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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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혐의 중에서 청부 살인 혐의 때문에 그룹 박중구 회장은 결국 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수갑을 찬 채로 나타났다.
이 장면은 생방송을 통해서 한국 전역에 송출되면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비자금을 이용해서 현직 김재건 부장판사에게 압력을 넣어서 수사를 방해한 일이었다.
실로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TV만 틀면 이 충격적인 사건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
조민호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되는 이 기사에 오히려 짜증만 냈다.
최종 합격을 한 덕분에 한결 편안한 박진민은 그런 조민호에게 고개를 갸웃했다.
“너 왜 그러냐?”
“아니다.”
“얌마, 우리 사회가 좋아지는 일이잖아. 이런 일을 가능하면 많이 알릴수록 좋아.”
평소 행동답지 않게 아예 신문 몇 부를 구매해서 떡하니 펼쳐봤다.
김영탁은 뜻밖에도 신약과 관련된 책을 가져와서 공부했다.
“......뭐하냐?”
“아무래도 오성 바이오 입사할 것 같아서 사전에 준비하는 거야.”
심드렁한 박진민 역시 주섬주섬 의학 서적을 꺼내서 필기했다.
“물리학도 제대로 모르면서 약학을 본다고 이해가 되겠냐?”
“먹고 살려면 해야지.”
두 사람 다 표정이 썩 좋지가 않았다. 가능하면 오성 전자 쪽으로 갔으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조민호는 걸려온 전화 때문에 잠깐 도서관 밖으로 나갔는데, 두 사람은 조민호 뒤를 따라오면서 커피 타령했다.
로버트 힐 전화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홍보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수요?]
[한 때는 유명한 가수였는데, 몇 년 전부터 추락하기 시작한 분입니다. 원래는 재활 치료를 받으려고 했는데, 동양 의학이 오히려 효과가 있다는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흠.]
‘가수라면 좀 곤란한데.’
그 자신이 원하는 사람은 FDA 통한 인허가나, 아니면 신약 시판 허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미국 고위층 관료였다.
아스트라 제약에도 압력 넣을 수 있으면 더 좋았다.
[괜찮은 상원 의원도 있었는데, 그쪽에서는 오히려 의심만 합니다.]
[무리한 부탁이었군요.]
[아닙니다. 시작이 쉽지 않습니다. 몇 사람 통해서 알려지기 시작한다면 그다음은 쉬울 겁니다. 그때는 치료 허가증만 팔아도 될 겁니다.]
[치료 허가증은 좋은 아이디어네요. 당장 힘들다면 어쩔 수 없죠. 아, 가수라면 라인 엔터 강 사장 통해서 자잘한 것을 요청해보세요.]
[아, 그런데 마약 중독자 치료도 가능할까요?]
[마약은 모르겠네요.]
[언제까지 확인 가능할까요?]
[가능하면 빨리 확인해보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조민호는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자기 앞에 놓인 커피를 홀짝이면서 박진민의 호기심 어린 눈길에 피식 웃어버렸다.
“그냥 아는 사람 전화다.”
“설마 대통령은 아니겠지?”
“그냥 과거 노래 좀 부른 가수야.”
“가수?”
“나도 잘 몰라. 으음, 큰아버지가 부탁한 일 중에 엔터 회사도 있어.”
“......대단하다. 우리랑 노는 물이 다르구나.”
“별것 아냐. 그냥 내 이름만 빌려준 것뿐이니까. 흔한 재벌 3세 이야기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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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마약 중독자 치료에 대해서는 조민호도 잘 몰랐다.
처음에는 마약류 자체가 중추신경계에 작용한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 다음은 역시 마약 해독법인데, 뜻밖에 이와 관련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었다.
도파민 차단제와 도파민 수용체 차단제가 그 방식이다.
물론 신경전달물질이 도파민에 관련된 프로세스는 간단하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까지 치료경험 때문에 일단 두 가지 물질과 관련된 특성 혼원기를 금방 만들었다.
‘이건 직접 확인해야 하겠군.’
현대 신약이라면 단순한 확인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지만 혼원기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어차피 신체 내부에 녹아들어 가거나 특성이 다르면 아예 체외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확인 작업이 끝나자 로버트 힐에 즉시 전화했다.
[치료는 가능한데, 단 한국에서 치료할 겁니다.]
‘이 가수가 마약 중독에서 회복되고 나면 소문 좀 날 거야. 그 다음은 로버트 힐 대사가 알아서 잘 풀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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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힐은 오케이 연락을 받자 클라우드를 만나서 다시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가능할까요?”
이번 이혼 문제 때문에 더 고통받는 휘트니 모습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휘트니 어머니도 재활 치료에 부정적이었는데, 차라리 이번 기회에 휴가차 미국을 떠나는 것을 더 찬성할 겁니다.”
“그러면 일정을 잡죠.”
“잘 좀 부탁합니다.”
클라우드는 솔직히 이번 한국행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보다는 몇 년에 걸친 이혼 소송이 끝나면서 더 망가진 휘트니를 이대로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재활 병원에 들어간다고 해도 계속 그녀를 찾는 가족 때문에 회복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휘트니는 가족 문제에 대한 집착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행동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번 한국행을 명분 삼아서 차라리 보비와 당분간 떨어트려 놓는 것이 해답일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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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서 학창 시절을 잘 보냈지만 어릴 시절에 부모님의 이혼을 경험하면서 가족의 행복에 집착했다.
결혼은 그녀에게 행복한 가족을 위한 신성한 의식이었다.
설사 엽기적인 남편 보비가 별의별 짓을 다한다고 해도 버리지 못했다.
문제는 보비가 지속해서 휘트니를 교묘하게 타락시켰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약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모범생 처럼 자란 휘트니는 마약에 대해서 전혀 몰랐고, 뒤늦게 마약에 빠져서 결국 폐인이 되어버렸다.
최근 남편 보비 여동생이 한 언론을 통해서 저택 화장실에 놓인 마약 흡입 현장 사진을 제보했다. 그녀를 마약 없이 지낼 수 없는 마약 중독자라고 폭로했다.
휘트니는 충격적인 기사를 보면서 더 남편 보비에 대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망가졌다. 오히려 이혼 소송 진행 중에 보비에 대한 감정에 더 집착하면서 급속히 건강이 악화하였다.
“한국? 안 가!”
아예 방에 털어 박혀서 나오지도 않았다.
클라우드는 다시 한 번 휘트니를 무시한 채 어머니를 설득시켰다.
휘트니 어머니 역시 딸 휘트니 타락에 대해서 고통을 받았다. 휘트니가 가족 행복을 위해서 한 행동 때문에 스스로 망가졌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휘트니 나름 가족의 경제적인 행복을 위해서 콘서트 행사에 그들을 끌어들였지만 잘 나갈 때와는 달리 지금처럼 몰락할 때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애야, 어차피 넌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해. 그럴 바에는 조용한 곳에 가서 쉬는 것이 좋아.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거다. 한국이라면 보비같은 개새끼와 당분간 보지 않아서 좋잖아!”
보비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휘트니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가슴 아픈 기억이 새삼 그녀를 후벼 팠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보비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지만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가족의 행복이 그녀 삶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싫어요. 안 가!”
다행히 클라우드는 휘트니 어머니 도움을 얻어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로버트 힐 통해서 알게 된 라인 엔터의 강종훈 대표에게 연락했다.
‘차라리 내가 그녀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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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훈 대표는 요즘 배효진의 오성 그룹 광고 대박 때문에 입가에 늘 미소를 달고 살았다. 조민호에게 한 가지 부탁 전화를 받고 당연히 들어주었다.
아니 조민호 부탁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매니저 이윤기와 신입 몇 명을 데리고 인천 공항으로 손님을 마중 나갔다.
조민호 이야기로는 그저 과거 좀 하는 가수란 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팻말까지 준비해서 기다렸고, 마침 자신에게 몰려오는 이들을 확인했다.
클라우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전형적인 백인이었는데, 왠지 낯이 익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동행한 다른 한 사람은 마스크, 선글라스, 심지어 모자로 아예 드러내지 않았다.
옆에 있는 중년 여인은 눈물만 글썽이면서 동행인을 돌봐주었다.
“흠.”
이 이상한 일행에 좋았던 마음이 왠지 가라앉을 것을 느꼈다.
강종훈 대표는 이미 조민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딱히 그들에게 별다른 질문 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그들을 위해서 마련해둔 숙소는 대략 100평이 넘는 분당구에 있는 아는 지인의 정원이 딸린 저택이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그제야 마스크맨은 모습을 드러냈다.
“......?”
처음에는 누구인지 잘 몰랐다. 워낙에 말라서 도저히 가수인지도 의심스러웠다.
매니저 이윤기는 다행히 눈치가 빨라서 양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맙소사 휘트니잖아?!”
“휘트니가 누구?”
“사장님, 휘트니 히스 모르세요?”
“임마, 그 전설의 비바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맙소사?!”
강종훈 대표 역시 뒤늦게야 휘트니 몰골을 보면서 경악했다.
그 자신이 아는 휘트니는 도저히 지금 보고 있는 사람과는 매칭되지 않았다. 퀭한 눈빛에, 바싹 마른 몸매는 도저히 그 휘트니가 아니었다.
클라우드는 눈치 빠르게 같이 동행한 경호원에게 별장 주변 경비를 맡기면서 슬쩍 강종훈 대표에게 다가와서 주의를 시켰다.
“저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한국 언론이 몰랐으면 합니다. 이 업종에 일하는 분이니, 무슨 뜻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무,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휘트니가 중년 여인 부축을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도대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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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는 환자 일행이 안정을 찾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배려함과 동시에 마약 치료제에 관한 연구에 점점 더 빠졌다.
신경 전달 물질은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과정이 간단하지 않았다.
단순히 도파민 차단제라고 해서 여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에도 영향을 준다.
특성 혼원기는 다른 신약처럼 복잡하게 작용하지는 않지만, 구체적인 것을 파고들어 갔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동작을 파고들수록 특성 혼원기 효과가 있었고, 심지어 새로운 마약 치료제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종훈 대표가 후다닥 대학 도서관까지 다시 찾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소, 손님 말입니다. 그 손님 정체가......”
그는 따가운 박진민, 김영탁의 시선을 의식하자 슬쩍 조민호 팔을 잡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은 입맛을 다시면서 사라지는 두 사람 등을 쳐다보았다.
‘또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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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트니요? 그게 누군데요?”
“휘트니 히스 모르세요?”
그는 다급하게 가방에서 전설적인 휘트니 관련된 앨범과 기사를 보여주었다.
“아, 휘트니요. 흠, 가만 그러면 미국에서 온 사람이 휘트니였습니까?”
“아니 그러면 누군지도 모르고 한국에 초빙한 겁니까?”
“뭐, 그렇죠.”
심드렁한 표정과는 달리 조민호도 내심 살짝 놀랐지만, 곧 갸웃했다.
“아, 혹시 국내 콘서트 생각하나 본데, 일찍 포기하기 바랍니다.”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뒤늦게 휘트니의 모습을 떠올린 강종훈 대표는 착잡한 얼굴이었다. 반 폐인이 된 그녀가 과거 전성기 시절은 고사하고, 그 반이라도 보여줄 것 같지가 않았다.
설사 자기 제안을 받는다고 해도 콘서트 준비만 몇 개월이 걸린다.
“그냥 짠해서 그렇습니다. 그렇게 몰락한 휘트니 모습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휘트니를 저격하는 기사를 자주 봤지만, 그 정도까지인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요?”
“네.”
강종훈 대표는 아예 노트북을 꺼내서 전성기 시절의 동영상 몇 개를 보여주었다.
“......대단하네요.”
“그렇죠? 아마 처음 본 사람도 그녀의 가창력에 감명받을 겁니다.”
“흠.”
딱히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조민호도 동영상을 보고서야 뒤늦게 귀에 익은 휘트니가 누구인지 제대로 깨달았다. 그 역시 휘트니의 전설적인 노래 몇 개는 달달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설마 휘트니가 그 휘트니였어. 가만 마약 중독이라고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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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는 뒤늦게 휘트니 관련 자료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전설적인 비바의 영향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마약 중독자 치료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보다는 오히려 과거 전성기 시절로 부활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결국 성대 문제인데, 이것은 마약 중독 치료와는 또 다른 영역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