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눈물 흘리는 배효진 모습에도 조민호는 썰렁하게 일축했다.
“치료비 받았으니, 치료한 것뿐입니다.”
“흑흑, 네, 자, 알았습니다.”
하지만 배효진이 갑자기 조민호에게서 연락을 받았을 때만 해도 치료 기간이 최소 몇 개월은 걸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달랑 손만 잡고 난 후에 동생이 치료된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조민호는 힐끗 눈을 깜빡이면서 배꼽 인사를 하는 배진주를 흐뭇하게 쳐다보면서 피식 웃었다.
“ADHD 환자까지 치료하는 것을 보면 요즘 오성 의료원 실력도 제법입니다. 그렇죠?”
“......네.”
“그냥 그렇게 아십시오.”
그는 마치 경주용 차량처럼 애마를 출발시켰다.
“......”
강종훈 대표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가 배효진을 쳐다보았다.
“효진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다른 사람과는 달리 신비한 조민호 능력을 이미 경험한 배효진은 오히려 다시 안정을 찾았다.
“......조금 전에 민호씨가 말씀한 대로죠. 오성 의료원 실력이 정말 대단해요.”
“효진씨!”
진실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배효진은 강종훈 대표를 무시한 채 동생을 꼭 안은 채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강종훈 대표는 조금 전에 봤던 광경을 떠올리면서 새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조민호는 배진주 치료를 통해서 ADHD 혼원기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 다만 부작용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 고민하던 중에 종영돈 차장검사 아들을 떠올렸다.
원칙적으로 치료비를 받아야 하지만 이번에는 실험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요즘 무영 그룹 해체에 정신이 없는 김정환 부장검사를 만났다.
“굳이 따로 치료할 필요 없이 그냥 잠깐만 만나면 된다는 말입니까?”
“유명환 과장이 중국으로 도망치면서 수사가 제동이 걸려서 요즘 정신이 없겠죠. 아마 이런 시기라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바쁠 테니, 가서 가볍게 저녁 초대만 받으면 됩니다.”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설마 그렇게 해서 광훈이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몇 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번에는 예외로 처리하겠습니다.”
아무리 조민호 능력을 경험한 김정환 부장검사라도 선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능력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조민호 말에 신뢰를 느꼈다.
“알겠습니다.”
***
반포 아파트는 가장 작은 평수가 22평이고, 최대 복층 64평이다. 강남 아파트 시대 서막을 연 이 아파트는 한국 아파트 시대의 포문이었다.
종영돈 차장검사는 아버지에게 이 반포 아파트를 물려받았다. 그의 처 역시 서민층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김정환 부장검사와 조민호 방문에 대해서 환대했다.
조민호는 김정환 부장검사 덕분에 가까운 지인 정도로 집안을 방문했다.
이미 조민호와 안면이 있는 조영돈 차장검사는 김정환 부장 검사 통해서 아들을 몰래 봐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은 채 아내와 아들 종광훈을 슬쩍 소개해주었다.
‘아내 때문에 집에서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종광훈은 자폐증을 포함한 전반적인 발달 장애 현상을 보였는데, 주로 정서불안이나 초조함과 같은 감정의 혼란이다.
지금도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눈빛조차 흐리멍덩했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고 있는 종광훈 처 김소영은 장애 아들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파김치처럼 지쳐 있었다.
그녀는 이미 초췌한 안색으로 여전히 아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
우울증마저 온 김소영은 겉으로만 종영돈 부장검사에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이미 늘 봐왔던 그녀 모습에 김정환 부장검사가 위로했다.
“형수님, 힘내세요.”
“아, 고마워요.”
“요즘 현대 의학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광훈이도 곧 회복될 겁니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결국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면서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의미 없는 행동을 일삼아서 친구 하나 없는 아들 종광훈을 옆에서 돌보면서 요즘은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다.
부부 사이마저 요즘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 때문에 착잡한 종영돈 차장검사는 그저 아내가 내 온 소주를 마실 뿐이었다.
그는 애초에 놀라운 능력의 조민호가 오늘 뭔가 해보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오늘은 그저 간단한 인사 자리로 알았다.
“제 아내도 힘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조민호 역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는 이미 배진주 치료하는 동안에도 별다른 경험치를 얻지 못했기에 종광훈을 치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췌장암 혼원기를 연구 과정에서 만든 ADHD 혼원기 효과에 더 집중했다.
주의력이 결핍된 종광훈이 구석에서 비틀거리자 슬그머니 손을 잡아서 안아주었다.
가볍게 토닥거리면서 경혈을 한 번 쭉 확인하면서 ADHD 혼원기를 주입했다.
‘잠재 선천지기 특성이 다른 것 같지만, 어차피 작용은 똑같으니까.’
경혈을 따라서 파고든 ADHD 혼원기는 배진주 몸속과 비슷하게 작용했는데, 배진주 치료와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선천지기 특성이 달랐다.
실제로 ADHD 혼원기는 배진주 치료 과정과는 달리 종광훈의 잠재 선천지기와 결합해서 서서히 그 덩치를 조금씩 키워나갔다.
조민호는 뒤늦게야 ADHD 혼원기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했고, 그 강화된 혼원기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과정에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흐르는 방식은 똑같구나. 변화 과장이 좀 느린 것 같아. 이 정도라면 하루는 지나야 할 것 같군.’
이번에는 어차피 ADHD 신약 개발이 목적이었기에 ADHD 혼원기에 변화를 줄까 하다가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가만 문제는 이 ADHD 혼원기를 토대로 만든 신약도 똑같이 동작할까?’
곤혹스러워서 종광훈을 안은 채 이리저리 토닥거리면서 계속 경혈을 살피다가 결국 손을 뗐다. 굳이 나머지 변화를 더 볼 필요가 없었다.
그는 불안한 김정환 부장검사 시선을 의식하자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뜬금없는 방문에 곤혹스러운 종영돈 차장 검사는 고작 30분 만에 떠나겠다는 조민호에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벌써요?”
“죄송합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볍게 인사만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김정환 부장검사가 배웅해주겠다는 말만 한 채 조민호 뒤를 따랐다.
***
“설마 벌써 끝난 겁니까?”
조민호는 당혹스러운 김정환 부장 검사 얼굴에도 피식 웃었다.
“네. 자연스럽게 방문만 하면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김정환 부장검사는 이미 신비한 조민호 능력을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달랑 종광훈을 안아주기만 한 조민호가 끝났다고 하자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정말로 광훈이를 치료한 겁니까?”
“아마 24시간 정도 지나야 제대로 된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사람마다 체질이 달라서 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나머지는 잘 알아서 말해주세요. 아, 이왕이면 그냥 모른다고 잡아떼세요.”
“무슨 말씀입니까?”
“저도 ADHD 환자를 확인해보고 싶어서 여기 온 것뿐입니다. 일반적인 치료와는 좀 다르니, 치료비를 굳이 받을 이유도 없습니다. 그리고 김소영씨 같은 분이 알아봐야 괜히 말만 무성합니다.”
눈치 빠른 김정환 부장검사도 금방 조민호 말을 이해했다.
“괜히 이쪽저쪽에 소문내서 문제를 키우지 말라는 말씀이군요.”
“저렇게 다혈질인 분은 자기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한 사건에 대해서 계속 집착하는 분도 있게 마련입니다. 꼭 그런 분을 붙잡고 이해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번 치료도 김정환 부장검사님 얼굴을 봐서 해드린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 역시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김소영 모습을 떠올리면서 오히려 고개를 숙였다.
“괜히 제가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귀찮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괜찮습니다.”
***
종영돈 차장검사가 갑자기 조민호가 떠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것은 김소영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보다 안면이 있는 김정환 부장검사 접대에 더 신경 썼다.
비록 청와대 외압 때문에 따로 떨어졌지만 두 사람은 친형제처럼 친한 사이였으니까.
김소영은 다음 날에 사전에 알리지도 않고 두 사람을 초대한 남편 종영돈을 구박하면서 평소처럼 아들 종광훈을 살폈다.
이미 장애 아들을 돌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은 그녀는 아침부터 눈물을 흘리다가 문득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는 아들을 보자 깜짝 놀랐다.
“엉마, 울어?”
“어, 그, 그래.”
종광훈은 늘 보였던 손을 물어뜯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자기감정을 억누르지 못할 때는 고함지르고, 욕까지 했다.
그럴 때면 김소영은 아들을 심하게 채찍질하면서도 펑펑 울었다.
그런데 오늘 종광훈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울지 마.”
“그래, 엄마, 안 울어.”
“응.”
김소영은 장애인 복지관에 아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다가갔다가 흠칫 멈추었다.
종광훈은 놀랍게도 그녀 품에서 억지로 빠져나와서 리모컨으로 TV를 켰다.
“과, 광훈아......”
“응? 왜?”
“너, 너 괜찮아?”
“갑장기 무슨 소리야. 나 당연히 괜찮아.”
“그, 그래? 그러면 어서 가야지. 엄마도 가서 일해야 하니까.”
“싫어. 낭 TV 볼 거야!”
“?”
가벼운 반항에 충격을 받은 김소영은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다. 발음이 약간 이상하기는 하지만 종광훈은 놀랍게도 어제와는 많이 달랐다. 멀쩡한 아이처럼 TV를 계속 쳐다보았다.
공포마저 느낀 그녀는 소름이 돋아서 안방으로 들어가서 남편 종영돈을 깨웠다.
“여, 여보!”
최근 중국으로 도주한 유명환 과장 관련 수사 때문에 밤낮없이 강행군해서 피곤한 종영돈은 하품까지 하면서 억지로 아내에게 끌려나오다가 자기를 향해서 손을 흔드는 종광훈을 발견하자 딱 멈추었다.
“?”
“아빵, 안영!”
종광훈은 가볍게 손을 흔들었는데, 자기 방에 쪼르르 달려가서 늘 가지고 다니는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나와서 다시 TV 앞에 앉았다.
“여, 여보, 도, 도대체......”
하지만 이미 조민호를 떠올린 종영돈 차장검사는 후다닥 종광훈에게 달려가서 몸을 살폈다.
“과, 광훈아, 너, 너 고, 괜찮아?”
“아빠, 왜 그래?”
그는 아들 말을 무시한 채 이리저리 아들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에잉, 난 TV 볼래!”
“그, 그래, 알았다.”
뒤늦게 한 걸음 물러난 종영돈 차장검사는 쪼르르 TV 앞에 바짝 붙어서 두 사람 눈치를 보면서 아이들이 나와서 춤추는 프로그램을 쳐다보았다.
“......”
창백한 김소영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종영돈 차장검사 뒤에서 멍하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마치 공포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오히려 불안한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어제까지만 해도 장애 때문에 제대로 소통이 되지 않던 아들이 갑자기 멀쩡해진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불과 20분이 지나자 역시 겨우 정신을 차렸고, 아들 종광훈을 데리고 곧바로 오성 의료원으로 향했다.
종영돈 차장검사는 김소영 행동을 말리려고 하다가 결국 포기한 채 그녀 뒤를 따랐다. 그도 김정환 부장검사와 변순기 1차장검사를 통해서 조민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잠깐 집에 왔다 갔는데, 아들이 치료된 것에 경악했다.
‘도대체 언제 치료를 한 거야?’
***
오성 의료원 김연미 박사는 아침부터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녀도 작년부터 오히려 악화하는 종광훈 환자가 갑자기 회복한 것 때문에 당황해서 다양한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놀라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종광훈 상태는 점점 더 나아졌다.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음에도 갑자기 ADHD 환자가 회복된 것이었다.
결국 김연미 박사는 이 사태에 대해서 위에 따로 보고를 올렸다.
ADHD 환자가 이렇게 회복된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이런 경험이 많은 오재호 박사는 늘 평소대로 종광훈 진료 차트를 이학준 비서실장에게 따로 보고했다.
김정환 부장검사 라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던 이학준 비서실장은 곧바로 김건중 회장에게 보고했다.
“역시 조민호가 손을 쓴 건가?”
“그게 좀 이상합니다. 다른 환자와는 달리 따로 시간을 내서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뭔가 있는 건가?”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애 엄마는 왜 이렇게 호들갑을 뜬 거야?”
“아무래도 아들이 자고 일어나니, 치료된 것 때문일 겁니다. 아들 장애 때문에 근 몇 년에 걸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갑자기 회복되었습니다.”
“하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정말 쇼킹한 일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