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조민호는 한국대 도서관에 멀지 않은 소로 길옆에 나 있는 벤치에서 통곡하는 스티븐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죽음을 앞에 둔 스티븐은 생각보다는 더 많은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냈다. 그 울분을 이 자리에서 다 토해냈다.
래리는 착잡한 얼굴로 스티븐 등을 토닥이면서 위로해주었고, 통역하던 최영준 차장 역시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제까지 죽음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던 스티븐의 진짜 본 모습이 결국 이번 치료를 통해서 드러났다.
조민호가 결국 나섰다.
“아직 병원에서 확인한 것은 아니니, 정밀 검진부터 받아보세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하면 나중에 제 부탁이나 잘 들어주세요.”
“그건 당연한 말입니다. 치료비는 어떻게 할까요?”
부탁을 명분으로 치료비를 거절하려다가 따로 받는 것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그는 미래 증권 계좌를 내밀었다.
“투자 명분으로 이 계좌에 돈을 넣으면 될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투자한 회사를 파산시키고, 손실 처리할 테니까요.”
눈치 빠른 스티븐은 일종의 비자금 조성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자 곧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조민호는 보안을 위해서 슬쩍 래리와 악수하면서 혼원기를 투입한 후에 두 사람에게 따끔하게 대학 찾아온 것을 질책했다.
“지금처럼 앞으로 제 개인 생활에 끼어들면 곤란합니다. 정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여기 최영준 차장님에게 따로 부탁하세요.”
래리도, 스티븐도 뒤늦게 조민호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잠 속에 빠져들었던 스티븐과 치료 과정을 보지 못했던 래리는 겨우 한숨을 돌리고서야 조민호를 멍하니 살폈다.
그들은 뒤늦게 조민호가 어떻게 스티븐을 치료했는지를 떠올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일단 병원 가서 검진부터 받아 보면 알겠지.’
“저기 선생님, 치료 방법은 혹시 알 수가 없을까요?”
“당연히 안 되겠죠?”
“아, 네.”
조민호는 실망한 두 사람과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최영준 차장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정말 내가 그걸 말할 거로 생각한 것은 아니군. 래리 저 사람도 선천지기 특성이 나쁜 것은 아니니까. 문제는 없겠어.’
***
조민호도 딱히 스티븐 통해서 생색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메가 텔레콤 문제도 있고 해서 현실적으로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박희관 부장 보고 중에 흥미로운 사실도 알았다.
“퀼컴에서 로열티를 받는다고요?”
“최호영 사장 라인이 원래 FTRI 출신으로 퀄컴과 같이 CDMA를 개발한 적이 있고, 원천 기술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 FTRI는 퀄컴과 같이 CDMA 기술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이 CDMA 기술 개발 개발에 참여했다.
단순한 칩 개발을 포함해서 중계기를 비롯한 광범위한 기술 개발이었다. 이 과정에서 퀄컴은 CDMA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즉 퀄컴은 CDMA 기술료 일부를 이들 FTRI 개발자에 줘야 한다.
전혀 생각도 못 한 이야기에 조민호는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가만 그 기술 특허권을 메가 텔레콤이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까?”
“CDMA 사업부 매각에 그런 조건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설마 메가 텔레콤을 노린 것도 그 특허권 때문이었습니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박희관 부장도 꽤 놀라운 시선으로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했다. 특허권과 기술료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게 엮여 있었는데, 퀄컴에 대해서도 상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다.
“퀄컴 쪽에서는 기술료 비용을 줄이려고 하겠지만 만약 소송이 진행되면 퀄컴은 이기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번 일에 퀄컴도 관련이 있을 겁니다.”
“결국 메가 텔레콤이 살아남는다면 돈이 된다는 말이군요.”
“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스티븐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췌장암 때문에 말이 많죠. 췌장암이 간으로 전이된다는 소리도 있고, 스티븐 수명이 1년 남았다는 이야기도 돌고요. 혹시 이런 문제도 에플 주가에 영향을 줄까요?”
“당연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에 고개를 갸웃한 박희관 부장은 이 문제에 대해서 꽤 상세하게 입을 열었다.
에플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내부 분열, 실패한 제품, 스티븐의 퇴출이었다.
“비록 윈도우 때문에 맥킨토시 컴퓨터 점유율 하락이 되었지만 스티븐이 만약 에플에 있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겁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에플 주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븐이 회사 복귀 후에 에플 주가가 12월 저점을 지나서 반등을 시작했고, 아이맥이 성공하면서 주가는 상승 곡선을 타서 9달러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아이핏 대박 덕분에 10달러를 넘어섰지만 스티븐 건강 문제가 발목을 잡아서 횡보하는 상황입니다.”
“스티븐이 다시 에플을 떠나면 또 과거 같이 된다고 생각하는군요.”
“특히 췌장암 수술 후에 생존률이 극악해서 스티븐에게 거는 기대는 거의 없습니다.”
“만약 스티븐 건강이 회복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군요.”
박희관은 뜬금없는 조민호 농담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가능하다면 저는 전 재산을 에플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좋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