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얼핏 생각하면 현대 의학의 높은 수준을 말할 수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 이 아담스 스톡스 증후군이 심각한 예도 있다.
빈맥 발작도 심한 경우에는 그 치료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로버트 힐이 희귀 아담스 스톡스 증후군에 속해서 치료가 쉽지 않았다. 그는 특히 심장 주변의 경혈 몇 곳이 막혀 있어서 일반적일 때와는 또 달랐다.
“정말이었군요.”
로버트 힐 역시 굳이 숨기지 않았는데, 상대의 집요한 눈빛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제가 생명이 걸린 일을 과장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면 휘트니 치료 이야기도 그저 소문만은 아니겠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말씀을 하려는 겁니까?”
“제 지인 중에 한 사람이 처음에는 대체 의학 치료를 받았고, 약초요법까지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져서 결국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일단 맨눈으로 보이는 암 조직을 모두 제거했습니다만.”
“전이가 걱정되나 보군요.”
“그렇게 말하니, 대화하기 편합니다. 그 친구도 따로 전담 의료팀을 만들어서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저나 휘트니 치료한 분이 그것을 막을 수 있나 알고 싶은 겁니까?”
“네. 증거만 확실하다면 원하는 비용을 다 지급할 수 있습니다.”
그도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입니까?”
“스티븐 제이입니다.”
“알아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
조민호도 로버트 힐에게 스티븐 제이에 대한 것을 들었을 때는 잘 몰랐다. 뒤늦게 에플 회장이라는 것을 듣고 나서는 수긍했다.
‘괜찮네.’
문제는 역시 휘플 수술을 받은 췌장암 환자라는 점이다.
차라리 취장암 환자였다면 이 부분만 집중하면 되겠지만 휘플 수술까지 받은 상황이라서 오히려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이 부분에 관한 조사 때문에 스티븐 치료는 잠깐 보류했다.
이 기간에도 퍽치기 배후에 대한 추적 작업을 계속 진행했는데, 최영민 사장에게서는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김태환 선생이나 간호사 최진희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고, 루노 제약이나 아스트라 제약 역시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용의 주도하군요.”
“솔직히 그들 배후에 누군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 역시 공감했지만, 굳이 대꾸하지 않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박상철 과장 연결 고리와 추적 실마리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 넌지시 질문했다.
“유명환 과장은 어때요?”
“그쪽은 아직......”
“역시 중국은 무리군요.”
“지금 우리 회사 형편에서는 무리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국가 기관 소속이라면 보호받을 수 있지만 개인은 한계가 명확합니다.”
“분명히 놓친 것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
조민호는 아스트라 제약 추적이 쉽지 않자 유명환 과장 문제를 고민하다가 결국 참다못해서 전 두칭리 보좌관에서 연락해보았다.
[아, 안 그래도 한 가지 일 때문에 연락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지?]
[혹시 보시라이 상무부장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지?]
[원래 시진팡과 같은 노선을 걸었지만 최근 들어서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시진팡이 저장성 당서기로 앞서 가면서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선생님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지난주에 보시라이 밑에 일하는 송위천을 통해서 확인했습니다.]
송위천은 두칭리가 중국 공안 내에서 거느리고 있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이들 관계를 잘 모르는 조민호였지만 두칭리 이야기에 대충 상황을 짐작했다. 시진팡은 이미 자신이 배반할 확률이 거의 없지만, 보시라이 상무부장같은 주변 인물은 달랐다.
[미래 그룹을 노리는 건가?]
[곧 그쪽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그 수위를 점점 올려갈 겁니다.]
[흠.]
조민호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늘 그렇지만 권력자라면 수명 연장의 치료술에 대해서 탐욕을 부리는 것이 당연했다.
‘직접 중국에 가서 손을 써야 할까?’
쉽지 않다. 보시라이를 만날 수 있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중국 고위 관료와 아무런 연고도 없이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더 어려웠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눈치챈 두칭리가 뜻밖의 의견을 내놓았다.
[제가 그자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상무부장이라면 가벼운 자리는 아닐 텐데?]
[보시라이 밑에 제 라인 몇 사람을 오래전에 배치해두었습니다. 그들과 제 능력을 합친다면 제거는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류엔둥 상하이 당서기 보좌관으로 일했던 두칭리는 다른 고위 중국 공산당 간부 보좌관에도 은밀하게 손을 썼다.
조민호 입장에서는 한 편으로 수긍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동기가 있을 텐데?]
잠깐의 침묵 다음에 두칭리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몽골 출신인 송위천 부모가 과거 보시라이 그 자 때문에 누명을 입고, 중국 교도소에 장기 복역되었고, 결국 장기 적출로 죽었습니다.]
내몽골이라는 말을 듣자 중국의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 이슈를 떠올렸다.
조민호도 소수 민족 탄압 이야기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지만, 그 상대가 동일한 보시라이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서 고심했다.
[복수인가?]
[네.]
[그랬던가.]
첫 만남과는 달리 깨달음을 얻은 지금은 두칭리 선천지기 속에 담겨있는 기운이 원한이 사무친 살기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절망에 빠지자 그 살기는 두칭리 자신의 몸을 갊아 먹었는데, 조민호 자신의 징치를 받고 나서 오히려 정신을 차렸다.
더욱이 두칭리는 오히려 후천지기를 더 키운 덕분에 한계를 돌파했다.
뒤늦게 자신이 두칭리에 손을 쓰면 인과가 엮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르마라......’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보시라이 그자는 세상에서 조용히 사라질 겁니다.]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고서는 부족해.]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곧이어서 전화상으로 나온 이야기는 세 사람의 대화 녹취록이다. 그중에 보시라이는 미래 그룹을 인질로 잡아서 조민호를 노예로 평생 부리려는 계획을 꾸몄는데, 필요하다면 가족을 납치해서 중국 교도소에 보낸 후에 조민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빌어먹을.’
하지만 이 일은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어서 조민호도 일단 본론으로 넘어갔다.
[혹시 유명환 과장이란 자에 대해서 아는 것 없어?]
두칭리도 처음에는 유명환 과장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공안 내부 정보를 확인하고 나더니 한 가지 사실을 말했다.
[얼마 전에 삼합회 지파 중의 하나인 흑련이 한국인을 밀입국시키다가 걸린 기록을 봤습니다. 보시라이가 손을 써서 별일 없이 넘어갔는데, 아마 그자가 유명환 과장이 맞습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제가 알기로 보시라이가 과거 한국에 대한 몇 가지 정치 공작을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친중 인사를 꾸준히 늘려갔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바로 유명환 과장일 겁니다.]
상상도 못한 연결 고리에 조민호조차 유명환 과장이 왜 그렇게 쉽게 중국으로 밀입국했는지 뒤늦게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진담이야?]
[네. 다만 자세한 것은 좀 더 조사를 해봐야 합니다.]
[조사가 끝나면 전화해.]
[알겠습니다. 아, 보시라이는 어떻게 할까요?]
그는 이미 자신이 능력을 끌어올린 두칭리 능력을 잘 아는 터라 보시라이 암살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탐욕에 물든 권력자와는 그 어떤 협상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휘트니 경우에 따로 주의를 기울였지만 완벽할 수는 없었다.
[......제거해.]
[네.]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는 이 황당한 상황에 머리가 지끈했다. 소위 말하는 국가 간의 암살 전쟁에 끼어든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큰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
조철영은 홍콩과 중국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지난주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임서이 변화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까칠한 그녀 성격을 몇 번 경험해봐서 잘 아는 터라 조심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그 반대였다.
임서이는 누구에게 협박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고분고분했다.
‘왜 저럴까?’
조정연은 특히 중국 실적 때문에 뜨고 있는 자신을 은근히 경원시했다.
미래 그룹 후계자인 조정연으로서는 수천 억이 걸려 있는 회사 지분 문제이니, 작은 아버지인 자신에 대해서 견제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식탁에서 목발을 하고 나타난 조정연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정작 형을 공격했다.
“전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어요. 어떻게 회사에 그 많은 돈이 있는데, 휘트니 펀드에는 단 한 푼도 투자를 하지 않은 겁니까?”
“나는 박 부장에게 분명히 휘트니 펀드 관련해서 지시를 내렸다. 고객이 싫다고 하는데, 그들을 억지로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뇨. 제 말은 회사 현금성 자산을 이용해서 투자할 수도 있잖아요?!”
“그것 역시 마찬가지다. 박 부장 본인이 결사반대해서 그렇게 된 거다.”
“아버지,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시는 겁니까?!”
속이 타는지 가슴을 탁탁 치는 조정연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임서이 역시 장남 눈치를 보면서 힐끗 남편 조수현 회장에게 눈총을 줬다.
오성 바이오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조정연 모습에 조수현 회장은 영문을 모르는 조철영 눈빛에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휘트니 펀드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 아무도 없었다. 전체 경영진이 다 그런데, 나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당시 정연이 네가 있었어도 아마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을 거다.”
오성 바이오 임원 교육 때문에 피똥을 싼 조정연은 바득바득 소리쳤다.
“문화 콘텐츠가 향후 21세기 정보 혁명 시대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특히 음원과 영화와 같은 콘텐츠는 앞으로 꾸준히 발굴해야 할 분야입니다. 그런데 제가 휘트니 펀드를 포기한다고요?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글쎄다.”
조정연은 밥상 앞에서 계속 불만을 토로했지만, 신기하게도 조철영을 제대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심지어 오히려 눈치를 봤다.
조철영는 갑자기 조정연의 이상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때마침 늦게 도착한 조민호가 거실로 들어와서 식탁 테이블에 앉았다.
조수현은 그게 마음에 안 든 것 같았다.
“민호야, 가능하면 주말 가족 식사 시간은 좀 지켰으면 좋겠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조정연이 입을 다물자, 임서이 역시 힐끗 조민호 눈치만 봤다.
다른 가족은 조정연이 갑자기 함흥차사가 되자 오히려 그를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어깨를 으쓱했지만, 어차피 가족이 전부 다 모인 마당이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국 상하이 빌딩 말인데요, 현재 시가가 어느 정도 됩니까?”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5천억이 좀 안 될 거다.”
“수익이 엄청나군요.”
“2년 후면 6천억은 넘어갈 거다.”
“지금 팔면 좀 손해겠죠?”
“당연하지. 가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일단 제 지분만이라도 매각했으면 하고요, 회사에서 투자한 나머지 지분 역시 같이 정리하기를 권합니다.”
조정연이 바로 발끈했다.
“뻔히 수익이 보이는데, 갑자기 그 건물을 왜 판다는 소리야?!”
감정이 가득 담겨 있는 말투에 조민호는 힐끗 조정연을 쳐다보았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부추겨서 중국에 보내 버릴까. 얼씨구나 하고 갈 것 같은데......’
그는 슬쩍 조정연을 무시한 채 당황한 조수현 회장을 쳐다보았다.
“나머지 지분은 알아서 하세요. 다만 전 책임 못 집니다. 그리고 건물은 오늘이라도 당장 매각해주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자세한 내막을 말할 수는 없어서 결국 돌려서 말했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 권력 다툼이 좀 있다고 하는데, 그 문제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중국에 한 투자도 모두 정리하고, 미국 쪽을 한번 잘 살펴보세요.”
“흠.”
조수현 회장은 결코 조민호 이야기를 흘러 듣지 않았다. 이미 조민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 매각건은 나중에 다시 조용히 이야기하자꾸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