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43화 (143/176)

#143

“설마 물 때문에 아이들의 ADHD 장애가 치료되었다고 말하는 겁니까?”

“다른 이유가 더 있을 수도 있죠. 그것은 하나씩 검토해봐야 합니다.”

“설마?”

“아, 이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아, 네.”

김원중 과장과 양봉석 대리는 뒤늦게 최영준 차장 뒤를 따른 채 갑작스러운 우물 이슈에 대해서 끈덕지게 질문했다.

“저기 최 차장님, 정말 우물 때문에 저 많은 아이가 치료되었다는 말입니까?”

“아마도.”

‘우물 프레임으면 덮으면 이번 11번길 기적도 곧 사람들이 잊겠지.’

***

사회 복지관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 뒤편에 우물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 물이 깨끗한 것도 틀리지 않았다.

간혹 이 주변에 사는 이웃이 사회 복지관을 돌아서 물을 담아갔었다.

다만 그 물이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이 물의 검사 결과 역시 미네랄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계곡물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11번길 사회 복지관의 사태가 뉴스를 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 우물을 마시면 ADHD 장애가 회복된다는 소문이 터졌다.

중아일보에서 나간 이 기사는 다른 언론을 통해서 확산하면서 급격하게 퍼져 나갔다.

이 기사 내용을 잘 보면 치료약이 아니라 치료의 원인일 수 있다는 추측 기사였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았다.

마치 이 우물이 ADHD 장애 치료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알려졌다.

정작 11번길의 기적이라는 사태는 사라지고, 이 우물에 대한 이슈가 더 확산되면서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회 복지관은 이 사람들의 등쌀에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뜻밖에도 과거와 비교하면 무려 30배 가까이 늘어난 후원금을 받았다.

우물을 받기 위해서 온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이 사회 복지관은 한국 전역에 알려졌다.

오재호 박사는 마치 출근길에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30명의 연구원을 데리고 사회 복지관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관할 지역 경찰서에서 나온 경찰은 이들 연구팀이 건물을 살필 수 있도록 몰려온 기자와 시민을 계속 통제했다.

한국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이번 이상 현상을 조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서울대 병원 김순영 박사는 꼼꼼하게 식당 음식부터 시작해서 아이들이 생활했던 환경을 살폈다.

“오 박사님은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특이하죠.”

“전 생각이 좀 다릅니다. 물이나 먹는 걸로 ADHD 장애 아이들이 치료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이미 이런 일을 자주 경험해본 오재호 박사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그는 가능하면 빨리 이 연구팀에서 빠지고 싶었다.

문제는 정부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을 비롯한 전문 인력을 구성해서 진행한 일이라서 자기 임의대로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오성 의료원에 공문을 보내서 협조 요청받은 일이라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조사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귀찮네.’

“물먹고 과잉행동 아이들이 치료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겠죠.”

“특히 이번 사회 복지관에 참여했던 부모들은 다들 오랫동안 아이들 장애 때문에 고통받았던 분들입니다. 이번 원인을 철저하게 밝혀서 전국에서 고통받는 다른 부모들에게 도움을 줘야 합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피곤한 오재호 박사는 귀찮게 달라붙는 김순영 박사가 정말 싫었다.

그는 가능하면 우물 쪽으로 빠져나가려고 빠른 걸음으로 팀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분위기 파악 못 하는 김순영 박사는 그런 오재호 박사 뒤를 졸졸 따라붙었다. 다른 연구팀 역시 모두가 우르르 몰려갔다.

“흠.”

오재호 박사는 힐끗 자기 뒤를 꽁무니처럼 달라붙는 연구원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각자 알아서 움직이죠. 이렇게 다 몰려다니면, 언제까지 다 조사할 겁니다. 전 오성 바이오 측과 진행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김순영 박사가 발끈했다.

“오 박사, 너무 그러는 것 아닙니까. 뭔가 실마리를 찾았다면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야지. 혼자 다 먹겠다는 말입니까?”

김건중 회장에게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당했다고 느낀 오재호 박사는 문득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기분인가?’

지금 11번길의 기적만 해도 그렇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이 일도 자신이 조사하고 있는 의문의 사건과 비슷하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러니 굳이 이 일에 대해서 문화적인 충격은 받지 않았다.

늘 그래 왔으니까.

그런데 이 일을 처음 경험하는 김순영 박사 연구팀은 대수롭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해를 시키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보다는 이곳 교사와 아이들 사이의 교육 과정 자체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 과정 자체가 합리적으로 꽤 효과가 좋으니까요. 실제로 36명의 아이도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닙니다. 즉 교육 효과가 최대치가 되었다는 것이 더 합리적입니다.”

“이봐, 오 박사,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아무리 ADHD 장애에 대한 커리큘럼이 잘 되어 있어도 엄연히 한계가 있어. 달랑 교육받아서 지금처럼 나이질 리가 없잖......”

김순영 박사는 마침 한 연구원이 쪼르르 달려와서 가져온 자료를 확인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36명 아동의 상태가 저마다 조금씩 달랐다. 완치 비율을 100으로 봤을 때 35%가 80정도였고, 35%가 65수준이었으며, 나머지 30%는 60이 되었다.

나머지 효과가 없던 25명은 10-30정도 내외로 회복되었다.

놀라운 것은 날짜가 지날수록 이 비율이 조금씩 더 늘어났다.

그런데 정밀 검사 결과만 보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메틸페니데이트를 처방했을 때 가장 효과가 좋을 때보다 몇 배나 좋았다.

현재 ADHD 치료제는 이렇게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순영 박사는 그 결과를 오재호 박사에게 넌지시 내밀었다.

“한 번 보십시오. 이게 단순히 교육 문제인지, 아니면 처방 문제인지 나올 겁니다.”

오재호 박사도 김연미 박사와 같이 보고서를 확인한 후에 인상을 찡그렸다.

특히 정신과 전문의 김연미 박사는 메틸페니데이트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무래도 메틸 계열 치료약을 사용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약이 중추신경계를 자극해서 집중력을 조절해서 각성시키는 약물이지만 ADHD 장애 환자를 이런 식으로 치료할 수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그게 좀......”

김연미 박사도 당황한 얼굴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미 60명의 장애 환자 상대로 정밀 검사 진행을 주도했기에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걸 오해한 김순영 박사가 버럭 소리쳤다.

“오 박사, 이거 정말 이렇게 나올 겁니까. 뭔가 발견했다면 서로 같이 좀 이야기합시다. 왜 당신은 혼자만 몰래 입을 다뭅니까?”

“도대체 제가 뭘 어쨌다고 그럽니까?”

“저기 보세요.”

확실히 다른 연구원은 심통인 난 얼굴로 오재호 박사팀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보기에 이번 사건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다는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재호 박사는 늘 이런 이상한 사건을 자주 경험해서 익숙한 것뿐인데, 그것을 상대가 오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오 박사님은 차라리 우물이 이번 아이들 치료의 원인이라고 우기는 것이 맞겠습니다.”

“뭐 그럴지도.”

“그게 기레기들이 우물 프레임으로 돌려서 이번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간악한 수작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럽니까?”

“흠.”

그도 오해 때문에 갈등이 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별 달리 반박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을 물고 늘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순진한 오재호 박사 얼굴에 ‘처음은 아닙니다!’라고 뻔히 드러나는 것을 파악한 김순영 박사는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흥, 두고 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큰일을 가지고 엉뚱한 수작을 부리면 내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습니다.”

“.......”

***

조민호도 ‘11번길의 기적’ 사태에 대해서 뉴스를 통해서 알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물 프레임이 뜨고 나서는 이 기적이 우물 사태로 퍼져갔다.

더욱이 정부에서 나온 연구팀이 이 괴이한 현상을 조사하고 난 후에 나온 우물 이슈 결론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박진민조차 자신이 사회봉사 갔던 곳에서 일어난 일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이번에 벌써 인터뷰를 몇 번이나 했던 김영탁은 싱글벙글했다.

“나 뉴스에 나왔다.”

“자랑이다.”

“편집되어서 배 아픈 모양이네.”

“내가 빼라고 했어.”

“평소에 말을 곱게 해야지. 오죽하면 기자가 말투가 짜증 난다고 편집했겠냐.”

“난 그보다는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만약 정말 물 때문이라면 그 물을 마신 장애 아이도 다 치료가 되어야 하잖아.”

“그런 경우는 없다고 하니,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졸지에 귀신이 된 조민호는 굳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박진민이 그걸 그냥 놔두지 않았다.

“민호야, 너 생각은 어때?”

“난 생각 없다.”

“에이, 그래도 넌 의외로 눈치가 빠르잖아. 뭔가 분명히 아는 게 있을 거야.”

눈치 빠른 박진민 말에 은근히 찔린 조민호는 모른 척했다.

최영준 차장이 나름 우물 프레임을 이용해서 선동한 덕분에 11번길의 기적은 흐지부지되고 있는지만 여전히 핫한 이슈였다.

“가만 너 정말 아는 것 있어?”

“난 모른다.”

“진짜?”

“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민호 네가 가고 난 다음에 일어난 일이잖아. 전에 영탁이랑 몇 번 갔을 때는 그런 일이 없었다.”

“헛소리 마.”

“흠.”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말할 때는 농담이었는데, 막상하고 나니 그럴듯했던 것이다.

‘하여간에 눈치는 정말 빨라.’

***

오성 바이오는 당연히 이번 11번길의 기적에 연구원을 더 보냈다. 사회 복지관 식당이나 우물을 비롯한 여러 곳을 조사했다.

이와 함께 60명의 장애 아동에 대한 정밀 검사에 착수했다.

이주 간격으로 이루어진 이 조사는 하루 단위로 그들의 장애 상태를 확인했고, 심지어 MRI를 비롯한 정밀 검사를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 아동 상태가 회복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조민호는 이들 결과를 오성 바이오에 방문해서 사외 이사라는 명분으로 일일이 다 확인했다.

‘역시 특성에 따라서 회복 속도가 다 다르구나. 유전 소인 때문에 장애 회복 속도가 아예 멈추는 경우도 나오고.’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다른 해결책을 찾을까 고민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장애 회복 속도가 느린 경우는 이 ADHD 혼원기를 더 복용하면 등가가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역시 유전적인 소인인데, 이 경우는 예외로 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일정 비율까지는 회복되니, 정상적인 생활에는 무리가 없어.’

조민호는 결국 이 새로운 ADHD 치료제인 메틸클린 분자식을 비롯해서 그 특성을 구체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했다.

메틸페니데이트 3가지를 서로 꼬아 놓은 이 새로운 형태의 메틸클린은 기존의 메틸 계열 치료제보다는 그 효과가 월등하게 좋았다.

조민호는 이 메틸클린 테스트를 위해서라도 박재희 박사를 만났다.

“이 자료를 한 번 봐주세요.”

“이게 뭡니까?”

“메틸페니데이트를 보다가 우연히 이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형태라면 기존 메틸 계열 치료제보다는 효과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기 이사님, 미안한 이야기지만 신약이란 게 그냥 생각만 해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머리로 해서 될 것 같으면......”

하지만 그도 메틸클린 분자식 구조에서 유사한 형태의 3가지 구조식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절묘하게 3가지 분자식을 합쳐놓은 듯한 이 구조는 의외로 그럴듯했다.

“만들 수는 있겠죠?”

“그거야 만들 수는 있겠지만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일단 한 번 해보세요.”

박재희 박사는 진지한 얼굴로 조민호 사외이사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기 이사님, 제가 이사님 자존심을 건드리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지시입니다.”

“네?”

“설마 이사 지시를 다르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일단 한 번 만들어보세요. 가능하면 동물 실험도 해보고요.”

“저기......, 네, 알겠습니다.”

그도 냉랭한 조민호 사외이사 얼굴을 보자 그의 영향력을 떠올렸는데, 메틸클린 구조식을 보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참 세상 어딜 가나 다른 것은 없구나. 그런데 이 구조가 좀 그럴 듯해 보이기는 한데, 설마 진짜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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