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10화 (110/176)

#110

최태한 사장은 눈치가 빨랐고, 김지수 역시 고개를 돌려서 피식 웃고 말았다. 두 사람은 조민호가 갑자기 나타나서 영문을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였다.

하지만 조민호는 진지했다.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 친구 입에서 다시 미국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제가 신약 바스클린 3상 임상시험 부작용 해결책을 줄 겁니다.”

“네?!”

최태한 사장은 경악했다.

당황한 김지수와는 달리 이미 지난 사태 때문에 ‘앗 뜨거워’라고 데여 본 최태한 사장은 진지한 어조로 질문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자, 잠깐만 그러면 3상 임상 시험에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말입니까?”

“이대로라면 그렇죠. 하지만 몇 가지 수정만 한다면 그 문제는 없을 겁니다.”

“어, 어떻게......”

의문이 끝도 없이 나왔지만 이미 1상 임상 시험에서 부작용 문제 해결책을 조민호에게서 받았기에 차마 더 묻지 못했다.

대신 말을 돌렸다.

“확실히만 처리하면 그만한 보상을 준다는 말씀이시군요.”

“알다시피 저로서도 가족이라서 손대기 껄끄럽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 손을 빌려야 하는데, 불협화음이 나오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어차피 신입 임원 기본 교육을 받아야 할 테니, 그쪽에서 먼저 확실히 굴리겠습니다. 그리고 오성 바이오 내에서도......”

“충분합니다. 전 결과만 받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해보죠.”

“하면 다른 일은......”

“없어요.”

“......네.”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 용건이 고작 이것 때문이라는 말에 오성 바이오 경영진은 황당한 시선으로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민망한 조민호도 어깨를 으쓱하면서 툴툴거렸다.

“바스클린 3상 임상 시험 부작용 문제가 중요했지요?”

“아, 네.”

***

장연주는 아직도 조민호가 사외이사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서 주차장에서 기다리다가 조민호가 나타나자 쪼르르 달려갔다.

“미, 민호?”

“어, 연주 선배? 오랜만이네요.”

“맙소사 정말 너였구나.”

“별일 아닙니다. 아,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샐쭉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어.”

“앞으로 계속 얼굴 볼 텐데, 그렇게 나올 겁니까?”

“아, 그렇지......요.”

뒤늦게 조민호가 사외이사, 그것도 꽤 파워풀하다는 것을 깨닫자 눈치를 봤다. 이제는 선후배가 아니라 직장 상사다.

하지만 조민호는 피식 웃어버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 경영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애초에 신약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요. 어쩌다 보니, 이 자리에 있게 된 건데, 그냥 그렇게 아세요.”

“응, 아니, 네.”

장연주는 화려한 스포츠카에 올라타는 조민호를 힐끗 쳐다보았다. 자신은 대리, 상대는 회사 영향력이 엄청난 사외이사다. 괜히 건드렸다고 회사에서 잘리면 오히려 손해였다.

조민호는 그런 장연주 내심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흔들어주었다.

‘세상이 참 좁네. 김건중 회장이 의도적으로 손을 쓴 것일까?’

***

조민호가 한 이야기는 오성 바이오 내부를 한 번 돌고 나서 이학준 비서실장을 통해서 김건중 회장에게도 전해졌다.

당연히 반대할 이유는 없어서 이 안건은 가볍게 통과되었다.

김건중 회장은 3상 임상 시험 부작용 이야기에 오히려 더 충격을 받아서 조민호 지시에 철저히 따르라는 추가 지시만 내렸다.

조정연의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 선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정연은 이사가 되고 난 다음에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시작부터 오성 신임 임원 교육이라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사가 무슨 교육을 받냐구 불평했지만 최태한 사장은 단호했다.

“신입 임원이라면 무조건 회사 교육을 이수해야 해. 설마 오성 바이오가 오성 그룹 계열사라는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네.”

최태한 사장은 아버지 조수현 회장 백을 믿고 나댈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최태한 사장도 일을 순조롭게 해결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다른 경영진도 오성 그룹에 있을 때 교육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조정연 본인만 이 대상에 들어갔다.

오성 신임 임원은 원래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서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문가를 초빙해서 하는 임원 교육이 아니라 유격 훈련을 비롯한 해병대 위탁 훈련이었다.

“이, 이게 뭡니까?”

“올해부터 신임 임원 교육이 변경되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조정연은 당연히 항의했지만 그때는 이미 주변에 조교만 있었고, 담당 조교는 그의 불만을 아예 들어주지 않았다.

위에서 특별 지시가 내려왔는데, FM대로 훈련을 굴리라고 했다. 군홧발로 폭력을 행사했고, 갖은 구타를 일삼았다.

조정연은 첫날부터 비 오늘날 젖은 개처럼 맞았고, 결국 시키는 대로 따랐다.

처음에는 아버지 조수현을 욕도 하고, 조민호를 씹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런 의욕은 사라졌다. 오로지 시키는 대로 굴러야 했다.

***

조민호도 뒤늦게 해병대 위탁 교육, 그것도 진짜 해병대 속에서 조정연이 제대로 훈련을 받고 있다는 말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약간 무리가 따르기는 했지만, 조수현 회장을 비롯한 조정연에게 불만이 있는 이들은 다 암묵적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슬쩍 불만 한 가지를 토로했다.

“훈련 중에 사고 나서 팔다리 하나 정도 부러지면 좋겠네요. 아, 폭력을 행사하란 말은 아닙니다. 왜 훈련 중에 종종 사고 나지 않습니까? 뭐 그런 일이죠.”

통보가 간 지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조정연 다리와, 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났다.

임서이조차 이 사실을 조수현이 중간에 정보를 차단해서 알지 못했고, 군국 병원에 입원해서 미저리 영화를 찍은 조정연을 누구도 구하지 못했다.

그 용의주도함에 내심 감탄했다.

‘역시 이렇게 시키는 대로 잘 하는 것을 보면, 3상 임상 시험 부작용이 충격이었나 보구나. 이런 쪽으로는 김건중 회장 능력이 제법이야.’

여유가 생기자 다시 유명환 과장 움직임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이제 쓸쓸 반응 보일 때가 되었는데......, 옳지 반응이 왔구나.’

***

조민호는 애초에 대법원장 이용해서 또 다른 큰일을 벌일 생각 자체가 없었다. 심지어 대법원장이 현 정권과 치고받고 싸우는 일에도 관심 없었다.

그들 일은 그들 일이고, 자기 일은 자기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피의자 신분으로 계속 검찰 소환당하고 있는 김재건 부장 판사는 대법원의 변화에 가장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고, 천재건 이사에게 직접 하소연했다.

천재건 이사는 김재건 부장 판사를 중앙지법 영장 실질 판사 자리로 가도록 영향력을 발휘했고, 다양한 사법 공작을 벌였다.

만약 김재건 부장 판사가 이 사실을 외부에 폭로하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천재건 이사는 결국 정부 채널인 유명환 과장은 따로 만나서 다급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머리를 싸맸다.

그들은 이번 사태로 폭락한 지지율 때문에 번민했다.

“빨리 불을 안 끄면 어디까지 이 문제가 커질지 모릅니다.”

“압니다.”

“심각성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 동생 성폭행 사건 구속 영장 기각된 것을 벌써 잊은 겁니까?”

“천 이사 당신이 아는 모 캐피털 제재가 흐지부지된 것을 잊었나 보군요.”

“아니 그 이야기를 왜......”

“당신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쪽의 다른 분도 이 일을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내 말은 우리끼리 굳이 싸울 이유가 없잖습니까. 자꾸 저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그냥 참지 않을 겁니까.”

두 사람의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했다.

천재건 이사와 유명환 과장 라인은 다르기 때문이다. 둘은 서로 같은 목적을 위해서 힘을 합쳤지만, 노선 자체가 달랐다.

정권 초에는 별문제가 없었는데, 현 정권이 힘이 빠지면서 그 갈등이 점점 더 심해졌다.

“얼마나 상황이 안 좋은지 압니다. 가장 큰 문제는 강기창 경감입니다. 혹시라도 그 양반이 만약 입을 열면 이 일은 여기서 안 끝납니다!”

“아, 강기창 경감......”

“혹시 그쪽에서 의도적으로 강기창 경감을 이용해서 공격할 생각은 아니겠죠? 그자가 입을 열면 당신도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격노한 상대 반응에 유명환 과장은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강기창 경감 문제를 아직 내버려둔 겁니까. 일단 보석이든 뭐든 당장 감옥에서 빼내야 할 것 아닙니까?”

“검찰 새끼들이 제멋대로 하는데, 어떻게 해결합니까? 검찰총장 그 새끼가 미친놈처럼 설치는 것 보면서 그런 소리를 합니까?”

“하긴 그나마 인사권을 이용해서 힘을 빼서 지금은 얌전한 것이니.”

“우리 쪽 장민석 부장 검사가 강기창 경감 수사를 담당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다만 양 총장 때문에 서두를 수 없는 겁니다.”

“흠.”

법무부 장관을 이용해서 검찰 인사를 마음대로 한 덕분에 일단 상황이 주춤했지만, 여론 때문에 마음대로 검찰 인사를 남발하지 못했다.

실제로 벌써 자신들이 박아놓은 이들조차 요즘 정권 지지율이 폭락하자 서서히 눈치를 봤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이전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주민 검찰총장은 바로 이때가 오기만을 기다린 채 계속 언론을 통해서 찔끔찔끔 수사 내용을 흘렸다.

대중의 분노는 그만큼 더해졌고, 정권 지지율 역시 계속 추락했다.

이것은 조민호조차 뒤늦게 파악하고 나서 감탄한 부분으로 그 자신은 이렇게 일 처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섣불리 일을 재촉했다면 역 공작을 당해서 김정환 부장 검사 라인만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양주민 이 개새끼 때문에 돌아버리겠네.’

“후유.”

둘 다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가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상대 책임으로 돌리지만, 이 일이 무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정치 공작의 목적으로 얼마든지 손을 썼을 수도 있기에 서로 의심만 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된 것인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하긴 최근 와서 일이 계속 터져 나왔으니까요.”

두 사람은 이 사태의 배후가 조민호라는 것을 상상조차 못했다.

유명환 과장은 검찰에서 이것저것 계속 파고들어 오는 상황을 떠올리자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요즘 들어서 유독 튀는 배효진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녀 유명세가 더해지면서 오성 그룹과 광고 계약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이 나쁜 년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차라리 아예 망가트려 버릴까? 인생 밑바닥까지 추락해도 과연 그렇게 비싸게 나올까? 가만 그것도 괜찮겠어.’

“이번에도 과거에 많이 써먹던 방식을 사용하면 어떨까요?”

“어지간한 물타기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배효진 스캔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요?”

요즘 가장 핫한 신인이라서 모를 수가 없었는데, 이미 그녀에게 관심 둔 사람도 많았다.

“......배효진이라, 흠, 그 정도면 나쁘지 않네요. 하지만 위에서 배효진 노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일을 찬성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더 진행해야죠. 아주 인생 지하 10층까지 추락하면, 지금처럼 도도하기는커녕 기라면 기지 않겠습니까?”

엽기적인 여자에 대한 탐욕에 천재건 이사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일단 새 시대 전략 연구소에 전화를 걸어서 이 정치 공작에 관해서 확인했다. 다행히 상품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허락을 받았다.

“좋습니다. 계획은 뭡니까?”

“배효진 닮은 기획사 연습생 하나를 적당히 분장시켜서 버닝 클럽에 보낸 후에 마약 사건을 터트리는 겁니다.”

“마약은 절대 안 됩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프레임 자체가 배효진이니, 아마 대부분 군중은 마약 자체보다는 배효진 마약 스캔들에 더 관심을 둘 겁니다.”

“그게 잘 될까요?”

“부족하면 라인 엔터와 레드 스튜디오를 같이 엮여서 성접대와 횡령으로 엮어서 이 사건을 크게 터트리면 간단히 됩니다.”

“요즘 검찰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데, 단순히 카더라로 될까요?”

그는 히죽 웃으면서 두 회사의 탈세 정황과 관련된 자료를 내놓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없습니다.”

탈세라기보다는 탈루라는 것이 정확했다. 어차피 세금을 내면 범죄는 아니었다. 다만 언론이 두 회사의 회계 장부 자료를 가지고 탈세 프레임으로 몰면 이야기는 다르다.

설사 검찰 조사에서 무협의로 나와도 그 때는 이미 라인 엔터는 박살이 나 있기 때문이다.

“좋네요. 우선 여론부터 돌리고, 그다음 순서로 갑시다. 나머지는 제가 다른 분들에게도 연락을 취해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서둘러야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 다 서로 전화기를 들었지만, 머릿속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런저런 의문이 떠올랐지만, 딱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이상해. 왜 갑자기 이런 괴이한 일이 연이어서 터지는 걸까? 단순히 재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두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을 그나마 오성 비서실을 총동원해서 오성 의료원을 지켜봤기에 잘 아는 김건중 회장도 조민호가 치료 대가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정도의 정황만 알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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