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45화 (145/176)

#145

다음 날에는 루노 제약 주가는 심지어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2년 최저가를 형성했다.

아니 그 다음 날 역시 -12%를 기록하면서 날개 없는 새처럼 추락했다.

이 쇼크는 다른 멀쩡한 제약 업체에도 영향을 줬는데, ADHD 치료제와 관련이 있는 우울제와 같은 계통 매출이 있는 제약 회사가 그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른 제약 회사는 반등했지만, 여전히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은 역시 루노 제약이다.

아침부터 씩씩거리면서 나타난 신동일은 아버지 신한중 사장에 소리쳤다.

“아버지, 이 사건을 보고도 제 말이 거짓말로 보입니까.”

루노 제약 실무진에게서 이미 보고를 받은 신한중 사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이번 사건의 배후가 조민호라니까요!”

단순히 말이 아니라 조민호와 관련된 자료를 꺼내서 신한중에게 내밀었다.

이 자료는 미래 그룹 조수현 회장과 오성 바이오 내부 관련 자료다. 특히 오성 바이오 내에서 조민호가 갑질(?)하는 사진도 있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음모론이었지만 신한중 사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조민호보다는 오히려 조수현 회장을 더 의심했다.

‘그러면 더 이상하군. 조수현 회장이 왜 갑자기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이 조민호 새끼는 인면수심의 괴물이라니까요.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하면서도 뒤로 온갖 흉악한 짓을 다 해요. 이번 11번 길의 기적도 이놈이 실험용 약을 우물에 풀어서 테스트한 것이 분명하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서 무시하려고 했던 신한중도 힐끗 신동일을 옆에서 지키는 경호팀장겸 비서실장 노릇도 같이 하는 신경훈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야?”

“확실히 이상한 점이 좀 있었습니다.”

신동일은 방방 뛰었다.

“제가 그놈에게 당해봐서 아는데, 실로 잔인한 놈이라니까요.”

“닥쳐!”

“아, 아버지......”

“가만히 있어라, 안 그러면 여기서 쫓아버릴 테니까.”

가슴을 탁탁 치던 신동일은 분노해서 사장실을 나가버렸다. 결국 신경훈이 이제까지 있었던 일을 하나둘씩 다 털어놓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너도 조민호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냐?”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전혀 무관하다고 하기 힘듭니다. 다른 것을 떠나서 조민호가 오성 바이오 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갔다. 조민호가 관련이 있고, 없고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배후가 오성 바이오와 미래 증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성 바이오가 정말 의도적으로 루노 제약을 노릴 수도 있다.

‘설마 김 회장이 오성 X파일 비밀에 대해서 안 것은 아니겠지?’

그는 결국 천재건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

북한산 근처의 한 요정에서 신한중 사장은 유명환 과장 문제 때문에 초췌한 천재건 이사를 만나서 신동일의 황당한 음모론을 빼고 증거 자료만 넘겼다.

한동안 그 자료를 살피던 천재건 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김 회장이 이번 일의 배후군요.”

“설마 보복으로 루노 제약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네. 우리 계획을 사전에 눈치챘을 수도 있죠. 이번 복제약 시험 조작을 이용하면 어려워진 중견 제약 업체 인수는 간단합니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저 계획으로만 생각했던 신한중 사장은 마른 침을 삼켰다.

“저도 아버님에게 계획이 진행 중이라고만 들었는데, 이미 진행한 것입니까?”

심란한 천재건 이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식약청은 유통되는 복제약에 대한 정밀 검사를 진행 중인데, 이 중에 30개 품목에서 시험 결과가 조작된 것을 발견했다.

최근 어려워진 제약 업체가 판매허가 기간을 줄이기 위해서 시험결과를 조작했다.

“명분이 좋으니까요. 특히 유한이행의 골다공증치료제와 같은 항목도 포함됩니다. 이번 사태를 이용해서 조금만 흔들면 이들 업체는 타격이 큽니다.”

그리고 그 회사를 먹을 당사자인 신한중 사장은 탐욕이 가득한 눈으로 마른침을 삼켰다가 얼굴을 와락 구기고 말았다.

“오, 가만 설마 김건중 회장이 사전에 알고 이번 11번길의 기적을 작업했다는 말입니까?”

“덕분에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지 않습니까. 만약 정말 새로운 신약이 개발 중이라면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갈 겁니다. 이 상황에서 루노 제약이 신약업체를 인수해도 오히려 더 큰 타격을 받습니다.”

부실한 제약업체를 인수해도 그 부실을 전부 다 끌어안은 루노 제약은 오히려 파산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사태를 만든 신약의 존재유무다.

“아무리 김건중 회장이 대단하다고 해도 ADHD 환자에게 혁신적인 신약을 쉽게 내놓을 수가 있을까요? 그것도 교묘하게 물에 타서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하겠습니까?”

“그게 좀 이상하죠.”

두 사람도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아서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 일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

천재건 이사는 식약청을 통해서 이번 시험에 연루된 제약업체를 협박했다. 그들이 직접 이번 일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었다.

오성 바이오와 척을 지게 된 상황이었지만 이번 복제약 조작에 연루된 업체 역시 위기감을 느꼈고, 이번 일에 나섰다.

이들 제약 업체는 천재건 이사가 지정해준 몇몇 언론을 이용해서 오성 바이오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오성 바이오는 치킨 게임을 통해서 한국 제약 업계를 노리는가!]

[한국 재벌의 새로운 제약 횡포!]

[오성 바이오는 과연 한국 제약 업계에 도움이 되는 건가!

[이대로 가다가는 제약 업계는 공멸하는데, 정부는 이대로 보고만 있는가?]

자극성 기사를 남발하면서도 오성 바이오를 씹어 댔다.

심지어 시민단체를 동원해서 오성 그룹 본사에 시위를 벌였다.

조민호는 그저 피식 웃으면서 이 흥미로운 사태를 지켜봤다.

이미 천재건 이사를 지켜보고 있던 최영민 사장이 나타나서 이 내막을 보고했다.

“결국 꼬리를 잡았군요.”

“오성 출신인 천재건 이사는 중아일보로 쫓겨나면서 김건중 회장에 대해서 반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최석준 회장과도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그도 최영민 차장을 통해서 만났던 최석준 회장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최석준 회장도 이번 일에 연관됩니까?”

“최석준 회장은 꽤 오래전부터 오성 그룹의 영향력을 벗어나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김건중 회장에게 반감을 품은 천재건 이사에 공을 들였죠. 천재건 이사는 최석준 회장 라인을 최대한 이용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런 사실까지 알다니, 놀랍네요.”

최영민 사장은 불쑥 한 가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 자료를 받아서 몰래 정리한 것이 저입니다. 그리고 그 자료가 바로 오성 X파일입니다.”

“흠.”

이미 뉴스를 통해서 지긋지긋하게 들은 오성 X파일이 나오자 조민호도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기 과거사를 털어놓는 최영민 사장 이야기에 혀를 내두른 채 듣기만 했다.

하지만 파도 파도 끝도 없이 나오는 이 내막에 조민호는 심드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한국 정재계, 심지어 중국 정치권 내부 문제까지 포함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인 일은 알아서 처리하세요.”

“......네.”

큰마음 먹고 폭로한 오성 X파일이 졸지에 단순한 개인 일이 되어버린 탓에 최영민 사장은 조민호 눈치만 봤다.

조민호도 보시라이가 한 일 때문에 중국 내부를 뒤흔들고, 심지어 이와 관련이 있는 한국 부패 관료를 다 잡아 족쳐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서 선을 분명히 그었다.

“일을 크게 키우지 맙시다. 가능하면 이번 일을 빨리 정리해서 저도 조용히 살고 싶으니까. 괜히 쓸데없는 문제를 만들지 마세요.”

‘누가 이 사태를 더 키웠는데......’란 말을 꿀꺽 삼킨 최영민 사장은 결국 간단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천재건 이사 쪽 라인을 지금보다 더 집중적으로 계속 주목해주세요. 유명환 과장과도 분명히 연락하고 지낼 테니까.”

“하지만 유명환 과장은 중국 쪽에......”

유명환 과장에게 별로 관심이 없던 조민호지만 신한중 사장이나 천재건 이사의 움직임을 보면서 생각을 좀 달리했고, 슬쩍 두칭리 연락처를 꺼내서 최영민 사장에게 내밀었다.

“제 중국 쪽 라인이니, 중국 쪽에서 필요한 정보는 이쪽으로 연락해보세요.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으니까. 필요하다면 중국에서 잡아와서 종영돈 차장검사에게 넘기세요.”

“아, 네.”

최영민 사장은 고개를 갸웃한 채 두칭리 연락처를 살피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신기하네. 언제 류엔둥 전 보좌관인 두칭리와도 알고 지낸 걸까?’

***

최영민 사장은 별생각 없이 장혁에게 두칭리에 대한 연락처를 넘기면서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말했다.

장혁은 국정원에 있으면서 늘 하던 일처럼 단순하게 두칭리에게 연락했고, 이번 작전을 위해서 이지현과 같이 중국으로 향했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정말 민간인이 나보고 중국에 가서 일하라니.’

두칭리가 마중을 나왔는데, 상하이 근교의 한 별장으로 안내했다.

그 별장 곳곳에는 이미 중국 공안 수십 명이 나와서 정리 중이었다.

사지가 꺾여 있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아직도 피를 철철 흘리는 이도 있었다. 심지어 숨을 쉬지 않는 이도 있었다.

그만큼 이곳 싸움이 흉험했다는 의미다.

유명환 과장을 잡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으로 빼돌리는 문제까지 고민하던 장혁은 밧줄로 사지가 묶인 채 공포에 질려 있는 유명환 과장을 발견했다.

“흠.”

두칭리는 송위천을 비롯한 호일위, 종안천, 차오밍, 여문경과 같이 이 비밀스러운 자리에 나타나서 공손하게 말했다.

“더 원하신 것이 있습니까?”

“......생각 중입니다.”

해외 쪽에서 블랙 요원으로 활동했던 장혁은 누구보다 중국 공안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얼마나 잔인한지 잘 알았다.

한쪽에서 벌벌 떨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그 증거였다.

이미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느껴서 긴장한 장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두칭리를 쳐다보았다.

“그쪽은 중국 공안 아닙니까?”

“공안 맞습니다. 하지만 공안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안 내부의 정치적인 갈등을 떠올린 장혁은 별 다른 이야기를 더 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더 믿었다.

이제까지 자기 상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 이들은 전 세계에서도 손으로 꼽는데, 두칭리는 그런 자신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좀 놀랍네. 도대체 조민호 이사는 이런 자를 어떻게 수족으로 부리는 걸까?’

잔뜩 긴장한 이지현 역시 뜬금없는 두칭리 일행에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봐도 장혁과 비교해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혁도 계속 이곳에 있을 수는 없었다.

“이 자를 밀항시킬 생각인데,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보시라이가 죽고 나서 야금야금 자기 세력을 넓힌 두칭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는 유명환 과장을 밀항시키라는 작업 지시를 내렸다.

이미 건물 밖에도 몰려와 있던 수십 명의 공안은 조용히 움직이면서 유명환 과장을 보호했던 이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유명환 과장을 지킨 이들 흑련 조직원은 대부분이 반쯤 폐인이 되어서 차량 여러 곳에 실려서 조용히 다 떠났다.

단단히 재미를 보려고 했던 장혁은 이 구경거리에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네요.”

“별것 아닙니다. 조민호 이사님에게 안부를 전해주십시오.”

“아, 그러죠.”

“그분에게 이른 시일 내에 아우들을 소개해주고 싶습니다.”

지나가던 중국 공안도 다들 허리를 숙이는 실력자 다섯 사람은 정중하게 허리를 다시 숙였다.

두칭리와 그의 아우들의 모습은 조민호에 대해서 마치 신처럼 경건하기만 했다. 말 한 마디에도 조민호에 대한 존엄이 가득했다.

두칭리 같은 실력자가 보이는 과한 모습은 마치 사교 신자보다 더 광적으로 보였다.

소름마저 느낀 장혁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확실히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어떻게 된 걸까?”

“뭘?”

“최 사장님에게 지시를 받으면서 대충 들은 것 아니었어?”

“난 그냥 중국에 가서 유명환 과장 데려오는 지시만 받았다.”

“고작 그 지시에 저자들이 삼합회 지파 중에서 잔인하기로 소문난 흑련을 타격했다고?”

“많이 알면 다친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은.”

“......그래.”

두 사람은 이 황당한 사건 전개에 입을 다문 채 번민에 빠졌다. 그들은 이미 과거 조민호 프로필을 봤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도통 모르겠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