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전생자-102화 (102/176)

#102

“그럼 됐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서 꿈을 이뤄 보세요.”

“네. 아, 그리고 혹시 제 동생도 좀 봐 줄 수 없을까요?”

“지금 당장은 밀린 치료비부터 먼저 갚고, 나중에 동생 문제를 확인합시다. 그러니 빨리 가서 열심히 연기하세요.”

“알겠습니다.”

조민호는 애틋한 배효진 모습에서 서문소혜 모습을 다시 떠올렸지만, 곧 그 감정을 떨쳐버렸다. 배효진과 서문소혜는 전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박희관 부장 표정이 볼만하겠어.’

***

박희관 부장이 솔직히 다른 외국계 투자 회사를 마다하고 미래 증권에 입사한 것은 이곳이라면 자기 뜻을 펼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미래 증권 역시 다른 한국 투자 회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크게 실망해서 상급자와 많이 대립했다.

바이드 주식 매각 사건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비록 조민호 압력에 일단 물러서기는 했지만,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윤석민 PD를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배효진 연기력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그런데 논스톱 5를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가 배효진 연기에 대해서 고개를 갸웃했고, 곧 관련된 기사가 올라왔다.

[배효진 연기력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배효진은 탁월한 미모와 몸매를 내세워서 여전히 주목을 받았다. 피아노 협주곡의 주연 캐스팅 소식에 많은 시청자는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이런 배효진 연기력 논란은 서서히 종식되었......]

이전만 해도 투박하면서 어색하던 그 연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부분을 채운 것은 뜻밖에도 안정적인 감정 표현이다.

보는 시청자는 그 이질적인 변화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결국 논스톱 5는 인기를 더해가면서 마지막 시즌이라는 이야기도 바뀌었다.

‘응?’

이 소식을 들은 박희관 부장은 뒤늦게 그녀 최근 논스톱 5를 다 구해서 일일이 배효진 연기력을 확인하고 나서는 경악했다.

회를 더해갈수록 그녀의 연기력은 시간 단위로 점점 바뀌었다.

뒤늦게 윤석민 PD를 직접 만나서 확인해 봤는데, 그 역시 모르기는 매 한 가지였다.

“솔직히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모르세요?”

“저희 드라마 스텝 역시 다들 영문을 몰라서 황당한 분위기입니다. 오히려 이번 캐스팅이 대박이었다고 난리니까요.”

뒤늦게야 지난 바이드 대박을 터트린 조민호를 떠올렸고, 다시 한국대를 찾아가서 조민호를 만났다.

“글쎄요. 아마 이번 일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연기력이 바뀔 것 아닐까요?”

“하, 하지만 이런 식의 연기력 변화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기존에 어색한 말투가 오히려 연기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드라마 커뮤니티도 난리입니다.”

조민호는 피식 웃었다.

“배효진씨 잠재력을 얕잡아 봐서가 아닐까요?”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연기력이 그냥 어느 날 바뀌는 것이 아니라 수년에 걸쳐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인기를 얻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하, 하지만......”

심유한 눈으로 힐끗 쳐다보았다.

“세상 일이 어디 박희관 부장님 판단처럼 되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지켜만 보세요. 배효진 연기 변화는 이제 시작일 테니까요. 그러면 드라마 펀딩부터 시작해서 많은 변화가 생길 겁니다. 결국, 그렇게 되면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를 전담하는 펀딩이 생길 거고, 그 책임자는 박희관 부장님이 됩니다. 그 정도 그림을 그릴 줄 아시죠?”

“그건 그렇습니다만......”

크게 충격을 받은 박희관 부장은 멍하니 조민호를 쳐다보았다.

조민호는 방긋 미소 지었다.

“제가 일전에 말한 것처럼 모든 일은 잘될 겁니다.”

같은 말이다. 그런데 그 의미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 말의 무게에 박희관은 새삼 조민호를 이전처럼 내려다볼 수가 없었다.

뒤늦게 조수현 회장이 왜 조민호에게 저 자세였는지도 깨달았다.

‘뭔가 있구나.’

“......네.”

***

배효진 연기력 논란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갔다.

다들 배효진 연기력이 문제가 많다고 한 사람조차 배효진 연기력 변화에 의구심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논스톱 5 시청률은 그 덕분에 가파른 상승세를 거듭해서 최근 평균 시청률 대비 무려 6% 가까이 껑충 뛰어올랐다.

결국 피아노 협주곡 드라마는 시작도 하기 전에 조명을 받았다. 미래 증권의 피아노 협주곡 펀딩 역시 그 영향을 받아서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몰렸다.

하지만 조민호는 이런 분위기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분노한 유명환 과장이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뭔가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 봤다.

최영민 사장이 가까스로 유명환 과장의 특이한 움직임을 발견했다.

“이철명 서초구 경찰서장을 따로 만났다는 말입니까?”

“그 자리에 이 친구도 나왔는데......”

“누구죠?”

“전지혜라고 제법 명성이 있는 배우입니다. YS 엔터 소속인데, 과거 마약 때문에 집행유예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흐릿한 핸드폰 사진에는 서초구 경찰서장, 유명환 과장, 전지혜를 포함해서 모두 여섯 명이 모여서 술자리를 한 사진이었다. 전지혜를 비롯해서 사진을 찍은 여자의 눈빛은 풀려 있어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약을 한 겁니까?”

“네.”

“일단 성접대를 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갑자기 왜 이철명 경찰서장이죠? 유명환과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겁니까?”

이철명 경찰서장만 놓고 본다면 의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유명환 과장 연결 고리가 생겨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강기창 경감과도 잘 아는 사이라고 최근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 말은 설마?”

“이철명은 과거 민정 수석실에 파견 나간 적이 있습니다.”

“유명환이 권력 실무 실세이니, 그러면 민정수석실과도 연결 고리도 되는군요.”

“그리고 레드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관할서가 바로 서초구입니다.”

“경찰서장까지 이용한다니? 혹시 그쪽 회사에 투자자 문제 말고, 또 다른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스텝 급여를 떼먹었다는 소리가 있으니, 아마 이걸 명분으로 해서 여러 가지 협의를 붙여서 수사할 수도 있습니다.”

레드 스튜디오도 과거에는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고, 몇몇 드라마를 찍으면서 스태프에게 급여를 주지 않았다.

“흠.”

조민호도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최영민 사장도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은 레드 때문이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기가 어려운 것이 이 장소도 문제입니다. 버닝 클럽이라는 곳인데, 이들이 서초구 경찰서와 유착된 것으로 보이니까요.”

“놀랍네요.”

“더 황당한 점은 이 버닝 클럽 관리자가 피엔 클럽이 이전 스텝 중의 한 사람입니다.”

“무슨 말이죠?”

“피엔 클럽이 마약 섹스 파티 때문에 망했지만 구속된 몇 사람을 제외하고 풀려난 사람은 전부 다 이 버닝 클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결국 섹스, 마약, 성매매, 심지어 부패 경찰까지 엮여 있다는 이야기다. 아니 서초구 경찰서장까지 엮여 있으니, 그 이상이다.

아마 최영민 사장이 거느리고 있는 전 국정원 요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사진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성급하게 조사했다면 피엔 클럽 경우처럼 버닝 클럽이야 망하겠지만, 이들은 결국 명폐만 바꾸어서 다시 또 다른 클럽을 운영할 것이 뻔했다.

“결국 지난 피엔 클럽 사태 때도 그쪽 관할 경찰서가 중간에 수작을 부렸다는 말입니까?”

“그것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하.”

조민호도 굳이 번거롭게 배효진까지 손을 썼지만, 설마 이런 월척이 나올 지는 예상 못 했다.

최영민 사장도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사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마약입니다. 이철명 서장이 이 일과 연루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경찰 역시 연루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현직 경찰서장이 마약과 연관되어 있다는 말을 지금 저보고 믿으란 말입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가만 그러면 대흥실업과 관련이 있던 양오남이 연루된 피엔 클럽 사건이 묻힌 것도 유착 경찰이 중간에 훼방 놓았기 때문입니까?”

“네. 지금까지 제가 다시 당시 관련자를 만나서 확인해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설마 사건 조사를 담당했던 부패 경찰이 정보를 빼돌렸다고는 생각조차 못 한 조민호도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건 전모를 다 파악하는데, 얼마나 더 걸리겠습니까?”

“정부 고위직과 지역 경찰서가 연루된 일이라서 조사가 너무 광범위하고, 자칫하면 관련 경찰 귀에 들어갈 수도 있어서 일정을 정하기 어렵습니다.”

“계속 파보세요.”

“알겠습니다.”

최영민 사장 안색은 평소와는 달리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 이미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만으로도 그 바닥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조민호도 전 민정 수석실에서 일한 적이 있던 관할 경찰서장이 이번 일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파악하자 고민에 빠졌다.

‘신중하게 처리한 것은 좋았는데,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지는데......,박상철 과장 이놈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이놈들에게 로비하고 돌아다닌 걸까?’

***

현 정권은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문제인 양극화를 명분으로 내세워서 세금을 더 걷었는데, 경제 성장률은 더 가파르게 하락했다.

빈부 격차는 심해졌고, 새로운 빈곤층이 더욱더 늘어났다.

지니계수는 IMF 때보다 더 심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복지 지출을 더 늘려 나가고 있었다.

이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런 현 정권을 맹렬하게 옹호했고, 심지어 현 정권과 대립하는 양주민 검찰총장의 검찰청 앞에 가서 ‘검찰 개혁!’을 외치면서 매일 시위를 벌였다.

조민호도 뒤늦게야 검찰청의 처지를 파악하고 나서는 혀를 내둘렀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그런데 그는 굳이 누구 편을 들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현 정권이나 야당이나 어차피 권력 잡으면 달라질 것이 없다고 봤다.

이런 상황에서 조민호는 박상철 과장 배후가 현 정권과 서로 복잡하게 엮여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박상철 과장 배후만 메스를 가해서 잘라낸다고 해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현 정권이 그냥 손 놓고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은 공안이 있어서 내 맘대로 하기 딱 좋은데, 한국은 시스템이 복잡해서 골치 아프네.’

결국 현 정부를 날려버려야 하나라고 고민하던 조민호도 일의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차라리 만약을 대비해서 우군을 더 확보하기로 마음먹었다.

번거롭고 귀찮다는 것을 아는 조민호도 다음 아군으로 영장 문제 때문에 검찰과 계속 대립하는 사법부를 선택했다.

아니 최영준 차장을 직접 만나서 이 문제를 상의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대법원장을 우리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이 있어.”

조민호는 이미 단단히 마음먹었다.

“다음 대법원장 후보는 누구죠?”

그냥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도 진지한 조민호 얼굴에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정말 대법원장 선임에도 손을 쓸 생각인가?!”

“검찰을 이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묶인 줄을 풀어줘야 사냥을 할 것 아닙니까?”

“자네 그 말뜻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하는 소리인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설마 현 대통령을 끌어내려서 탄핵하겠습니까? 마음에 안 든 몇 놈만 메스를 가하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사법부가 중간에 계속 깽판 놓으면 곤란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김정환 부장검사만 해도 영장만 발부되었다면 무영 그룹을 산산조각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도 빌빌거리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 질문에만 답해주세요.”

“글쎄,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딱히 누가 된다고 말하기는 힘들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요?”

“그렇게 봐야지. 하지만 후보군을 좁힐 수는 있어.”

최영준 차장이 내놓은 대법원장 후보 명단은 모두 열두 명이었다.

그 중에 가장 확률이 높은 사람으로 꼽은 것은 한 사람이었다.

“백용훈 변호사라......”

“6년간 대법관으로 일한 경력도 있지만, 오성 애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을 담당했고, 심지어 지난 대통령 탄핵 사건도 변호를 맡아서 양쪽과도 인연이 깊어.”

“하면 현 대통령하고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라서 마음에 안 듭니다만?”

“그거야 자기 사법 성향이 그런 거고. 딱히 어떤 정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이 아냐. 그래서 자네 입맛에 맞는 사람이야.”

“문제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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