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14화 (114/176)

#114

조민호은 특이한 박상철 과장의 행보를 찬찬히 살폈다.

만약 단순 의료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었고, 그게 이 병원 후원금이라면 말이 된다.

또한 만약의 사태를 대비로 유명환 과장을 통해서 권력 실세에게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아스트라 제약 회사와 일정한 거리를 뒀을 수도 있다. 설사 중간에 환자가 사망해도 꼬리 자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만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단순히 외할아버지에 대한 인질로 활용할 목적이었을까? 하지만 이 정도 재활 병원 환자 규모는 말이 안 되잖아.’

조민호는 깊은 고심에 들어갔고, 힐끗 거대 제약 회사의 하나인 아스트라 제약의 매출 현황 보고서를 천천히 살폈다.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도 깨달았다.

‘유명환 과장은 박상철 과장이 준 뇌물을 받아 챙겼을 뿐이고, 아스트라 제약에 대한 사실을 모를 수도 있겠어.’

박상철 과장은 아스트라 제약 지시를 받아서 움직였고, 특정 환자를 찾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유명환 과장을 통해서 현 정권 실세와 긴밀하게 지냈다.

즉 현 정권은 박상철 과장이 물 밑에서 진행한 일을 전혀 몰랐고, 이보다는 정치 비자금 목적으로 불법 대출에 더 관심을 기울였을 수도 있다.

최영민 사장은 힐끗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입술을 오물거렸다. 궁금한 것이 이제는 너무 많아서 참지가 쉽지 않았다.

조민호는 순간 검찰총장과 대법원장을 이용해서 자신이 관여한 일을 떠올리자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몰이 사냥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지만 정작 지금 수사 받는 많은 이들이 자기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스트라 제약은 어떻게 공략하지?’

***

조민호는 아스트라 제약 문제 때문에 유명환 과장 추적에 더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최영민 사장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난리 쳤는데, 결국 출국 금지된 유명환 과장이 밀항선 타고 중국으로 도망쳤다는 것만 확인했다.

이 일에는 놀랍게도 해경이 일부 도와줬다는 정황마저 나왔다.

‘짜증나네.’

뒤늦게 유명환 과장이 중국으로 도주한 사실을 제보 받은 동부지검 역시 당황했고, 곧 중국 공안에 이번 수사와 관련된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 공안은 요식적인 답만 내놓고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남은 이는 이철명 경찰서장이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피의자로 전환된 후에 조사받는 과정에서 자살해버렸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자살 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피의자의 극단적인 선택에 관한 기사는 온통 한국을 뒤덮었다.

조민호도 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최영민 사장을 통해서 보고받았다.

“정말 자살한 거 맞습니까?”

“자필로 남긴 유서를 봐서는 확실합니다.”

“혹시 자살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조사 과정에서 혐의점이 명확해서 별 다른 특이사항이나 다른 문제점이 없다는 것이 담당 검사의 설명입니다. 검찰에서 추가로 확인 중입니다.”

“흠.”

퍽치기 사건 외는 다른 사건에 더 연루되기 싫은 조민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산 서장은 어때요?”

“그쪽은 조용합니다. 혹시 그쪽도 폭로 작업을 시작할까요?”

“잠깐.”

그는 손을 들어서 이번 일을 어디까지 정리해야 할지 고민했다.

최영민 사장은 이번 사태 배후로 보이는 천재건 이사 문제 때문에 다른 생각에 빠졌지만,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그의 경험으로는 이번 사건을 더 파헤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 김태환 선생에 관한 조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건 최근까지 그의 자료입니다. 잠깐 오성 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한국 병원으로 돌아온 것 빼고는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오성 의료원이라뇨?”

“한국 병원에서 특이환자를 치료한 경력 때문에 오성 의료원으로 옮겼지만, 기본적인 실력이 너무 떨어져서 결국 퇴출당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건중 회장이 오성 바이오 설립 과정에서 뛰어난 인재를 많이 스카우트했는데, 그중에는 김태환 선생까지 포함했다.

정작 오성 의료원에서 김태환 선생이 의료 사고를 터트려서 오히려 분란 거리가 되었다.

오성 의료원은 뒤늦게 한국 병원 경력을 재조사했고, 결국 퇴출했다.

겉으로는 김태환 선생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으로 처리되었지만, 그 내막은 좀 달랐다.

조민호도 만약 김태환 선생을 긴밀하게 추적했다가 괜히 오성 의료원을 오해해서 큰 사고를 칠 뻔했다는 것에 혀를 내둘렀다.

‘세상 일이 참, 뜻대로 안 풀려.’

“결국 이것도 여기까지란 말인데......”

“확실치는 않지만, 한국 병원에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이 더 있습니다.”

“뭐죠?”

최영민 사장이 추가로 내놓은 보고서는 간호사 최진희에 대한 프로필이었다.

조민호도 깜짝 놀랐다.

“가만 제 담당 간호사 아닙니까?”

그는 히죽 웃었다.

“한국 병원에 있다가 안산 시립 재활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그것도 민호씨가 병원을 퇴원한 다음 날에 병원을 그만뒀습니다. 혹시나 해서 몇 가지 조사를 더 해봤는데, 이게 흥미롭습니다.”

자료에는 최진희 간호사의 최근 동선에 대한 사진이었다. 재활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병원에서 뭔가를 빼돌렸다.

그 자료 역시 보고서 뒤편에 첨부되었다.

조민호는 굳이 그 자료를 어떻게 얻었는지 묻지 않은 채, 묵묵히 그 결과만 살폈다.

‘환자 개인 의료 정보구나.’

그것도 각 환자 예후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다 담겨 있었다. 이 개인 의료 정보 유출 자체는 당연히 불법이었다.

최진희 간호사가 몰래 만나는 사람 사진도 나왔다.

“그자는 루노 제약의 김영동 신약 개발 팀장이란 자입니다. 최근 몇 가지 우울제 치료약을 샘플로 공급했습니다.”

사치가 심한 최진희 간호사는 이 과정에서 받은 현금으로 쇼핑을 즐겼다.

“.......어떻게 된 겁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여기까지만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드러난 상황만 봐서는 개인 의료 정보만 넘긴 것뿐이고, 딱히 별 다른 불법을 더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죠. 이들은 전담 인원을 붙여서 계속 주시하세요.”

“유명환 과장은 어떻게 할까요?”

“그것보다는 안산 시립 재활 병원, 루노 제약, 아스트라에도 각각 사람을 더 배치하세요. 혹시 자금이 더 필요하면 계좌를......”

“돈은 더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거래는 분명한 게 좋아요. 장기 경호 의뢰 형식으로 해서 그쪽 회사에 10억을 송금할 테니, 그렇게 해주세요.”

“아, 네.”

최영민 사장은 10억을 용돈 취급하는 조민호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재벌 3세인가?’

조민호는 새삼 사건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용의주도하게 일 처리 하는 이들의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차라리 솔직하게 칼을 휘두르는 무림 시절이 오히려 속 편한 것일지도.’

***

핵심 피의자인 유명환 과장이 갑자기 중국으로 도망치면서 이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비판은 오히려 더 심해졌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동부지검 역시 뒤늦게야 유명환 과장의 동선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자고 일어나면 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의혹이 계속 피어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이 사건 때문에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배효진에 관한 관심이 더 컸다.

배효진은 당당하게 성접대 의혹에 대한 진실을 폭로하면서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용기 있는 그녀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놀라운 존재감 때문에 더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그 여파는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국 입장에서는 쾌재를 불렀다.

이런 배효진과 광고 모델 계약을 결국 진행한 오성 그룹에 대한 이미지 역시 달라졌는데, 모든 사람이 배효진을 욕하는 와중에도 오성 그룹은 묵묵히 그녀를 지지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루노 제약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고, 아스트라 제약은 아예 논의의 대상이었다.

아스트라 제약은 거대한 제약 회사로 여러 가지 약을 판매하는데, 이 품목 중에는 항우울제 치료제 영역도 있다.

이 치료제 시장은 앞으로 2015년까지는 한화로 14조 가까운 시장규모인데, 미국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약 10조 규모였다.

조민호도 이 아스트라 제약 매출 현황을 살피면서 머리를 굴렸다. 당장 항우울제나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익숙한 한 분야를 발견했는데, 바로 자폐증 치료제 시장이다.

자폐증 유병률은 계속해서 높아졌는데, 미국만 해도 300만 명에 매년 70조 가까운 돈을 쓰고 있고, 한국 역시 환자가 급증했다.

문제는 이 자폐증 치료제가 아직 없었고, 상대적으로 수많은 제약 회사가 이 시장 선점을 위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었다.

신경 전달 물질을 조절하는 치료제는 다양한 동물실험을 통해서 진행되지만 아직 여전히 그 개발 속도는 더뎠다.

‘시중신 혼원기는 자폐증 증상에만 초점을 맞춘 것 같고, 배효진 혼원기는 여기에 세로토닌 억제제 방식을 결합해서 치료했어.’

처음에는 아스트라 제약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두 가지 혼원기를 모델로 한 신약이라면 그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도파민-노르에피네린의 재흡수를 억제하는 메틸페니데이트부터 다시 연구 자료를 찾아보다가 결국 김지수 차장을 찾았다.

“메틸페니데이트는 도파민 재흡수되는 것을 막아서 도파민 농도를 유지하는데, 2개의 고리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암페타민과 비슷한 속성을 가졌습니다.”

이 두 가지 약은 ADHD 증상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치료제다.

장연주 대리는 그저 조민호 눈치만 보면서 자료를 김지수 차장에게 넘겼다.

김지수 차장은 조민호와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지 꾀꼬리처럼 입을 열었다.

“ADHD MRI 검사 결과를 잘 보면 뇌세포 조직 일부가 정상치보다 쪼그라드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일부 환자 MRI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습니다.”

“잘 아네요.”

“아, 요즘 신약 바스클린 2상 임상시험하고, 복제약 때문에 약에 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장연주 대리는 이미 묘한 두 사람 분위기를 파악한 터라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차장님은 약학 전공이 아니라서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다른 전문가 도움을 얻어서 한 달을 꼬박 새운 채 이 일에 매달렸고요.”

그 와중에 실력이 대폭 늘어났다. 애초에 기본기가 잘 닦여 있는 김지수 차장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고했습니다.”

“......네.”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는 김지수 차장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기만 했다.

장연주 대리는 옆에서 두 사람의 묘한 분위기에 사내에서 은밀하게 떠도는 소문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두 사람이 사귄다는 말이야?’

***

조민호 방문은 조용해서 미처 다른 경영진도 잘 몰랐다.

뒤늦게 조민호 방문을 안 오성 바이오 경영진이 다급하게 그를 찾았다.

조민호도 처음에는 번거롭게 생각했지만 새로운 신약 개발에 대해서 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국 회의실을 좀 더 큰 곳으로 옮겨서 이야기했다.

장연주 대리는 김지수 차장 오른팔로 자리매김한 덕분에 갑자기 소집된 회의에 참고 자료를 배포하면서 같이 참석했다.

그녀는 힐끗 회의실을 가득 채운 경영진 눈치를 보면서 가슴을 조아렸다.

대리 직급이 사장과 임원을 앞에 두고 있으니, 크게 긴장했다.

놀라운 것은 그들 대부분은 그저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적기만 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김지수가 김건중 회장 막내딸이라서 그랬나 싶었지만, 그들이 모두 조민호를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믿을 수가 없구나.’

이미 조민호 영향력을 지난 방문에서 확인했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도대체 누가 사장이고, 누가 사외이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따가운 시선을 무시한 조민호는 이런 특성이 결국 자신의 선천지기 치료와도 통한다는 것을 김지수 차장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서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자폐증과 언어 장애 두 가지에 대한 각각의 치료제 실마리를 찾아냈다.

굳이 혼원기와 같은 것이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형태를 정했다. 이 구조는 메틸페니데이트에서 고리 두 쌍을 단계별로 섞은 것과 비슷했다.

이런 이성질체는 화학적으로 제조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데?’

“아스트라 제약은 자폐증 영역에 이미 30억 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물론 단순히 자폐증 영역에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까지 살짝 포함합니다. 그런데......”

그녀도 다른 경영진도 다들 마른 침을 삼킨 채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김지수 차장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 아닙니까. 당연히 해외 경쟁 업체에 대해서 알아야죠.”

“아, 그러면 제가 더 자세히 말씀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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