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07화 (107/176)

#107

***

과거 은광종합토건에 대한 압수 수색 이후에 그 다음 차례는 무영 그룹이었다.

정작 이 과정에서 압수 수색 영장이 기각되면서 김정환 검사는 수사를 멈추었고, 정작 영장 전담 판사와 갈등했다.

이 영장을 기각시킨 사람이 바로 김재건 부장 판사였다.

이 사태는 시간이 꽤 흘러도 여전히 말이 많이 나왔다.

법원 내에서도 김재건 부장 판사가 외부 압력을 받아서 의도적으로 기각시켰다는 이야기가 계속 해서 흘러나왔다.

그런데 오히려 김재건 부장 판사는 권력의 지지를 받아서 승승장구했다.

이 일이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지만 당시 이 사건 횡령으로 토사구팽 당한 은광종합토건 이상철 회계팀장이 뒤늦게 검찰청 변화를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고, 한 시민단체를 통해서 제보해버렸다.

무영 그룹 담당자와 전화 통화 녹취록에 김재건 부장판사 통해서 이번 사건은 무마될 것이라는 대화 내용이었다.

전임 대법원장이 있을 때는 이 제보 내용 수사는 진행되지 않을 채 묻혀 있었다.

백용훈 대법원장이 임명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런 부정부패에 대해서 다시 원점에서 재조사해서 처벌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문제가 된 현직 판검사에 대한 내부 징계 절차가 진행되었다.

기소된 현직 판사는 모두 십여 명 가까이 되었는데, 주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연루된 판사가 대부분이었다.

김재건 부장 판사만 유일하게 뇌물죄,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기소가 되었다.

최근 중앙지법 내에서도 실세라는 소리를 듣던 김재건 부장 판사는 뒤늦게 징계위원회 회부가 단순하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했고, 자기 주변 시선이 완전히 바뀐 것에 식은땀을 흘렸다.

다급하게 법원 밖으로 나가서 천재건 이사에게 전화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천재건 이사도 뒤늦게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본 후에 창백한 어조로 말했다.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당분간 조용히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설마 감방에 갈 시간을 기다려 달라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이건 이야기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나 혼자 그냥 죽지 않을 겁니다!”

“다시 연락하죠.”

***

천재건 이사도 정신없이 아는 라인 통해서 알아보았지만 별 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백용훈 대법원장 쪽과는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이들은 천재건 이사 연락에 충격을 받은 채 자세한 내용을 더 알아보고는 당황했다.

야당 역시 백용훈 대법원장 선임과 관련해서 국회의 인사청문회 결과를 무시하는 대통령 독재를 비판하면서 따로 시위를 벌였다.

그런데 정작 이 시위 중에 뒤늦게 상황을 알고 나서는 슬그머니 하던 시위를 다 멈추고 이 일을 정신없이 알아보았다.

여당도, 야당도 갑자기 신임 백용훈 대법원장의 정신 나간 행동에 크게 당황했다.

그것은 정부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미 대통령 레임덕이 왔다는 소리가 파다한 터라 지금 대법원장 임명을 번복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방법이 없었다. 무려 임기가 6년이나 남은 백용훈 대법원장을 감히 누구도 막아설 자는 없었다.

김정환 부장검사도 뒤늦게 자신에게 배당된 김재건 부장판사 고소장을 살폈지만 뭘 어쩌라는 건지 영문을 몰랐다.

사건만 봐서는 이 사건이 무영 그룹 사건과 관련이 있어서 자신에게 배당된 것을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검찰청과 법무부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 예민한 사건을 수사할 수 없었다.

“이건 참 곤란하네.”

김인식 검사 역시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법원이 요즘 이상한 행동을 해도 설마 현직 판사에 대한 수사를 허용할지 걱정입니다.”

찜찜하지만 배당받은 사건이니, 조사하는 흉내라도 내야했다.

“김 검사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어차피 이미 고소장이 나왔으니, 우린 법대로 하면 되니까.”

“당장 압수 수색 영장 자체가 나오지 않을 겁니다, 설마 혐의를 찾는다고 해도 구속 영장이 제대로 나올 리도 없지 않습니까?”

“글세.”

그 역시 당혹스럽기는 매 한 가지다. 이미 법원 내부 징계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요식적인 절차일 수도 있어서 당장 법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 일어나는 일이 왠지 검찰청 내부 변화와도 비슷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민호에게 한 번 전화를 걸었다.

[한 가지 문의할 것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신임 대법원장 때문인가요?]

[네, 신임 대법원장 임명 후에 법원 쪽이 많이 시끄럽습니다. 원래 새로 사람이 오고 나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조민호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백용훈 대법원장도 요즘 지난 일을 많이 후회합니다. 그래서 좀 더 큰 변화가 생길 테니, 그런 점을 잘 활용하세요.]

[네?]

[이상한 일이 그쪽에도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게 현직 판사 고소장을 받기는 했는데, 어찌해야할지 고민 중입니다. 담당 판사가 이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할 것이 뻔해서입니다.]

법과 원칙대로 하라고 지시한 조민호조차 법원 내부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지만 대수롭지 않게 툴툴거렸다.

[......그건 좀 놀랍지만 안 그럴 겁니다.]

[......설마 법원이 이 수사를 허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약간 부담을 느꼈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한 번 잘 알아보세요. 이 정도면 검사님도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도 잠깐 전화를 끊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조민호가 이 일에 관여했을 지도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면서 화들짝 놀랐다. 곧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평검사와 수사관을 따로 불러서 회의했다.

그들 안색 역시 점점 창백하게 바뀌었고,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김정환 부장검사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설사 영장이 기각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모든 일은 내가 다 책임질 테니, 믿어 붙이세요!”

***

김재건 부장판사는 요즘 하루하루가 괴로워서 제대로 출근도 못했다.

이미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지만 당장은 최선을 다해서 버텼다.

천재건 이사가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내가 아는 사실만 다 불어도 너희들은 끝장이야. 설마 날 이대로 두고 보지는 않겠지?’

하지만 동료나 후배 판사들이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자신을 권력 실세로 바라보았지만 지금은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 시선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평소처럼 생활했다. 설사 법원징계위원회라고 해도 고작 생색만 낸다고 믿었다.

모든 일을 잊기 위해서라도 일단 사건 파일에 집중했다.

어수선한 소리가 함께 주변이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시끄러워졌다.

구두 발자국 소리와 함께 십여 명이 이곳에 우르르 나타났다.

바로 김정환 부장검사와 담당 수사관 일행이 이 자리에 나타나서 압수 수색 영장을 보여주었다.

“제가 굳이 더 설명하면 여러분을 조롱한다고 생각할 테니, 특별히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압수 수색 영장입니다. 김재건 부장판사님,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맙소사!”

느닷없는 사태에 분노하려던 주변에서 지켜보는 현직 판사와 법원 담당자는 경악한 채 김정환 부장검사를 쳐다보았다.

압수 수색 영장은 법원에서 발부된다. 그 법원이 어이없게도 자기 안방에 대한 압수 수색 영장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말, 말도 안돼!”

역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김재건 부장 판사였다.

마침 걸려온 아내 핸드폰 전화를 받고서야 자택 역시 압수 수색 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정환 부장검사는 힐끗 수사관이 컴퓨터를 비롯해서 개인 용품을 챙기는 것을 살피면서 김재건 부장판사에게 다가갔다.

“이건 피의자 소환장입니다.”

“......네, 네놈은 절대로 무사 못할 거다!”

“선배님, 저에게 그런 말씀해봐야 소용없습니다. 저는 범죄 혐의가 명확하다고 확신해서 압수 수색 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에서 그것을 허용했을 뿐입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러게 말입니다.”

김정환 부장검사도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내저었다. 조민호 제안대로 일단 원칙대로 처리했지만 설마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절대로 이 일을 용납하지 않을 거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법과 원칙대로 일을 진행했지만 이 일이 순탄하게 흘러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여당에서 법원을 압박할 것이다.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니까.’

문제는 외압이다. 아마 김재건 부장판사와 엮여 있는 많은 이들이 김정환 부장검사 자신을 포함한 친인척을 협박하기 때문이다.

‘괜찮을까 모르겠네.’

***

최영준 차장 역시 조민호 전화를 받았는데, 김정환 부장검사가 김재건 부장판사를 대상으로 해서 법원과 자택을 압수 수색할 것이라는 말에 웃고 말았다.

그런데 조민호는 몇 번이나 진지하게 충고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원중 과장과 양봉석 대리와 법원으로 향했다.

배효진 관련 기사로 재미를 짭짤하게 본 김원중 과장은 이전과는 달리 최영준 차장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과정에서 뒤늦게 검찰이 법원을 압수 수색 중이라는 말을 듣고는 웃고 말았다.

“차장님 농담도 일품입니다.”

“농담 아냐.”

“아니 그 말을 지금 믿으라는 소리입니까. 건국 이례 검찰이 법원을 압수 수색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있지 않을까?”

최영준 차장도 자신의 지식 데이터를 한번 쭉 돌아보면서 혀를 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을 본 적이 없었다.

법원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켜 나오면서도 조민호가 잘못 알고 전화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이 어수선했다.

‘설마?’

그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느끼면서 후다닥 뛰어갔고,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 역시 다급하게 최영준 차장 뒤를 따랐다.

중앙지법 입구에는 정말 검찰 수사관이 차에 압수 수색한 물품을 싣고 있었다.

“맙소사!”

다행히 다른 언론사 기자는 보이지 않았다. 김정환 부장검사 일행도 이번 일을 처리하면서도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어서 제대로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갑자기 위에서 압수 수색을 멈추라는 지시가 내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언론사도 소식을 들었겠지만 너무 허황한 제보라서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최영준 차장은 이게 특종이라는 것을 확신하자 다급하게 움직였다.

수사관을 비롯해서 김정환 부장검사에게 접근해서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른 언론사였다면 김정환 부장검사도 무시하겠지만 최영준 차장을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간단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했다.

“저희 검찰은 범죄 증거가 명확한 사건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서 수사할 뿐입니다. 설사 그것이 현직 판사라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일은 그 어떤 정치적인 목적도 없습니다.”

“!”

세 사람은 혀를 내두른 채 김정환 검사에게 달라붙어서 교대로 질문했다.

그들은 중아일보 본사에 연락해서 이 속보를 내보냈다.

불과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한국의 모든 기자 군단이 우르르 몰려왔다.

심지어 공영 방송 기자 역시 숨을 헐떡인 채 나타나서 법원 압수 수색을 기사화했다.

하지만 이미 중아일보는 이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서 폭로해버렸다.

심지어 압수 수색이 이미 마무리가 된 상황에서 검찰은 곧 떠나버렸다.

“......씨발.”

그나마 촬영하기는 했지만 정작 가장 핵심인 장면과 인터뷰가 다 빠졌다. 몰려온 기자들은 이를 으드득 갈면서 최영준 차장 일행을 쳐다보았다.

“중아일보 이 개새끼들, 진짜 너무하잖아!”

최영준 차장도 분노에 가득한 기자 군단을 앞에서 아차 싶었다.

“흠, 이번 제보는 워낙에 황당해서 이렇게 되었습니다만 좀 이해를 해주세요.”

“최 차장은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검찰 측에서 이미 정보를 흘리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다들 오보라고 생각해서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최영준 차장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법원 구경이나 하러 왔다가 운 좋게 특종을 잡은 것뿐입니다.”

“빌어먹을!”

그는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다.

‘일단 위기는 잘 넘긴 것 같아. 그나저나 민호군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대법원장을 구워 삶았는지 모르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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