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08화 (108/176)

#108

김종훈 대법원장비서실장은 의아한 표정을 한 채 백용훈 대법원장 지시를 받고 대법원 로비에 내려와서 한 사람을 기다렸다.

주변을 오가는 많은 현직 판사와 대법원 공무원은 김종훈 비서실장 눈치만 봤다. 최근 대법원의 갑작스러운 변화 때문에 다들 아예 얼굴을 들지도 못했다.

대법원장 권력이 어떤지 잘 보여주었다. 최근 현 정권의 레임덕 현상이 가속되는 것과는 실로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법과 원칙에 충실한 대법원을 만들겠다는 말이 단순히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요즘 대법원의 여론 지지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종훈 대법원장비서실장 처지에서는 이런 분위기에 자기가 직접 누군가를 안내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대법원장님이 이러는 걸까?’

그때 대법원 로비에 나타난 한 젊은이가 천천히 그에게 다가와서 기자증을 슬쩍 내밀었다.

“조민호? 설마 자네가 중아일보의 조민호인가?”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했다.

“중아일보 기자 맞습니다.”

“으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기자가 감히 대법원장 인터뷰를 하러 왔다는 모습에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다시 대법원장에게 조민호를 재촉하는 전화를 받고 나서는 조민호를 안내해주었다.

“따라오게.”

“네.”

조민호는 이번에 대법원 구경하러 온 것에 피식 웃으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도 김종훈 대법원장비서실장을 보자 파도처럼 쫙 갈라졌다.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도 휘파람까지 불면서 천천히 대법원장실로 향했다.

‘이것도 괜찮네.’

***

김종훈 대법원장비서실장은 백용훈 대법원장 지시에 대법원장실로 들어가지 못했다.

조민호는 의아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섰다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백용훈 대법원장을 발견했다.

애환이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자신의 잘못을 뒤늦게 반성하는 그 모습은 그를 아는 사람에게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으음, 놀랍네. 실효 선천지기가 78정도인가?’

혼원기 특성값은 +로 바뀌면서 곧 혼원기 특성치 1로 바뀌었다.

백용훈 변호사의 원래 잠재 선천지기는 131은 치료 후에 120으로 변했다.

그런데 오염도는 당시 58%에서 치료 후에 55%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35%로 감소했다.

조민호는 슬쩍 진맥을 통해서 아직 다낭신이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뒤늦게 혀를 찼다.

‘하긴 실효 선천지기가 높을수록 건강에 좋지. 면역력이 월등하게 오르면서 정상적인 사람과도 별반 차이가 없어졌어.’

잠깐 그를 지켜봤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던 백용훈 대법원장이 뒤늦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우신 겁니까?”

“못난 삶을 살아온 것을 참회했네.”

“......네.”

그도 이런 변화를 예상치 못해서 당황했다. 최면 부작용이 아닌가 싶어서 다시 진맥해봤지만 특별한 이상을 찾지 못했다.

딱히 성선설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만큼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하염없는 백용훈 대법원장 푸념이 시작되었다.

“나도 대학 시절에는 참 순수했어. 엄정한 법질서를 확립해서 국가에 이바지하겠다고 결심했지. 그 신념이 바뀐 것이 신임 판사가 된 이후에 차가운 현실을 접하고 난 다음이네. 살아남기 위해서 불의와 타협했고, 그 이후부터는 점점 타락해 갔어. 참으로 한심한 일이었어.”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서 슬쩍 다시 한 번 진맥해서 이상을 확인했지만 몇 번이나 확인해도 특별한 점은 없었다.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을 방문하면서 예측을 초월한 변화를 발견했다.

조민호는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고 확신하자 적당히 인터뷰 과정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만 제안한 후에 대법원장실을 나섰다. 딱히 복잡한 지시를 하기에는 그 자신이 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실효 선천지기 78이라면 어지간한 오성 대기업 사장을 넘어설 거야. 나머지는 알아서 하겠지.’

***

물리학과 신입생 환영 회식 자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위기가 밝았다.

조민호 역시 이 유쾌한 분위기를 즐기면서 소주를 홀짝였다.

이미 조민호 명성 때문에 신입생 중에서 건방지게 나서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조민호 술잔을 따라주면서 아부했다.

박진민이나 김영탁 역시 선배로서 위엄을 한껏 보여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이번에 오성 그룹 2차 면접도 통과했다.”

“네? 저, 정말입니까?”

회식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취업이 그렇게 어렵다던 오성 그룹 2차 면접을 통과한 사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조민호조차 깜짝 놀랐다.

“진짜?”

박진민 표정이 다시 험악하게 변했다.

“너 말투가 왜 그래. 우리가 떨어져야 정상이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니지만......, 너희 평균 평점이 고작 3.1에 불과하잖아.”

그는 힐끗 후배 눈치를 보면서 조민호 목을 다급하게 비틀었다.

“이 새끼가 정말 또 이러네. 야아, 너도 나랑 학점은 다 거기서 거기잖아. 인생은 학점이 전부가 아냐......가만 정말 너 이번 면접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구나.”

“내가 그런 일까지 간섭할 이유가 없잖아.”

“그건 그래.”

두 사람은 서로 잔을 주고받으면서 이번 면접이 자기 실력 때문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쾌재를 불렀다. 자신감을 얻었다.

조민호도 김건중 회장이 사전에 손을 썼다고 느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그런 소소한 일까지 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잖아.’

환영회 파티는 오히려 오성 그룹 입사 면접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마침 현직 부장 판사가 중앙지검 앞으로 출석한 뉴스 속보가 떴다.

“?”

다들 영문을 몰라서 멍하니 TV를 쳐다보았다.

“헌정 사상 검찰이 현직 영장 실질 전담 부장 판사를 조사한 적은 없잖아. 저거 오보 아냐?”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고, 따라서 김재건 부장판사 수사는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김재건 부장판사가 출석요구서 때문에 검찰 방문한 화면이 나왔다. 무려 이백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와서 김재건 부장판사가 포토라인에 선 모습을 촬영했다.

[검찰에서 성실하게 조사받겠습니다.]

딱 한 마디만 남기고 중앙지검 안으로 들어섰다.

기자는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려들면서 질문을 계속 던졌다.

[은광 종합토건의 이상철 회계팀장과는 안면이 있습니까?]

[은광 종합토건에서 2억 뇌물을 받아서 이번 무영 그룹 압수 수색 영장을 기각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입니까?]

안으로 들어서던 김재건 부장판사는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기자를 째려봤다.

한 기자가 그 장면을 찍으면서 유레카를 외쳤다.

뒤늦게 다른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서 죽으라고 촬영했다.

김재건 부장판사는 오히려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생방송을 통해서 나간 이 충격적인 장면에 정치에 관심이 없는 오늘 회식에 참석한 물리학과 재학생은 다들 잔을 내려놓은 채 이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예상보다 더 충격적인 주변 분위기에 혀를 찼다.

‘......생각보다는 더 화끈하네.’

곧 화면이 바뀌면서 압수 수색 장면이 아니라, 압수 수색을 끝낸 수사관이 떠나는 모습도 나왔다.

[현직 부장판사를 상대로 압수 수색 영장이 나온 일은 실로 건국 이례로 전무후무합니다. 하지만 무영 그룹 실무자와 김재건 부장 판사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범죄 혐의가 드러나서 법원에서 압수 수색 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와아.”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두 사람의 오성 그룹 2차 합격 축하 분위기가 완전히 법원 압수 수색 속보 이야기로 달아올랐다.

조민호는 연이어서 나오는 중앙지법을 나오면서 기자에게 간단한 원칙만 말하는 김정환 부정검사를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신이 났구나.’

아마 이제까지 중앙지법 판사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다 날려버린 것 때문에 그 딱딱한 김정환 부장검사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와중에도 오성그룹 2차 면접 통과했다고 자랑하면서 손뼉 치면서 좋아하는 친구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김건중 회장도 눈치를 보네. 가만 그러면 유명환 그 자도 이번 일 때문에 몸을 사리는 건가? 일을 너무 크게 벌였나?’

***

“3차 면접도 신경을 잘 써. 괜히 중간에 실수하는 놈이 없도록 사전에 경고도 좀 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백용훈 대법원장에게도 조민호 그 친구가 손을 쓴 것 맞아?”

“신장기능이 정상인 다낭신 환자는 적당한 수분 섭취만 해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는데, 여기에 신장 이상에 따른 고혈압 증상만 적극 치료하면 문제없습니다. 문제는 작년부터 백용훈 변호사 신장 기능이 급격히 나빠져서 조현철 박사가 변호사 휴직까지 권고했습니다. 지금쯤이면 저렇게 멀쩡한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오성 비서실은 이 특이한 현상을 바로 감지하기가 무섭게 백용훈 변호사를 뒷조사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최영준의 백용훈 변호사 인터뷰였다.

백용훈 변호사 사무실 여직원 통해서 조민호 역시 그 자리에 동행한 것까지 확인했다.

이학준 비서실장 보고 내용을 들으면서 김건중 회장도 심란한 표정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예상 못 한 것은 아니지만, 대법원장까지 손을 쓰다니, 부담스러워.”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이학준 비서실장 역시 공감했지만, 딱히 조민호를 압박할 별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현 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양주민 검찰총장은 아직 임기도 2년 가까이 남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여기에 대법원장마저 조민호 수족이 되었다. 실로 소름 끼칠 일이다.

“이대로 둘 수도 없고, 차라리 백용훈 대법원장을 공격하는 것은 어떨까요?”

“조민호 그 친구가 알면 그다음부터 대립각을 세울 텐데?”

“차라리 그게 났지 않을까요. 현 대통령도 지금 상황 파악을 못 해서 백용훈 대법원장을 막 밀어붙이지 않습니까?”

“병신들이야.”

여당과 정부의 삽질은 황당 그 자체였다. 오죽하면 야당도 둘의 혼란에 갈팡질팡했다. 덕분에 공무원은 다들 숨을 죽인 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잠깐 복잡한 표정을 하던 김건중 회장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끼어들어서 분란을 일으킬 생각 마. 오히려 괜한 오해를 사서 또 그놈의 X파일 타령할 빌미만 줄 테니까. 그보다는 지수 일은 어때?”

“지금 오성 바이오 2상 임상 시험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1상 시험 때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 여기에 전념 중입니다.”

“그래. 가만 조민호와는 어때?”

“그게......”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마.”

이학준 비서실장은 김지수가 오성 바이오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조민호와 소홀하다는 주제보다는 배효진 문제를 슬쩍 꺼냈다.

최근 조민호가 배효진을 만나서 한 일을 간단히 요약해서 말해주었고, 심지어 최근 배효진 현황 보고서까지 보여주었다.

“......놀랍군.”

“안 그래도 이 일도 조민호군이 끼어들어서 손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윤현종 교수 이야기로는 일종의 언어 장애로 보이는데, 그 현상이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정작 더 이상한 점은......”

“사진이 좀 다르군.”

“네?”

김건중 회장은 배효진의 과거와 최근 사진 두 장을 교차해서 보여주었다.

“눈빛이 아주 달라. 그 덕분에 분위기도 이상할 정도로 변했어. 아마 요즘 인기가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렇지?”

“안 그래도 그 이야기 때문에 지금 고민 중입니다. 오성 전자 신제품 광고 모델로 채용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만 워낙에 경력이......”

“해.”

“네?”

“혹시 최근 배효진 드라마 나온 것을 한 번 가져와 봐.”

이학준 비서실장은 대기한 다른 직원에게 신호를 보냈고, 곧 배효진의 논스톱 5 한 장면을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자네도 모르겠어?”

“......확실히 다릅니다.”

단순한 표정 연기만이 아니라 눈빛 자체가 매우 달랐다. 그 변화는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바뀌어 갔다.

배효진은 연기를 거듭할수록 지혜의 여신처럼 눈부시게 바뀌었다.

“자넨 지수 옆에 늘 있지 않아서 못 느끼겠지만, 그 녀석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바뀌어. 특히 몸매는 그렇게 많이 먹어도 오히려 광택이 나면서 더 이상적으로 바뀌어 가. 이 친구는 딱 봐서는 지능 쪽이 더 영향을 받는 것 같아.”

“진담이십니까?”

“내가 지금 자네랑 농담 따 먹기 할 군번이야?”

“죄, 죄송합니다.”

“헛소리 말고, 아직은 시간이 있어. 다들 어어 할 때이니, 당장 가서 이 친구랑 장기 계약을 맺어. 회사 매출에도 큰 영향을 줄 거야.”

“알겠습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사라지는 이학준 비서실장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점점 영향력이 커져가네. 앞으로 어쩔 생각으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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