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37화 (137/176)

#137

***

박희관 부장도 조민호 지시를 받아서 일을 진행했지만, 조수현 회장에게 메가 텔레콤과 관련된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조수현 회장도 휴대폰 업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잘 알았지만, 막상 이 메가 텔레콤 사건이 그중에 하나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지난 2002년부터 중국 시장에 진출했던 국내 중견 휴대폰 업체가 다 무너졌고, 이번에는 메가 텔레콤 차례였다.

중국 쇼크다.

중국 업체가 국내 휴대폰 기술을 다 빼돌리면서 국내 중견 텔레콤 업체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져버렸다.

“이게 아니었는데......”

박희관 부장 역시 착잡한 얼굴이었다.

“애초에 저희는 앨리엇 투자 대행을 했을 뿐이고, 그들 요구에 따라준 것뿐입니다.”

“하면 오성 전자는 LC 전자는 중견 업체를 죽일 목적이었다는 소린가?”

“네.”

“요즘은 노기아와 모토로라 때문에 매출도 부진하고, 수익성은 더 떨어지고 있잖아.”

“중견 업체를 죽이기만 하지 정작 원천 기술 개발에 소홀히 한 덕분입니다.”

“자네 말은 내가 외국 자본 앞잡이가 되어서 이 사태를 만들었다는 말이군.”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라고 해서 몇 년 후의 미래까지 다 예측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괜찮아.”

조수현 회장 안색은 좋지가 않았다. 그는 고객 입장만 생각했을 뿐이다. 막상 고객이 원하는 것을 들어줬을 뿐인데, 사태가 이 모양이 되었다는 것까지는 뒤늦게 알았다.

‘정연은 이런 결과를 짐작했을까?’

***

메가 텔레콤의 위기는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국내 업체의 쓰나미 한복판에서 일어난 그저 작은 사건에 불과했다.

조정연은 당연히 이런 사태까지 예상해서 앨리엇 투자를 챙겨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결국 조수현 회장이 따로 이와 관련된 보고서를 내놓자 침묵했다.

뒤늦게 해외 투기 자본 앞잡이 노릇했다는 것을 깨달은 조수현 회장은 감정 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설마 해서 하는 말인데, 이자들이 이런 짓을 하려는 것을 사전에 알았냐?”

“전 몰랐습니다.”

조정연은 최근 신동일을 만난 후에 안 그래도 안색이 굳어 있었는데, 조수현 회장의 차가운 눈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특히 노기아와 모토로라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면서 세계 휴대폰 시장은 급격히 변화했다. 이들이 초 저가휴대전화 시장마저 진출하면서 한국 중견 휴대폰 업체 몰락은 가속화되었다.

오성 전자나 LC 전자 역시 이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안다고 이런 문제를 따지는 거야?’

조수현 회장 표정은 시간이 갈수록 굳어졌다.

“하지만 앨리엇 투자는 메가 텔레콤을 위기로 빠트려서 원천기술을 헐값에 넘기려는 술수야. 정말 이런 사실을 몰랐다고 할 거야?”

“진짜입니다. 박상철 과장은 코넬 대학 졸업 선배였고, 한국인 코넬 모임에서 우연히 만나서 제안을 받을 것뿐입니다. 그 일은 아버지도 잘했다고 한 일 아닙니까?”

“하아.”

그는 이마를 지그시 누른 채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시만 해도 장남 조정연이 한국에서 사고만 치다가 미국 코넬 대학에 가서 나름 정신 차렸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덜컥 앨리엇 투자까지 받아왔으니, 대견하다는 생각마저 했다.

“후유, 그래.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이 문제는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냐. 당분간은 홍콩 사무소 가서 자중하고 있어라.”

“아, 알았습니다.”

식은땀을 흘린 조정연은 자신에 대한 아버지 신뢰가 확실히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게 모두 박상철 과장을 소개해준 신동일 그 새끼 때문이야.’

***

조민호는 박희관 부장을 통해서 앨리엇 관련 진행 사안을 보고받았다.

뒤늦게야 앨리엇 투자가 단순히 그냥 투자가 아니라 메가 텔레콤의 CDMA 사업부 원천기술을 노린 것이라 것과 중국 업체 역시 이 일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까지 들었다.

이전에 삽질했다고 생각한 유명환 과장 문제까지 포함하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복잡하네.’

박희관 부장은 심각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딱히 회장님도 한국 중견 업체를 죽이려고 한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이 투자 자체가 조정연 이사님 통해서 진행된 일이었고, 인수합병의 연장선이라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그런 문제까지 저도 듣고 싶지는 않네요. 중요한 것은 해결책이니까.”

“하지만 이번 일은 오성 전자나 LC 전자가 연관되어 있어서 쉽게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아뇨 쉽게 됩니다. 제가 최영준 차장님을 소개해 드릴 테니, 그분과 같이 오성 전자 찾아가서 이 일을 협상하세요.”

“네?”

“일단 국내 문제부터 해결하고 난 후에 다음 앨리엇이나 중국 애들도 정리합시다. 그렇게 알고 최영준 차장님이나 먼저 만나 보세요.”

“저기 이사님, 뭔가 잘못 아시는 것 같은데, 이게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오성 전자만 해도 몇 년에 걸쳐서 작업했을 겁니다.”

“박 부장님!”

“네?”

“자꾸 토 달지 말고, 일단 시키는 대로 움직이세요.”

“......알겠습니다.”

***

사실 휴대폰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명확한 차별화를 통해서 제품 우위를 유지해야 하는데, 국내 시장은 오히려 집안싸움만 벌였다.

정작 이 싸움에서 손해를 입은 것이 바로 중견 휴대폰 업체였다.

박희관 부장은 특히 대기업이 끼어들어서 국내 업체끼리 제 살 깎아 먹기 식으로 중견 업체를 죽이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이런 관행이 국내 산업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조민호 지시를 받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최영준 차장은 이 고질적인 문제를 잘 알면서도 딱히 조민호 연락에 대해서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박희관 부장이 이미 조민호에게 사전에 이야기를 들었을 것으로 생각해서 간단하게 인사만 한 채 오성 그룹에 미팅 요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두 사람을 반긴 것은 뜻밖에도 이학준 비서실장이었다.

“이학준입니다.”

“바, 박희관입니다.”

박희관 부장은 예상치 못한 상대가 나타나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오성 그룹을 이끌어가는 실세 중의 실세가 직접 나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오성 바이오 내에서 일어난 일을 다 보고받은 이학준 비서실장은 오히려 두 사람 눈치를 보기만 했다.

이미 몸이 달을 대로 달은 김건중 회장이 직접 이학준 비서실장에게 ‘조민호 비위를 건드리지 마!’라고 경고까지 했기 때문이다.

최영준 차장은 그나마 눈치가 빨랐다.

“일전 경제 연합회 모임에서 인사를 드렸는데, 다시 뵙습니다.”

“얼마 전에 휘트니 부활 기사 뜻깊게 봤습니다. 기사가 나왔을 때 다들 욕만 했었는데, 지금은 그 기사 하나가 다 씹어먹더군요.”

휘트니 부활 이전에 나온 중아일보의 휘트니 기사는 당시만 해도 조롱과 비웃음거리였다. 그런데 휘트니가 아주 뜨고 나서는 시대를 앞서 가는 기사라고 주목을 받았다.

오늘만 해도 다섯 번째 후속 기사가 나오면서 일약 주목을 받았고, 그 기사를 쓴 최영준 차장은 미래를 앞서가는 기자로 조명받았다.

최영준 차장은 그 일 때문에 조민호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다가 이번 일을 맡았다. 그러니 딱히 박희관 부장과는 달리 조민호를 의심할 리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최 차장님과 잘 좀 지내야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 부탁해야죠.”

두 사람은 훈훈한 미소를 한 채 서로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박희관 부장은 이 황당한 사태에 영문을 몰라서 눈동자만 굴렸다. 조민호에게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도 상대가 상대인 만큼 오늘 요청 때문에 잔뜩 긴장했다.

말을 어떻게 돌려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눈치 없는 최영준 차장은 대놓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과거 몇 년 전부터 오성 전자에서 메가 텔레콤에 대해서 작업한 것을 이미 파악했는데, 이 작업을 모두 중지해주셨으면 합니다.”

메가 텔레콤에 대한 압박은 단순히 관련 업체, 은행, 국세청을 비롯한 입체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일을 걸고 넘지면 당연히 분노해야 할 이학준 비서실장은 메가 텔레콤 관련해서 적지 않은 돈을 썼음에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 그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아, 뭔가 오해가 있나 봅니다. 제가 확인해보고 그 일은 모두 철회하겠습니다. 만약 업체가 손실을 입었다면 다 보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우리 대기업도 이제는 중견 업체와 상생을 해야지요. 대기업 혼자 다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입니다.”

“......”

박희관 부장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넋을 놓은 채 이학준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그 악명이 자자한 오성의 저런 개소리를 믿을 수가 없었다.

최영준 차장은 달랐다.

“감사합니다.”

“고작 이런 사소한 일로 굳이 만날 필요 없이 그냥 전화만 주십시오.”

“네.”

다만 이학준 비서실장은 입을 딱 벌린 채 아직도 충격에 빠진 박희관 부장을 슬쩍 한 번 쳐다본 후에 최영준 차장을 쳐다보았다.

“혹시 조 이사님이 새로운 신약 개발을 진행하는 것 같은데, 아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저도 그건 모릅니다.”

“저희 회장님도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꼭 좀 조 이사님에게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리고 이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마시고요.”

“네.”

최영준 차장은 떠나는 이학준 비서실장은 배웅하면서도 새삼 혀를 내둘렀다. 김건중 회장이 조민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집안 유전병이 문제겠지. 우리 아버지에게 하는 것을 딱 봐도 민호군이 순순히 김건중 회장을 치료해줄 것 같지도 않아. 아마 사전 정지 작업으로 이런 요구를 해본 것 일 테고, 알아서 긴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오성 그룹이 저렇게 쉽게 이권을 포기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박희관 부장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보시는 대로죠. 앞으로 미래 그룹과 잘 지내겠다고 신호 보내는 거죠.”

“그런 질문이 아니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학준 비서실장이 어떻게 조민호 이사님에게 저렇게 저자세를 보이는 겁니까?”

“저도 모르죠.”

“차장님!”

오늘 조민호 소개로 만난 최영준 차장은 겉으로는 전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번 휘트니 치료 기사를 경험하면서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내 손을 떠났어. 그런데 이 분은 조민호군 지시를 받으면서도 잘 모르는 눈치네. 하긴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니까.’

“정 궁금하면 직접 조민호 군에게 물어보세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글쎄요.”

그는 기타 부타 별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나도 조심해야지.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어.’

***

충격을 받은 박희관 부장은 당장 조민호를 직접 찾아가서 이학준 비서실장과 만난 미팅 내용을 세세하게 다 보고했다.

조민호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 채로 별 다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강아지처럼 계속 낑낑 거리는 박희관 부장을 무시했다.

그는 이보다는 김건중 회장이 고개를 바짝 숙인 것에 만족했다.

‘이거지. 어차피 췌장암 혼원기 안정화에는 시간이 좀 더 걸리니, 스티븐도 김건중 회장처럼 좀 더 굴려야겠어.’

그의 마음속에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기존 치료법은 혼원기를 사용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점에서 한계가 존재했다. 비록 사전 정지 작업으로 연구했지만 주먹구구식이었다.

결국 조민호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아직도 긴가민가한 췌장암 치료제보다는 오히려 더 구현하기 쉬운 ADHD 치료제에 집중했다.

췌장암 치료제 기전을 연구하면서도 ADHD 치료제에 대해서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ADHD 치료제로 많이 사용하는 메틸페니데이트, 덱세드린, 페몰민 구조를 통합해서 3가지 기전을 하나로 합치고, 줄였다.

이 3가지 치료제로 일어나는 기전은 췌장암 치료제를 연구하는 것보다 더 간단해서 더 쉽게 답을 찾아낸 것이었다.

손바닥 위에 떠오른 ADHD 혼원기는 시중신 혼원기와 일부 겹치면서도 구조는 더욱 더 간결했다.

‘효과는 시중신 혼원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메틸페니데이트 구조를 골격으로 해서 제조하기는 더욱더 쉬워.’

그는 이 작업이 끝나자 배효진 여동생에 대한 치료를 진행하기로 마음먹고, 바로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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