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44화 (144/176)

#144

***

오성 그룹 본사 회장실은 바늘 하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적막감이 감돌았다.

프로젝트 화면 속에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심지어 CCTV를 향해서 장난감을 던졌다. 봉사 활동 나온 대학생은 장애 아동을 데리고 장난도 치고, 기타까지 연주해 주었다.

음악을 들은 장애 아동 중에 일부분은 대학생에 집중했다.

몇몇 사고를 친 대학생은 오히려 잔소리만 듣기도 했다.

얼핏 보면 그저 장애 아이들의 흔한 모습만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보는 김건중 회장은 마치 수천억을 투자한 투자자처럼 굳은 얼굴을 한 채 아이 모습에 집중했다.

그가 가장 주목한 것은 역시 가부좌를 한 채 앉아서 장애 아이를 가볍게 안아주고 있는 조민호였다.

조민호는 마치 세상의 모든 병을 치료하려는 성자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한 채 장애 아동을 가볍게 어루만져 주었다.

신기한 것은 목이 삐딱해서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이도 조민호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손길은 딱히 무슨 대단한 형식도 아니었고, 그저 보통 사람처럼 보듬어 안아주는 정도다.

다른 대학생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별다른 특이점은 없었다.

이보다는 사회봉사 활동을 나온 박진민이 더 극적이었다.

그런 중에 보게 된 한 장면.

조민호 손끝이 한 아이의 이마에 닿기가 무섭게 장애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겉으로만 본다면 그저 스킨쉽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은 달랐다.

‘서, 설마 아니겠지?’

‘무슨 예수의 재림도 아니고.’

두 사람은 잠깐 서로 시선을 마주했지만 다시 CCTV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모르겠어.”

옆에서 마치 김건중 회장 판박이처럼 화면을 쳐다보는 이학준 비서실장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정말 조민호 때문일까요? 아무리 화면을 봐도 고작 가볍게 신체 접촉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 CCTV 화면을 가져온 최태한 사장은 영문을 몰라서 눈동자만 굴렸다.

“저기 두 분이 뭘 확인하고 있는지 저도 알 수 있을까요?”

근 2시간 가까이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봐서 피곤한 김건중 회장은 비서가 내온 홍차를 마시면서 피식 웃었다.

“봐도 모르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더 하겠나?”

“네?”

최태한 사장은 힐끗 여전히 CCTV 화면에 집중한 이학준 비서실장을 쳐다보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저도 이 신약 분야에 대해서는 아직 깊이 있게 알지 못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설명을......”

“됐어.”

“네.”

일단 지시대로 사회 복지관 자료를 가져왔지만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두 사람 때문에 최태한 사장도 그저 눈치만 봤다.

“그보다 조민호 그 친구가 뭔가 가져와서 맡겼다면서?”

“박재희 박사가 지금 검토 중입니다. 사실 아무리 임상 관련 기초 평가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도 너무 뜬금없는 일입니다. 전임상 실험 단계에서도 확정된 수많은 신약 후보 물질도 드랍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 너무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무슨 말씀이신지......”

“나도 신약 개발 효율성이 과거보다 월등하게 좋아졌다는 것은 알아. 하지만 조민호 그 친구와 관련된 신약은 약품 안정성이나 유효성이 상리를 벗어났어.”

“설마요?”

최근 신약 개발은 과거 경험주의 방식과는 달리 다양한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해서 성공 가능성 자체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심지어 모델 기반학적인 다양한 신약 개발 모델 덕분에 통계적인 방식으로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미 충분한 설명을 들은 김건중 회장은 전혀 이런 사실을 듣지 않은 것처럼 정색했다.

“현재 몇 사람이 붙어서 확인 중인가?”

“박재희 박사와 다른 보조 연구원 한 명이 작업 중입니다. 어차피 분자식을 토대로 만들어서 간단한 테스트만 진행 중이라......”

“이십 명을 더 투입해. 투여된 약물을 시간 경과에 따라서 농도변화를 확인도 할 수 있다면서? 그 약리인가 지랄인가 방식도 병행해서 확인해.”

“혈중 농도에 따른 약리 분석 모델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직 그렇게까지 나간 것은 아닙니다.”

“무슨 소리야. 이미 분자식도 나왔고, 벌써 시험 물질 조제도 곧 진행된다면서?”

최태한 사장도 차마 신약에 대해서 잘 모르는 김건중 회장을 어떤 식으로 설득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서 눈치만 봤다.

“저기 회장님,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의 신약 개발만 진행하는데, 무려 15년이 걸립니다. 제조를 떠나서 후보 물질 조사만으로도 족히......”

“자네 말을 잘 알겠어. 하지만 이미 결과가 나온 마당이잖아. 그러니 그냥 내 지시를 따라. 더욱 중요한 것은 이번 신약이 혹시라도 11번 길의 기적 사태와 엮이지 않도록 신경 써. 우물 타령하던데, 광고 하나씩 더 주고 언론을 이용해서 더 부추겨.”

“아, 그게......”

하지만 그는 마침 박재희 박사에게서 온 전화를 확인했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김건중 회장이 오히려 받으라고 하자 전화를 받았다.

박재희 박사는 마치 정신 나간 것처럼 흥분해서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메, 메틸클린이 효과가 있습니다. 혈장 농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정도 변화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 말도 안 되지만 정말입니다.]

“!”

최태한 사장도 뒤늦게 큰 충격을 받아서 전화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자 다시 대수롭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는 두 사람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이미 이 일만 계속 파온 김건중 회장은 피식 웃었다.

“가봐.”

“아, 알겠습니다.”

허둥지둥 나가던 최태한 사장은 잠깐 김건중 회장에게 질문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한 채 김건중 회장 집무실을 나섰다.

***

오성 바이오 연구소 대회의실에는 모두 삼십 명의 연구원이 모여서 박재희 박사 실험 결과에 대해서 웅성거렸다.

혈중 약물 농도가 평형을 이룬 상태에서도 별 다른 변화가 없었다. 시간 경과에 특이점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전반적인 장애 아동에서 나타나는 신경흥분제 효과뿐만 아니라 혈장 내의 세로토닌 수치 변화가 예상을 벗어났다.

“세포독성 작용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정말 놀랍습니다.”

메틸 계열 치료제에 흔하게 나타나는 그 어떤 부작용도 없었다. 같은 계열임에도 이런 괴이한 현상에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수용성 비타민을 복용한 현상도 일부 나타납니다. 이것만으로 필수적인 영양제를 복용한 것과 비슷합니다.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은 우울제 계통의 치료제에 대해서 경험이 많은 연구원들이었다.

뒤늦게 이곳에 나타난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임원 몇 사람 역시 상황을 파악했고, 아직도 넋이 나간 박재희 박사를 쳐다보았다.

“박 박사, 자네 생각은 어때?”

“아, 그저 놀랍다는 이야기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비타민 치료만 해도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메틸클린은 그와 유사한 속성을 보이면서도 지각성 신경병과 같은 부작용이 아예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근육 손상과 같은 부분은 아예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공격적인 장애에 영향을 주는 시냅스에도 억제 효과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습니다.”

박재희 박사는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설명을 계속했고, 각각의 부분에서 공감한 이들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수긍하면서도 경악했다.

얼핏 보면 메틸클린 효과가 고만고만하지만, 신경흥분제 계통 환자에게 효과가 크기 때문이었다.

“자, 자네 말은 단순히 ADHD 환자 만이 아니라 다른 질병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맞을 겁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이 메틸클린이 성공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날 겁니다.”

최태한 사장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조, 좋아, 여기 자리한 이들도 같이 박재희 박사를 돕게.”

“알겠습니다.”

그들은 회의가 끝났어도 흥분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도대체 조민호 이사님이 저 메틸클린 자료를 어떻게 구한 걸까?”

“따로 연구팀이 있지 않을까. 김건중 회장님이 오성 바이오에 엄청나게 투자하잖아. 제2공장도 공장이지만 연구비만 해도 올해 2천억이 넘는다는 소리가 있어.”

“그렇게 많아?”

“자네는 아직 분위기를 몰라서 그래. 그리고 이런 결과가 그냥 나오겠어. 다 돈이잖아. 다른 제약 연구소를 돈으로 샀겠지.”

“정말이겠다.”

최태한 사장은 다른 연구원이 다 나가자 박재희 박사 바로 옆으로 갔다.

“정말 조민호 이사님이 이 자료를 자네에게 넘긴 건가? 혹시 자네가 의도적으로 조민호 이사님에게 자료를 넘긴 것은 아니고?”

“이쪽은 제 전공이 아닙니다. 전 연구소에서 비슷한 연구를 한 적이 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획기적인 신약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무난합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임상 1상 시험만 진행해도 관련 제약 업계는 타격이 클 겁니다.”

“가능하면 서둘러 주게.”

“네.”

***

메틸클린 효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확신하는 조민호도 박재희 박사의 계속되는 전화 때문에 결국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도 솔직히 이 메틸클린을 고안했지만, 자세한 약리 효과에 대해서는 몰랐다. 딱히 별 다른 설명을 더 해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듣고 싶은 거니까.’

이보다는 최근 조민호의 인체 실험을 효과적으로 물타기한 최영준 차장을 한국대 입구에서 만났다.

최영준 차장은 아직도 쉽게 흥분을 떨치지 못한 채 박재희 박사가 가져온 1차 약리 결과를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중아일보 내에 이쪽 전문 기자에게 전화 걸어서 확인했다.

“진짜 놀랍네. 이 메틸클린의 경제적인 가치 추정 결과로는 출시 한 달 안에 적어도 244억 이상의 매출 효과가 있어. 아마 글로벌 시장에 출시하면 그 파급효과가 엄청날 거야!”

신경흥분제 계통의 치료제라는 것을 고려하면 그 이상이다. 보수적인 형태의 모형을 토대로 한 결과라서 그나마 244억에 불과했다.

“괜찮네요. 가만 한국 언론에 나면 해외 쪽에는 제한적이겠어요.”

“어차피 특허를 낸다면 다른 제약 회사에서도 알게 될 거야.”

“그보다는 좀 더 빨리 손을 쓸 수 없을까요?”

“괜찮겠나?”

“뭐 설마 이걸 카피하는 정신나간 제약 회사가 있겠습니까? 따로 연구하겠지만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루노 제약과 아스트라가 영향받는 것이니까요.”

“두 회사는 다른 제약보다는 타격이 클 거네. 특히 아스트라는 이쪽 ADHD 치료제에 걸쳐있는 매출이 적지 않아서 더 큰 타격을 받을 거야.”

“좋네요. 그러면 진행하죠.”

“일단 특허 진행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아.”

“그건 제가 푸쉬하죠.”

“......알겠네.”

최영준 차장은 특히 보안이 중요한 신약 자료 일부를 이용해서 언론 플레이를 하려는 조민호를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보다는 15년이라는 신약 개발 기간을 단숨에 뚫어버린 채 갑자기 나타난 메틸클린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믿을 수가 없구나.’

***

신약 벤처 쪽에서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신약 정보 일부를 외부에 흘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과장해서 진행한다.

심지어 가능성이 없는 신약도 찌라시를 통해서 허위로 부풀려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서 수백억 시세차익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메틸클린에 대한 정보 일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지수 차장은 바스클린 사건 이후에 말이 많은 오성 바이오 입장을 감안해서 벌써 임상 3상 시험에 들어갔음에도 이 사건을 묻어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획기적인 ADHD 치료제 이야기는 중요한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아직 상장도 하지 않은 오성 바이오는 도대체 무슨 꿍꿍일까?”

“상장을 위한 사전 정지 작업 아닐까.”

“솔직히 오성 바이오는 못 믿겠다. 저번에 오성 바이오 장외 주식 손을 댔다가 난 피만 봤어.”

안 그래도 요즘 미국 제약 업계의 압력 때문에 어려운 상황에 놓인 중견 제약 업계는 이 찌라시의 여파를 피해가치 못했다.

ADHD 치료제 관련된 복제약으로 재미를 본 제약 업체가 그 대상이다.

루노 제약도 메틸 계열 치료약 매출이 작지 않았기에 이 쓰나미에 휩쓸리면서 주가가 단숨에 15% 가까이 곤두박질치면서 폭락했다.

다음 날에는 심지어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2년 최저가를 형성했다.

아니 그 다음 날 역시 -12%를 기록하면서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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