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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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별장은 원주 시내에서 그렇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근처에 서곡 낚시터가 있어서 휴가 장소로 괜찮았다.
주변을 둘러보는 이봉기 수사관은 떨떠름한 얼굴로 김정환 부장검사 얼굴을 살폈다.
막혀 있던 김재건 부장판사 사건을 김정환 부장검사가 푼 것도 신기했지만 별다른 특이 사항은 발견하지 못해서 당황했다.
뒤늦게 합류한 지역 경찰 역시 수사팀 지시를 받기는 했지만,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는 그런 다양한 시선에도 그저 말없이 별장 이곳저곳을 살폈다.
평소라면 별 다른 흔적을 찾지 못하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할 수 있어.’
그것은 정말 근거 없는 조민호 충고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저기 검사님, 이 주변을 샅샅이 살폈는데, 더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
그는 바위처럼 주변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곳을 뒤져봐도 별 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서 답답한 김정환 부장검사 눈치를 보는 이들을 대신해서 이봉기 수사관이 다시 나섰다.
“검사님, 이 원주 별장을 찾은 것은 저도 감탄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외딴곳에 김재건 부장판사 같은 사람이 증거를 숨겼을 리가......”
하지만 별장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침묵하던 김정환 부장검사는 벌떡 일어나서 벽난로 구석 쪽으로 다가가서 바닥을 천천히 살폈다.
바닥은 사람이 사용하지 않아서 먼지가 자욱하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 모서리 쪽은 희미한 반원형 흔적이 남았다.
“......저기 검사님, 아무래도 요즘 무리해서 몸이 안 좋은 것 같습니다. 며칠 정도는 좀 더 쉬는 것이......”
김정환 부정검사가 벽면을 가볍게 두들긴 후에 벽면에 나 있는 흠을 잡아서 당겼다. 기이잉 소리와 함께 벽면 한쪽이 빙글빙글 돌아갔고, 그 사이로 통로가 나타났다.
“!”
이봉기 수사관을 비롯한 수사팀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다급하게 김정환 부장검사 뒤를 따랐다. 그 안쪽에는 밀실이 있었는데, 현금다발이 한쪽을 가득 채웠고, 다른 한쪽에는 고가의 예술품이 나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구석에는 금고까지 있었다.
“맙소사!”
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는 그런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밀실을 한 번 쭉 둘러보다가 그림 하단에 붙어 있는 번호를 확인했고, 금고 번호를 돌렸다.
금고는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열렸는데, 그 안에는 무기명 채권과 골드바가 가득 들어 있었다.
“!”
그제야 발칵 뒤집혔다.
뒤늦게 이곳을 찾은 이들은 다들 별장에 숨겨 놓은 막대한 재산에 혀를 내두르면서 불과 반나절 만에 이곳을 발견한 김정환 부장검사를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이봉기 수사관은 셜록 홈스가 울고 갈 정도로 놀라운 수사 능력을 보여준 김정환 부장검사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럴수가.’
김정환 부장검사는 그제야 상쾌한 미소를 한 채 피식 웃고 말았다.
‘이거였구나.’
조민호에게서 치료받은 후에 느꼈던 그 기묘한 기분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졌다. 당시 그저 기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미 그는 배효진과는 좀 다른 감각을 얻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한 편으로 조민호 얼굴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도대체 그분의 정체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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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 부장검사에게 조언해주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은 조민호는 신약 문제를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한다고 정신없었다.
결국 이런 분야에는 한계를 느낀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을 일단 찾았다.
물론 그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 뉴스 속보를 봤다.
김정환 부장검사가 무려 40억 가까운 김재건 부장판사의 비자금을 찾은 속보가 마침 나왔다.
최영준 차장조차 커피를 홀짝이면서 저 특종을 놓친 것에 아쉬워했다.
“대박이네.”
기자 TV 인터뷰에 임하는 김정환 부장검사 모습은 무덤덤했다.
하지만 이미 이번 사건을 해결한 그에게 기자의 인터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원래 수사를 잘하잖아요.”
하지만 아나운서가 밝힌 내용은 좀 달랐는데, 단순히 수사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불과 반나절 만에 서울에서 원주까지 내려와서 달랑 날짜 몇 개와 카드 명세서만으로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최영준 차장도 혀를 내둘렀다.
“저 정도면 완전히 명탐정 홈즈 수준이네.”
“뭐 검사가 수사를 잘하는 게 이상한 것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앵커는 마치 조민호 말에 반박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세한 내용을 말했다.
[......몇 가지 실마리를 힌트 삼아서 단호하게 이곳 원주까지 내려와서 증거를 찾은 이번 김정환 부장검사 수사팀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서 무려 40억 비자금을 발견했습니다. 앞으로 김재건 판사 수사에도 탄력을 얻을 것으로 보입니다.]
무안한 조민호는 결국 최영준 차장에게 자기 고민을 넌지시 털어놓았다.
뉴스 속보에 맛이 간 최영준 차장은 가자미눈을 한 채 조민호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루노 제약과 아스트라 제약에게 타격을 주고 싶다는 말이잖아?”
“그렇죠. 문제는 신약 개발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신약 바스클린 진행 사항을 봐서는 답이 안 보입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거야. 보통 15년 정도는 잡아야 하니까.”
“다른 대안이 없을까요?”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을 거야. 오히려 신약 개발 중인 그 정보가 두 회사에 큰 타격을 줄 테니까.”
“아, 생각해보니,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었군요. 결국, 정보전이 되는 건가요?”
“맞아. 그런데 노골적으로 그런 작업 하면 두 회사도 그냥 있지 않을 거야.”
조민호는 ‘안 그래도 배후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는데, 자발적으로 나서준다면 오히려 제가 바라는 겁니다.’란 말까지 굳이 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스트라 제약에 대해서 손대지 못하는 이유도 정확히 이들이 배후인지, 아니면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만만한 조민호 모습에 최영준 차장은 걱정스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이 자들은 생각보다는 미국 내에 여러 가지 영향력을 행사하니까.”
“아, 참 미국이었죠.”
그 역시 곤혹스러운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최영준 차장도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김재건 부장판사를 구속한 마당이니, 이제 무영 그룹에 대한 수사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거네. 하지만 지금까지 그자들의 행동 봐서는 이대로 순순히 당하지는 않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도 곤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김정환 부장검사를 떠올리다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했고, 걱정하지 말라는 답변까지 들었다.
‘설마 극단적인 짓이라고 저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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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는 루노 제약과 아스트라 제약을 목표로 삼은 후에 검찰청이나 법원을 비롯한 기존에 했던 모든 활동에서 한 걸음 슬쩍 뺐다.
법원의 도움까지 얻은 김정환 부장 검사도 당장은 조민호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김재건 부장판사 사건에 집중했다.
이미 증거가 충분하다 넘쳐서 결국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고, 비자금 40억 출처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했다.
종영돈 차장검사는 도망친 유명환 과장도 관련된 모든 영역을 압수 수색했다.
두 사람은 중앙지검 변순기 1차장 연락을 받고 한식집에서 만났다.
“요즘 고생 많다.”
“아닙니다.”
두 사람은 갑자기 변순기 1차장이 자신을 부른 것 때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김정환 부장검사는 이미 이런 일을 자주 경험했기에 솔직히 변순기 1차장을 의아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언론은 그 어느 때보다 김재건 판사 구속에 열광했다.
‘설마 변 차장님도 마음을 바꾼 건가?’
커피를 홀짝이던 변순기 1차장도 두 사람 표정을 살피면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결심했다.
“두 사람 마음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이란 게 너무 서두르면 곤란해. 이쪽저쪽을 파헤치면서 없는 죄까지 만들면 그렇잖아?”
“하지만 이미 증거는 충분히 확보했습니다.”
“안다. 그런데 이번 일은 무영 그룹만이 아니라 여당에서도 계속 전화가 와. 박중구 회장이 그쪽에도 선을 놓은 것 같다.”
종영돈 차장검사가 결국 따졌다.
“차장님도 다음 검찰총장 후보 물망에 오른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번에는 지난 무영 그룹 비자금을 철저하게 조사해서......”
“너희 아직도 내 말 못 알아듣겠냐?!”
“차, 차장님......”
“영돈아, 지금 양주민 검찰총장님이 정권과 날을 세우고 있는데, 이게 언제까지 갈 거라고 생각 하냐? 지금 여권에서 양주민 검찰총장을 위해서 정치 공작한다는 소리가 있어. 만약 양주민 검찰총장이 물러나면 너희 둘은 아마 그 다음 날로 검찰에서 퇴출당할 거다.”
“으음.”
김정환 부장 검사도 이번에 약간 놀랐는데, 설마 여권에서 양주민 검찰총장을 위한 정치 공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말에 놀랐다.
“가만 야권조차 움직인다는 말입니까?”
“그래.”
“이상하군요.”
“그쪽의 일부 의원도 양주민 총장님이 부담스러운 거야.”
종영돈 차장검사도 혀를 찼다.
“박중구 회장이 아주 끝장을 보려고 로비에 전력을 기울였나 보군요.”
다소 미안한 얼굴을 한 변순기 1차장도 머쓱하게 웃었다.
“그자가 이번 일 때문에 이곳저곳에 꽤 돈을 많이 뿌렸다. 여당, 야당을 막론하고, 심지어 푸른 기왓집도 마찬가지다. 수천억은 헛소문이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은 틀림없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박중구 회장은 검찰청 내부에도 가능한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금품을 살포했다.
돈이 안 되면 또 다른 다양한 수단의 압력을 가했다. 법무부 인사 발령 이후에 양주민 검찰총장를 싫어하는 이들도 대거 요직에 올랐다.
“정환아, 너에게 아주 공포마저 느끼나 보더라. 하긴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이번 김재건 판사 별장에 감탄했다. 다만 이번만 적당히 하자. 제발 나 좀 살려주라.”
변순기 1차장도 나름 한 성격하는 사람인데, 저렇게까지 저 자세라니. 외부 압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잘 보여주었다.
양주민 검찰총장에 대한 외압이 통하지 않자 이제는 그 밑에 실무진을 상대로 다양한 외압을 동원한 것이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식으로 물러나다 보면 결국 그놈을 잡을 수 없습니다.”
“나도 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환이 네가 너무 심했어. 수사도 정도껏 해야지, 닥치는 대로 다 압수 수색을 해서 잡아넣으면 어떻게 하냐? 대법원장을 싫어하는 법원 내의 소장 판사도 이번 일에 대해서 말들이 많아. 이번 일도 따지고 보면 한국대 비리가 시작이었는데, 무영 그룹 계열사부터 시작해서 무영 그룹 본사까지 노리잖아.”
“......수긍 못합니다.”
변순기 1차장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종영돈 차장검사를 쳐다봤다.
“내가 설득 좀 해봐.”
“선배, 실망입니다.”
그도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채 버럭 소리쳤다.
“이 새끼가 난들 이러고 싶어서 그러냐. 청와대에서 하지 말라잖아!”
“정말입니까?”
“그래. 임마. 오죽하면 저 푸른 집에서 너희들을 지켜보겠냐. 수사도 좀 적당히 하자. 분명히 또 기회가 있을 거다. 아니면 내가 그렇게 만들 마. 어차피 여론 나빠지면 저놈들도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은 때가 아냐.”
“그럴 수 없습니다.”
“하아, 새끼들.”
변순기 1차장은 대화가 먹히지 않자 짜증스러워서 화를 냈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처음의 태도에서 한 걸음 물러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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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수사 외압을 자주 경험한 김정환 부장 검사는 수사 압력에 별 달리 생각하지 않았고, 종영돈 차장 검사 역시 다르지 않았다.
변순기 1차장은 천재건 이사에게서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를 듣자 두 사람을 생각해서 이 일에 쉽게 물러나지 않았는데, 대검찰청 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그는 눈치를 보는 두 사람에게 슬쩍 할 말이 있다고 해서 김정환 부장 검사 차량 뒷좌석에 같이 탑승했다.
“가자, 내가 오늘 술 한 잔 사마.”
종영돈 차장검사가 이죽거렸다.
“선배, 그냥 우리 둘만 마실 겁니다.”
“오늘은 좋은 데로 가자. 돈 걱정은 마.”
“뇌물 받은 돈 사절입니다.”
약간 논쟁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김정환 부장 검사는 중앙지검에서 빠져 나와서 가능하면 한적한 도로를 따라서 변순기 1차장이 말한 방향 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 안에서도 두 사람의 논쟁이 계속 이어졌다.
변순기 1차장도 이번 일이 미안한 지 두 사람 마음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오늘따라 변순기 1차장은 유독 말이 많았다.
김정환 검사도 그 분위기에 젖어서 두 사람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한 사거리를 막 지나는 시점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달려와서 그들 차를 그대로 들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