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아스트라 제약은 이미 우울증 시장의 앞으로 시장 가능성을 보면서 자폐증 영역에 살짝 걸쳐서 투자를 진행했다.
후보물질탐색부터 시작해서 전임상, 임상1상, 임상2상, 임상 3상에도 벌써 10종류의 신약을 병행해서 개발 중이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적인 제약 회사 역시 비슷한 규모로 투자했다. 심지어 이쪽 영역에 경험이 없는 제약회사도 앞으로 시장 규모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 예상해서 이 살인적인 경쟁에 끼어들었다.
조민호도 세계적인 제약 회사가 퍼붓는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에 혀를 내둘렀지만, 솔직히 피부로 체감하지 못했다.
“흠.”
“왜 그러세요?”
이전까지 삽질을 고려해서 질문했다.
“이것은 개인적인 질문인데, 만약 이 아스트라 제약이 개발 중인 신약보다 다른 회사에서 먼저 개발하면 타격이 크겠죠?”
“특허를 비롯한 신약 개발 특성상 그런 일은 생기기 어렵습니다.”
“만약 완전히 새로운 신약이라면 가능하겠죠?”
김지수 차장도 갑자기 조민호가 새로운 신약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자 당황했지만, 사실을 털어놓았다.
“천문학적인 투자비용이 들어간 새로운 신약 개발이 실패하면 큰 타격을 받을 겁니다.”
“딱 좋네요.”
“네?”
“아닙니다. 늘 말하지만 전 회사 경영에 관심 없습니다.”
“......네.”
김지수 차장은 조민호에게 완전히 빠져서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최태한 사장이 뒤늦게 끼어들어서 조민호에게 질문했다.
“혹시 다른 제약회사에서 개발 중인 새로운 신약에 대해서 아시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아닙니다.”
단순한 대답만 했다.
하지만 옆에서 자료를 넘기는 장연주 대리는 힐끗 숨죽이고 있는 김지수와 다른 경영진 모습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민호 행동이 겉으로 봐서는 정말 가벼워 보이는데, 예민한 반응을 보여. 도대체 민호 위치가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반응일까? 사외이사란 자리가 저런 자리를 맡는 건가?’
조민호는 흡족한 미소를 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지수를 필두로 다른 경영진이 쪼르르 따라왔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끝까지 가자.’
***
조민호는 아스트라 주 제품 대항마로 두 가지를 골랐고, 여기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따라서 늘 가지고 다니는 의학 서적 양이 더 늘어났다.
이제는 도저히 물리학과 재학생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주변에서 조민호에게 별 다른 태클 거는 사람은 없었다.
박진민 역시 이런 조민호 연구를 봐도 크게 투덜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조민호가 심각한 번민에 빠진 박민호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뭔 일 있어?”
“어, 나 오성 그룹 3차 최종 합격했다.”
“오, 축하한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박진민이나 김영탁은 조민호와 주변 친구가 격렬하게 축하해주는 데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심란했다.
“왜 그래? 다시 말하지만 난 너희 면접에 외압을 행사하지 않았다.”
“알아.”
박진민도 처음에는 1차 면접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을 조민호에게 말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면접과는 달리 다른 후보자에게는 엄청난 질문 공세가 이어졌지만, 그 자신은 예외였다.
김영탁 역시 찜찜한 표정으로 면접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리기만 했다.
두 사람은 솔직히 2차와 3차 면접 과정에서 별 다른 질문도 받지 않았는데, 합격했다.
심지어 그나마 받은 몇 가지 질문에 잘못 대답했을 때는 면접 심사관이 오히려 당황했다.
마치 잘못된 질문을 한 면접 심사관이 오히려 죽을죄를 짓은 사람처럼 행동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면접 지원자가 오히려 당황해서 실수했다.
누군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그 후보로 조민호를 의심했다.
그런데 정작 조민호는 아예 전공을 바꾸어서 약대로 편입이라도 한 사람처럼 요즘은 새로운 신약 연구에 폭 빠져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면 이제는 그 학구열에 질려서 더 질문하고 싶지도 않았다.
박진민은 뒤늦게야 오성 그룹 면접 중에 오성 그룹을 조사하면서 미래 증권이 무려 오성 바이오 30%지분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민호야, 너 혹시 오성 바이오에 입사하는 거야?”
“난 큰아버지 찬스는......”
“진짜?”
“......입사는 아냐.”
“나중에 딴소리하면 나 화낼 거다.”
“흠.”
박진민은 힐끗 조민호가 보고 있는 신약 자료와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전공 서적을 살피면서 조민호를 째려봤다.
조민호는 눈치 빠른 두 사람 행동에 피식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이름만 올리는 정도다.”
“혹시 사외이사?”
‘눈치가 빠르네.’
“......어.”
칼같은 박진민 눈치 때문에 새삼 지난 큰아버지 찬스 변명을 떠올린 조민호는 무안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미 오성 그룹 면접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박진민은 딱히 조민호를 타박하지 않았다.
“너희 큰아버지가 오성 바이오 30% 지분을 사들였으니, 믿을만한 친인을 회사에 넣고 싶겠지. 그런 의미에서 조민호 네가 적임자고, 솔직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순순히 수긍하는 박진민 모습에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지?”
“그 직위면 바지 이사에 불과하니, 큰아버지 찬스는 아니겠어.”
자기 능력을 살짝 불신해서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이게 편했다. 뭐 어쨌든 지난 거짓말은 잘 넘어갔다.
“......그래.”
옆에서 묵묵히 약대 전공책을 뒤적거리던 김영탁은 불쑥 입을 열었다.
“혹시 우리도 오성 바이오에 배치되는 것 아닐까?”
“글세.”
조민호는 딱히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사람은 막상 그 일을 떠올리자 안색이 썩 좋지가 않았다.
비록 회사에 실권이 없다고 해도 직급이 조민호는 이사고, 자신은 평사원이기 때문이다.
‘설마?’
조민호는 그런 두 사람 모습에 딱히 신경 쓰지 않은 채 머릿속에서 개요를 그린 두 가지 신약에 대해서 계속 파고들었다.
‘환자를 좀 더 치료해서 다듬으면 답이 나올 것 같아. 이것만 완성하면 이놈들에게 일차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거야.’
***
조민호 나름 방향을 잡자 이 새로운 신약과 관련된 환자 치료에 대해서 고민했다.
일반 환자가 아니라 막상 자기 입맛에 맞는 환자를 찾으려니, 그것도 일이었다.
배효진 경우가 그 좋은 예다. 만나서 설득하고, 치료하고, 마지막으로 적당히 입막음까지 해야 했다.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한 편으로 이것도 장점이 있었다. 조민호는 필요한 환자만 치료하고, 나머지 자기 개인 생활을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도 이제 다른 사건을 다 배제하고, 이제 퍽치기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런데 일이 꼭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김정환 부장검사가 마침 사건 보고를 위해서 전화했다.
[김재건 판사 수사가 잘 안 풀려서 걱정입니다.]
[그 난리를 쳤는데, 당연히 구속 아닙니까?]
[금품을 받은 정황은 있는데, 명확한 증거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수첩이나 컴퓨터에 금품 수수 정황만 나온 모양이군요.]
[네, 아무리 정황이 명확하고, 제보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재판에서 불리해집니다.]
구속 영장까지는 법원 도움을 얻어서 어떻게 받는다고 해도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정권 기생 언론을 동원해서 검찰에 압력을 넣는다.
만약 여론이 악화한다면 벌써 800명 가까운 시위단체 규모가 더 커져서 검찰청 역시 큰 부담을 받는다.
[흠.]
그는 그다지 간섭하고 싶지 않았지만, 김정환 부장검사가 이렇게 상황보고 하는 것을 혼원기 치료 탓에 친밀감이 생긴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여기서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할까 하다가 그렇게 두지 못했다.
혹시라도 유명환 과장 배후가 이번 일을 빌미로 검찰을 상대로 역공을 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민호는 김정환 부장검사를 만나서 두칭리 보좌관에게 썼던 방식을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곧 마음을 바꾸었다.
[배효진은 아시죠?]
[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그 배효진이라면 저도 압니다.]
[그러면 말하기 편하겠군요. 배효진이 많이 변한 것도 제 치료 덕분입니다. 즉 김정환 부장검사님도 그녀가 변한 모습을 잘 살펴보면 큰 힘이 될 겁니다.]
[네?!]
조민호는 화들짝 놀란 김정환 부장검사 행동에도 120만 스탯에서 만들어진 혼원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김정환 부장검사가 자기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모든 일은 김정환 부장검사님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 점을 잊지 마세요. 믿음 속에서 원하는 답을 찾을 테니까요.]
[.......네.]
***
김정환 부장검사는 조민호 충고를 받은 후에 사건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보다는 오히려 배효진 변화에 대한 것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수사팀 회식 자리에 있던 TV 화면에서 마침 배효진이 마침 피아노 협주곡 드라마 제작진과 같이 한 연예 프로그램에 나왔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이 피아노 협주곡에 독보적인 매력과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필립 헤니, 설명이 필요 없는 조유리,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가진 서도연, 심지어 극단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쌓은 이소혜가 합류했다.
하지만 이런 당당한 배우 속에서도 오히려 화려하게 빛을 발휘한 사람은 배효진이었다.
카메라 화면이 전부 배효진에게서 잘 벗어나지 않았다.
“진짜 끝내준다.”
“김 검사님도 배효진 팬입니까?”
“물론입니다. 이봉기 계장님도 좋아하지 않습니까?”
“요즘 다들 배효진 좋아하죠. 이번 스캔들 때문에 자칫하면 완전히 매장당할 뻔한 사건을 그런 식으로 극복한 배우는 처음입니다.”
“용기 있는 여배우죠!”
다들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배효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전에는 그저 배효진이 참 특이한 경우라고만 생각한 김정환 부장검사도 술잔을 기울이면서 배효진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곧 화면이 바뀌면서 배효진의 지난 과거 경력이 천천히 나왔다.
경력이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덕분에 배효진 모습의 변화가 잘 드러났다.
술잔을 기울이던 팀은 이제 깊은 감상에서 빠진 채 멍하니 배효진 화면을 쳐다보았다.
“정말 많이 변했네요.”
“도저히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그제야 조민호 말을 심각하게 돌이켜봤다.
‘뭔가 더 있어.’
***
특이점을 찾은 김정환 부장검사는 따로 배효진 동영상을 구해서 하나하나 살폈다. 배효진의 변해가는 모습을 살피면서 단순히 외모만이 아니라 눈빛이 가장 크게 변한 것을 발견했다.
문득 이 일의 배후가 조민호라면 그 자신 역시 비슷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실제로 조민호 치료를 받고 난 후에 미묘한 변화를 경험했다.
문제는 그 자신이 치료 외에 다른 부분에서 조민호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이것은 조민호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근원적인 문제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자신이 아는 한의학 범주에서 조민호 능력을 바라봤다. 그 이상의 특이한 현상에 대해서는 믿지 못했다.
그런데 배효진 경우를 보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그 이상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눈을 감은 채 조민호가 치료할 때 지압한 족양명위경에 위치한 기호, 고방, 옥예혈을 떠올렸다.
이들 혈에는 치료를 위해서 혼원기가 둥지를 튼 장소였고, 폐암을 치료하면서 대부분 소진되었다. 하지만 이 혼원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무려 120만 정신 스탯에 의해서 만들어진 혼원기는 폐암 치료에 소진된 것 외에 일부는 생명체처럼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 기운은 김정환 부장검사의 조민호에 대한 믿음이 강해질수록 점점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혼원기는 이미 김정환 부장검사 선천지기 동기화가 된 후라서 자연스럽게 김정환 부장검사의 선천지기 강을 따라서 이동했다.
후천지기를 이용한 방식과는 달리 기운이 너무 작아서 경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는데, 아주 작은 물줄기처럼 졸졸 흘렀다.
이 변형 혼원기는 김정환 부장검사 의지를 따라서 도착한 뇌혈맥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뇌경맥을 따라서 흩어졌다.
순간 김정환 부장검사는 자신 속에 막혀 있는 뭔가 확 깨지는 것을 깨닫고 나서 눈을 번쩍 떴다. 쇼킹한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뭐지?’
천천히 일어나서 자기 몸을 이리저리 살폈지만 특이한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거울을 봐도 배효진과 같은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사건 수사를 정리해놓은 백보드를 다시 살피면서 흠칫 놀랐다.
제보자가 남겨 놓은 돈 배달과 관련된 날짜 1, 13, 24를 확인한 후에 곧바로 압수품 중의 하나인 수첩 내용을 확인했다.
‘휴가 날짜와 일치하는구나.’
김재건 판사는 돈 받은 날짜 후에 반드시 정기 휴가를 냈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자연스럽게 금방 이 날짜 카드 사용 명세서를 확인했고, 같은 편의점에서 결제한 것을 확인했다.
“원주라.”
원주와 연결 고리가 있는 김재건 부장판사 사촌 조카 명의 별장을 찾았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다른 수사관을 부르고, 법원에서 압수 수색 영장을 받은 후에 곧 바로 이 별장을 향해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