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20화 (120/176)

#120

***

은광 그룹도 요즘 중앙지검 수사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최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웠다.

법원에서 계속 영장을 기각하면서 사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수사 때문에라도 문제가 될 은광종합토건의 충남방적 대지 매각 진행건을 빨리 진행했다.

이번 일 때문에 뇌물을 받은 대전시 공무원 역시 다른 사기업 못지않을 정도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은광 그룹 회장 박명준도 시간이 없는 터라 애가 타서 직접 몸으로 뛰어다니면서 일을 밀어붙였고, 겨우 매각 대상자와 최종 협상을 남겨두었다.

그도 애가 타는지 겨우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이제 박중구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진행 사항을 보고만 하면 된다.

조만섭 상무가 마치 미친놈처럼 나타나서 소리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거, 검찰이......”

“조 상무, 미친 건가?”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무려 오십 명의 수사관과, 검찰이 우르르 몰려와서 회장실뿐만 아니라, 모든 사무실을 전부 다 뒤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아. 나 박명준이야. 너희 새끼들 소속이 어디야?”

그에게 다가온 것은 차가운 얼굴을 한 김정환 부장 검사였는데, 압수 수색 영장을 들이밀면서 미란다 원칙과 함께 한 가지 사실을 말해주었다.

“중앙지검 현직 차장 검사를 청부 살인하고서도 뻔뻔한 얼굴이군.”

“무, 뭐야, 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화들짝 놀란 박명준. 그 역시 처음에는 밑에 직원을 시킬까 하다가 혹시나 의뢰가 세어나갈 것을 염려해서 직접 나섰다.

대신에 철저히 자신을 가리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차를 갈아타고, 전철을 이용했으며, 심지어 두꺼운 옷으로 자신을 가렸다.

하지만 그도 최희중 사장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설마 그가 몰래 미행해서 그의 얼굴까지 사진을 남겼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번 대전시에 뿌린 뇌물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비자금을 꽤 돌렸더군. 충남방적 용지 매입 과정에서 부풀기 통해서 사라진 돈은 최하가 400억이 넘어. 형량을 다 합치면 무기징역도 쉽게 나와.”

“그, 그게......”

“이봐요, 박 회장님, 잘 생각해보세요. 그 비자금은 당신과는 관계가 없잖아. 박중구 회장 돈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잘 알아. 설마 그걸 당신이 다 안고 가지는 않겠지? 거기에 청부살인 사건은 덤으로?”

“......”

그의 안색은 똥색으로 변해갔다.

김정환 부장 검사가 슬그머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청부 살인한 것도 박중구 회장이잖아. 이번 사건 무마하려고 뿌린 돈만 수백 억이 넘는다고 하던데, 사실이잖아. 그 정도면 살해 동기로 충분해. 당신이 사실을 다 불면, 청부살인이나, 비자금의 종범이 될 거고, 수사 협조를 참작해서 고작 2년. 그것도 모범수로 가석방되면 1년도 안 살아. 잘 생각해 봐.”

현실성이 좀 떨어진 이야기지만 오히려 과장한 말이 극도로 당황한 박명준에게 효과가 있었다.

박명준도 부들부들 떨었지만, 오히려 담담한 김정환 부장 검사 목소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머릿속에서 교묘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는 이상할 정도로 믿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계속 속으로 다짐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갈등은 줄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몰려 와 있는 수사관 규모와 밖에 몰려와 있는 기자 군단이다. 이미 대대적으로 이 사실이 대한민국에 알려졌다.

갈등은 점점 격화되었다.

다른 수사관이 그 모습을 보고 끼어들려고 했지만, 김정환 부장 검사가 손을 들어서 조용히 막았다. 그는 손짓으로 오히려 물러나라고 지시했다.

김정환 부장 검사 역시 이상한 정도로 상대가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자 고개를 갸웃했다.

‘조민호씨가 한 행동과 비슷한 것 같은데, 내 착각인 걸까?’

놀랍게도 박명준 회장은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당신을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김정환 부장 검사다.”

“아.”

그도 뒤늦게야 상대가 이 사태를 만든 주범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복잡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사전에 이미 조사를 해봤기에 김정환 부장 검사는 믿을만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증거가 너무 명확했다. 이대로 입 다물면 자신이 몽땅 횡령을 비롯한 모든 범죄를 뒤집어쓴다.

현직 중앙지검 차장 검사 청부살인은 여론의 손가락질은 물론이고, 역사책에도 기록될 초유의 일이었다.

“전화 녹취록이 있습니다.”

“어디?”

박명준 회장도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서재 시계 뒤편에 넣어준 녹취 파일을 꺼냈다.

‘빙고.’

김정환 부장 검사는 쾌재를 불렀다. 딱 이 심리적인 흔들림을 읽고 밀어붙였지만, 설마 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이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

청부 살인범에게 살짝 손을 써서 수사를 도와준 조민호는 평소처럼 일단 밥 먹고, 세수하고, 강의 들으려 대학으로 향했다.

이제 졸업만인 터라 교수도 딱히 진지하게 강의하지 않았기에 강의를 듣기는 하지만 이보다는 자폐증 신약을 더 고심했다.

기본 뼈대는 나왔지만, 신약 바스클린에서 이미 경험한 문제를 간과할 수가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경련과 같은 신경 부작용과 다양한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만 강의실로 가는 중에 어수선한 구내식당 모습에 슬쩍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밥을 먹거나 줄을 서 있는 이들이 모두 대형 식당 TV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무려 100여명의 수사관이 지금 무영 그룹 본사를 전격 압수 수색을 시작했습니다. 현직 중앙지검 차장 청부 살인 혐의를 비롯한 모두 10개의 범죄 혐의 때문입니다.]

마치 군대가 무영 그룹을 박살이라도 낼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무영 그룹 임직원 역시 패닉에 빠진 채 한 쪽으로 물러섰다.

기사를 취재하는 취재진 역시 이 황당한 사태에 놀랐다.

이 사건을 속보로 내보내는 앵커 역시 당황해서 계속 실수했다.

헌정 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조직 폭력배와 같은 범죄집단도 현직 차장 검사를 상대로 청부하지 않는데, 멀쩡한 무영 그룹이 그런 짓을 한 것이다.

“민호야, 왔냐, 저거 봤냐? 정말 쇼킹하다. 너 혹시 아는 거 없냐?”

“......당연히 없지.”

“에이, 또 그런다. 저 김정환 부장검사는 저번에 소개도 해줬잖아?”

“나도 몰라.”

화면을 가득 잡은 것은 백여 명의 수사관을 지휘하는 김정환 부장검사 모습이다. 그는 압수 수색 영장을 든 채 무영 그룹 임직원을 압박했다.

뒤이어서 국세청 조사관 이십 명이 그들 뒤를 따라서 나타났다.

청부 살인 비자금 의혹 때문이었다.

원래는 현 정권이 국세청 세무조사를 막으려고 했지만 워낙에 혐의가 너무 명백해서 그들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만약 이 사건 이후에도 국세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직권남용으로 감방에 가기 때문이다.

“혹시 저렇게 검찰이나 국세청을 움직인 배후가 너는 아니겠지?”

“웃기지 좀 마!”

“하하하, 농담이다. 요즘 하도 주변에 이상한 일이 많이 생겨서 그래. 오성 그룹 면접 때 있을 때도 따지고 보면 저거랑 별반 차이가 안 나.”

“그만큼 대학 생활 열심히 했잖아.”

“내 평점 보면 답 나와.”

“에이, 또 그런다. 너 겸손한 거 이제 다 안다.”

“겸손 같은 소리 마.”

“자식, 부끄러워하긴.”

그는 슬쩍 넌지시 질문했다.

“설마 나랑 영탁이도 오성 바이오에 가는 것은 아니겠지? 희망 계열사에 오성 바이오를 넣기는 했지만 좀 불안해.”

“나도 몰라.”

“그런가?”

“어.”

“알면 바로 말해주라.”

“그려.”

조민호는 괜히 심술이 나서 박진민을 쳐다보았지만, 곧 고개를 내젓다가 김정환 부장검사가 공권력을 휘둘러서 무영 그룹을 초토화하는 모습을 봤다.

무영그룹과 계열사 주가는 하한가를 거듭하면서 폭락했다.

한국대 역시 어수선하기는 매 한 가지였는데, 결국 지역 검찰청에서 또 사람이 나와서 한국대 본관을 압수 수색을 했다.

이미 수차례 박살이 나서인지 이번에는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라리 잘 됐다는 툴툴거리는 사람도 많았다.

무영 그룹의 영향력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조민호는 검찰청과 법원의 무차별 공격이 이어진다면 현 정권도 더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금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현 정권을 퍽치기 배후라는 추론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나머지는 알아서 잘하겠지.’

힐끗 희망에 들떠 있는 재학생이나 대학 임직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지만, 이 일보다는 자폐증 신약 여론몰이 이후에 미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일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아스트라의 반격을 대비해서라도 미국 내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넓혀야 해.’

결국 최영준 사장을 통해서 로버트 힐에게 지시를 내렸다.

‘둘 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는 사람이니, 알아서 잘하겠지.’

***

로버트 힐은 갑작스러운 조민호 부탁을 들었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조민호 선천지기 덕분에 깊은 호감을 느꼈기에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조민호가 원하는 관점에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이런저런 자기 인맥을 떠올려봤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한국 한의학조차 부정하는 미국인이 달랑 지압으로 난치병 치료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다. 오히려 설사 그 과정을 넘어가도 사람 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를 악용하는 경우 또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었다.

로버트 힐도 결국 차분하게 사람을 살피면서 가능한 문제를 피하려고 일상적인 뉴욕 사교 파티를 계획했다.

그는 미국 워싱턴에서 아는 지인에게 최대한 한국 대체 의학을 소개를 첨부한 초청장을 만들었다. 특히 자신이 걸린 아담스 스톡스 증후군 완치에 대한 것도 상세하게 첨부해서 주변에 발송했다.

뉴욕 파티 성격 자체가 정치인, 관료, 기자 심지어 로비스트의 모임이기 때문에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았다.

워싱턴 내의 권력 다툼 행사인 파티를 위해서 치열하게 움직였다.

리마 쿠웨이트 부인도 이 파티에 나타났는데, 그녀는 존 상원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을 찾아다녔다.

로버트 힐은 자기 병 치료에 대해서 묻는 이들에게 순순히 다 털어놓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방식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놀랍군요.”

많은 이들이 감탄했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다만 딱 여기까지다.

일단 한국을 아는 이들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을 북한으로 아는 이들은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간혹 동양 사상에 심취한 스티븐 이야기를 하면서 로버트 힐을 쳐다보았다.

로버트 힐도 쓴웃음을 지었다.

‘조민호씨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이것도 쉽지가 않네.’

“로버트 저 친구 왜 저래?”

“스티븐도 괴짜지만 그 못지않아.”

“지압으로 난치병을 치료한다니, 어이가 없어.”

“차라리 동양 침술이라면 그나마 수긍하는 척이라도 하겠는데, 사람도 참.”

“이거 혹시 사기 아냐?”

“설마?”

분위기는 갈수록 나빠졌다. 한국인조차 조민호 치료법을 믿지 않는데, 서양 의료를 믿는 미국인이 지압 치료술을 믿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실패인가?’

그런데 파티 참석자 모두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 음악 쪽 일을 하는 클라우드라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로버트 힐도 클라우드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뒤늦게야 휘트니를 발굴해서 키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랐다.

“아, 당신이 클라우드군요.”

“뭐 이제 한물갔다는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당신 같은 전설적인 거물이 그런 말을 하니 오히려 더 이상합니다.”

클라우드는 휘트니를 세계적인 가수로 만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최근 몰락을 거듭한 휘트니 사정은 좋지가 않았다.

지난주에 휘트니 집을 방문했다가 폐인이 되어버린 그녀 모습을 떠올린 클라우드는 착잡했다.

“저는 재능 있는 이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지만, 그들 삶을 윤택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가끔은 후회하고 합니다. 차라리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들 미래는 바뀌어서 행복하게 살았을 테니까요.”

로버트 힐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최근 미국 언론이 마구잡이로 씹는 휘트니 몰락 기사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특히 인종 차별 때문에 더 까이는 것 같습니다.”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혹시 마약 중독 환자 치료도 가능합니까?”

“재활원이 맞지 않습니까?”

“재활로 치료될 것 같지 않습니다. 병의 근원 자체가 마음의 병이라서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또 마약을 할 겁니다. 차라리 동양 의학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저도 확인을 해봐야 합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가능할까요?”

“잠시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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