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30화 (130/176)

#130

조민호는 결국 암살 성공 기사를 보면서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요즘 토플 시험 때문에 영어에 푹 빠져서 미국 대형 언론 기사를 번역하는 박진민은 보시라이 사망 기사에 고개를 갸웃했다.

“암살이네.”

“심장마비라는데?”

“에이, 여기 번역된 기사 봐라. 멀쩡한 보시라이가 죽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하잖아.”

“소설을 쓴 거야.”

신문 복사본을 가져온 김영탁이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이상해. 난 미국 쪽에서 마사지했다고 본다.”

“웬 마사지냐?”

“암살 말하는 거다. 보시라이가 한국 쪽에 계속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었어. 아마 그 일을 견제할 목적으로 미국이 경고로 보시라이를 죽였어.”

그럴듯한 이야기에 조민호도 혀를 찼다.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최근 중국 소식 카페 가면 심심치 않게 나오는 이야기다. 중국 정부가 한국 식민지 사전정지 작업으로 친중파 인사를 계속 늘려간다고 해. 미국 애들 처지에서 눈에 가시잖아.”

“넌 음모론이야?”

“난 사실이라고 봐. 현 정권도 이상할 정도로 중국 정부에 꼬리 내리잖아.”

“대놓고 그렇지는 않던데?”

“그거야 일반 한국 시민 대다수는 중국인을 극도로 혐오하잖아. 그러니 여론을 의식해서 뒷구멍으로 그 작업을 하는 거야.”

“흠.”

조민호 신랄할 정도로 비관적인 두 사람 의견에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조민호 시선을 무시한 채 중국 기사를 계속 살폈다. 심지어 따로 기사를 발취해서 정리했다.

조민호는 물론 약간 흥미를 느꼈지만, 자기에게 칼을 들이댄 보시라이와는 달리 아무런 관련이 없는 중국 정부에 손쓰기 싫었다.

‘이 정도면 영탁이 의견처럼 미국을 의식해서라도 중국 쪽은 조용하겠어. 그리고 잠깐 상황을 두고 보는 것도 좋겠어.’

***

보시라이 죽음은 중국 공산당 내에도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내부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격화되어갔다.

정치 세대교체라는 미묘한 시기에 한 사람의 죽음이 혼란을 더 부추겼다.

정작 이런 사태에도 미래 그룹은 상하이 빌딩 매각을 공개 매각했다.

[미래 증권은 5,100억에 상하이 빌딩을 골드만 식스에 매각해서 시세 차익만으로 2,600억 수익을 올렸는데, 이 이익을 상하이 펀드 투자자에게 각각 배당했다.]

불과 반년 만에 얻어낸 이 투자 수익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후속 보도가 쏟아지면서 미래 증권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특히 조수현 회장의 환상적인 이 투자 수익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 사태는 당연히 조정연을 더 자극했다.

조수현 회장은 어떻게 해서라도 조정연이 굳이 중국 투자에 끼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아내조차 밤낮으로 괴롭히자 결국 두 손을 들어버렸다.

“좋다. 원하는 데로 해주겠지만, 오성 바이오 쪽에는 손을 떼야 할 거다.”

“저도 둘 다 욕심낼 정도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오성 바이오 이사 자리는 철영에게 맡길 거다.”

“네? 하필이면......”

“야,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다른 사람에게는 못 맡겨!”

“......네.”

조정연도 작은아버지가 자기 자리로 차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신약 개발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을 참작했다.

‘어차피 한 10년 후라면 모르겠지만 몇 년 안에 빛을 보기는 어려워. 하지만 상하이 빌딩 같은 투자는 반년 만에 결과가 나오잖아. 2,500억 투자해서 2,600억을 벌었다고!’

***

조정연과 조철영 교체는 미래 그룹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물론 주로 씹힌 대상은 조철영이 아니라 조정연이었다.

오성 바이오 이사로 간 것부터가 앞으로 후계자 구도를 향한 첫 걸음이라고 비꼬았다.

조철영은 뜻밖에도 미래 그룹 내의 일에 대해서 무덤덤했다.

오성 바이오 이사 선임 문제 때문에 오성 바이오 본사 방문을 하던 조민호조차 동행한 조철영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기분 안 나쁘세요?”

“별로.”

“아버지답지 않으세요.”

“굉장히 기분 나쁘구나.”

“아버지 욕심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나라고 해서 욕심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돼. 그렇다고 해도 이건 내 재산이 아니라 큰 형 거다. 탐욕 부릴 여지가 없어.”

“흠.”

조민호도 과거와는 많이 변한 조철영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큰아버지 압박 때문인가요?”

움찔 몸을 뜬 조철영은 오성 바이오 본사를 향해서 걸음 속도를 올렸다.

“하긴 큰아버지가 진짜 진정 꼰대죠. 그 구박을 박으면 아버지라도 딴 생각하기 어렵죠.”

“그만해라.”

“그럴까요?”

그는 힐끗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조철영 모습을 쳐다보았다. 큰아버지에게 괴롭힘 당해서 변해버린 조철영 모습에 감탄했다.

조철영은 민망한 듯 툴툴거렸다.

“너희 큰아버지 성격은 너도 잘 알잖아. 정말 엿 같아. 요즘은 자다가도 악몽을 꾼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잔소리는 끔찍해.”

조민호는 솔직히 큰아버지가 아니었다면 도박이나 여자에 빠져서 폐인이 된 아버지 모습을 상상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래도 전 지금 모습이 보기 좋아요.”

“야!”

겉으로는 고함을 질렀지만, 힐끗 피식 웃는 자식 얼굴을 보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딱히 지금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비록 자율적인 결정을 하지 못하지만, 형 지시에 따라서 하나씩 경험 쌓아갔다.

중국 지사에 있을 때만 해도 중국 공산당 실세는 거의 다 만나 보았고, 중국 재벌에 들어가는 이들과 인맥을 쌓았다.

그 과정에서 중국을 방문한 미국 인사와도 안면을 텄다.

이제는 미래 그룹 내에서도 알음알음 조철영 자신의 명성도 알려졌다.

솔직히 그 혼자였다면 이런 위치에 서지도 못했을 것이다.

조수현 회장이 목이 찢어지라고 옆에서 잔소리를 했기에 가능했다.

이전 경험 때문에 오성 바이오 이사 자리에도 딱히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그런데 넌 왜 오성 바이오 본사를 방문하는 거야?”

“저 사외이사입니다.”

“아, 그래? 놀랍구나.”

아직 내막을 잘 모르는 조철영은 살짝 비웃었다.

“너도 형 도움을 받다니, 별수가 없구나.”

“글쎄요.”

그도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막상 루노 제약과 아스트라에 대한 사전 정지 작업을 하기 위한 대상으로 오성 바이오를 선택했지만, 그 내막까지 말할 수 없었다.

‘딱히 경영에 간섭하고 싶지 않은데.....’

내막을 잘 모르는 조철영은 아들에게 구박당한 것을 복수라도 하려는 듯이 아들을 공격하다가 문득 회사 입구에 나와 있는 이들을 발견하자 깜짝 놀랐다.

‘아니 설마 나 때문에 나와 있는 거야? 미래 그룹 경영진이라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정연이를 그렇게 괴롭힌 오성 바이오 경영진이 왜 저러는 거지?’

***

최근 한미 FTA 의약품 분야 협상에서 민감한 사안 중의 하나가 제약 분야인데, 이것이 영세한 제약 업계에는 큰 타격을 줬다.

특히 GMP 차등평가제에 따라서 5개 등급으로 나누어지는데, 100억 미만의 영세한 제약 업체는 피해를 벗어나기 어렵다.

우수한 등급을 받은 업체는 심지어 인센티브도 받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나가 의약품의 특허심사기간까지 특허기간에 포함했다. 20년 특허 만료기간이 대폭 늘어나서 복제약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오성 바이오 역시 신약 바스클린 외에는 대부분이 복제약 매출이라서 영향을 받았고, 신약 바스클린 3상 시험에 매달렸다.

이 난관을 극복할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 최근 3상 임상 시험 부작용 관련해서 자료를 넘긴 조민호였다.

오성 바이오 연구원도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자체 시험을 해보고 나서야 조민호 조언이 확실하다는 것을 최근 확인했다.

바꾸어 말하면 다른 많은 신약 업체처럼 임상 3상 시험에서 실패할 뻔했는데, 그 도박에 가까운 문을 통과했다.

최태한 사장을 비롯한 오성 바이오 경영진은 갑자기 조민호가 방문하겠다고 하자 오성 바이오 본사 입구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설마 회장님이 아예 사장단 회의에서 대놓고 조민호 이사를 지지할 줄은 몰랐어.’

불과 지난주에 오성 그룹 본사에서 갑자기 열린 오성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다루어진 안건은 바로 조민호 이사에 대한 것이다.

아예 숨김없이 그대로 조민호 이사의 사진까지 공개하면서 오성 사장단에게 자세한 내용과 경고까지 곁들여서 설명했다.

물론 아직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김정욱 전무는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번까지는 참았지만,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사를 자기 내키는 대로 막 바꿉는데,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사장단 회의에서도 회장님이 특별 지시를 내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사장님은 화가 안 납니까?”

“누가 사장단 이야기를 또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조심하세요. 회장님이 조민호 이사 정보를 특별히 보안을 당부했고, 지금처럼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만으로 물러나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몰라서 불만이 쌓인 김정욱 전무가 반박했다.

“아니 무슨 중국 공산당도 아니고,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까지 합니까? 도대체 조민호 이사 정체가 뭐기에 그럽니까?”

“잘 알면서 그럽니까?”

“바스클린 부작용 해결책 말입니까? 그것도 그렇습니다. 설마 그런 일을 물리학과 조민호 이사 그 친구가 혼자 해결했다는 말입니까. 분명히 그 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엇이든지 왜 자꾸 조민호 이사에 대한 것을 비밀로 처리합니까?!!”

“그럴......”

하지만 그는 오성 바이오 본사 앞으로 다가온 두 사람을 보자 후다닥 뛰어가서 다른 한 사람을 무시한 채 조민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네. 그런데 굳이 이렇게 나와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만큼 회사도 조 이사님에 대한 회사 기여도가 큽니다.”

“쯧.”

조민호는 뒷짐을 한 채 대수롭지 않게 그들 사이를 지나가면서 영문을 몰라서 입을 살짝 벌린 조철영을 보자 어깨를 으쓱했다.

“이번에 조정연 이사 후임인 조철영 이사님입니다.”

“아, 조철영 이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네? 저, 저도 반갑습니다.”

조철영 이사는 그제야 당황해서 눈치를 봤다.

‘도, 도대체 뭐야?’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한 채 다른 이사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회의할 때 조민호를 알게 모르게 씹던 민한승 전무도 몸을 낮추었고, 고호성 이사 역시 자신이 아랫사람인 양 고개를 숙였다.

김정욱 전무는 내심 욕설을 퍼부으면서 차마 감정대로 하지 못했다.

도대체 경영진이 왜 사외 이사를 상대로 이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난 만남은 강제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고개를 숙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전혀 바뀌지 않는 이 상황에 인상을 찡그렸다.

그런데 지난 오성 그룹 사장단 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은 다른 이사들은 이전보다는 더 어깨를 낮춘 채 조민호를 대했다.

사장단 회의 이전까지는 카더라 정도였지만 그 이후로는 실제로 오성 그룹 실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조민호였다.

“......”

조철영 이사는 이 황당한 사태에 영문을 몰라서 눈동자만 도르르 굴렸다.

‘민호 이 녀석은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

임시 임원 회의를 보통 주도하는 것은 대표 이사가 보통인데, 오성 바이오 회의는 오히려 가장 먼저 앉은 조민호였다.

회의실 상석에 앉은 최태한 이사는 한미 FTA 사태 이후에 타격이 불가피한 점과 한국 제약 업계의 수익 악화에 따른 타격에 대해서 조민호에게 말했다.

다른 경영진 역시 자기 차례가 되면 한쪽에 앉은 조민호를 대상으로 보고했다.

“개발 환경 자체도 타격을 받겠지만, 제품 출시 역시 문제가 됩니다.”

조민호는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면서 눈치만 보는 아버지 조철영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전 사외이사이니, 없는 사람치고 말하세요.”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임원 회의는 일방적으로 흘러가서 사장 보고가 아니라, 사외 이사 보고 형태가 되어갔다.

“정말 불편합니다. 전 여기 조철영 이사님과 같이 동행한 것뿐입니다.”

“아, 네.”

대답은 하지만 행동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조민호도 결국 혀를 내둘렀다.

“결국 신약 바스클린 출시를 어떻게 해서라도 앞당겨야 한다는 말이군요.”

“네. 필요하다면 괜찮은 중견 신약 업체 인수 합병도 고려 중입니다.”

인수 명단에 오른 기업은 무려 15곳이 될 정도로 한국 제약 상황은 힘겨웠다. 이들 중에 반 이상은 자금 압박받으면 바로 파산될 상황이었다.

“전 어디까지나 경영 간섭이 아니라 사외이사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러니 제 말은 그냥 참고로만 받아주세요.”

“......네”

어느 정도 조민호를 이해하는 이도, 돌아가는 상황을 몰라서 불만을 가진 이도, 오성 그룹 본사 압박에 그저 고개를 숙인 이들도 그저 물끄러미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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