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그는 손짓에 맞은 편 자리에 앉은 스티븐 손목을 잡아서 우선 상태부터 확인했다.
‘오염도가 60% 정도이니, 실효 선천지기는 대략 649인가. 잠재 선천지기가 1,623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이런저런 사연이 많아.’
그리고 문득 오염도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르마 속에 담긴 의미를 토대로 스티븐을 물끄러미 쳐다본 조민호는 이 문제를 그냥 간과하지 않았다.
“왜 치료받고 싶은 겁니까?”
옆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두 사람의 반응에 당혹한 최영준 차장은 다급하게 스티븐 대답을 통역해주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세상이라......”
조민호는 눈을 감은 채 깊은 상념에 빠졌다. 그 역시 선천지기 흡수가 목적이었지만 1,600 단위의 잠재 선천지기 숫자에 고민했다.
‘이 사람이 우리 세상을 바꾸는 걸까?’
뒤늦게 요즘 한창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는 휘트니 뉴스를 떠올렸다. 그녀가 회복하면서 미국 음악계 역시 요동쳤다.
아마 이 스티븐은 그 휘트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스티븐 상태가 치료 못 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명이 대략 5년 정도 남았지만, 정상적인 생활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정도일 겁니다. 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그 시간 역시 적지 않은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압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스티븐은 조민호를 멍하니 쳐다보았고, 선문답 같은 대화를 번역하는 최영준 차장 역시 화들짝 놀랐다.
두 사람 대화를 전혀 이해 못 한 래리는 두 사람을 교대로 쳐다보기 바빴다.
조민호는 다른 두 사람을 힐끗 쳐다보았다.
“이제 어려운 대화도 필요 없으니, 두 분은 나가 계세요.”
눈치 빠른 최영준 차장은 계속 여기 남겠다고 우기는 래리 박사를 데리고 결국 거실을 나가려다가 힐끗 턱을 끄덕이고 있는 조민호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한 쪽에 누운 스티븐을 보면서 새삼 혀를 내둘렀다.
‘스티븐은 이미 한의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어.’
***
조민호는 잠결에 빠진 스티븐의 족태음비경 상의 지기, 음릉천, 혈해, 복결을 가볍게 지압하면서 췌장암 혼원기를 만들었다.
이 특성 혼원기를 혈액순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혈해를 통해서 주입한 후에 기다렸다.
이 기운은 족태음비경 경혈을 타고 흘러들어 가서 췌장암 조직으로 파고들었고, 자연스럽게 췌장암 암세포와 섞였다.
격렬한 전투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췌장암 암세포는 맹렬하게 싸웠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특성 혼원기가 나타났다.
마치 기다렸다는 사람처럼 그 뒤틀림을 하나씩 기억해서 왼손에 떠오른 특성 혼원기에 조금씩 반영해서 스티븐 혼원기로 만들었다.
‘예상대로 큰 차이는 없구나.’
하지만 만약 특성 혼원기를 만들지 않고, 혼원기로 치료하려고 했다면 결과는 생각보다는 좋지 않았다. 아무리 혼원기라고 해도 자칫하면 멀쩡한 세포 조직마저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췌장암 암세포를 완전히 녹여버릴 수는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설사 치료가 된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얼마나 선천지기가 소모될지 예상조차 어려웠다.
‘김정환 검사 치료는 운이 좋았어.’
췌장암의 원인 중의 하나인 EGFR 과발현 현상을 나타내는 ATP와 결합해서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췌장암 표적 치료제를 막아내는 저혈관성 문제를 일사천리로 녹였다.
IGF-1R의 억지는 마치 녹아내리는 듯이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K-RAS 유전자 돌연변이 인자는 단숨에 무너졌다.
신호전달체계에서 불량 깡패처럼 놀아나는 PI3K 체계 역시 저절로 바로 잡혔고, DNA 복구체제에 관여하는 PARP를 강화시켜서 회복을 더욱 가속했다.
췌장암과 발생과 관련되는 모든 신호 전달 체계는 스티븐 혼원기의 압력에 이제는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무릎 끊었다.
그다음은 막아서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스티븐 혼원기는 마치 아웃 토반을 질주하는 페라리처럼 달릴 뿐이었다.
다만 역시 중간에 뚝뚝 끊어진 경혈이 있어서 장애가 되었다.
그런데 이미 ADHD 60명의 환자를 일거에 치료하면서 경험은 얻은 조민호는 굳이 일일이 수술 때문에 문제가 된 조직에 내버려두면 저절로 치료된다는 것을 경험한 터라 손대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리겠군. 하지만 췌장암 혼원기를 사전에 고안하지 않았다면 고생 좀 했겠어.’
조민호는 드디어 기대하는 소식도 들었다.
띠링.
[선천지기 스탯이 +70올랐습니다.]
[상태창]
[이름] 조민호(25살), 무인(Lv.12)
[경험치] 4,276/40,960
[스탯]
[체력] 22, [근력] 23, [민첩] 22, [마기] 3
[후천지기] 69, [선천지기] 163, [정신] 1,283,234
선천지기 스탯이 단숨에 100을 돌파해서 163에 도달했다.
그리고 조민호는 자연스럽게 소주천에 들어갔다.
‘될 것 같아!’
***
조민호도 아직 제대로 소주천조차 하지 못한 것은 외부 대기는 너무 오염되어 있어서 이것으로 소주천을 하게 되면 마기가 조민호 몸속으로 파고들어 간다.
그런데 선천지기가 100 스탯 수치를 넘어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진다.
굳이 외부 후천지기를 이용해서 소주천 할 필요 없이 내부 선천지기를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다.
독맥 중에 하나인 장강을 시작으로 요유, 요양관, 명문, 현후, 척중까지 단숨에 정복했다.
몸에 부담을 주는 후천지기와는 달리 선천지기는 경혈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면서 물밀 듯이 흐르기 시작했다.
근축혈에 이르는 동안에도 부드러우면서 질긴 선천지기는 혈을 개통하는 것이 아니라 혈속에 녹아 흘러가기 시작했다.
선천지기가 외부 유통을 막고, 내부 경혈을 보호한 터라 그 가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지앙, 영대, 신도를 지나서 풍부, 뇌호까지 단숨에 도달했다.
강간, 후정, 백회, 전정, 신회를 막아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은교에서도 멈추지 않은 이 선천지기는 독맥을 단숨에 정복했고, 임독양맥 역시 별다른 고통도 없이 그냥 뻥 뚫어버렸다.
‘!’
충격적인 결과에 주화입마에 빠질뻔한 조민호조차 선천지기 기운의 제약 때문에 긴장했지만, 이 어이없는 결과에 혀를 내둘렀다.
‘선천지기가 이 정도였나?’
선천지기 자체가 자신의 신체 특성에 기인했으니, 소주천도 그 범주에 들어가서 강제로 뚫기보다는 녹여낸다는 식이다.
거기에 혈관 역시 이 선천지기가 보호해준 터라 상처는 없었다. 오히려 선천지기가 경맥을 자연스럽게 강화했다.
외부의 오염된 후천지기 역시 자연스럽게 선천지기가 정화해서 외부로 방출했다.
물론 과거 무림에서 현경의 극에 도달했든 깨달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띠링.
[상태창]
[이름] 조민호(25살), 무인(Lv.14)
[경험치] 15,276/162,840
[스탯]
[체력] 42, [근력] 43, [민첩] 42, [마기] 0
[후천지기] 39, [선천지기] 163, [정신] 1,283,234
‘오, 드디어 체력, 근력, 민첩 스탯이 올랐어. 진짜 영약은 영약이구나.’
다만 조민호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는데, 상태창의 변화가 고장난 패널 창처럼 너무 단순하다는 점이다.
‘왜 다른 능력은 스킬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일까? 매력과 같은 스킬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아. 뭔가 좀 이상하네.’
잠깐 상태창에 대해서 고민했던 조민호는 스티븐 카르마에 대한 염려를 바로 지워버리고, 괜찮은 다른 환자가 누가 있을까를 곰곰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티븐 인맥이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겠지.’
***
스티븐은 췌장암 수술을 받기 전에는 영양분 흡수 장애, 체중감소, 설사로 많은 고통을 받았고, 제대로 잠조차 자지 못했다.
수술 후에는 극심한 피로와, 호흡 곤란으로 고통받았다.
회의 중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그 회의는 가끔 중단되기도 했다.
이 문제를 경험한 에플 임원은 다들 스티븐 건강에 큰 우려를 드러냈고, 과연 회사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심지어 스티븐을 위기를 느낀 대주주는 이 명분을 이용해서 스티븐을 압박했다.
그런데 오늘 잠에서 깬 스티븐은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기억을 차분하게 떠올리면서 사회적으로 자신이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것까지 기억했다.
‘이상하네.’
스티븐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왜 자기 상태가 평소와 다른지 고민에 빠졌다.
피로, 통증, 오심도 사라지고 없었고, 오히려 지독한 허기를 느꼈다.
식욕 부진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스티븐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뒤늦게야 자신이 있는 곳이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곧 자신이 치료받으러 한국에 왔다는 것을 깨닫자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초췌한 안색의 래리가 TV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다가 스티븐 발걸음 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어, 스티븐?”
고개가 바로 돌아가는 래리.
이유는 어제까지만 해도 좀비와 같았던 래리 안색이 멀쩡한 사람처럼 변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여기 버티고 있던 최영준 차장도 뒤늦게 자신보다 더 건강해 보이는 스티븐을 보자 깜짝 놀랐다.
“모, 몸은 어때요?”
“최고입니다!”
스티븐은 생리학적으로도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하자 깜짝 놀라서 호들갑을 떨었다.
래리는 역시 스티븐 친구답게 정신없이 스티븐을 검사하고서야 혀를 내둘렀다.
“맙소사, 진짜 회복 중이야. 당장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해.”
하지만 스티븐은 이미 자기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깨달았다.
“선생님은 어디 있습니까?”
최영준 차장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던 공부 때문에 지금 도서관에 갔습니다.”
“당장 그분을 보고 싶습니다.”
“잠깐만요.”
최영준 차장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가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휴대폰 전원을 꺼 놓은 것 같습니다.”
“안내해주세요.”
그도 거절하려고 했지만, 허리마저 숙이면서 부탁하는 스티븐 요구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선글라스를 비롯한 간단한 요구만 했다.
“알겠습니다.”
‘스티븐이 유명하기는 하지만 설마 알아보기는 할까?’
***
조민호는 아침부터 옆에서 칭얼대는 두 사람 때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임독양맥을 타통한 덕분에 좋았던 기분은 사라지고 없었다.
“공부 좀 하자.”
하지만 이미 오성 바이오 기사 사진에 나온 박재희 박사 정체를 파악한 박진민은 평소와는 달랐다.
“이번에 찾아왔던 박재희 박사님은 췌장암을 비롯해서 우울제 치료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한 분이더라. 한국 약학 분야에서 명성이 자자해. 내가 약학과 애들에게 물어보니, 깜짝 놀라더라. 그런 분이 직접 찾아온 일이 평범할 리가 없잖아.”
“평범할 수도 있지.”
“민호야, 이건 넌 조사하려는 것이 아냐.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우리도 오성 바이오 입사한다는 것을 아니, 최소한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야 하잖아.”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는 법이다.”
“간단한 힌트도 안 될까?”
“너무 많이 알면 다쳐.”
“.......너무 한 것 아냐?”
조민호는 옆에서 귀를 쫑긋하고 있는 김영탁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나도 잘 모르는 일이......”
“아, 여기 계셨군요.”
스티븐, 래리, 최영준 차장 세 사람이 조민호 자리로 달려왔다. 특히 스티븐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조민호 손을 잡은 채 고개를 숙였다.
“......”
조민호는 레이저의 눈으로 쳐다보는 두 녀석을 발견하자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세 사람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늘 있던 일이라서 살짝 놀란 박진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은데?”
시사에 밝은 김영탁은 노트북으로 뭔가를 검색하더니 금방 사진 하나를 찾은 채, 입을 딱 벌렸다.
“맙소사 스티븐이야.”
“미국에 스티븐이 몇백만인데, 고작 그렇게 말하면 아냐?”
“병신아, 에플의 창업자 스티븐이라고!”
“설마 에플 회장 말하는 거야?”
“그래, 여기 봐라.”
하지만 노트북 사진을 본 박진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우리 학교에 온 것도 이상해. 그런데 모습이 너무 다르잖아. 아까 그 사람은 나보다 더 멀쩡해 보이는데, 여기 이 사진은 내일 당장 죽은 시체처럼 보여.”
“확실히 그건 좀 이상하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같은 사람인지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잠깐 마스크를 내린 모습을 봤지만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로 무장 때문에 선뜻 확신하지는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민호 오면 물어봐야지.”
“아무래도 대답 안 해줄 것 같아.”
“그러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