엄은 자기 할 말만 다하고 사라지는 스티븐 뒷모습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어머니와 관련된 일이라서 석연치 않은 스티븐 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무래도 한 번 조사는 해봐야겠어.’
***
미국이 3년 동안 이라크를 공격한 동안에 약속한 대량살상무기 제거는 고사하고, 이라크인에게 자유조차 주지 못했다.
이 일에는 CIA 역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다.
“이봐, 윌리엄 부국장,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네?”
국무부 장관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고, 지난 이라크 3년에 대해서 질책했다.
“부시 대통령님의 약속은 이제 부도난 어음이 됐고, 중동 모든 국가가 다 비웃고 있어. 최소한 저항 세력은 정리했어야 할 것 아냐. 어떻게 우리 미군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어. 그게 모두 CIA가 일 처리를 개떡같이 해서잖아!”
“이번에 중국을 중동에 끌어들이려고 했는데, 갑자기 보시라이가 사망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습니다. 거기에 러시아는 저희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탐욕스러운 중국을 끌어들여서 중동 갈등을 부추기려 했다. 중동 갈등이 혼탁해질수록 미국이 명분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시라이 사망이 암살인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이미 CIA 중국지부에서 여러 차례 검증을 거쳤기에 그 이야기는 쑥 들어갔다.
“빌어먹을!”
고개 숙인 윌리엄은 슬쩍 나 몰라라 하는 CIA 국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레이즈 CIA 국장은 윌리엄이 중동 문제 전문가라는 소개만 해놓고 나서는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번 이라크 사태에 관한 책임은 모두 윌리엄에 있다고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개새끼.’
미 국무부 내의 대회의실에 참석 자격도 없는 윌리엄은 사방에서 자신을 씹어대는 공격에 그저 고개를 숙였다.
아예 작정하고 자신을 토사구팽하려는 술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흥, 이대로는 못 죽어.’
“전 이미 이라크의 경제적인 안정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동 석유 이권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심심하면 책임자가 죽어나는데, 일을 어떻게 진행합니까?!”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국가 내의 반미 인물 암살을 통해서 갈등을 부추겼다. 그 덕분에 중동 국가가 석유 패권을 잡지는 못하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부분 중동 국가가 미국에 대한 불만이 급증했다.
“거기에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고 전 몇 번이나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기를 부추겨야 무기를 더 팔아먹을 수 있다고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미국 방산업체에서 다들 막대한 로비를 받은 이들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결국, 회의는 늘 평소와 다르지 않게 끝이 나고 말았다.
***
윌리엄은 부아가 치밀어서 터질 것 같은 흥분을 쉽게 감추지 가까스로 참으면서 자기 책상 위에 서류 파일을 집어 던졌다.
그의 사무실 한쪽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던 전 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 톰슨은 깜짝 놀라서 눈치만 봤다.
“아, 미안.”
“일이 잘 안 풀리나 봅니다.”
“뭐 이라크 일이 늘 그렇잖아. 어차피 그 새끼들도 그 일이 끝날 거라고 생각 안 해. 중동 내부 갈등만 계속 일으키는 것이 목적이니까.”
“괜찮겠습니까?”
“그냥 그래. 조사 결과는 어때?”
“아, 그게 좀 이상합니다.”
로버트 힐 덕분에 앨리엇의 천문학적인 자본세탁 사건을 적발해서 CIA 내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는 CIA 부국장 윌리엄 밑으로 자리를 옮긴 톰슨은 파일을 꺼냈다.
최근 스티븐이 완치되기 전에 행적에 대한 자료였다. 스티븐 주변의 래리를 비롯해서 관련된 지인의 특이한 행동이 일목요연하게 잘 나와 있었다.
그런데 그 흔적은 스티븐에게 연결 고리를 만들어준 클라우드 회장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로버트 힐 대사로 이어졌다.
“로버트 힐 대사라면......”
“NSC에 있을 때 안면이 있는 분입니다.”
톰슨은 망설이다가 이번에 다른 서류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CIA 보안문서가 아니라 NSC 보안문서였다. 거기에는 중국 내의 특이한 몇 가지 사건이 있었는데, 류엔둥 손녀와 시진팡 딸의 치료에 대한 기록이었다.
“사실 이 사건은 저도 보시라이 주변에 얽힌 중국 안건이라서 보고를 받았지만, 그냥 덮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건도 난치병 치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료는 사람이 찾은 것이 아니라 NSC 컴퓨터가 자동으로 찾은 것이다. 당시 톰슨은 컴퓨터 알고리즈 오동작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막 찍은 잉크 냄새가 가득한 한국 내의 특이한 사건 파일을 마지막으로 테이블에 올렸다.
“세 가지 사건은 전혀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난치병이라서는 점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일어난 시간이 이상하게 비슷한 시간대입니다.”
“계속해봐.”
“저도 부국장님 지시를 받고 나서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는데, 조금 관점을 달리했습니다. 스티븐 회장같은 분이 거짓말할 리가 없습니다. 스티븐의 췌장암이나 휘트니 성대는 현대 의학으로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다면, 다른 난치병 환자도 가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톰슨은 결국 한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난치병 문제에 대해서 접근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스티븐의 제안을 잠깐 고민하던 윌리엄도 가볍게 생각했던 일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에 굳은 안색으로 서류를 살폈다.
“이걸 누가 또 아나?”
이미 관련 서류를 다 파기한 톰슨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현재는 저뿐입니다.”
“당분간 입 다물 수 있지?”
‘앞으로도 확인되기 전까지 입을 열 생각은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고맙네.”
“하지만 저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자네 동생이......”
“간암입니다.”
“그래. 확인이 끝나면 자네에게만큼은 알려주겠네.”
그는 톰슨이 나가기가 무섭게 파일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 하나씩 살폈다. 톰슨의 추리는 생각한 것보다 더 훌륭했다.
‘췌장암 치료는 불가능하겠지만 만약 췌장암을 완치할 수 있는 치료사가 정말 있다면 다른 난치병 환자도 치료해야지. 그렇다는 이야기는......’
서류를 하나씩 살피던 그의 눈은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 동그랗게 변했다.
그는 고민하다가 결국 스티븐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깐 만났으면 합니다.”
***
‘CIA 부국장이라면 좀 아쉽네. 스티븐의 잠재 선천지기에 비할 바는 아니잖아. 그래도 차악은 아니어도 차선은 되겠지.’
최영민 사장 통해서 계속 기묘한 집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조민호는 스티븐 연락에 탐탁지 않았지만 받아들였다. 부국장 정도라면 미국 내에 있는 이들 조직을 은밀하게 추적할 수 있는 적임자였다.
다만 무대가 미국이 되면서 다른 문제도 조금씩 고민했다.
‘CIA라고 해서 무조건 믿기는 어려워. CIA 내부에도 이자들이 엮여 있을 거야. 윌리엄 부국장부터 우선 조사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