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09화 (109/176)

#109

***

오성 그룹이 배효진과 만나서 광고 모델 제안한 이야기는 곧 기사로 나왔다. 배효진 몸값은 덩달아서 불타올랐다.

조민호는 강종훈 대표에게 축하 인사를 해주었지만, 유명환 과장과 박상철 과장 사이에 연결 고리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굳이 직접 손을 쓰지 않은 것도 토마스 사태와 같은 일을 염려해서다.

박상철 과장이 자기 목적을 드러낸 채 유명환 과장을 만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유명환 과장을 속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김재건 부장판사 경우에 아직 징계나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명분을 내세운 채 당당하게 법원에 여전히 출퇴근했다.

‘도대체 무슨 배짱일까?’

따라서 지금은 법원이 검찰 수사를 도와주기보다는 방해하지 않으면 만족했다.

나머지는 김정환 부장 검사가 알아서 잘 추적할 것이라 봤다.

오히려 최근 와서 문제가 될 조정연 문제를 더 고민했고, 평소와는 달리 큰집을 자주 방문했다.

걱정한 대로 가족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백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 일어난 격변을 지켜보고, 잔뜩 긴장해서 이미 조정연과 크게 한바탕한 조수현 회장은 조정연을 짜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조정연은 아버지 조수현 눈치를 보면서 계속 시선을 피했다.

임서이는 장남 조정연을 따스한 눈으로 보면서 조민호 눈치도 봤다.

조정국은 무던한 성격대로 가족 분위기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오히려 막내 조지연은 잔뜩 분노한 표정으로 조정연을 째려봤다.

아버지 조철영은 피곤한 듯 아예 이 묘한 분위기에 엮이지 않으려고 했고, 여동생 조지현은 마치 남남인 것처럼 행동했다.

조정연 한 사람이 가족에 합류했을 뿐인데, 일어난 변화였다.

조민호도 아버지 조철영이 독립하면 자기 사업을 말아먹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굳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도 이제 서울 생활이나 회사도 익숙해졌는데, 독립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가장 먼저 반대를 보인 이는 뜻밖에도 임서이였다.

“그건 안 된다!”

고개를 갸웃한 조수현 회장이 오히려 힐끗 임서이를 쳐다보았다.

“당신이 반대할 줄은 몰랐어.”

“아, 그, 그게 이제 다들 한 가족처럼 잘 지내잖아요. 이 넓은 집에 달랑 다섯 사람만 있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임서이는 조민호 치유 능력도 있지만,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가 된 것과 같은 특이한 일에 꽤 호기심을 느꼈기에 반대했다.

그녀의 오락가락한 선천지기 현상만 봐도 갈등하는 것을 알아본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여전히 조수현 눈치를 보는 조정연을 쳐다보았다.

조정연이 결국 그 눈빛에 참지 못하고 나섰다.

“저야 딱히 엄마 의견에 따를 뿐입니다. 하지만 저도 작은 아버지처럼 회사 일에 본격적으로 끼어들고 싶습니다.”

아예 노골적으로 다른 가족에게 도움을 청했다.

임서이 역시 아직도 오성 바이오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았다.

“당신도 혼자 독단적으로 결정 마시고, 정연이 입장 좀 생각해주세요. 민호만해도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로 결정 났잖아요.”

뒤늦게 오성 바이오에 대한 것을 알게 된 조정연이 단호하게 나섰다.

“가, 가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가 민호라니?!”

IT와 바이오 사업의 미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조정연이 오성 바이오를 모를 수가 없었는데, 다만 사외 이사가 조민호란 사실에 경악했다.

조수현 회장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과 진실을 섞어서 일축했다.

“오성 바이오에 투자한 지분은 민호 외할아버지 이충원의 상속 받은 유산으로 투자한 거야. 그러니 우리가 나서서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냐!”

이전과는 살짝 말이 바뀌었다.

다시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특히 이충원 재산 이야기가 나왔다. 이미 그 재산이 조민호에게 다 넘어갔다고 하자 각자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조정연은 특히 뒤늦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아서인지 이것저것 캐묻기만 했다.

조민호는 슬쩍 조수현 회장에게 눈총을 주면서 결국 나섰다.

“어차피 전 오성 바이오 경영에 전혀 간섭할 생각이 없습니다.”

임서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따지지 않았고, 대신 한 가지를 제안했다.

“저도 민호에 대해서 딱히 불만은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오성 바이오 투자를 책임진 것은 사실이니, 정연에게도 회사 이사 자리 하나를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조정연은 표정 관리했고, 다른 가족은 다들 인상을 찡그렸다. 이번 제안만큼은 다른 것과는 달라서 크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조수현 회장이 투자를 진행한 것은 사실이고, 오성 바이오 지분을 사들여서 대박을 터트린 것은 또한 사실이었다.

조수현 회장 역시 난감한 얼굴로 고민했다. 오성 바이오 30% 지분이면 사내 이사 몇 사람을 파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건 미래 증권 실무진 내에서도 나오고, 심지어 오성 바이 측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요청했다.

‘하필이면.’

조민호은 애초에 오성 바이오도 관심이 없어서 별생각이 없었지만 심술 맞은 조정연을 보자 문득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김건중 회장이라면 어떨까? 저런 멍청이를 그냥 내버려둘까?’

솔직히 자신은 법도 그렇지만 기업 경영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3,000억이라는 돈을 벌었다고 하지만 그건 엄연히 공갈, 협박을 통해서 운 좋게 번 것에 불과했다.

미래 증권 내에 조정연이 있다면 조수현 회장 얼굴 때문에라도 함부로 할 수 없지만, 오성 바이오에서 김건중 회장을 통해서 입맛대로 조정연을 굴릴 수도 있었다.

“전 찬성입니다.”

오히려 조수현 회장이 크게 당황했다.

“민호야, 그 일은 오성 바이오 쪽과 협의해야 할 문제라서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그쪽에 한 번 알아보세요.”

최근 오성 바이오 내부에 일어났던 1상 임상시험 사태를 떠올리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도 한 번 그쪽에 이야기해볼 테니, 너무 부담 가지지 마세요. 이유야 어쨌든 우리가 오성 바이오 지분 30%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미, 민호야, 고, 고맙다.”

조정연은 떨떠름한 얼굴로 힐끗 아버지 조수현 눈치를 봤다. 얼마나 들들 볶였는지 조수현의 차가운 눈빛에도 몸을 떨었다.

“천만에.”

‘오성 그룹이 사람 굴리는데, 악명이 자자하잖아. 아예 대놓고 회사에서 압박하면 상당히 힘들 텐데, 과연 얼마나 버틸까? 아니 말 나온 김에 한 번 구경이나 가 볼까? 적당히 압력도 넣고.’

***

임상 시험은 단순히 약 효능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와도 연관된다.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는 경우가 바로 환자 표본 크기에 따라서 여러 가지 통계 오류가 일어난다.

이 약의 효능에 다시 피험자 수, 심지어 시험약의 약효, 마지막으로 약효 변동에 따라서 전부 다 다르게 나타난다.

신약 바스클린 1차 임상 시험에서 부작용이 터졌을 때 이런 기초적인 문제도 같이 엮여 있었다.

오성 바이오 설립 과정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면서 일어난 시행착오다.

뒤늦게 연구진, 행정 스텝, 다른 회사 조직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서 이 문제는 곧 해결되었다.

조민호의 도움 덕분에 이 과정은 좀 더 빠르게 완성되었다.

임상 2상 시험에 들어가면서 문제는 1상 시험보다 더 복잡하게 굴러갔다.

설사 다른 제약 회사에 있던 경력직이라고 해도 아직 시스템이 막 갖춰지는 회사에서 제대로 주도권을 행사하기 어려웠다.

그나마 오성 그룹이라는 막강한 자본과, 인재가 있기에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오성 바이오는 결국 이런저런 불협화음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았다.

김지수는 이 과정에서 신약 바스클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면서 정신없이 해결했고, 그 과정에서 연예인 못지않을 인기를 얻으면서 평소처럼 행동하지 못했다.

이전에는 마음 편하게 조민호를 만났지만, 지금은 그랬다가 신문 1면에 스캔들 기사가 터지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최근 조민호가 배효진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보자 애가 탔다.

결국 언론에 집중 조명을 받든 말든 한국대를 찾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민호가 방문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조민호 담당인 김지수는 부랴부랴 회사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조민호 방문을 준비했다.

가장 큰일은 역시 오성 바이오 본사에 조민호 사무실을 만드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일에 대해서 경영진 누구도 왜 회사 전무보다 더 넓고, 호화찬란한 사무실을 사외 이사에게 만들어줘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다들 지난 경험을 해서인지 오히려 조민호의 기호와 취향에 대해서 더 질문했다.

김지수 입장에서는 방해물이 사라진 터라 적극 회사 자금을 사용해서 실내장식 업체를 부르고, 세팅했다.

오성 본사 면접 후에 뜬금없이 오성 바이오로 배치받은 장연주 대리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영문을 몰라서 일단 시키는 대로 업체를 부르고, 일을 진행했다.

오히려 의문을 토로한 것은 인테리어 업자였다.

“저기 사외 이사라니, 이거 뭐 잘못된 것 아닙니까. 무슨 사외 이사 사무실이 사장실보다 더 넓은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그녀는 최근 승진해서 차장을 단 김지수에게 곧바로 확인했다.

“이상 없으니, 그대로 진행해주세요.”

“하지만 회사를 책임진 경영진도 아닌데, 괜찮을까요?”

“전혀 문제 될 것은 없어요.”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 역시 김지수가 이미 김건중 회장 막내딸이라는 것을 들은 터라 시키는 대로 했다.

다만 사외 이사 명패에 달린 이름이 ‘조민호’란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명이인인가? 아니 민호가 조수현 회장 조카라고 했잖아. 설마?’

장연주 대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민호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다.

‘아이, 모르겠다.’

***

장연주 대리는 사외 이사 방문 날이 되자 김지수 차장 뒤를 따라서 빠르게 움직였다. 다른 임직원 역시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은 역시 사외 이사 방문이라서 크게 긴장하지는 않았다.

다만 김지수 차장이 하도 긴장해서 이리저리 날뛰기 때문에 오히려 영문을 몰랐다.

그런데 그들이 회사 입구 로비에서 본 것은 놀랍게도 경영진이었다.

부장급 이상의 경영진 대부분은 다 나와서 대기해 있었고, 심지어 김정욱 전무나, 고호성 이사, 민한승 전무를 비롯해서 심지어 사장 최태한까지 긴장한 채 나와 있었다. 사외 이사를 기다리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맙소사.’

장연주 대리는 충격을 받아서 양손으로 입을 막은 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열로 쭉 나열해 있는 모습을 봐서는 마치 김건중 회장 방문을 대비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때마침 나타난 것은 노란색 스포츠카였다. 차가 주차하기 무섭게 내린 사람은 검은 선글라스, 면 티, 청바지를 입은 익숙한 한 사람이었다.

‘미, 민호잖아?!’

그녀는 입을 딱 벌린 채 멍하니 조민호가 본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봤다.

조민호는 마치 당연한 대접을 받는 사냥 마냥 환대를 즐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 그룹 막내딸이라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김지수가 쪼르르 달려가서 조민호에게 수줍은 새색시처럼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이에요.”

조민호는 당연한 듯 김지수 환대를 받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과 눈빛을 마주했다.

그 환대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던 조민호 몸이 움찔했다.

‘저, 정말 민호구나, 맙소사.’

***

‘하필이면 연주 선배가 여기 있지?’

최근 와서 친구에게 늘 하던 이야기가 바로 큰아버지 찬스를 누리지 않겠다고 했다. 지금도 실제는 그렇지 않았지만 정작 상황이 큰아버지 찬스였다.

오성 바이오 사외 이사가 되려면 최소한 조수현 회장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민호도 민망해서 장연주 쪽을 시선을 피한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외 이사실로 향했다.

사외이사 실은 황당하게도 사장실보다 더 넓고, 웅장했다.

“굳이 이런 사무실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최소한 회사에 출근하면 편하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그도 피식 웃으면서 다른 사람은 다 보내고, 남은 경영진 중에서 최태한 사장에게 한마디 했다.

“이미 사장님도 미래 증권에서 오성 바이오 지분 30%를 사들인 것은 아실 거고, 사내 이사 한 명을 추천할 생각입니다.”

“그것은 저희도 계속 조수현 회장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조 이사님이 직접......”

“아뇨, 조수현 회장 장남으로 조정연이란 친구가 할 겁니다.”

“조정연이라......, 잘 알겠습니다. 저희가 전력을 기울여서 모시......”

“그 반대에요. 최선을 다해서 굴려 보세요. 이왕이면 스스로 회사에서 나가고 싶다고 할 정도로 악착같이 돌리세요.”

“네?”

“제 큰아버지 장남인데, 저랑 사이가 아주 안 좋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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