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특히 금융정책국은 아침부터 이루어진 압수 수색에 패닉에 빠졌다.
그들도 유명환 과장이 권력 실세라는 것을 알았지만 정작 자세한 것을 몰랐다.
그런데 정작 동부지검에 탈탈 털리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결국 이 과정에서 배효진 폭로가 조금씩 진실이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났다.
대중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 사건을 부추긴 조민호조차 사건 덩치가 점점 커지더니, 대 규모 게이트로 비화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강기창 경감 게이트 수사도 증거가 있었지만, 외압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배효진 사건은 법원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다. 아니 영장 실질 심사를 담당하는 판사는 검사가 요청만 하면 그냥 압수 수색 영장을 마구잡이로 발부했다.
부패 경찰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폭력을 당한 이들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부패 경찰 때문에 더 분노했다.
요즘 취업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는 박진민 역시 이 버닝 사건을 자기 문제라고 인식했다.
“겁나서 이제는 나이트도 못 가겠다.”
김영탁 역시 혀를 내둘렀다.
“설마 부패 경찰이 죄 없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폭력 행사하고, 조서를 조작해서 범죄자로 만들다니. 너무 충격적이다.”
박진민이 이를 갈았다.
“난 그것보다 배효진을 노리기 위해서 라인 엔터에게 저런 식으로 무너트리려 한 게 더 분노스럽다. 인간의 탈을 쓰고 저럴 수가 있는 건가?”
“예쁘잖아.”
“하긴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기레기가 쓴 지난 기사 잘 보면 의도적으로 배효진씨를 더 엮어서 물의를 키운 것 같아.”
김영탁은 분노했다.
“내가 이 쓰레기 언론사에 항의 전화했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인 줄 모르겠다.”
조민호는 분노한 두 친구가 과도히 비난하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잘 해결되고 있잖아.”
“가만 너 혹시 뭐 아는 거라고 있어?”
“전혀 몰라.”
그는 단호하게 부인했지만 두 사람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워낙에 흥미 요소가 많아서인지 다른 이들 역시 수근 거렸다.
그리고 그들 중에 한 사람이 뉴스 속보로 나온 기사를 떠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이철명 서장이 과거 민정수석실에 파견 나간 적이 있다니? 이거 설마 민정수석실도 연루된 거야?”
그다음 후속 기사는 바로 유명환 과장에 대한 보도였다.
[이철명 서장은 현 금융정책국 유명환 과장과 같이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일했다!]
다시 조명이 된 것은 바로 유명환 과장 사진이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이전과는 분위기가 아주 달라졌다.
단순히 관할 경찰서장의 부패가 아니라, 민정 수석실이 이번 사건에 연루되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서서히 나왔다.
그리고 유명환 과장이 레드 스튜디오의 한 은행 지점장을 통해서 외압을 넣었다는 한 은행인 관계자의 진술도 나왔다.
매시간 단위로 쏟아지는 이 충격적인 기사는 끝이 나지 않았다.
조민호조차 혀를 내두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흐름이 좋군. 자, 유명환 과장씨, 빨리 친구들을 움직여야지. 이번에는 어디로 튀나 한 번 구경 좀 제대로 하자구.’
***
쾅 소리가 서장실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붉게 달아오른 이철명 경찰서장은 책상을 다 뒤집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사건은 마치 폭풍처럼 그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서장실에 들어와 있는 이들은 다들 이철명 서장 눈치만 봤다.
“도대체 이 기자 쓰레기는 왜 이러는 거야?!”
“담당 기자와 전화를 해봤는데, 고소하려면 고소하라고 합니다.”
“빌어먹을.”
그는 이를 갈면서도 당황했다. 급한 불을 껐지만, 이 언론사처럼 말을 듣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제 이 사건이 묻힐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한 사람이 허겁지겁 뛰어들어와서 검찰 소환장을 내밀었다.
이철명 경찰서장은 창백한 안색을 한 채 다시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그 누구도 자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가 믿은 것은 바로 권력이었는데, 이제 완전히 버려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빌어먹을.’
***
유명환 과장은 TV 생방송으로 검찰에 결국 소환된 이철명 경찰서장 모습을 보았다. 다행히 이철명 경찰서장과는 달라서 당황하지 않았다.
이철명 경찰서장이나 연이어서 소환되는 YS 엔터 실장이나 사장은 사냥개에 불과했다.
자신은 어떻게 보면 사냥개를 부리는 집사였다.
실제로 이 사태에 결국 참다못한 천재건 이사가 다급하게 자신의 집을 찾아왔다.
“앞으로 어쩔 겁니까?”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뒤처리만 잘 좀 해주십시오.”
“서, 설마 검찰에 가서 다 폭로하겠다는 말은 아니겠죠?”
“저 그 정도로 바보 아닙니다. 제가 털리면 그쪽도 무사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개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리고 당신은 경우가 좀 심했습니다. 도대체 업체를 상대로 지금까지 무슨 짓을 저지른 겁니까?!”
재정 경제부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유명환 과장 여죄가 드러났고, 심지어 이제까지 핍박받던 업체가 그동안 당한 갑질을 다들 폭로했다.
각 업체를 상대로 차량, 오피스텔을 비롯한 별의별 향응을 다 받아 챙겼다. 지금 밝혀진 규모가 해도 벌써 20억이 가볍게 넘어갔다.
천재건 이사는 당혹한 유명환 과장 표정에도 계속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그 여자 문제는 또 뭡니까? 지금까지 고소한 숫자만 해도 벌써 20건이 넘습니다!”
“잘 알면서 그럽니까?”
“가만 설마 그 별장의 여자가......”
“그거 어떻게 해서라도 무마하는 게 좋을 겁니다. 초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테니, YS 수사도 중간에 잘 막으세요.”
“맙소사.”
유명환 과장은 느긋하게 경호원을 데리고 떠나면서 천재건 이사에게 말했다.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지만, 혹시라도 절 노릴 생각은 마십시오. 안 그러면 검찰에 자진 출두해서 다 폭로해버릴 테니까. 차라리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서라도 막으세요.”
“......”
‘이 개새끼.’
***
최영민 사장은 조민호 지시 외에 오성 X파일 때문에라도 유명환 과장 사건은 남 일이 아니라서 최선을 다해서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명환 과장은 갑자기 사직하기가 무섭게 빠르게 집안일도 정리하지 않은 채 바로 도주 해 버렸다.
만약 지금까지 지켜보지 않았다면 놓쳐버렸을 정도로 빠른 일 처리다.
최영민 사장은 최근 신규로 채용한 인원을 모두 이 일에 투입해서 그를 추적했다.
이미 철저하게 준비를 한 덕분에 이 추적 작업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미처 예상 못 한 일이 생겨서 결국 유명환 과장을 놓쳐버렸고, 다급하게 조민호에게 연락했다.
조민호는 연락받기가 무섭게 안산 시립 요양 병원 건물 앞에 도착해서 이 건물을 힐끗 올려다보면서 최영민 사장 사과에 툴툴거렸다.
“괜찮습니다.”
애초에 유명환 과장 잡는 일보다는 박상철 과장과의 연결 고리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잘 모르는 최영민 사장은 지금까지 조민호의 놀라운 추리와 지시에 혀를 내두르는 최영민 사장은 계속해서 조민호 눈치를 봤다. 유명환 과장의 도주를 예상한 것을 정확하게 예측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까지 그 작은 실마리도 놓치지 않은 채 묵묵히 이 사건을 지켜본 조민호 인내에 혀를 내둘렀다.
특히 국정원 팀장 출신인 자신을 부하처럼 자연스럽게 부리는 그 모습에 경탄했다.
‘정말 대학생이 맞는 것일까?’
“설마 안산 경찰서 인원을 동원할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쪽도 연관이 있는 모양이군요.”
“안산 경찰서장도 이미 작년부터 계속 말이 많은 자입니다. 진급 연한이 지나서 승진이 힘든 자가 갑자기 서장이 되었습니다. 이 인사와 관련해서는 이미 뇌물까지 줬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조민호는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경찰 부패가 아니라 이 안산 시립 재활 병원입니다. 도망치기 전에 유명환 과장이 입원했다고 했죠?”
“네.”
“이상하군요.”
그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최영민 사장은 조민호 눈치를 보면서 뒤늦게 조민호가 왜 이곳에 직접 찾아왔는지 깨달았다. 처음에는 유명환 과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혹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생각을 해보세요. 유명환 과장은 곧 검찰에 소환장이 발부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시립 재활 병원에 숨는 게 말이 됩니까. 만약 이 일이 가능해지려면 최소한 재활 병원 실세와도 연결 고리가 있을 겁니다.”
“안산 경찰서 인원을 경비로 삼아서 이 병원을 안가로 이용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는 단지 유명환 과장의 도주 경로만 보고 했는데, 그것만으로 상황을 미리 짐작하는 조민호의 탁월한 안목에 진정으로 감탄했다.
물론 조민호가 이런 일까지 짐작하는 것은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라 이런 사냥을 무림에서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들어가 보죠.”
“네.”
“아, 혹시 병원 담당자에게 찍히거나 하지 않았겠죠?”
“물론입니다.”
***
재활 병원은 뇌출혈이나 척수 손상과 같은 중추신경계 손상 같은 질병 때문에 수술받은 환자의 재활을 돕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안산 시립 재활 병원 역시 고정적으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있다.
안산 지역 내에서는 최고의 설비를 갖추고 있는데, 중풍, 뇌경색, 파킨슨병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조민호는 이 병원 안에 들어가서 병원 안내 여직원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면서 재활 병원 분위기를 살폈다.
그도 처음에는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뇌사 환자라......’
조민호는 혼수상태로 한국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자기 담당 외과 신경의 김태환 선생을 떠올렸다.
‘설마 아니겠지?’
최영민 사장에게 김태환 선생에 대해서도 알아보라고 넌지시 지시를 하면서 천천히 재활 병원 이곳을 둘러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하자 밖으로 나와서 최영민 사장이 추가로 얻은 병원 정보를 확인했다.
“이 병원 건립 전에 받은 600억 대출에 유명환 과장이 관련되었다는 말입니까?”
“신일은행 600억 대출에 유명환 과장이 직접 손을 썼는데, 그 과정에 천재건 이사도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상준 병원장은 원래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당시 추가로 대출받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유명환 과장을 통해서 이 불법 대출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300억이 사라졌습니다.”
여기까지는 유명환 과장 이야기다.
조민호도 묵묵히 들어보니, 결국 불법 대출과 관련해서 유명환 과장이 이상준 병원장에게 손을 썼다는 것까지 이해했다.
그 과정에서 300억이라는 자금을 빼돌린 것도 정치 비자금이라고 수긍했다.
“300억이라......”
300억 규모의 정치 비자금이라면 그 돈을 받은 놈들이 평범할 리가 없다.
골치가 아픈지 관자놀을 지그시 눌렀다.
“파볼까요?”
“아뇨.”
“그러면 박상철 과장은 이 일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까?”
“관련 있습니다. 이 병원이 설립된 후에 후원금을 내놓은 곳이 몇 곳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인 루노 제약에 투자했습니다.”
“루노 제약?”
“2,000억 매출 규모의 중견 제약 회사인데, 한국에서 약을 양산해서 공급합니다.”
“병원에 약 공급을 위한 마케팅 목적으로 후원금을 냈다는 말입니까?”
최영민 사장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겉으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박상철 과장이 투자한 지분은 고작 10%에 불과하고, 이 루노 제약 지분 70%를 가지고 있는 회사는 따로 있습니다.”
조민호도 과거 조수현 회장에게서 박상철 과장이 작업한 투자 목차를 확인했지만 워낙에 기업 수가 많아서 간과했다.
한국의 어지간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다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어디죠?”
“아스트라라는 제약 회사로 미국 10대 제약 회사 중의 하나입니다.”
“으음.”
조민호는 순간 두통을 지끈 느끼면서 지난 일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이제 퍽치기 배후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런데 그 규모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는 더 컸다.
문득 박상철 과장이 자신에게 손을 썼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그럴 수도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설마 이 재활 병원이 그런 용도일까? 그러면 그 배후는 아스트라 제약 회사란 말인데, 왜 이렇게 일을 복잡하게 꾸민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