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19화 (119/176)

#119

변순기 1차장은 마침 중앙지검장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역시 자기 건강에 대한 안부와 그 사건에 대한 질문이었다.

의례적인 답만 해주었지만, 중앙지검장 역시 상당히 열 받은 대답만 듣고는 전화를 끊었다.

잠깐 침묵했다가 단단히 마음을 굳힌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번 사건에 관련된 자는 모조리 잡아넣어.”

김정환 부장 검사는 은근히 기대 어린 시선이었다.

“......여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만들어서 압력을 넣던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까짓 거 옷 벗으면 그만이야. 변호사 하면 돈도 더 잘 벌어. 하지만 날 노린 새끼를 그냥 두면, 난 평생을 후회할 거다. 그러니까. 이번 사건을 나에 대한 청부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정환이 내가 맡아서 관련된 놈들을 닥치는 데로 다 잡아들여!”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직접 테러를 당하자 그렇게 설득하던 모습에서 태도를 완전히 바꾼 변순기 1차장검사 모습에 내심 피식 웃으면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두 사람이 병실을 나가자 이를 으드득 갈았다.

변순기 1차장검사도 이 사건의 위험성을 알았다. 이제는 물러난다고 해도 상대가 자신을 토사구팽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강원상 차관 이 개새끼가 해보자 이거지?’

***

보통 사람은 청부 살인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런데 의외로 인터넷을 통해서 이 의뢰를 요청하는 사람이 꽤 있다.

하루 40건 정도가 거래되는 청부 살인은 종류도 여러 가지다.

보험금을 노리거나, 유산을 목표로 하거나, 사업 관계자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의뢰다.

도박 때문에 5억의 사채를 진 이경호 역시 이 청부 시장에서 의뢰를 받고 이번 일을 진행했는데, 상대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만약을 위해서 보험 하나는 만들어 뒀다.

하지만 이경호도 곧 자신을 조사하는 이가 중앙지검 현직 검사, 심지어 그가 노린 차량에 1차장 검사가 있었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런다고 해도 굳이 이번 의뢰에 대한 것을 폭로할 생각은 없었다.

도박 빛은 이미 다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법정 대리인인 김주옥 변호사 제안을 받아서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만 진술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경호입니다.”

김정환 부장검사가 곧 입을 열려고 할 때 옆에 앉아서 서류를 확인하던 김주옥 변호사가 방긋 미소 지었다.

“우리 후배님이 왜 이럴까. 서두르지 맙시다. 이 분이 누가 보면 대단한 범죄자라고 생각하겠어.”

“난 당신 후배가 아니고, 당신은 법정대리인일 뿐입니다.”

“우리 후배님은 저번에도 그렇게 당한 것을 벌써 잊었나 봐요?”

이죽거리는 김주옥 변호사. 심문실에 들어와 있는 다른 수사관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툭하면 나타나서 수사를 방해하는 그 모습에 분노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김정환 부장검사 역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제가 일기로 이경호씨가 당신을 고용할 만큼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을 텐데요?”

“하하하, 걱정하지 말아요. 세상 살다 보면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검사님 같은 분에게 핍박받는 사람이 한둘입니까. 다 그런 분을 위해서 무료 변론을 하는 겁니다.”

“흠.”

오히려 주변에서 이를 으드득 갈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는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았다.

‘설마 이 자도 연루된 걸까? 아니면 무영 그룹에서 이미 손을 쓴 것일까?’

김정환 부장검사는 이상할 정도로 김주옥 변호사 표정에서 별다른 특이점을 찾아내지 못하자 단순히 지시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살짝 불만이 드러난 것을 봐도 사전 계획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김주옥 변호사가 보통 거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단 가볍게 심문을 시작했다.

“나이는 몇 살입니까?”

“마흡 일곱입니다.”

“사는 곳은?”

“모란역 근처 오피스텔입니다.”

“누구 지시를 받았습니까?”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김주옥 변호사는 옆에서 피식 비웃었다. 청부살인을 했다고 해도 묻는 질문에 대답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답변은 좀 달랐다.

“인터넷 의뢰를 받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저는 모르는 사실입니다.”

김정환 부장 검사도 순간 이상했지만, 조민호가 이경호에게 붙어서 뭔가 하던 것을 떠올렸다.

“......돈을 계좌로 송금받았습니까?”

“현금으로 받았습니다.”

김주옥 변호사도 처음에는 어이가 없어서 넋을 잃고 있다가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자, 잠깐!”

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는 슬쩍 김주옥 변호사 말을 무시했다.

“어디서 받았습니까?”

“지하철 사물함을 이용했습니다.”

“멈춰!”

고함을 내지른 김주옥 변호사는 다급하게 이경호 앞을 가로막았다. 옆에 있던 이봉기 수사관이 슬쩍 밀어내 버렸다.

“어어.”

김정환 부장검사는 눈인사를 보내면서 빠르게 질문했다.

“돈을 보낸 상대가 누구인지 압니까?”

“제가 돈을 찾을 때 그곳에서 확인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놈을 발견했고, 뒤를 미행해서 사진을 찍어뒀습니다.”

완력으로 심문을 막으려다가 제지당해서 분노한 김주옥 변호사가 쩌렁쩌렁 소리쳤다.

“야이, 병신 새끼야!”

식은땀을 주르르 흘리면서 자기 손으로 입을 막은 이경호 역시 입과 머리가 따로 놀아서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혹시 그자에 대한 것은 더 없습니까?”

“그자가 어디로 가는지 건물도 파악했고, 지갑을 소매치기해서 신원을 파악했습......”

이어지는 답변은 물 흐르듯이 계속 나왔다. 김주옥 변호사는 이봉기 수사관에게 밀려서 끼어들지도 못한 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변호사 생활 수십 년 만에 이런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환 부장검사조차 줄줄 자기 죄를 인정하는 상대 모습에 당황했고, 심문실에 같이 들어와 있던 이들은 대다수는 입을 딱 벌렸다.

마치 최면 마법을 쓴 것과 같은 결과에 다들 김정환 부장검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다만 분위기를 깰 수가 없어서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

“......그것 말고 만약을 대비한 보험은 있습니까?”

이제 이 상황에 패닉에 빠져서 눈물마저 글썽이는 이경호는 반쯤 자포자기해버렸다.

“녹음도 해두었고, 만나는 이에 대한 사진도 찍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전 이번 사고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빌어먹을, 아닙니다. 거짓말했습니다. 정말 아닙니다.”

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는 이미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 증거는 어디 있습니까?”

“제가 사는 오피스텔 에어컨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입니다. 조금 전에 한 말은 절대로 진실이 아닙니다. 흑흑흑, 저, 정말입니다.”

이봉기 수사관도 옆에서 들으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의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다.

문제는 이미 본인이 다 자백했다.

김주옥 변호사가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가지를 더 질문했다.

“저기 발끈한 김주옥 변호사님은 원래 알고 지낸 사람입니까?”

“전혀 모릅니다. 갑자기 절 무료 변론해준다고 해서 허락한 것뿐입니다. 사실 아직도 이상합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말을 잘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는 슬쩍 물러나면서 녹음 파일을 챙겨서 김주옥 변호사 앞으로 다가갔다.

“선배님, 어떻게 하죠?”

“......”

“설마 본인이 다 자백한 사실 가지고 태클 걸지 않겠죠? 전 손가락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위험도 하지 않았고, 질문만 했습니다.”

김주옥 변호사는 이를 바드득 갈면서 이경호에게 소리쳤다.

“이 병신 새끼야, 개도 그런 식으로 반응 안 해. 그냥 입 다물고 있으면 음주 운전사고일 뿐이잖아. 얼마든지 집행유예로 나갈 수가 있었어. 이제는 청부 살인으로 감방에서 몇십 년은 썩어야 하잖아!”

창백한 얼굴로 파르르 떨고 있는 이경호를 힐끗 쳐다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충분히 반성한 겁니다. 그 선배님은 세상을 너무 그렇게 보지 마시죠.”

“이 새끼가!”

그는 피식 웃으면서 아직도 패닉에 빠져 있는 이경호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더한 것은 설사 최면이 걸렸다고 해도 정상적인 사람과 같은 행동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경호는 평소와 목소리와 태도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치료는 그렇다고 쳐도 이건 최면술같아 보여. 본인 스스로 잘못을 자백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

김정환 부장 검사는 심문이 끝나자 이봉기 수사관에게 지시했다.

결국 이봉기 수사관은 이경호 집을 압수 수색했고, 정말 에어컨 안에서 현금을 가져온 자의 사진과 목소리 증거를 찾았다.

추가 수사로 지하철 보관함에 동일 인물이 뭔가 넣는 CCTV 모습을 발견했다.

증거로서는 완벽했다.

이봉기 수사관은 이것을 토대로 계속 주변을 샅샅이 살폈고, 얼마 있지 않아서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알아냈다.

신원 전당포를 운영하는 최희중 사장의 직원 중의 한 명이었데, 의뢰를 받아서 다양한 형태의 불법적인 브로커 일을 했다.

최희중 사장이 직접 살인하지는 않았고, 주로 중계를 해주는 일을 했다.

그 역시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에 마침 잠적하려는 중이었는데, 경찰 특공대 30명이 신원 전당포를 덮쳤다.

전직 조폭 여섯 명은 그 자리에서 현직 검사 청부 살해 사건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최희중 사장은 당연히 발광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우리가 언제 살인을 했다는 말입니까?”

너무 명확한 증인과 증거가 나왔다. 최희중 사장 밑에 직원이 직접 현금을 배달하는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다 나왔다.

아예 짜고 쳐도 힘들 정도로 정교한 CCTV 화면이었다.

식은땀을 주르르 흘린 최희중 사장은 패닉에 빠져서 아무런 변명을 하지 못했다.

한국 검찰이 나름의 능력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청부 살인 교통사고가 난 지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자신을 추적한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 저기......”

김정환 부장 검사 역시 이런 중간 브로커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돈을 누가 주었는지만 말해. 잘 생각을 해야 할 거야. 중앙지검 현직 차장 검사 청부 살인, 업무 방해를 포함해서 이것저것 주렁주렁 걸면 무기 징역도 어렵지 않으니까. 사면은 어려울 테니,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할 거야.”

패닉에 빠진 최희중 사장도 더 이상 조금 전과 같은 행동을 보일 수가 없었다.

“거, 검사님, 청부살인이라뇨?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전 그냥 의뢰금을 받아서 준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잘 선택해. 여기서 다 불고, 수사 협조만 잘하면 잡범 수준으로 끝내던지, 아니면 청부살인 사건 공범으로 영원히 감옥 가서 살던지.”

“저, 정말 이번 청부 살인 혐의는 포함하지 않은 겁니까?”

“내가 약속하지. 사실 당신이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

그는 결국 담배 한 대를 달라고 해서 피면서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사실을 다 털어놓고 말았다.

“......저희 사무실 아래층이 비어 있는데, 캐비닛 아래 보면 의뢰자 녹취 테이프가 있을 겁니다.”

수사관은 쾌재를 불렀다.

김정환 부장검사 역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면서 새삼 조민호 얼굴을 떠올렸다. 자칫하면 김주옥 변호사 방해 때문에 이 사건을 수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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