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35화 (135/176)

#135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신약 전문가가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해서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췌장암 혼원기의 복잡한 프로세스를 자기 몸을 상대로 이미 진행해본 조민호는 오히려 박재희 박사 설명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히려 경험적으로 자신이 이해를 못 한 췌장암 혼원기 특성을 하나둘씩 떠올렸다.

“아주 좋습니다. 계속해보세요.”

“네?”

박재희 박사도 오성 바이오 내부에 카더라 소식을 통해서 김건중 회장의 서자설의 주인공인 물리학과 조민호 말에 순간 당황했다.

“췌장암 표적 치료제가 있을 테니, 관련 연구도 진행되었을 것 아닙니까.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좀 더 해달라는 겁니다.”

“그건 너무 전문 분야라서 제가 설명을 한다고 해도.....”

평소라면 여기서 그냥 접을 정도로 인내가 없는 조민호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제가 이해하고, 하지 않고는 알아서 할 테니까. 박사님은 그냥 설명을 좀 해주세요. 설마 제가 사외이사라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죠?”

“저, 절대 아닙니다!”

다행히 조민호 압박은 효과가 좋았다.

박재희 박사도 경영진 눈치를 보면서 결국 옆에 칠판 두 개를 모두 가져와서 췌장암 관련된 표적 치료제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EGFR, VEGF, IGF-1R, K-RAS를 시작으로 해서 정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설명을 칠판 3개에 가득 채웠다.

그 어떤 보조 서적도 없이 박재호 박사는 끊임없이 강연을 이어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경영진은 뒤늦게야 해괴한 한국어에 하품했다.

하지만 조민호는 마치 그 설명을 다 알아들은 사람처럼 노트까지 꺼내서 필기했다.

박재희 박사도 뒤늦게야 흠칫했다.

“저기 이게 이해가 됩니까?”

“그럼요.”

“하지만 이 신호 전달 체계 관련된 용어는 의학에 대해서 모르면 전혀 이해를 못 할 텐데요?”

“흐름은 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꼭 알고 싶었던 분야니까요.”

“......그렇다면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오성 바이오 임원은 다들 입을 다문 채 설명을 알아듣는 것 같은 조민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요즘 물리학과는 약학도 공부를 하는 건가?’

***

미래 증권의 성공 신화는 중국 상하이 빌딩 매각을 통해서 실제로 보여주었고, 휘트니 펀드를 통해서 그 유명세를 떨쳤다.

휘트니의 최근 뉴욕 공연을 통해서 부활이 거저 허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미래 증권 열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심지어 미래 증권 몸짓 불리기 목적으로 조수현 회장은 대형 증권사에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상 최대 규모로 성장하기 시작한 미래 증권은 요즘 몰려드는 투자자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서 고객 선별 작업까지 했다.

미래 증권 후계자 조정연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한 편으로 조민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홍콩 사무소로 가는 것도 잠깐 보류한 채 고민을 거듭했다.

‘도대체 물리학과 전공자인 민호가 신약에 대해서는 어떻게 잘 아는 걸까?’

시기와 질투보다는 오히려 이제는 의아스러운 조정연은 홍신소를 통해서 조민호 정체를 하나씩 추적하기 시작했다.

[나다, 잠깐 술이나 한잔하자.]

[나 바빠.]

[요즘 너희 회사 잘 나가는 것은 아는데, 그렇다고 해서 200억 정도 투자받는 것은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닐 텐데?]

[진담이야?]

[우리 회사 현금 많은 거 누구보다 정연이 네가 잘 알잖아?]

[알았다.]

조정연은 만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투자 제안이라는 말에 일단 약속한 버닝 클럽을 찾았다. 최근 압수 수색까지 당하면서 명성(?)을 외부에 알렸지만, 여전히 사람은 넘쳐났다.

현란한 불빛에 맞춰서 격렬하게 춤추는 남녀는 주변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무려 100명이 모여서 흐느적거렸다.

남자의 손이 은밀한 곳에 파고들어도 오히려 여자는 더 난리였다.

춤추는 중앙 한쪽으로 나 있는 VIP 통로 입구에는 덩치가 막아섰다. 몇몇 사람이 호기심 때문에 그쪽으로 갔다가 오히려 협박을 받아서 물러났다.

조정연은 익숙한 걸음으로 그 앞을 가자 덩치는 바로 옆으로 비켜섰다.

한 때는 이 버닝 클럽에서 살다시피 한 덕분에 버닝 클럽 관계자가 알아봤다.

‘아니 그 때는 버닝 클럽이 아니었지. 이름도 가물가물 하군.’

VIP 쪽에는 그룹으로 모여 있는 이들이 몇 패거리로 나누어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뭔가를 탔다.

‘여전하군.’

“정연아!”

조정연은 손을 가볍게 흔들면서 일곱 명이 모여 있는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연예인 못지않을 정도로 늘씬한 여자 두 명이 조정연 양옆에 다가왔다.

신동일은 위스키를 따라주면서 소리쳤다.

“야아, 너 좀 변했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위스키를 들이켰다가 신동일이 잔에 가루를 넣으려고 하자 막았다.

“넣지 마.”

“어? 정말? 야아, 정연아, 너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지금 농담할 기분 아냐.”

조정연은 연이어서 잔을 들이켰고, 그제야 조민호 때문에 쌓인 감정을 털어내서 좀 진정했다.

한 때는 술과 여자라면 미친 듯이 탐하든 조정연이 마치 다른 사람인 양 행동하는 모습에 신동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놈은 또 왜 이래?’

안 그래도 오성 그룹 김건중 회장이 눈치를 챈 것 같아서 다시 미국으로 도망치듯이 떠났다가 이제는 좀 괜찮은 것 같아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반드시 보복하려고 조민호에 대해서 다시 알아봤는데, 뜻밖에 조수현 회장의 조카라는 사실을 알았다.

조정연을 오늘 이 자리에 불러낸 것도 그것 때문이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너 혹시 조민호라고 알아?”

“그 새끼라면 당연히 알지. 가만 넌 왜 갑자기 그놈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 새끼가 오성 바이오 사외이사란 것을 얼마 전에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수랑 그놈이랑 사귄다는 소문을 들었다.”

“아.”

조정연은 김지수와 조민호가 사귄다는 말 따위는 믿지 않았지만 김지수와 신동일 관계가 깨진 것을 뒤늦게 떠올렸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너희 집안이랑 오성 가문이랑 안 어울려. 이제 그만 포기해라.”

‘이 새끼가.’

이를 으드득 갈았지만, 신동일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너도 입장이 그놈 때문에 어렵지 않아. 자칫하다가 미래 그룹은 그놈에게 넘어갈지도 몰라. 너희 아버지가 단단히 빠져 있던데?”

“지랄하지 마.”

조정연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해 봐. 박상철 과장이 죽으면서 회사 내 처지도 이전과는 달라. 이제는 따로 투자를 받아오지도 못하잖아. 미국에서 박사학위 따고, 수백억 투자까지 받아서 금의환향하려는 계획도 물 건너갔지.”

그는 다른 이야기 보다는 한 가지 사실에 깜짝 놀랐다.

“뭐? 박상철 과장이 죽었어?”

“아, 이런 넌 몰랐겠네. 미국 경찰에게 총 맞아서 죽었다.”

“맙소사.”

조정연은 진짜 깜짝 놀라서 자리에 풀썩 앉고 말았다.

신동일 소개를 받아서 안 박상철 과장 덕분에 꽤 적지 않은 투자를 받았기에 조정연은 미국에 있을 때도 회사 내에 입지를 다졌다.

그런데 박상철 과장과 관련된 의혹이 터지면서 오히려 미래 증권 내에서도 조정연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지만 쉬쉬했다.

신동일은 충격요법이 잘 먹히자 다시 가루를 탄 술을 권했지만 조정연이 거절하자 인상을 찡그린 채 잔을 내려놓았다.

박상철 과장 이야기를 하면서 넌지시 조민호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다.

“나도 잘 몰라. 작은 아버지가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면서 같이 나타났으니까. 그런데 민호 그놈은 제 혼자서 독립해버렸어.”

“그것 외에는 더 없어?”

집요하게 조민호에게 대해서 늘어지자 조정연도 뒤늦게 어리둥절했다. 심지어 옆에 달라붙는 여자 두 명을 밀어냈다.

“너 갑자기 왜 그래? 설마 민호 그 새끼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오라고 했냐?”

“그래. 나 그 민호 그 새끼 때문에 미쳐버리겠다. 그놈 알고 나서는 모든 일이 엉망이야. 중국의 보시라이 상무부장이 죽으면서 중국 사업도 완전히 박살 났다.”

“보시라이 상무부장은 또 뭐야?”

“아, 우리 신명 해운 중국 쪽을 봐주는 중국 권력자다. 그 양반이 갑자기 죽고 나서 시진팡 계열 놈이 오히려 우리를 겁박하고 있다.”

신명 해운 매출 중에 50% 이상이 중국 쪽과 관련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조정연은 뒤늦게야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보시라이 사망 사건을 떠올렸다.

“......좀 이상하다. 박상철 과장도 죽고, 보시라이 상무도 죽었잖아. 생각해보니, 모 경찰서장도 자살했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많이 죽어?”

“그렇지. 많이 이상하지. 조민호 그 새끼가 끼어든 이후에 모든 일이 다 망가졌어.”

이 어이없는 상황에 분통을 터트린 신동일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지만, 다시 질문을 바꾸었다.

“혹시 조민호 그 새끼가 요즘 뭘 하는지 알 수 있어?”

이미 의혹을 느낀 조정연도 바보는 아니었다.

“몰라.”

아니 그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신동일 모습에 의혹과 실망을 동시에 느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제약 계열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고, 신동일이 조민호를 건드렸으면 하는 바램에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나간다. 그리고 이런 일로 연락하지 마. 아,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놈이 요즘 신약에 관심이 많은 가 보더라. ADHD 치료제나 췌장암 치료제까지 연구 중이야.”

신동일은 잠깐 앉았다가 떠나는 조정연 모습에 분노했다.

‘저 개새끼도 날 이제 우습게 아네. 가만 신약 쪽에 관심을 둔다고?’

***

신동일은 이미 몇 번 큰 사고를 치고 나서 신한중에 완전히 찍혀서 회사 내에서도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는 한국에도 신한중 몰래 왔었는데, 괜찮은 정보를 알고 나자 아버지 신한중 사장을 직접 찾아갔다.

다행히 신한중 사장도 시간이 지나서 이전처럼 살벌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김건중 회장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것을 잘 알면서 한국에 또 들어왔냐?”

“김건중 회장도 아버지 눈치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못합니다.”

“쯧.”

신한중 사장은 별다른 내색 따위는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소리 마.”

“신명 건설이 이번에 대박 쳤잖아요. 수도권 택지를 헐값에 사들였던 것을 가지고 얻은 이익만 해도 수천억이 넘죠. 그 일은 김건중 회장도 할 수 없죠.”

“쓸데없는 말을 입 밖에 내지 마.”

“에이, 어차피 아버지가 신명 그룹 부회장이 되면 신명 해운은 제가 맡아야 하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누구 눈치를 봅니까. 김건중 회장도 우리가 부담스러워서 결혼을 진행하게 했잖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신한중 사장도 피식 웃었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할 일도 아냐. 매사에 입을 조심해라. 김지수 문제는 당분간 잊어버려. 김건중 회장 문제는 또 기회가 올 거다.”

신동일 눈빛이 반짝였다.

“이번에 진방산업을 인수한다는 소리도 있던데, 그것도 사실입니까?”

“넌 몰라도 된다.”

“알았어요. 그런데 오성 바이오가 ADHD 신약도 개발 중이에요. 심지어 췌장암 치료제도 검토 중이라고 하던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알기로 루노 제약 지분 중에 차명으로 꽤 있는 걸로 알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정연이 알죠? 그놈 아버지 조수현 회장이 오성 바이오 지분 30%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지분 때문에 오성 바이오 이사로 간다는 소리가 있던데, 알고 보니 홍콩 사무소 쪽을 선택했나 봐요. 혹시나 싶어서 알아보았는데, 그 소리 합니다.”

“더 자세한 것은 모르고?”

“역시 아버지도 걱정하시는군요.”

“자세히 좀 알아봐.”

“네.”

***

사실 신동일 본인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최영민 사장은 이미 이전부터 그를 유심히 지켜봤지만, 미국으로 나가면서 손을 뗐다.

그런데 신동일이 국내에 입국하는 순간에 국정원 내의 인맥 통해서 최영민 사장은 그 정보를 얻어서 다시 감시했다.

“조정연과 신동일이 버닝 클럽에서 따로 만났다고요?”

“네. 알아보니, 두 사람이 한국에 있을 때 꽤 친했다고 합니다. 술과 마약을 같이 했는데, 클럽에서도 유명했습니다. 조수현 회장이 참다못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예상밖의 이야기에 조민호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정말 의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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