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34화 (134/176)

#134

뒤늦게 마약 중독으로 완전히 몰락한 휘트니에 대한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면서 경악했다.

‘맙소사.’

최근 췌장암 문제와 회사 내부 이슈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음악 쪽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뒤늦게야 휘트니 부활을 확인했다.

‘......진짜 부활했잖아.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설마 래리 이야기가 사실이었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지? 정말 지압으로 마약 중독은 그렇다고 해도 성대 이상까지 치료했다고?’

스티븐은 하던 일도 다 내팽개친 채 래리 브라이드 사무실을 직접 찾아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래리 브라이드는 다혈질이지만 가능성을 보면 집요해지는 스티븐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그저 웃으면서 로버트 힐 이야기를 해주었다.

“딱 한 번만 말 할 테니, 잘 들어. 나도 내 말을 믿을 것 같지 않아서 몇 번에 걸쳐서 확인한 사실인데......”

단순히 로버트 힐 대사만을 믿지 않아서 아예 따로 관련 자료를 조사했다. 심지어 한국 흥신소 통해서 이중으로 확인했다.

“믿을 수가 없군.”

‘대체 의학이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미 스티븐은 살기 위해서 치료법에 대한 동서양 모든 관점에서 연구를 해봤다. 결과는 다 실패했고, 지금은 표적 치료제에 집중했다.

“지난번에는 내가 미안했어.”

“자네 성격이 원래 그렇잖아.”

“그거 욕이야?”

“그럼에도 난 자네가 좀 더 오래 살기를 바래. 자네 때문이 아니라 자네가 꿈꾸는 세상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성격은 개인데, 일은 잘해서 더 오래 살라는 욕으로 들리네.”

“마음대로 생각해.”

“지금 미팅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진지한 스티븐 태도에 로버트 힐 대사를 통해서 조민호 답변을 들었다.

“아직은 확인할 것이 있어서 좀 더 기다려 달라는군.”

“아니 지압으로 치료한다는데, 뭘 더 연구해?”

“하지만 로버트 힐 대사 조언도 있으니, 아무래도 기다려 봐야지.”

“당장 치료가 된다며!”

“좀 인내를 가져 봐.”

래리 브라이드 갑자기 초조하게 날뛰는 스티븐 모습을 보면서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그렇게 말해도 들은 척도 안 하더니, 지금은 난리구나. 그런데 확실히 이상하네. 지압법이 무슨 연구가 필요할까? 설마 로버트 힐 대사가 사기 친 것은 아니겠지?’

***

처음에는 별생각이 없었지만, 막상 지압식 치료법에 대해서 안 스티븐은 더 초조했다. 방법이 없을 때는 절망했지만, 막상 있다는 소리를 듣자 췌장암 치료법이 더 간절했다.

결국 몇 번이나 다시 로버트 힐 대사 통해서 조민호에게 연락했는데, 욕만 들었다.

[정말 짜증 나게 하는군요. 기다리라는 소리를 왜 그렇게 못 알아듣는 겁니까?]

하루 단위로 계속 전화를 해봤다.

[자꾸 이러면 치료는 없던 걸로 할 겁니다. 아니 췌장암이 무슨 감기라고 됩니까. 그냥 손대면 치료가 되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닙니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인데......’

몇 번 핍박을 들은 스티븐은 의외로 상대에 대해서 깊이 신뢰했다.

그게 사실이니까.

기다리다 못한 스티븐은 결국 먼저 한국에 가서 있겠다는 소리했다가 욕만 잔뜩 듣고 나서는 오히려 표적치료제에 대해서 적극 나섰다.

“표적 치료제 FDA 승인 사전 준비 작업은 어떻게 되어가?”

불과 일주일 만에 완전히 반 시체가 된 스티븐 모습에 래리 브라이드도 피식 웃었다.

“표적 치료제 법안을 담당하는 존 스미스 상원의원을 비롯한 몇 사람을 따로 만나서 이야기가 잘 풀려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쪽은 로버트 힐 대사와도 통해서 결과는 잘 될 거야.”

“아니 아무리 봐도 그 정치인 쓰레기를 믿을 수가 없어. 차라리 다른 대안을 준비해.”

“설마 다른 나라에 가서 투여하려는 거야?”

“유럽 국가 쪽에서는 굳이 FDA 승인을 안 받아도 문제가 없다고 들었어.”

“허.”

래리 브라이드도 스티븐의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지만 한 편으로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스티븐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만신창이가 된 회사를 겨우 다시 출발 선상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제는 췌장암이 스티븐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잘 될 거야.”

“유럽에서 표적 치료제로 치료받던, 아니면 한국 쪽이던 계속 쪼아 봐. 래리 네가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둘 거야!”

“그래.”

스티븐은 자기 운명 앞에 놓인 거대한 장벽을 느끼면서 어금니를 악물었다.

‘절대로 포기 안 한다!’

***

조정연은 최근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미래 증권 홍콩 사무소로 가야 함에도 그 일정을 연기한 채 오성 바이오 본사를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지난번과는 달리 이상하게 오성 바이오 본사는 조용했다.

뒤늦게 오가는 직원을 통해서 다들 대회의실에 몰려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 임원 교육을 핑계로 자신이 당한 일을 단단히 따질 각오로 대회의실 문을 활짝 열다가 안에 근 백여 명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하자 슬그머니 안으로 들어가서 뒷자리에 앉았다.

백여 명 중에는 조정연이 아는 임원진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모르는 이들이었다.

‘연구소 직원인가?’

회의 내용은 발달장애 치료제를 시작으로 해서 다양한 영역에 걸친 신약에 관한 것이다. ADHD 치료제가 주가 되기는 했지만, 그 외의 분야도 많았다.

조정연도 미국에서 지낼 때 신약이 얼마나 수익성이 높은 분야인지 공부한 터라 과연 오성 바이오 수준이 어디까지일까 싶어서 묵묵히 경청했다.

‘아니 조민호, 저 새끼는 왜 저기 있는 거야?’

제일 앞 열은 주로 경영진이 참석했는데, 가장 상석에 조민호가 떡 하니 앉아 있었다. 그는 비서가 내온 냉커피를 홀짝이면서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발표자가 발표하면서도 주로 조민호를 의식했고, 마치 그를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처럼 발표했다.

‘저 새끼가 진짜......,가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처음에는 질투에 미쳐 있는 조정연도 뒤늦게 가슴이 사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미래 그룹이 오성 바이오 대주주라고 해도 자신조차 따돌리는 인간인데, 조민호에 대해서는 유독 저 자세였다.

‘......이상한데.....’

***

LC 생명과학에서 주로 췌장암 치료제 개발을 담당했던 박재희 박사는 췌장암 치료 신호 전달 체계에 대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서 주목을 받는 중에 여직원 성희롱으로 퇴출당했다.

그는 당연히 성추행한 적이 없었지만, 여직원 증언을 이용한 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LC 생명과학을 그만뒀다.

뒤늦게 췌장암 면역 반응에 관한 연구 때문이라는 것을 들었다.

이 연구 결과는 곧 논문으로 발표가 나갔는데, 주도적으로 이 연구를 진행한 그의 이름은 빠졌다.

분노한 박재희 박사는 소송까지 걸어서 끝까지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소송은 녹록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여직원을 앞세워서 거꾸로 성추행 협의로 맞고소했기 때문이다.

박재희 박사는 어이가 없었지만 막강한 LC 그룹 법무팀을 앞세운 LC 생명과학과 싸워서 이기기는 아주 어려웠다.

이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오성 그룹 법무팀이었다.

그들은 새로 설립하는 오성 바이오 연구소 스카우트를 제안했고, 필요하다면 이번 소송을 잘 마무리해주겠다고 했다.

박재희 박사 역시 처음에는 LC 생명과학보다 더 악랄한 오성 그룹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대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이이제이(以夷制夷) 방법으로 오성 바이오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성 법무팀 압력을 받은 LC생명과학은 다음 날에 성희롱 소송을 바로 취하했고, 췌장암 연구 관련해서 합의금 2억을 제안 받았다.

이미 지쳐 있던 박재희 박사는 결국 이 제안을 받았다.

‘어차피 64개 유전자 변이와 12개의 핵심 신호 전달 체계 이상 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그것으로 치료법 개발할 수는 없어.’

솔직히 오성 바이오도 믿을 수는 없지만, 신약 연구 자체가 워낙에 자본이 많이 드는 터라 어지간한 중소기업이나 대학 연구소에서는 빛을 보기 힘들어서 그래도 차선을 선택했다.

[.....췌장암은 다른 암과는 달리 2년 생존률이 고작 10%에 불과하고, 5년 생존률은 8%로 극악합니다. 수술받는다고 해도 3년 안에는 거의 사망합니다.]

따라서 췌장암 수술이 설사 잘 된다고 해도 재발하기 일 수다. 방사선 요법이나 항암요법 역시 치료가 아니라 생존 연명이 대부분이다.

ADHD 신약에 대한 발표와는 좀 다른 방향이라서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다들 인상을 찡그렸다.

차라리 자폐증 치료제나 우울증 치료제라면 연관성이 있어서 관심을 둘만 하지만 전혀 동떨어진 분야라서 구경만 했다.

조민호 역시 췌장암 혼원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부족한 부분 때문에 고민 중이었는데, 이번 발표에 오히려 더 집중했다.

췌장암 이전에 폐암을 비롯해서 다양한 질병 치료제에 대한 발표가 있었기에 옆자리에 동석한 최태한 사장이 바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오성 연구소를 꾸리면서 다양한 전문가를 섭외하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 분야가 틀린 박사님이 많이 섞였습니다.”

“아뇨. 제가 오히려 원한 바입니다.”

“네?”

“아, ADHD 치료제는 단기 과제고, 췌장암 치료제는 장기 과제로 생각하세요.”

“네에?”

최태한 사장만이 아니라 옆에 같이 자리한 오성 경영진 대부분은 마치 ‘우로 봐!’ 구령에 따라서 고개를 동시에 돌린 신병처럼 동시에 조민호 얼굴을 쳐다보았다.

뒤에 있던 부장급 직원 역시 조민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박재희 박사는 단상 위에서 발표했기에 이 괴상한 회의실 분위기를 파악하자 당황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서 다시 발표 자료를 살폈다.

조민호가 손을 들었다.

[별일 아닙니다. 발표 계속하세요.]

[아, 네.]

당황한 얼굴로 다시 발표를 이어갔지만, 꾸벅꾸벅 졸던 이들조차 눈을 초롱초롱 뜬 채 자기 발표에 집중하자 오히려 더 말을 더듬었다.

박재희 박사는 결국 인상을 찡그린 조민호 얼굴을 보자 식은땀을 흘리면서 다시 강의에 집중했고, 가까스로 끝냈다.

조민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박재희 박사 뒤를 따랐다.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임원진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갑자기 경영진이 빠져 버리자 간암 관련된 주제 발표 때문에 단상에 올라온 연구원은 땀을 삐칠 흘리면서 울상을 짓고 말았다.

제일 뒤쪽에 있던 조정연은 이를 으드득 깨문 채 조심스럽게 빠져나갔다.

***

당황한 박재희 박사는 자기 연구실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연구실 안에는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과 심지어 실무진도 같이 자리한 채 박재희 박사를 매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박재희 박사 연구팀 역시 갑자기 들이닥친 임원진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도망치듯 연구실을 나가버렸다.

조민호는 한쪽 자리에 앉아서 힐끗 경영진을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가서 일들 보세요.”

조민호 정체에 호기심을 가진 김정욱 전무가 다들 밖으로 내쫓았다.

“안 바쁩니까?!”

그들은 밖으로 밀려나면서도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수군거렸다.

“설마 췌장암 치료제를 개발하는 건가?”

“췌장암 발생기전에 대한 것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슨 치료제야!”

“그렇기는 하지만 조민호 사외이사가 신약 바스클린을 가져왔다는 소리가 있어. 그것도 오성 그룹 측에서 돈 주고 사왔어. 그러면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잖아?”

“아니겠지. 난 ADHD 치료제조차 의심하니까.”

비록 오성 바이오 내부에 공식적으로 조민호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알음알음 소문이 난 지가 오래였다.

남아 있는 몇 사람은 별달리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수긍했다.

물론 그 답이 어쨌든 간에 결과적으로 조민호 사외이사는 췌장암 치료법에 흥미를 드러냈다.

박재희 박사가 오히려 아직 현실을 제대로 이해 못 하는 이들을 향해서 일축했다.

“췌장암에 대해서 기대를 모은 다양한 항암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는 별다른 결과를 내놓지 못했습니다. 그 때문에 췌장암에 대한 분자 생물학적인 접근은 더 활발해졌습니다. 그렇다고 그게 췌장암 치료제를 개발했다는 환상에 빠지면 안 됩니다.”

췌장암 신호전달체계는 너무 복잡한 구조를 이루기 있기에 분석 자체가 쉽지 않았다. 설사 한 가지 신호 체계에 대한 표적 치료를 한다고 해도 다른 신호 체계 때문에 효과가 별로 없다.

결국 신호체계에 관한 병행 연구가 필요한데, 이게 아주 복잡해서 현대 의학 수준으로도 답을 찾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