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자네가 알아서 잘 해결할 수 있어. 어차피 자네 편을 들어주는 순간에 편향 논리는 사라지지 않을까?”
조민호는 뜻밖에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자 불쑥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 양반도 병이 있다는 말이겠죠? 무엇인가요?”
“다낭신이네만......”
“특이한 이름이지만 치료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모든 일은 잘될 테니까요.”
“......”
이번에는 최영준 차장도 심각한 얼굴로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이번 일은 아차 하면 현 정권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충격을 줄 수도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
단호한 조민호 주장은 딱히 자만심의 발로는 아니었다.
배효진 언어장애를 치료한 후에 이제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전성 신장 질환인 다낭신에 대해서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낭신은 PKD1과 PKD2 유전자 결합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이 유전자 돌연변이 덕분에 신호 전달계에 다양한 문제가 생겨난다.
최근에 와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약물을 사용해도 그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CT나 MRI를 연속으로 사용해서 꾸준하게 관찰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생각보다는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조민호 역시 이 다낭신이 난치병에 속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오히려 평범한 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했다.
치료제 중의 하나인 바소프레신 수용체 길항제인 톱뱁탄이 있는데, 아직까지 3상 임상 시험 단계에 있다. 내년 쯤이면 정식으로 시판되어서 판매된다는 소리가 있다.
톱뱁탄에 대한 연구 자료를 하나씩 살피면서 동일한 형태의 혼원기를 만들었다.
일단 기본 혼원기를 만들고 나서는 다양한 형태의 연구 논문을 다시 살폈다.
발달장애 치료 과정에서 한 공부와 치료 경험 때문에 이전과는 달리 좀 더 쉽게 접근할 수가 있었다.
조민호는 그런 중에 백용훈 변호사와의 만남을 준비했다.
최영준 차장이 알아서 소개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내놓은 것은 중아일보 기자증과 명함이었다.
조민호는 생소한 기자증을 만지면서 혀를 찼다.
“기자요?”
“취재를 명분으로 해서 일단 친해질 수가 있잖아. 그게 가장 자연스러워. 그냥 가서 당신을 치료하고 싶다, 그러면 오히려 이상한 눈으로 볼 거야.”
“그렇게 하죠.”
***
기자증을 가슴에 단 조민호는 최영준 차장과 같이 백용훈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이미 큰 사건을 성공적으로 승소한 덕분에 꽤 유명세를 떨쳤지만 뜻밖에 사무실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직원은 여자 직원을 포함해서 고작 여섯 명에 불과했다.
“반갑습니다.”
꼬장꼬장해 보이는 백용훈 변호사는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거 기자 인터뷰까지 다 받아보고,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인터뷰 시작은 무난했다.
조민호는 중간에 끼어서 악수하면서 슬쩍 상대를 살폈다.
‘잠재 선천지기 131에, 오염도는 58%라, 실효 선천지기는 대략 55군. 대략 대기업 계열사 사장 수준인데, 썩 믿을만한 사람은 아니구나.’
최영준 차장의 긍정적인 평과는 달리 선천지기 오염도가 너무 높았다.
이 수치만 봐서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고, 향상 남의 뒤통수 칠 확률이 높았다.
현 대법원장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부정적인 인물이 다음 대법원장이 된다면 정권의 나팔수가 될 것이 뻔했다.
서초구 경찰서장처럼 공권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사법부 장악하고, 현직 판사에게 압력 넣어서 엉터리 판결을 내릴 수도 있다.
얼핏 보면 과도한 우려 같지만 이런 일은 무림 시절에 정말 많이 경험한 조민호는 이전과는 아주 달리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지.’
백용훈 본인도 단순한 인터뷰라고 생각에 앞서서 한 가지를 먼저 지적했다.
“언론은 내가 사법부를 정치 편향적으로 이끈다고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솔직히 내가 정치 성향이 한쪽 편이라면 국민 중에 누가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껄껄 웃으면서 오히려 이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한 방점을 찍었다.
“아니 날 한 쪽 성향으로 몰아가니, 중도인 내가 오히려 모든 한국 국민을 공평하게 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최영준 차장은 힐끗 조민호를 쳐다보면서 계속 질문했다.
“앞으로 정치 쪽도 뜻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약 현 정권에서 대법원장 자리를 제안해온다면 거기에 응할 생각은 있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소리를 반복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국민 여론은 정치권에 바라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서로 밥그릇 타령만 하고 있으니, 나라도 나서서 국민 의견을 대변해주고 싶습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최영준 차장도 깜짝 놀라서 당황했다.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 아마 정부에서도 대법원장 후보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겁니다. 하면 다음 대법원장 후보로 적극 나설 생각입니까?”
“난 국민이 원한대로 따를 뿐입니다.”
최영준 차장도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민감한 주제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지난 론스타 영장 기각에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날카로운 공격에 백용훈 변호사도 움찔했지만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미 현 정권 측과 이야기가 계속 오가는 중이었고, 암묵적으로 허락했다.
오히려 중아일보가 이렇게 빨리 자신을 찾아온 것에 크게 기뻤다.
지금이 딱 출사표를 고민하는 중이라서 미리 준비한 의견을 털어놓았다.
“아직도 지난 언론의 오보를 그대로 믿다니, 크게 실망입니다.”
하지만 신랄한 최영준 차장은 가감 없이 백용훈 변호사를 공격했다.
조민호는 슬쩍 신호를 보내서 더 자극하라고 눈치를 주었다.
백용훈 변호사 선천지기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변해갔다.
오염도 58%가 가파르게 증가해서 65%까지 껑충 올라갔다.
이 변화도만 봐도 보통 사람과는 도덕성을 비교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런 인간 평이 그렇게 좋다니.’
백용훈 변호사도 인터뷰하자는 건지 아니면 싸우자는 의도인지 잘 몰라서 최영준 차장을 점점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대놓고 자기 과거사를 일일이 지적하니, 화가 점점 치밀어 올랐다.
‘최 회장이 겁을 상실한 건가? 아니면 최영준 차장이란 이 친구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건가?’
사실 그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대법원장이 된다면 중아일보 역시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 기복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콜록, 콜록.”
옆에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조민호는 백용훈 변호사가 갑자기 심한 기침을 하는 모습까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지켜보던 비서가 다급하게 가져온 약을 섭취하고 나서야 백용훈 변호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민호는 예상한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슬쩍 끼어들었다.
“제가 지압을 좀 하는 편인데, 한 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응? 젊은 친구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최영민 차장이 슬쩍 끼워 들었다.
“한의사 집안에서 배운 비법이라서 꽤 용합니다. 한 번 확 받아 보시지요.”
“그럴까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밀었다.
조민호는 상대 진맥을 하면서 선천지기 내부 변화를 살폈다.
가파르게 올랐던 선천지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안정화되어갔다.
바로 인간의 면역력이 작용했다.
그 변화는 한 편으로 신기했다.
선천지기가 악화하였다가 회복되는 과정 자체를 처음 경험하는 조민호도 잠재 선천지기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 따라서 변해가는 것을 확인했다.
‘흥미롭군.’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특성이 너무 많이 달라. 흠, 곤란한데.’
12가지 특성으로 나눈 혼원기가 대다수 사람의 특성을 포함한다. 그런데 예외가 존재하는데, 이 경계를 벗어난 예도 있다.
0 이하와 12 이상 구간이다.
백용훈 변호사는 -0.5구간으로 그 예외다.
이런 경우는 조민호도 처음이라서 다른 대안을 고민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에 대해서 과도하게 손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 백용훈 변호사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오염도와 잠재 선천지기를 봤을 때 나중에 검찰청과 대립하면 크게 손해를 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이 조민호에게도 큰 피해를 줄 것이다.
조민호는 결국 백용훈 변호사에게 다른 환자와는 달리 적극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안정화되는 선천지기 변화를 통해서 비슷한 혼원기를 만들어냈다.
백용훈 혼원기를 곧 경맥을 통해서 뇌혈맥 쪽으로 보냈다.
그 기운은 곧 뇌경락을 따라서 흐르다가 마지막 종착지에 자리 잡았다. 과거 김미애 기자에게 썼던 방식을 이용해서 만든 백용훈 혼원기는 천천히 경맥에 잠복했다.
곧이어서 자연스럽게 동기화 과정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 자체는 치료와 비슷하지만 그 동기 과정 자체가 김미애 혼원기와 비슷한 방식으로 뇌세포에 일어난다.
따라서 백용훈 변호사가 지금처럼 격한 반응을 보일 때면 김미애 기자에게 썼던 방식과 비슷한 동기화가 일어난다.
내부의 복잡한 효과와는 달리 외부적으로 선천지기 안정화 자체를 돕기 때문에 몸이 안정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 시원하네. 헛, 이거 정말 신기하네. 고작 진맥만 했을 뿐인데, 자네 솜씨가 보통 아니야.”
조민호는 이미 1차로 목표한 바를 달성했다고 판단하자 방긋 미소 지었다.
“그저 가전에 전해오는 수법일 뿐입니다.”
“시간 나면 가끔 다시 좀 해주게.”
“하하하, 알겠습니다.”
조민호는 다시 시작된 최영준 질문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는 백용훈 변호사를 유심히 살피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당신이 찾도록 손을 써 놓았으니, 굳이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사실 당신에게 유감이 없어. 하지만 정황 자체가 적으로 드러난 상황이니, 날 원망하지는 마. 최영민 사장이라면 이 미끼를 잘 지켜보겠지.’
***
지시를 받은 최영민 사장은 평소와는 달리 이 문제를 심각하게 추적했다.
아직 조민호에게도 비밀로 한 부분이 있었는데, 오성 X파일과 관련된 부분이다.
과거 국정원 시절에 필요한 자료를 스스로 모았다고 생각했었지만 한 사람의 행적을 뒤늦게 찾아내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새 시대 전략연구소에 있다고?”
갑작스러운 지시에 어리벙벙한 장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천재건 이사란 인간이 여당에서 제법 힘깨나 쓰기는 하지만 딱히 팀장님 아니 사장님이 주목할 만한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친구가 오성 X파일을 제보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거야.”
“네?!”
장혁도 화들짝 놀라서 최영민 사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도 처음에는 이 자가 오성 기획팀 출신으로 중아일보에 합류했지만, 오성 그룹에 대한 회의 때문에 제보한 것으로 판단해서 제대로 조사를 안 했어. 그런데 지금 이 프로필을 보니, 생각이 달라.”
천재건 이사는 뜻밖에도 오성 그룹 내에 알력에 밀려서 퇴출당한 후에 중아 일보에 낙하산으로 내려가서 살아남았다.
그 이후로 수년에 걸쳐서 최영민 사장에게 제보를 해왔다.
최영민 사장은 그 제보를 토대로 해서 비밀리 정보를 모았다.
그것이 바로 오성 X파일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 정보란 게 천재건 이사 혼자 힘으로 얻기는 어려웠다.
“정말 이상하군요. 그 오성 X파일은 김건중 회장을 노린 거 아닙니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냐.”
그가 다시 내놓은 사진은 바로 장혁이 직접 찍은 사진이었다.
조민호에게 준 것 외에 근 이백 장이 넘는 사진 파일 중의 하나였다.
유명환 과장과 천재건 이사가 서로 만나서 술자리를 같이했다.
사진 자체만 놓고 본다면 다른 여당 보좌관 인사 몇 사람이 같이 있어서 특이할 것은 없었다.
“으음, 이건 정말 이상하군요.”
“너도 그렇지?”
두 사람은 마치 호형호제처럼 같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공무원과 과거 중아일보에서 일했고, 공무원을 노예 취급하는 여권 보좌관 실세가 서로 만나서 저렇게 친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가만 설마 오성 X파일 자체가 천재건이 당시 팀장님을 의도적으로 부추긴 사건이란 말입니까?”
“후유.”
최영민 사장도 깊은 한 숨을 내쉬면서 지난 일을 돌이켜봤다. 당시는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름 제보를 하나씩 모았고, 결국 그 사실을 터트렸다.
그 과정에서 별의 별 수모를 경험했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버텼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이 일이 오랜전부터 오성 그룹을 노린 수단이었고, 어쩌면 자신은 그저 몰이 사냥을 위한 사냥개로 이용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조민호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집요하게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지나 했는데, 이런 문제가 있었군. 정말 대단한 친구야.’
조민호 정체에 대한 의혹이 무럭무럭 피어올랐지만 곧 떨쳐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