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최영준 차장 역시 같이 동행한 기자 두 사람이 완전히 넋을 잃은 모습을 보자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걸까?”
“글쎄요.”
김지수 변화를 떠올리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알겠나?”
“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과연 그럴까?”
최영준 차장 역시 조민호 옆에 있으면서 괴이한 현상을 많이 접했다. 비록 배효진 치료 장소를 동행하지 않았다.
다만 그라고 해서 배효진 병을 치료해서 저런 식으로 분위기가 바뀐다고 상상조차 못했다. 김지수 경우와는 또 달랐다.
이제까지 지압으로 치료한다고만 알았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사람이 저런 식으로 변화하는 걸까?’
조민호이라고 해서 배효진의 자세한 개인 질병 치료에 대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원래 의료법에 보면 개인 건강에 대한 것을 말할 수 없지요.”
“실망이지만 그게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저 현상에 대한 힌트라도 주면 안 될까?”
“치료 후에 저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은 차장님도 이미 보셨지 않습니까. 저건 배효진 스스로가 각고의 노력 결과일 뿐입니다!”
다소 실망한 최영민 차장은 딱히 조민호를 탓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배효진을 다시 쳐다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최근 연기력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었다지만 그래도 배효진이라는 틀은 바꾸지 않았어. 지금은 배효진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아. 저 현상을 과연 치료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조민호 역시 이미 짐작했지만, 그 자신의 예상을 살짝 벗어난 배효진 모습에 힐끗 배효진 실효 선천지기 흐름을 살폈다.
‘대략 78인가? 저 정도면 국내 최정상 배우 수준을 넘어섰어. 으음, 치료 전에 41이었고, 치료 후에는 많이 올라갔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놀랍구나.’
백용훈 대법원장은 유전 장애와 탐욕 때문에 상태가 심각한 반면에 배효진은 언어 장애로 인해서 고통을 받았다.
백용훈과는 달리 오염도가 살짝 걷힌 배효진은 그 효과가 완전히 달랐다.
‘흐음, 역시 껍질을 벗어던졌어. 언어 장애를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지혜의 문이 열린 건가? 이거 느낌이 안 좋은데......’
***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한 채 벌떼처럼 달라붙는 기자들을 향해서 배효진은 입을 천천히 열렸다.
[이렇게 기자 회견장에 참석해준 분께 감사 인사부터 드립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최근 일어난 일을 우선 설명하겠습니다. 갑자기 어떤 한 분이 저희 사장님 통해서 저에게 스폰서 제안을 해왔습니다.]
폭로의 시작이었다.
단아한 음성은 딱히 강하지도 않았지만 기자 회견장에 참석한 기자 귀에 속속 들어갔다.
배효진 시선은 강하게 빛을 발하면서 기자 주의를 완전히 끌어들여서 포용하면서도 기세를 더욱 더 끌어올렸다.
공영 방송 기자는 카메라를 돌리면서도 감탄을 계속 터트렸다.
화면 앵글을 가득 채우는 배효진 모습은 어지간한 앵커를 씹어 먹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런데도 딱히 이질감을 주지 않았다.
기자들이 이 때문에 숨조차 죽인 채 배효진 이야기에 경청했다.
라인 엔터에 대한 대출 압박과 관련된 이야기와 관련된 증거까지 내놓았다.
그 다음은 버닝 클럽에 가지 않았다는 알라바이 증거로 당시 오성 그룹과 계약 문제 때문에 미팅한 시기와 장소를 공개했다.
버닝 클럽 마약과 관련해서는 병원 검사 결과를 라인 엔터 매니저를 통해서 기자에게 돌렸다.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돌고 있는 배효진 사진이 어떤 식으로 위조되었는지도, 그 다음에는 대형 화면을 통해서 확대된 이미지와 자신이 직접 그 옆에 서서 차이를 보여주었다.
[정말 이 사람이 저랑 동일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빙글 몸을 돌리는 배효진의 완벽한 몸매와 몽환적인 이미지가 결합되어서 이백 명의 기자를 상대로 쇼케이스를 연출했다.
[아, 아니구나.]
기자들은 모두 부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사람은 비슷한 것 같지만 눈빛과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도저히 같다고 볼 수가 없었다.
마치 태양과 반딧불처럼 그 차이가 현격하게 벌어졌다.
특히 포즈를 취하는 배효진의 모습은 환상 그 자체로 딱 보는 순간만으로 사람 시선을 완전하게 휘어잡고 있었다.
배효진은 자기 연기력을 사용해서 당당하게 찌라시가 허위라는 것을 폭로하면서 오히려 이 사태를 정면승부해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이백 여명의 기자는 그 비교를 통해서 배효진의 연기력이 이미 이전과는 격이 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조민호조차 달라진 배효진 모습 하나하나에서 이전 오디션의 자기 모습을 떠올리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오디션에서 보여준 내 흉내를 내 건가?’
[이제 어느 정도 설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질문하실......]
최영준 차장이 슬쩍 손을 들어서 질문했다.
[혹시 그 스폰서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까?]
배효진은 다시 한 번 여신 미소를 보이면서 기자를 쭉 돌아보았다. 이제는 아예 침까지 흘리는 기자마저 있었다.
[재정경재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 유명환 과장입니다!]
[?!!]
최영준 차장도 설마 이 공개된 자리에서 폭로할지 몰라서 혀를 내둘렀지만 이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이들은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전화로 유명환 과장 신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만약 배효진 말이 진실이라면 공무원이 연예인을 상대로 압력을 넣어서 성접대를 요구했고, 심지어 권력을 이용해서 외압을 행사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그 피해자인 배효진이 아예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폭로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트, 특종이다!’
그 다음은 질문의 폭풍우가 이어졌다.
배효진은 여유로운 미소를 한 채 그들 질문을 하나씩 다 받아주었다.
“......”
조민호조차 살짝 당황했는데, 저건 자신의 계획과는 좀 달랐다. 의혹을 띄우고, 나머지는 기자들이 알아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 추측했다.
유명환 과장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들을 보면서 최영민 사장에게 전화해서 유명환 과장 주변을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배효진과 시선을 마주하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배효진 입가에는 어느 사이에 행복한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그 모습은 마치 여신이 신도를 향해서 미소를 짓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모습에 기자들은 완전히 세뇌를 당한 신도처럼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재미있게 돌아가네.’
***
유명환 과장 폭로 이후에 오히려 더 활활 끓어오르는 배효진 기자 회견장을 조민호는 슬쩍 최영준 차장과 같이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배효진 폭로 때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나온 것은 역시 최영민 사장이 조사한 자료였다.
최영준 차장은 이미 최영민 사장 통해서 몇 가지 정보를 들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추가 자료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거 같이 터트리면 한 동안 시끄럽겠어.”
“배효진 폭로 때문에 잘 된 셈이죠. 이제 이 기사를 내보내도 될 테니까요. 아니 지금 이 시점이 딱 좋은 타이밍이죠. 안 그러면 유명환 과장이 또 물타기를 할 테니까요.”
“그렇지. 나만 믿게. 이미 유명환 과장 이름이 나왔으니, 그 다음은 무리가 없어.”
“그러죠.”
***
배효진의 청초한 이미지와 이와 비교되는 발열기는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억센 배역은 배효진과 잘 맞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의견이었다.
그런데 기자 회견장에서 나타난 배효진 모습은 과거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능수능란한 정상급 배우처럼 시선 조화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많은 대중은 이 배효진 폭로 뉴스를 접하면서 추문보다는 정작 배효진 그녀에게 더 깊은 충격을 받았고, 왜 오성 그룹이 배효진 의혹에도 계약을 밀어붙였는지 새삼 깨달았다.
놀라운 면모를 보여주는 배효진이나 그런 모습을 알아본 오성 그룹의 안목에 진심으로 탄복했다.
“진짜 대단하다.”
이 열기가 유명환 과장에 관한 기사를 활활 불태웠다.
배효진 폭로 때문에 이전처럼 이 기사를 덮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니 유명환 과장이 손을 쓰기도 전에 곧 이어서 최영준 차장은 중아일보 일면에 서초구 경찰서장의 직권남용과 불법적인 외압에 대한 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서초구 관할 단란주점 뒤를 봐주면서 돈을 챙긴 사건을 아예 노골적으로 기사화시켰다.
이철명 경찰서장은 큰 충격을 받고 유명환 과장과 상의할 틈도 없이 다른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서 중아일보를 맹비난했다.
[허위 사실에 대해서 법적책임을 묻겠다!]
최영준 차장이 딱 기다린 반응이었다. 이 인터뷰가 나가기가 무섭게 이철명 경찰서장의 버닝 사진과 함께 클럽 유착에 대한 후속 보도가 나갔다.
아직은 배효진 폭로 때문에 언론도 유명환 과장을 간혹 익명의 한 사람으로만 언급했는데, 이 보도를 기준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유명환 과장과 이철명 경찰서장 유착에 대한 의혹이 구름처럼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같이 한 YS 엔터 역시 주목을 받았다.
이 기사 때문에 YS 여자 연예인, 경찰서장, 유명환 과장, 심지어 클럽 스텝 의혹이 단순히 허위가 아니라 점이 증명되었다.
심지어 조용히 묻혀 있던 버닝 클럽에서 있었던 과거의 사건 역시 재조명받았다.
버닝 클럽에 즐기러 온 한 남자가 버닝 클럽 직원에게 폭행당해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오히려 서초구 경찰에 연행되는 와중에 다시 경찰에게 구타를 당해서 전치 8주의 부상을 당했다.
심지어 여자는 버닝 클럽 안에서 집단 성폭행했다는 다수의 폭로가 이어졌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져서 버닝 클럽 사태가 시즌2로 돌입했다.
“최 차장님, 설마 이런 사태까지 예상하신 겁니까?”
당황스럽기는 최영준 차장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이 폭력 사태는 나도 몰랐어.”
“저도 부패한 공권력에 대해서 예상을 했지만 이번 사건은 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이철명 경찰서장은 이미 경찰청 내에서도 너무 무능해서 서장으로 진급하기 어려웠다고 해. 그런데 갑자기 서장으로 승진했어. 이것 역시 유명환 과장이 손을 썼다고 봐야 해.”
“혹시 강기창 경감인가 그자가 중간에 브로커 역할을 한 겁니까?”
“그 과정에서 뇌물이 오고 갔다는 소리도 있어. 청와대에서 경찰 고위직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니까.”
“하.”
순간 자신이 퍽치기 사태를 방치한 후에 일이 잘못되면 부패 경찰이 조민호 자신을 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떠올리면서 안색을 굳히고 말았다.
한 두 명이 아니라 그 많은 경찰 인력이 조민호를 노리면 아무리 그라도 그들 모두를 다 죽여 버릴 수 없기에 쉽게 대응하기 힘들었다.
‘무림과는 달리 현대에서 설사 학살극을 벌여도 문제겠어. 왠지 박상철 과장 배후를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이라니.’
“후유, 좋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더 망설일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계속 밀어붙이시죠.”
“알았네.”
최영준 차장 역시 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제는 차라리 끝장을 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아마 추후 언론에 대대적인 보복을 할 테니, 이 기회에 끝장을 보는 것이 좋을 거야.’
***
최영준 차장이 계속 적당한 수준에서 뉴스를 조금씩 터트렸다.
그 기사가 씨앗이 되면서 처음에는 중아일보가 총대를 멨지만 이제는 모든 한국 언론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해서 버닝 사건을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연이어서 이철명 경찰서장 밑에 있는 다른 경찰이 뇌물을 받거나, 성추행을 한 사건이 뒤늦게 줄줄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 제보를 받은 언론사가 결국 쉬쉬하던 마약 관련 제보도 터트렸다.
경찰서장, 여배우, 유명환 과장, 클럽 담당자, 거기에 마약까지 터진 것이다.
이 불똥은 여배우 기획사인 YS 엔터로 불이 붙어 버렸다.
YS 엔터까지 엮이면서 상황은 수습할 수준을 간단하게 넘어갔다. 기존에 YS 엔터와 관련해서 쉬쉬하던 이야기가 점점 수면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철명 경찰서장은 안감 힘을 다해서 막아보려고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폭로가 이어지면서 버닝 사건이 점점 규모가 커지자 이 사건 관할인 동부지검 종영돈 차장 검사가 직접 밑에 지시를 내려서 이 사건을 맡았다.
동부지검 검찰 수사관이 서초구 경찰서를 압수 수색했다.
검찰이 관할 경찰서를 압수 수색한 경우는 전례가 없어서 TV에서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고하면서 시끄러웠다.
그 다음은 버닝 클럽을 비롯해서, YS 엔터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되었고, 물론 유명환 과장의 재정 경재부 금융정책국 역시 그 대상이었다.
세 곳에 대한 압수 수색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고, 압수 수색 규모도 컸다.
양주민 검찰총장의 지시에 따라서 종영돈 차장 검사가 김정환 부장 검사와 서로 소통하면서 같이 치밀하게 공조했다.
백용훈 대법원장이 수면 밑에서 외부 정치 압력 따위는 삭 무시한 채 검찰 수사를 더 빠르게 진행하도록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