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임독양맥마저 타통한 덕분에 날이 갈수록 힘을 찾아가는 조민호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는 최영민 사장 모습에 피식 웃었다.
“안산 병원에서 뇌사 환자를 상대로 뭔가 다른 엉뚱한 짓을 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렵게 장혁이 구해온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바로 안산 병원에서 나간 대형 화물 트럭 사진이었다.
안산 병원 사거리에 있는 한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특이한 광경이라서 찍은 사진에는 모두 20대의 화물 트럭이 안산 병원에서 뭔가를 실은 채 밖으로 나갔다.
이삿짐 마크가 달려서 겉으로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다.
“좀 빨리 발견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그게 개인 의료 정보를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다가 경찰, 검찰에 들통 납니다. 특히 조민호 이사님이 한국 병원에 입원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 시점은 일은 전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렇겠죠.”
조민호는 이전과는 달리 이 흥미로운 사태를 물끄러미 고민하다가 이제 오성 바이오 사외이사가 되면 매달 합법적인 월급을 받는다. 출처를 밝히기 어려운 1억씩 받은 현금 치료비를 떠올렸다.
“제가 5억을 줄 테니, 어떻게 해서라도 이 차량 흔적을 찾아보세요. 비록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움직였다고 해도 이 대형 트럭이 그냥 사라질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
돈이면 귀신이라고 부린다고 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수십 대의 대형 트럭 움직임이 그냥 사라질 는 없다.
최영민 사장 역시 조민호가 내놓은 5억 현금을 가지고 대한민국 전역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 장혁이 구한 사진이 실마리가 되었다. 차량 동선에 살던 주민의 증언과 경찰청 CCTV를 토대로 해서 결국 대형 트럭이 충주로 향한 흔적을 찾아냈다.
충주 주덕읍 외각에 위치한 송인요양병원이다.
이 병원은 최고등급인 1등급을 획득했는데, 의료 수준도 꽤 높았다. 요양병원 인증심사 27개 전 항목에서 최고의 점수를 받았다.
특히 지역 노인의료기관으로도 잘 알려졌기도 했다.
지상 7층, 지하 3층 건물로 주덕읍 주변에 사는 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졌다.
조민호는 최영민 사장 일행과 같이 이곳에 도착해서 병원 건물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번에 동행한 장혁은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면서 조민호를 살피기 여념이 없었고, 이지현은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특히 장혁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오직 조민호 모습만을 살폈다.
‘어떻게 된 거지? 그 살벌한 기운이 다 사라졌잖아?’
가끔 조민호 연락책으로도 조민호를 마주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조민호 모습에 장혁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선천지기가 100스탯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외부로 흘러나가는 기운을 차단한 결과였다.
조민호는 장혁은 힐끗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때요?”
“아직은 특별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료 장비는 찾았습니까?”
“보안이 생각보다 살벌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실망스럽군요.”
이미 송인요양병원을 탐색한 장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상 7층, 지하 2층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하 3층은 비상통로를 비롯한 모든 통로 경비가 삼엄합니다. 지문인식과 같은 장비보다는 오히려 경비가 주먹구구식으로 보안을 유지합니다. 무리해서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 사실이 금방 들통 날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이번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다른 이들에게 여기 대기하라는 명령만 내려놓고는 병원으로 향했다.
최영민 사장이 뒤를 따랐지만, 조민호의 냉정한 지시에 물러났다.
“여기 계세요.”
“아, 네.”
장혁은 두 사람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지현이 보다 못해서 툭툭 쳤다.
“도대체 뭘 하는 거야?”
“아, 그게 생각 중이야.”
당황한 최영민 사장도 힐끗 장혁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병원에 무슨 다른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 병원 문제가 아니라 조민호 이사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제가 이 병원을 찾은 것도 조민호 이사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죠.”
그는 조사를 명분으로 조민호 이사와 관련된 자료를 꺼내서 두 사람에게 내밀었다.
“뇌사에서 회복한 후에 조민호 이사 행동을 잘 보면 특이한 점이 많이 나옵니다. 그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는데, 병원 퇴원 후부터는 아주 달라졌으니까요.”
“......”
두 사람도 침묵한 채 세세하게 조민호를 분석한 자료를 살폈다. 그런데 최영민 사장은 혼원기에 동화되어서인지 일축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
“저도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의 본질은 결국 조민호 이사 그 자체입니다. 갑자기 뇌사 상태에서 회복한 것도 이상하지만 그 이후 조민호 이사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최영민 사장은 여전히 장혁 주장을 막았지만, 이지현이 다시 끼어들었다.
“조민호 이사의 변한 모습이 저 병원 때문이라는 소리야. 말이 안 되잖아. 병원에서 불법적인 실험을 자행해서 이상한 능력을 얻지 않고서야.”
푸념에서 나온 이야기를 장혁은 오히려 무덤덤하게 받았다.
“그렇지 않고야 병원 경비가 저렇게 삼엄할 수가 없잖아.”
“확실히 저 병원 경비가 좀 오버스럽기는 하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관련될까?”
“두고 봐야지.”
이지현 역시 장혁 주장을 무시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병원 안으로 사라지는 조민호 등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뭘 어쩔 생각인 걸까?’
***
보톡스는 운동 신경 말단부위에서 분비되는 신경신호 전달물질 아세틸콜린을 억제하는 보툴리눔 독소 A형이 상품화된 것이다.
뇌에서 근육에 지시를 내리면 분비되는 아세틸콜린이 신경말단과 근육사이 신호를 매개하면서 근육을 움직인다.
보톡스가 아세틸콜린 기능을 못하게 막아서 근섬유 위축을 이끌어낸다. 결국 근육은 자연스럽게 위축되면서 볼륨이 감소한다.
근육이 줄어들면 겉으로 봤을 때 얼굴이 갸름해진다.
조민호는 이 원리를 이용해서 선천지기로 아세틸콜린를 오히려 강화시켰다. 그의 뺨이 살짝 부풀어 오르면서 사각형으로 변했고, 눈둘레근 역시 마치 누구에게 맞은 것처럼 툭 튀어나왔다.
눈꺼풀이 쑥 들어가면서 휑한 모습으로 바뀌었고, 다른 얼굴 근육 부위 역시 조금씩 변해갔다.
살짝 고개를 숙였기에 그 변화를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병원 입구 앞에 도착해서 얼굴을 들었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조민호는 잠깐 병원 입구 유리를 통해서 변한 자신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현대 의학이 최고야.’
그 자신이 아는 역용술(易容術)은 후천지기도 많이 필요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보톡스 효과를 응용하는 방식이 오히려 별다른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췌장암 혼원기를 만들면서 신경전달물질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으면서 이미 몇 차례 실험해봤고, 그것을 이번에 응용했다.
‘재미있어.’
***
요양 병원 지하 1, 2층은 주차장이어서 적지 않은 사람이 오갔다.
몇 몇 급한 사람이 오가는 비상계단으로 내려간 조민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지하 3층 입구는 아예 경비가 따로 지키고 있었다.
조민호는 잠깐 고민했다. 무력으로 제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문제는 그렇게 했을 때 이 병원의 반응이다. 지금까지 이들 행동을 보면 아예 병원을 폐쇄할 테니까.
조민호는 결국 슬그머니 눈치를 보면서 오가는 사람을 하나씩 살폈다. 다행히 전탁환이라는 의사가 3층 밑으로 내려가는 것을 봤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전탁환 선생의 선천지기 오염도는 무려 90%로 상당히 심각했다.
‘연쇄살인마라도 되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저 정도가 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로서는 오히려 괜찮은 적임자였다.
다시 2층에서 기다렸다. 전탁환 선생은 30분 정도 지나자 허겁지겁 나와서 2층 비상계단을 정신없이 뛰어올라갔다.
이미 기다리고 있던 조민호는 전탁환 선생 옆으로 다가가서 툭 부딪쳤다. 그 충격에 전탁환 선생은 벽에 부딪혔고, 안경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아,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좀 보고 다니세요!”
주섬주섬 안경을 다시 낀 30대 후반의 전탁환 선생은 조민호와 키와 이미지가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각턱이었고, 눈을 제대로 감지 못해서 꼭 영구와 닮아서 웃음이 절로 나오는 인물이었다.
스스로 모습에 강박 관념이 심한 전탁환 선생은 조민호 미소에 버럭 소리치려고 했다가 다시 울리는 핸드폰 진동에 욕설을 내뱉으면서 다급하게 돌아섰다.
하지만 조민호는 슬쩍 소매치기한 그의 신분증을 주머니에 넣으면서 돌아서서 1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서 올라가면서 점점 그의 얼굴은 변해갔다.
턱이 옆으로 쭉 늘어져서 사각형으로 바뀌었고, 눈둘레근도 수축이 되면서 양 눈이 쑥 말려들어 갔다.
강직성 눈꺼풀 수축이 트레이드 마크인 전탁환 선생으로 변했다.
계단을 오가는 병원 간호사는 전탁환 선생에게 바로 고개를 숙였다.
“전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
인사를 한 간호사는 곧 고개를 갸웃했다. 조금 전에 일상복이 아니라 의사 가운을 입은 전탁환 선생을 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태스러운 전탁환 선생 성격을 잘 아는 터라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확신을 얻은 조민호는 오히려 당당하게 비상 계단을 따라 올라갔고, 숙직실에 굴러다니는 의사 가운 하나를 구해서 갈아입었고, 옷장 구석에 자기 옷을 당당하게 걸쳐놓았다.
거울을 통해서 미비한 얼굴 부위를 세심하게 확인했다.
‘여긴 보안이 꽝이군. 핵심은 역시 지하 3층이라는 소리인데......’
***
지하 3층 경비는 전탁환 선생으로 변한 조민호를 보자 마치 신병처럼 옆으로 비켜나갔다. 그들 역시 더러운 성격의 전탁환 선생에게 꽤 시달려서인지 별다른 대응은 없었다.
다른 의사는 최소한 기초적인 확인을 하는데, 전탁환 선생은 예외였다.
3층은 입구부터 마치 교도소처럼 밀폐된 방으로 다 분리되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역시 경비가 눈빛을 반짝인 채 주변을 감시했다.
현대 보안 설비가 아니라 경비 중심으로 한 독특한 보안 방식이었다. 오가는 의사는 일상이라서 크게 그들 모습에 개의치 않았다.
조민호는 그 의사들 틈 사이에 슬쩍 끼어들었는데, 다행히 그에게 말을 거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다들 피하기 급급했다.
‘역시 인물 선정을 잘했군.’
오염도 90%가 넘는다는 이야기는 사회 생활 기준으로 보면 암적 존재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조직을 해치는 기생충이었다.
이 전탁환 선생 마크를 잘 이용해서 지하 3층을 샅샅이 뒤졌다. 그런데 대부분이 의식을 차리지 못한 환자로 가득한 점만 빼면 특이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지하 4층도 있었다.
조민호는 전탁환 선생이 저 밑으로 내려갈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해서 슬그머니 그 옆으로 다가가서 경비 선천지기를 살폈다.
크게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연스럽게 경비를 지나쳐서 밑으로 내려갔다.
‘역시 오염도 90%야.’
하지만 그 역시 4층에 내려가서 통로를 걷다가 깜짝 놀랐다.
병실 안에는 괴상한 장비로 가득했고, 그 안에 환자가 하나씩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저게 뭐지?’
반쯤 오픈된 캡슐 형태 장비 주변에는 복잡한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옆에 일반적인 의료 장비가 놓여 있었다.
환자 바이탈 상태를 나타내는 LED는 계속해서 동작했고, 심전도는 실시간으로 체크되었다.
헬멧과 같은 장비를 착용한 환자는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
컴퓨터에 떠 있는 상태창은 이 환자의 모든 바이탈 신호를 기록하고, 저장했다.
어지간한 일에 놀라지 않던 조민호조차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장비를 살폈고, CCTV를 고려해서 환자 상태를 살피는 척하면서 환자 손목을 잡았다.
‘......이건 놀랍구나.’
김미애 혼원기는 뇌에 제한된 정보를 각인시키는 일종의 세뇌와 비슷하다. 다만 이 방식은 한계가 명확히 존재했다.
인간의 뇌는 너무 복잡해서 컴퓨터처럼 프로그래밍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괴이한 장비는 놀랍게도 인간의 뇌에 마치 프로그래밍하듯이 전자기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다.
조민호는 이 장비 동작이 마치 자신이 사용한 혼원기 세뇌보다 더욱 발전된 형태 방식이라는 것에 경악했다.
‘퍽치기가 결국 실험체를 확보할 목적이었다는 말이구나. 물론 세상 일이 우연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