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그는 힐끗 눈치만 보고 있는 조철영을 쳐다보고 나서 욕망에 푹 빠진 조정연 눈빛에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버지도 가능하면 중국 일은 손 떼고, 차라리 미국 쪽을 한 번 알아보세요. 큰아버지가 아마 잘 도와줄 겁니다.”
조수현 회장은 순순히 수긍했다.
“중국 일을 정리하면 미국 쪽 투자를 알아보는 것이 맞을 거다.”
조철영은 기묘한 가족 분위기에 어깨를 으쓱한 채 묵묵히 수긍했다.
“난 형 시키는 대로만 할게.”
조정연만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느꼈지만, 조철영이 간단하게 중국 지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에 넌지시 자신이 나섰다.
“제가 중국 쪽을 맡으면 안 될까요?”
조수현 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넌 오성 바이오 이사로 이미 결정 났잖아. 그런데 중국 투자까지 하겠다고?”
안 그래도 오성 바이오의 노골적인 압력을 느낀 조정연도 중국을 선택했다.
“오성 바이오 쪽은 포기해야죠.”
“중국은 안 된다.”
차선으로 중국 대신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아시아에서 뜨고 있는 홍콩을 선택했다.
“그러면 홍콩 사무소도 괜찮습니다.”
조수현 회장도 집요한 조정연 태도에 한 소리 하려고 했는데, 마침 임서이가 끼어들었다.
“여보, 당신 정말 너무한 것 아냐? 정연에게도 기회를 줘야 할 것 아니에요!”
“끄응.”
“큰어머님 의견도 일리가 있습니다.”
조정연은 갑작스러운 조민호 찬성에 소리쳤다.
“고, 고맙다.”
“고맙긴.”
조민호는 오성 바이오 이사나 제대로 파도 재미가 괜찮을 텐데, 엉뚱한 홍콩 타령하는 조정연 모습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자기 무덤을 파는군.’
***
조정연 때문에 잔뜩 분노한 조수현 회장은 따로 조민호와 만나서 중국 문제를 상의했다.
“누구냐?”
“보시라이 상무부장입니다.”
“아, 그자.”
눈살을 찌푸린 채 얼마 전에 만났던 보시라이 상무부장이 숨김없이 그대로 탐욕을 드러내면서 조철영을 유심히 쳐다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아십니까?”
“그래. 다른 자와는 달리 유독 우리 쪽에 이를 드러냈다.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일 인줄은 몰랐다.
그도 웃으면서 넌지시 둘러 말했다.
“그렇게 골치 아픈 자가 조용히 사라지면 정말 좋겠죠?”
“개인적으로 좋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해. 갑자기 실종되면 오히려 암살을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난다. 결국, 갈등이 더 심해질 거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꼴이 나서 우리만 더 힘들어져.”
“그렇습니까?”
“중국 내부 정치 구도가 복잡해. 단순하게만 생각할 수 없어. 나도 직접 경험해보니, 상상 그 이상이더라. 아무래도 이번 일은 네 말대로 하마.”
그는 곧바로 오성 그룹 측에도 통보했는데, 역시 매각 승인 확답을 받았다.
‘암살 계획은 한 번 더 확인을 해봐야겠어.’
***
조민호는 발 빠른 조수현 회장 처리에 만족했지만, 그의 조언을 흘러 듣지 않았다. 두칭리가 과연 보시라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확인해보았다.
역시 너무도 뻔한 교통사고(?)를 가장한 암살 계획을 제동 걸었다.
[다른 대안을 찾아봐.]
결국 다양한 보시라이 암살에 대한 계획서까지 따로 받았고, 그 서류에서 보시라이가 앓고 있는 지병을 발견했다.
‘관상동맥 증후군이라.’
관상동맥 증후군은 관상동맥의 폐색으로 발생하는데, 주로 심장마비를 일으킨다.
조민호는 이 지병을 이용한 사고사 대안을 찾다가 배효진 혼원기를 사용해서 치료할 때 근육의 긴장이나, 근경련증, 그리고 신경이완제 악성증후군과 같은 부작용을 떠올렸다.
이 중에 악성증후군은 간혹 근육과, 심장박동, 고혈압에 악영향을 주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만약 배효진 혼원기 강도를 올린다면 어떨까?’
방법은 배효진 혼원기 특성 일부분을 더 강화시켜 독성을 더 끌어올린다. 결국 부작용은 극에 달할 것이고, 평범한 사람도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는 이 배효진 심장마비 혼원기를 디자인했고, 오성 바이오 연구소를 찾았다.
다행히 이미 알음알음 오성 바이오 실세라고 알려진 조민호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험실에 들어가서 연구원을 다 내보낸 후에 이 배효진 심장마비 혼원기를 사용해서 실험용 쥐에 적용했다. 불과 3초가 지나지 않아서 실험용 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허.’
그는 치료가 아닌 살해 목적으로 만든 심장마비 혼원기 효과에 깜짝 놀랐다.
배효진 혼원기와 같은 속성의 정신 약물 부작용 문제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음식에 타서 먹어도 경혈을 따라서 온몸에 퍼지기 때문에 효과는 충분해.’
그는 실험용 쥐 혈액을 이용해서 만든 이십여 개의 암살 혼원기와 그 사용법에 대해서 간단히 적어서 두칭리에게 보냈다.
‘나머지는 잘 알아서 하겠지.’
***
두칭리는 조민호 허락을 받자 즉시 보시라이 암살 작업에 착수하는 중에 조민호에게 뒤늦게 중단 명령을 받은 후에 몇 가지 플랜 계획서를 보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조민호에게서 암살 혼원기 샘플을 받고 난 후에 효과를 확인할 목적으로 실험용 개를 이용해서 실험부터 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암살 샘플이 들어간 고기를 먹은 개는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
‘도, 도대체 이게 뭐기에?’
그도 놀랐지만, 이번 계획을 진행하는 다른 이들 역시 큰 충격을 받았다.
뒤늦게 조민호에게 연락해서 심장마비 전용 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도 다른 약보다는 그게 더 확실할 거야. 아마 그 죽은 개를 검사해보면 알겠지만, 독 성분은 아예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야말로 심장 질환 환자에게 가장한 완벽한 독이지.]
어지간하면 질문하지 않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도대체 이런 독을 어떻게 고안하신 겁니까?]
조민호는 당연히 대답해주지 않았다.
[알 필요 없다.]
[네.]
실제로 두칭리는 개 부검까지 해서 확인해보았는데, 정말 다른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새삼 조민호의 비인간적인 능력에 몸을 떨었다.
‘정말 보통 분이 아니구나.’
***
송위천은 드디어 복수할 수 있다는 열망에 몸을 떨면서 심호흡까지 해서 표정 변화를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다.
호텔 직원이 가져온 음식을 확인하는 척하면서 스테이크에 암살 샘플을 뿌렸다. 워낙에 빠른 동작으로 처리해서 호텔 직원도 눈치채지 못했다.
호텔 안에는 보시라이를 비롯한 몇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위천도 뒤늦게 다른 사람이 포함되어서 아차 싶었지만 이제 와서 일을 멈출 수는 없었다.
희생을 감수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은 채 다시 호텔 경비 위치에 갔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만 성공하면 조민호 그놈을 이용해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최악의 상황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이번 중국 초대는 제 관상동맥 증후군 치료 때문입니다. 그 시기를 이용해서 중국에 들어와 있는 조민호 부친을 비밀리에 납치할 계획이니까요.”
“누가 납치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자기 부친이 인질인데, 조민호가 감히 딴 마음 먹겠습니까? 정 필요하다면 그놈의 여동생도 납치하면 됩니다. 정 말을 안 들으면 손가락을 잘라서 보내주면 죽으라고 죽는시늉까지 할 겁니다.”
“좋네요. 전 야만족인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합시다.”
다음 세대 정치국 상무의원 후임자는 보시라이 제안에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이미 아는 지인 통해서 조민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당장은 정치권력과 거리가 멀어서 조민호에 대해서 입맛을 다셨는데, 보시라이 덕분에 조민호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를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시라이 역시 이들마저 우군으로 삼는다면 한결 정치적인 부담을 들 수가 있어서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자, 일단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제가 특별히 주문한 스테이크입니다.”
높은 등급의 안심으로 만든 스테이크는 풍미가 뛰어났고, 육질도 부드러웠다. 여기에 특유의 통후추와 소금에 올리브 오인을 절묘하게 곁들였다. 이런 스테이크에 심장마비용 혼원기가 섞여도 표가 날 리가 없었다.
그는 보좌관에게 손짓해서 여자들과 술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협상이 잘된 덕분에 유쾌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는데, 채 10분이 되지 않아서 멈칫 몸을 떨었다.
혀와 입술 마비가 시작이었고, 오른손도 감각이 사라졌다. 결국, 오른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이 밑으로 떨어졌다.
전형적인 근경련증이었다.
호흡이 잘되지 않아서 컥컥 거리면서 사지 경련을 일으켰다.
급성 근긴장곤란증이었다.
보시라이는 다급하게 지질강하제 약통에서 약을 통째로 거품이 가득한 입속에 쑤셔 넣었다. 결국,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뒤늦게 같이 식사하는 이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쳤다.
“보좌관!”
보좌관 역시 당황해서 보시라이를 향해서 다가가면서 구급차를 불렀다.
보시라이는 숨을 헐떡이면서 바들바들 떨었다.
“사, 상무부장님, 조,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구급차......,야, 뭐해, 당장 부장님을 들어서 병원으로 옮긴다!”
***
다행히 보시라이가 묵은 호텔 바로 옆에 대형 병원이 있었고, 보시라이는 경호원 덕분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보시라이는 죽을 듯 죽을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잘 버텼다.
병원 의사도 관상동맥 증후군에 따른 급성 심장마비라는 것을 인지하자 혈전 용해제의 하나인 스트렙토키나아제를 정맥에 투여했다.
빠른 조치 때문에 보시라이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송위천은 예상과는 다른 전개에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면서 병원에 동행한 다른 이들을 힐끗 쳐다보았다.
‘젠장 독이 들어간 음식을 먹은 다른 사람은 왜 멀쩡한 거야?’
약간의 호흡 곤란이 있었지만, 보시라이와 같이 식사한 이들 중에 사망한 이는 없었다. 심한 경우에 호흡이나 근육 경련이 고작이었다.
‘실패인가?’
송위천은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했다.
그 역시 대놓고 보시라이 암살에 성공한다고 해도 만약 중국 공산당 추적을 받아서 오히려 자신의 조직 역시 대거 드러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즉 지금 방법이 맞았다.
그런데 결과는 실패였다.
아니었다.
보시라이가 투숙한 병실에서 갑자기 큰 소동이 일어났다.
응급조치한 의사는 패닉에 빠져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보시라이 ECG는 점점 나빠졌다. ECG 이상 자체는 심장 근육 손실을 알려주었는데, 전형적인 급성 관상 동맥 증후군이었다.
담당 의사가 다급하게 긴급 수술에 들어갔지만, 보시라이 생명을 살리지는 못했다. 결국 보시라이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성공?’
송위천은 뒤늦게야 입을 살짝 벌린 채 패닉에 빠진 의사와 뒤늦게 호들갑을 뜨는 다른 이들 치료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에게 그 어떤 약물 증상 따위는 나타나지 않았다. 즉 딱 암살 대상인 보시라이만 전형적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심장마비가 아니라 암살로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병실에 모인 수십 명의 사람 중에 그 누구도 없었다.
중국 공안에 오랫동안 있었지만 저렇게 자연스러운 암살을 보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구나.’
***
중국 공산당조차 의혹의 눈으로 보시라이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주시했고, 실제로 보시라이 부검까지 진행했다.
심지어 당시 보시라이가 먹은 요리와 같이 음식을 먹은 이들 역시 따로 철저하게 조사했다.
나오는 것은 전혀 없었다.
독성과 관련된 그 어떤 물질도 나오지 않았지만, 암살 독과 관련이 있을지 몰라서 다양한 추가 조사에 들어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보시라이는 최종적으로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에 따른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 뉴스는 국내에서도 크게 다루어졌다.
[......후진타오 체제 이후에 차세대 정치인 중에 한 사람으로 조명받던 보시라이 상무부장이 한 호텔에서 식사 중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지난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선두주자로 주목을 받았는데, 갑자기 지병으로 죽으면서 권력 갈등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딱히 특별한 것이 없는 기사였는데, 이 뉴스는 뜻밖에도 미국이나 영국 언론에서도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들은 겉으로 봐서는 단순한 심장마비처럼 보이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공교로운 타이밍이라서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차라리 같은 계열 내의 시진팡이 오히려 보시라이를 살해했다고 보았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 내에 적지 않은 이들이 시진팡을 의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