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11화 (111/176)

#111

***

강기창 경감은 결국 구속되어서 감옥으로 가서 재판이 곧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장민석 부장검사는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으로 재판을 준비하면서 보석 석방이 된다는 이야기마저 나돌았다.

이 반면에 김재건 부장판사의 검찰 소환 사태는 워낙에 특이한 케이스라서 며칠이 지나도 언론사에서 내버려두지 않았다.

후속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또 내보냈다.

여기에 김정환 부장검사가 김재건 부장판사가 무영 그룹에 관여한 정황을 마치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계속 파고 들어갔다.

사건은 점점 커졌다.

먼저 무영 그룹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과 관련된 의혹을 부풀려서 재벌과 법원이 서로 유착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렸다.

몇 달 전에 있었던 무영 그룹 압수 수색 영장 기각을 뒤늦게 안 많은 시민은 이미 잊어버린 이 사건에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이 개새끼들.”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아니 판사 새끼가 무영 그룹 돈 받고 압수 수색 영장을 기각시켰다는 소리잖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

시민이 그나마 믿는 법원에 대한 신뢰는 저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대중은 자고 일어나면 김재건 부장판사와 무영 그룹 사이에 일어난 일이 끝없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현 정부에 크게 실망했다.

그 덕분에 안 그래도 휘청하는 현 정부 지지율 역시 큰 타격을 받았다.

다만 이 과정에서 뒤늦게 사법행정권을 남용 의혹 사건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재판부가 정해졌다.

이전 대법원장에서 진행된 이 사건은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형사 32부, 28부, 27부, 21부 각각에 배당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특히 사건마다 연관성이 있는 사건은 무작위로 전산 배당되어서 진행되었다.

“와아, 진짜 대단하다. 백용훈 대법원장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이런 대법원장도 있구나.”

“아직 대한민국은 죽지 않았어!”

뒤늦게 법원에 대한 압수 수색 사건이 조명을 받았고, 그 일을 지시 내린 백용훈 대법원장은 정권 지지율 폭락에 반대로 오히려 대중의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철명 경찰서장은 갑자기 횡령과 성접대 협의로 라인 엔터와 레드 스튜디오를 압수 수색했다. 수십 명의 경찰이 두 회사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이 수사는 단순히 두 회사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성접대가 일어났다는 버닝 클럽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버닝 클럽을 드나든 연예인이 마약을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마약을 한 연예인이 누군가에 대한 의문이 터졌다.

이 연예인 중에는 몇 사람은 찌라시를 통해서 퍼져 나갔다.

각 연예인은 인터뷰를 통해서 당시 알리바이를 내놓으면서 화살을 피해 갔다.

그런데 배효진만큼은 버닝 클럽 CCTV에 나오면서 사건이 커져갔다.

안 그래도 요즘 아름다워졌다는 소문을 넘어서서 일약 신데렐라로 주목을 받는 배효진은 더 따가운 대중의 시선을 받았다.

오성 그룹 측과 광고 계약 이야기도 이 의혹과 엮여버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에서 2002년에 오성이 불법 정치 자금 목적으로 조성한 800억 중에서 당시 사용처가 나오지 않은 500억 행방이 배효진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터졌다.

오성 황태자의 첩 배효진이 이 정치 비자금 계좌와 관련이 있다는 찌라시다.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조민호를 감시 수준으로 지켜보던 김건중 회장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학준 비서실장 역시 당황했다.

“지금 조사 중입니다.”

“설마 최영민 그 새끼가 또 뒤통수를 친 건가?”

“최영민 사장은 지금 자기 회사도 설립해서 잘 지내는 중입니다. 이번 일과는 절대로 무관합니다.”

“오성 X파일도 아닌데, 다른 곳에서 이 사실이 흘러나왔다면 그게 더하잖아? 가만 설마 또 다른 놈이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최영민 사장도 누군가에게 제보를 받아서 그 정보를 모아왔습니다. 아마 그쪽이 아닐까에 대해 의심하고 있습니다.”

“으음.”

김건중 회장 안색은 바위처럼 변했다. 이번 오성 X파일 사건은 따로 계속해서 추적했다. 비록 최영민 사장이 과거 폭로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서 퇴직 국정원 요원을 스카우한 것도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해서였지만 이 오성 X파일만큼은 더 이상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운이 좋은 셈인가?”

“비서실 인원은 총동원해서 이번 사건을 반드시 파해 치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보통 놈들이 아냐. 여기에 뭔가 더 있어. 아무리 봐도 우리를 노리는 놈들이 있어. 이번 일은 실수 없도록 해. 이런 일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김건중 회장 눈빛은 섬뜩하게 번쩍였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잡으면 파멸시켜 주마.’

***

누구나 다 오성 그룹 비서실이 움직이면서 배효진 광고 계약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오성 그룹은 오히려 이 광고 계약을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대중은 이 의외의 사건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맹비난했다.

하지만 오성 그룹은 이미 아직 확실치 않은 의혹 때문에 계약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결국 정황 자체가 잘 맞아 들어가면서 배효진 추문은 더 규모를 키워갔다.

오성 그룹에서 굳이 톱스타를 다 배제하고, 굳이 경험도 없는 초짜인 배효진과 한 계약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연예 관련 전문가는 각종 언론 매체에 나와서 이 의혹을 더 부풀렸다.

언론은 교묘하게 버닝 클럽 마약 문제도, 라인 엔터도 아니고, 오직 배효진에게만 집중되었다.

조민호는 이미 최영민 사장 통해서 유명환 과장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지만 필요한 모든 이들을 동원해서 배효진을 성접대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간단한 수법이지만 선동 방식 자체가 무섭네. 그런데 김건중 회장은 왜 저 난리일까? 상황은 내가 원한 대로이기는 하지만......’

강종훈 대표가 마침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우는 소리로 애걸복걸하는데, 심지어 이번 일이 잘못되면 피아노 협주곡에 투자한 금액이 다 날아간다고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네? 설마 50억을 다 날려도 괜찮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죠. 다시 말하지만 제가 배효진 스캔들이나 라인 엔터 경영 문제에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정도 문제도 스스로 해결 못 하면 당장 때려치우라고 하세요.”

“어떻게 그런 말을......”

조민호 입장에서 어설프게 도와주면 오히려 늪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을 잘 알았다.

“냉혹한 말 같지만, 연예계가 얼마나 지독한지는 강종훈 대표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정도 고난은 배효진씨가 스스로 잘 극복할 겁니다.”

“지금 효진이 상태가 어떤지 알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알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효진씨 스스로 자각할 겁니다.”

그는 냉정하게 전화를 끊으면서 백용훈 대법원장의 치료 과정을 떠올렸다. 중간에 배효진을 돕기 위해서 손을 쓸 수도 있었지만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내버려뒀다.

‘배효진이라면 백용훈 대법원장처럼 이번 고난을 통해서 아직 남아 있는 장애를 스스로 극복해서 다시 태어날 거야.’

***

버닝 클럽, 성접대 스캔들은 단순히 그냥 찌라시가 아니라 명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퍼져 나갔기에 간단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경찰도 나날이 악화하여가는 여론 때문에 이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면서 30명의 경찰관을 더 투입했다.

배효진이 받은 충격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자고 일어나니 수천 명의 악플러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보통 성인이라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상황에서 버티기 쉽지 않았다.

결국 모든 활동을 접은 채 자택에 칩거했고, 자폐증에 걸린 동생 배진주와 같이 지냈다.

“진주야, 언니 너무 힘들다.”

“어어엉?”

배진주는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버벅거렸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눈물만 흘렸다.

이제 겨우 언어 장애라는 병을 치료해서 자기 꿈을 이루고, 동생도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오성 그룹 측에서 제안한 광고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간단히 되는 일이다.

아니 아직 포기하지 않은 그들과 차마 양심상 계약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터진 이 사건 때문에 모든 일이 다 날아가 버렸다.

더 황당한 것은 강종훈 대표 통해서 조민호조차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녀 가슴은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배진주 모습을 보자 도저히 이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은 조민호에 대한 기억이다.

그 당당하던 모습.

어떤 상황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는 모습.

특히 오디션 때 보여주었던 그 강렬한 모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그래, 민호씨가 나 혼자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어!’

배효진은 깊이 숨을 내쉬면서 이 처지를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또 확신했다. 필사의 다짐을 한 채 정신을 집중했다.

변화가 생긴 것은 그 때였다.

감각과 언어 영역을 연결하는 측두엽 내측의 해마 영역은 명사나 형용사 기억과 관련이 있는데, 오랫동안 언어 장애 때문에 이 부분은 조민호의 선천지기로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유전 질환으로 인한 오염도가 무려 70%로 높아서 한 번에 치료가 되지 않았다. 남아 있던 조민호의 혼원기 일부가 족양명위경의 대영, 합기, 하관, 두유를 통해서 서서히 흐르기 시작했다.

언어 장애 때문에 쇠약한 측두엽이나, 두정엽, 후두엽에도 영향을 줬다.

강력한 의지는 잔잔하게 흐르는 기맥을 더욱 더 강하게 압박했고, 혼원기는 씨앗이 되어서 점점 그 덩치를 키워나갔다.

자연스럽게 배효진의 막혀 있던 경맥 몇 곳이 뻥뻥 뚫렸다. 조민호 혼원기조차 그 양이 너무 적어서 하지 못한 결과였다.

배효진 눈빛은 점점 더 강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에는 안정을 이루면서 은은하게 광채를 번쩍였다.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면서 왜 자신이 당황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자기 상태에 대해서 영문을 몰랐지만, 그녀의 이성은 천 년 바위처럼 단단해져 갔다.

최근 갑자기 시작된 라인 엔터에 대한 여러 가지 압박은 모두 유명환 한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자 곧 강종훈 대표에게 전화 걸었다.

“기자 회견 준비해주세요.”

***

조민호도 사태가 점점 더 심각해져도 배효진이 변화가 없자 그녀를 도와줘야 하나 고민할 무렵에 최영준 차장에게서 배효진의 기자 회견에 대한 연락을 받았다.

약속 장소인 라인 엔터 근처에 있는 한 회의실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근 이백 명이 넘는 기자가 몰려와서 정신없이 움직였다.

공영 방송 역시 최근 배효진의 충격적인 스캔들 때문에 흥분했다.

그들은 안 그래도 배효진과 인터뷰를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는데, 아예 직접 배효진이 나서서 인터뷰를 자청했다.

최영준 차장이 두 사람과 같이 조민호를 발견하자 달려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대충 확인만 해봤는데, 배효진씨가 스스로 나서서 기자 회견을 요청했다고 하는 것 외에는 자세한 것은 잘 몰라.”

하지만 이미 대중의 마녀사냥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움직이는지 잘 아는 조민호는 피식 웃었다.

“호오, 그래요?”

“그것 때문에 다들 난리잖아. 단순한 변명으로는 이 사태를 덮을 수는 없어. 도대체 배효진이 무슨 소리를 할지 알 수가 없으니까.”

다행히 더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배효진은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몇 사람과 같이 기자 회견장 단상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별것 없는 간단한 워킹이었지만 한창 시끄러운 기자 회견장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단상에 올라가서 배효진이 자리에 앉자 기자들은 다들 마른 침을 삼켰다.

“주, 죽이잖아?”

외모는 최근 사태 때문에 약간 안색이 나빠져 있는 것 외에는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한 가지 크게 변한 것이 있었다.

바로 눈빛이었다.

타인의 마음조차 뚫어볼 정도로 은은한 눈빛은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달랐다.

그 시선이 지나간 곳에 있는 기자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킨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오히려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마치 후광이 서려 있는 듯 한 배효진 모습은 불과 며칠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사적으로 그 모습을 촬영한 기자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그녀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사진빨 장난 아냐!”

“배효진이 이 정도였어?”

“저, 정말 배효진 맞아?”

이곳 기자 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 스캔들 때문이었는데, 감히 배효진 기세에 눌려서 함부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배효진이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에 매료된 이들은 그 황홀한 모습에 다들 여신을 접한 사람처럼 입을 살짝 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